드론, 전쟁과 게임의 만남

드론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밀리터리 마니아 외의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단어였습니다. 하지만 현재 드론은 예능 촬영부터 전쟁 시 테러리스트 공격까지 일당백을 해 내고 있죠.

바야흐로 드론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게임과 전쟁은 하나의 접점에서 만났습니다. 게임과 밀리터리, 이번 시간에는 전쟁과 게임의 경계에 있는 드론의 이모저모를 다뤄 보겠습니다.


걸작 SF 소설이자 근래에 영화로도 나왔던 <엔더의 게임>을 아시나요? 주인공 엔더는 외계 군단에 맞서는 부대의 지휘관이 되기 위해 수많은 모의 전투를 치르는데, 알고보니 모의 전투가 모두 실제 전투였더라…는 이야기입니다.

+) 지금 제가 하는 이야기는 “브루스 윌리스가 유령으로 나오는 영화야.”라며 영화 <식스센스>를 소개하는 것과 같습니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아직 원작 또는 영화를 보지 않은 여러분 잘못입니다. ( ͡° ͜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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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는 결말을 알고 봐야 제맛  (´౪`)

왜 사람들은 엔더에게 이게 실제 전투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까요? 작품에서는 냉철하게 전술을 구사할 수 있게 하려는 의도였다고 설명합니다. 이것이 게임이 아니라 실제 상황이고 내 지시로 인해 동료들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면 냉정한 판단이 어려워질 거라는 거죠.

 

# 드론, 전쟁과 게임의 만남

전쟁에서 드론(drone)의 사용도 이와 비슷한 관점에서 비판을 받곤 합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밀리터리 매니아 외의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단어였던 드론은 이제 언론에서도 자주 접할 수 있는 단어가 되었죠.

전쟁에서의 드론의 사용이 심각한 문제로 부각된 것은 오바마 정부 들어서 드론을 사용한 테러리스트 공격이 급증했기 때문입니다. 일부 반대론자들은 드론의 사용이 전쟁을 ‘게임화’하며 이로 인해 살상 행위에 대한 감수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합니다. 엔더의 경우처럼 멀리서 원격조종으로 살해를 하기  때문에 별다른 죄책감 없이 사람을 죽이게 된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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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오브 드론이나 게임 오브 스론이나 많이들 죽어나가는 건 비슷합니다 

상공은  물론 지상과 해상에서도 사용 가능한 드론이 속속 개발되며 <월드 오브 탱크>를 하듯 지상전을 펼치는 시대도 머지 않았는데요. 드론의 운용은 상당 부분 게임과 비슷합니다. 조종사는 (주로) 화면을 통해 외부의 상황을 인식하고 이에 대응하죠. 스크린에 펼쳐지는 상황과 조종사가 어느 정도 유리되어 있다는 것도 비슷합니다.

게이머의 경우 화면 안의 세상은 가상의 현실이고, 드론 조종사의 경우에는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주로) 중동의 한 산간 마을이라는 것이 조금 다릅니다. 어떤 드론의 경우 조이스틱이 아닌 플레이스테이션2의 컨트롤러를 쓰기도 합니다.

 

# 전쟁의 게임화? 드론의 실상

이렇게 되면 전쟁이 게임화되면서 더욱 비인간적으로 변하지 않겠느냐는 주장에도 수긍이 갑니다. 실제로 드론의 사용은 아군 인명의 손실을 가져오지 않기 때문에 더 많은 공격이 실시되었으며, 이 때문에 오폭으로 민간인들이 피해를 입는 경우도 급증했습니다.

그러나 ‘게임화’되기 때문에 비인간적으로 변한다는 지적은 실제로 드론을 운용해 본 사람들의 경험담과는 많이 다릅니다. 오히려 이런 식의 접근법은 게임을 무조건 사회악으로 인식하는 일부 기성세대들의 피상적인 인식과 궤를 같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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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4대 악은 아니라서 다행입니다  

드론 자체의 역사는 베트남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요, 근래 논란이 되는 공격 기능까지 갖추게 된 건 2001년입니다. 초창기 드론 조종사들은 대부분 실제 비행기 조종사 중에서 선발했습니다. 하지만 비행기 조종과 드론 조종은 다른 점들이 꽤 있죠.

드론 조종사들은 기동 비행을 할 때 생기는 중력가속도(G)를 견딜 수 있는 신체적 능력 보다는  화면에 뜨는  다양한 정보들을 빠르게 소화하고 이 정보의 변화에 민첩하게 반응하는 능력이 더 중요합니다. 때문에 군에서는 게이머들을 드론 조종사로 선발하기도 했습니다. 우리에게는 고무적(?)인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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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저 지금 드론 조종사 준비하는 거예요” 

좋아, 이 반란군 놈의 자식들아 내가 곧 탱크, 아니 드론을 몰고… 아, 잠깐만요. 그전에 실제로 프레데터 드론을 4년 동안 조종했던 사람이 한 말을 들어보시죠. “비디오 게임하는 거랑 많이 비슷해요. 근데 똑같은 비디오 게임을 똑같은 레벨에서 4년 동안 계속 하는 거 같은 거죠.”

네, 전 포기할래요. 게임 엔딩 보고 나면 곧바로 지우기에 바쁜 저 같은 사람은 절대 못할 거 같습니다. 오히려 전철에서 아직까지도 애니팡 하고 계시는 아저씨 아주머니들이야말로 세계 최고의 드론 조종사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사실 모든 드론 조종사들이 드론 조종 경험에 대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것이 바로 압도적인 지루함입니다. 어둡고 비좁은 조종실에 2인 1조로 들어가서 교대로 근무하는데 안에서는 전화를 하거나 만화책을 볼 수도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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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을 보는 것 외에는 원칙적으로 아무것도 해서는 안됩니다. 하루에 12시간 가까이 이렇게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여기에 비하면 애니팡은 <콜 오브 듀티>죠.

<콜 오브 듀티> 같은 게임에서는 공중을 잠깐 선회하다가 적외선카메라에 나쁜 놈들이 보이면 곧바로 공격하면 되지만 실제 전장에서는 상황이 많이 다릅니다. 경험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조종사들은 사전에 자신이 공격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해요.

그냥 산간 오지의 시골 마을을 돌아다니다가 영상판독조에서 무언가를 발견하면 이를 상부에 보고하는 과정을 거친 다음, 비로소  공격 명령이 떨어지게 됩니다. 물론 공격 명령 없이 적외선 오지 탐험만 하다가 돌아오는 경우가 훨씬 더 많고요.

 

드론 조종사도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그래도 실제로 사람 죽이는 것보다야 심리적인 충격은 덜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이 또한 실제 경험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많이 다릅니다. 일반적인 폭격기 조종사들은 목표물에 폭탄을 투하하고 나면 바로 현장에서 철수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굳이 오래 머물러서 공격을 받을 이유가 없으니까요.

드론의 경우는 다릅니다. 공격을 하고 나면 그 공격의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주변에서 체공하는 게 일반적이죠. 조종사들은 자신이 공격한 대상이 화염에 휩싸여 버둥거리는 모습이나 자신이 공중지원하고 있는 지상군 부대가 상대방을 사살하는 모습을 모두 카메라로 관찰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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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아서 관찰만 해도 괴로운 건 매한가지 

통계에 따르면 드론 조종사가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PTSD)에 시달리는 비율은 일반 전투 조종사가 PTSD에 시달리는 비율과 같다고 합니다. 그것이 실제 상황이라는 걸 알고 있다면, 총천연색 화면으로 보는 거나 회색의 적외선카메라 화면으로 보는 거나 크게 다를 바 없다는 거죠. 게다가 드론 공격의 경우 민간인이 오폭 당하는 사례도 종종 있어서 드론 조종사로서는 악몽이 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의외의 부분에서 게임과 드론의 공통점이 발견되기도 합니다. 바로 ‘랙(lag)’입니다. 서버와의 핑(*신호가 내 컴퓨터에서 서버에 갔다가 돌아오기까지 걸리는 시간. 이 수치가 작을수록 연결 상태가 좋음)이 50 나오는 사람과 500 나오는 사람이 싸우면 제아무리 콩진호가 와도 승부를 뒤집기 어렵습니다. 물론 내가 이긴 건 실력 차이고 내가 지는 건 랙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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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유 랰?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의 드론을 운용하는 미국의 경우, 아프가니스탄 등지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작전은 CIA에서 지휘해 왔습니다. CIA의 본부는 미국의 랭글리 공군 기지 안에 있는데, 여기서 저 멀리 아프가니스탄의 드론을 조종한다는 거죠. 이거, 상상만 해봐도 랙이 심할 거 같지 않습니까? 멀쩡한 한국 서버 냅두고 어디 루마니아 서버 가서 멀티플레이 뛴다고 생각해 보세요.

물론 CIA가 인터넷으로 드론 조종을 할리 만무합니다만 실제로 드론 조종에서 랙은 심각한 수준이라고 합니다. 한 보고서에 따르면 통상적으로 2~6초 정도의 랙이 걸린다고 해요. 상대방이 보여서 바로 공격 버튼을 눌렀는데 이 명령이 5초 후에 서버에 전달이 된다고 생각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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랙 걸린 김에 커피 한 잔? 그런 여유는 개나..

FPS에서 전투 상황에서 5초 랙이 걸렸다면 그 판은 접고 다시 시작하겠다며 마음을 다잡아야 합니다. 아님 올ㅇ 기가 인터넷 처방을 받든지… 특히 이륙의 경우에는 랙이 걸릴 경우 추락하거나 하는 등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에서 운용되는 드론들은 이륙은 현지에 있는 요원이 조종하여 이륙을 시킨다고 합니다.

 

# 현실과 접목되는 순간, 게임도 현실이 된다

‘게임 오브 드론’을 다시 정리해 볼까요? 이 게임은 비좁고 어두운 철제 상자 안에 들어가야만 할 수 있습니다. PC방 같은 사장님 의자도 없고, 중간에 배고프다고 라면을 시켜 먹을 수도 없죠. 하루에 의무적으로 12시간을 플레이해야 하는데 대부분 흑백의 적외선카메라 영상만 보다 끝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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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론 조종사들은 이런 화면을 12시간 내내 봐야 합니다

가끔 뭔가 액션을 할 때가 오더라도 만성적인 랙을 감수하면서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게임에선 실제로 사람이 죽습니다. 그 사람은 적군도 아닌 그냥 민간인일 때도 있습니다. 악몽조차도 적외선카메라 영상으로 꿉니다.

게임이 현실과 접목되는 순간, 게임은 더이상 가상의 세계로만 남지 않게 됩니다. 우리 눈 앞에 보이는 지금 이 모습이 픽셀이나 폴리곤으로 구현되어 있다는 사실이 이를 바꾸진 못합니다. 지금은 전쟁에서만 게임과 현실의 결합을 이야기하지만, 앞으로는 일상의 많은 분야에서도 게임과 현실이 결합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까지 사회가 게임을 보다 진지하게 여길 수 있게 되길 바랄 뿐입니다.


김수빈김수빈 게임을 만들고 싶었다. GW 베이직으로는 안되길래 책을 보니 C를 배워야 한대서 엄마한테 학원 보내달랬더니 공부나 하라고 해서 포기. 게임 잡지 기자가 되고 싶었으나 게임 잡지들이 하나씩 망하는 것을 목격. 매일 수련을 거듭하고 있으나 나라를 위해 싸우지는 않으며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목숨을 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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