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ABOUT 리니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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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재현

현 엔씨소프트 COO

대표작: 리니지, 리니지 2 , 블레이드 & 소울 개발 총괄

현재 LE와 모바일게임 분야를 총괄 지휘하는 게임업계 슈퍼 스타 중 1인

  인터넷으로 즐길 있는 게임을 만들고 싶어

컴퓨터를 좋아하던 두 청년, 김택진과 송재경이 옥상에서 대화를 나누었던 주제다. 이후 그들은 많은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게임을 만들었다. 그것이 리니지의 시작이었다.

리니지는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대한민국 인터넷 보급률 상승에 일조하였고, 동네마다 피씨방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대만에서는 리니지의 트래픽을 감당하지 못해 국가 인터넷망이 두 번이나 다운되었다.

그렇게 엔씨소프트는 MMORPG의 명가로서, 세계가 주목하는 게임회사가 되었다. 리니지는 십수 년이 지난 지금까지 최고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리니지의 하루하루가 한국 게임의 역사를 하루하루 다시 쓰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리니지의 신화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성장했던 건 회사만이 아니었다. 리니지를 만들었던 20대의 젊은 프로그래머였던 배재현도 성장하였다. 그는 리니지 이후 리니지 2, 블레이드 & 소울과 같은 대작 게임을 연달아 성공시키며 한국 게임계에 묵직한 존재감을 알렸다. 리니지 제작 당시 개발자였던 배재현 COO에게 리니지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었다.


 # 컴퓨터로 있는 재미있는 일도 있다

엔씨소프트는 97년 4월 창립했다. IMF 직전이었고, 벤처 붐이 일고 있었다. 김택진 사장은 현대전자에 근무하면서 국내 최초로 인터넷 온라인 서비스를 개발했다. 이름은 아미넷. 하지만 당시 그 회사에서는 인터넷에 대한 니즈가 없었다(잘 됐으면 지금의 네이버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현대전자를 나와 새로 차린 회사가 바로 엔씨소프트다. 나 역시 현대에서 근무하다 사장님을 따라 엔씨의 일원이 되었다. 당시 나는 내가 게임을 개발하게 될 거라 생각치 못했다. 게임은 그저 사적으로 좋아했을 뿐이었다.

회사가 세워진 후 우리는 인트라넷, 결제시스템 등의 네트워크 작업을 주로 했다. 당시 SK가 ‘넷츠고’라는 포털을 운영했는데, 이 포털의 핵심은 대부분 우리가 외주 형식으로 개발했다. 대기업이 운영하는 포털 전신의 모델 개발 부분을 우리가 맡았다. 또 네오위즈와의 협업도 있었다. 원클릭이라는 시스템을 개발하여 붙인 일인데, 네오위즈의 페이모델(결제시스템)이었다. 시대적으로 봤을 때 그것 또한 굉장히 빠른 기술이었다. 하지만 김택진 사장은 그 다음을 보고 있었다. 바로 게임이었다.

당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컴퓨터를 생산하는 툴로만 생각하던 때였다. 김택진 사장은 컴퓨터로 훨씬 더 재미있는 일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애초에 베네치아라는 게임을 만들었던 사람이었고, 대학 때 유닉스로 텍스트 RPG 게임 로그를 개발해 즐겨 했었다. 개발자들 사이에서도 이미 너무 유명한 선배였다.  그랬던 그이기에 네트워크 기술력이 갖춰진 상황에서, 컴퓨터를 통해 사람들이 다 같이 즐겁게 할 수 있는 그 무엇을 고민했던 것 같다. 그게 바로 게임이란 장르였고, 그것이 바로 최초의 인터넷 게임, ‘리니지’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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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새로운 형태로 성공하다

사실 나는 게임이 사업이 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시대적 분위기가 그랬다. 그런 상황에서 리니지의 플레이 방식, 사업모델은 굉장히 혁신적이었다. 지금이야 인터넷이 당연한 시대지만 당시는 그렇지 않았다. 스타크래프트도 배틀넷이 아니라 LAN으로 연결해서 만나던 시기였다. PC통신 게임은 있었지만 인터넷 기반의 게임은 없었다.

우리의 미션은 인터넷으로, 많은 사람이 즐길 수 있는 구조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구상하는 리니지의 서버는 동시다발적으로 몰리는 엄청난 데이터를 처리해야 했다. 그리고 플레이어들의 자료를 안전하게 저장하고 관리할 수 있게 하고 싶었다. 여러 가지 기술적인 도전이 많았다. 처음 서버를 개발하고 보니 동접 100 정도를 감당할 수준 밖에 되지 않았던 것이 몇 달 동안 진화를 거쳐 1,000명, 그 이상까지 가능한 수준이 되었다.

시작은 김택진이라는 한 사람의 꿈이었지만, 그것이 어느 새 우리 모두의 꿈이 되어 있었다. 우린 모두가 네트워크 관련 기술이나 시스템에 익숙한 사람들이었고, 네트워크를 활용해보자는 의지와 공감대가 있었다. 연구소나 회사에서 계속해서 기술을 접해왔던 경험이 순간순간 판단의 원천이 되었을 것이다.  

 

#리니지는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리니지의 성장은 그야말로 폭발적이었다. 1998년 제야의 종이 칠 때 플레이어가 1000명이었는데 1999년 20만 명으로 늘었으니, 런칭 1년만에 200배가 넘는 성장을 한 셈이다. 시스템과 하드웨어를 갖추기 시작하면서 성장세는 더욱 탄력을 받았다.

시스템과 하드웨어쪽에 많은 역량을 집중해 초기의 인원을 감당할 수준이 되니 이제 콘텐츠가 필요해졌다. 플레이어 수가 급격히 늘어난 만큼 그들이 즐길 수 있는 놀거리에 대한 고민을 안할 수 없었다. 소모성 콘텐츠로는 답이 없었고, 정적인 콘텐츠로는 부족했다. 그렇게 해서 내가 기획한 것이 ‘공성전’이었다. 공성전은 게임 설정상으로도 중요한 요소이기도 했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한데 모여 놀아보자는 일종의 놀이터를 만들자는 목적이 있었다.

우리가 깔아놓은 리니지라는 판에서 많은 이들이 새로운 경험을 했다. 자신이 원하는 이름을 짓고, 취향에 맞는 직업을 선택하고, 자유롭게 사냥을 즐기거나 장사를 하기도 했다. 그 안에서 커뮤니티를 만들기도 했다. 그렇게 쌓여가는 경험들이 리니지의 즐거움이었고, 리니지가 사람들에게 어필할 수 있었던 가장 강력한 쾌감이었다.

리니지 이후로 한국의 게임 시장의 흐름은 패키지에서 온라인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한국 인터넷 보급률은 리니지의 런칭 시점 이후로 급격한 상승 곡선을 그린다. 스타크래프트를 제외하면 당시 PC방에서 할 수 있는 게임이 거의 없었는데, 리니지를 하기 위해서 PC방을 차리는 경우도 있었으니 당시 시대와 맞물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리니지로 인해 정말 많은 것이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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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MF, H.O.T도, 계절이 지나가는 것도 몰랐다!

리니지 개발부터 상용화 이후까지, 정신 없이 바쁜 삶을 살았다. 그 때는 기획서도 없이 게임을 만들었다. 옆에 붙어서 아이디어를 얘기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개발을 했다. 다들 호흡이 잘 맞았던 덕분에 가능했다. 나도 그렇고 다들 만화와 게임을 좋아하던 오덕 1세대들이었다. 한국에 정식 발매되지 않은 다양한 콘텐츠들을 어떻게든 구해보는 게 취미인 사람들이었다. 같은 동호회 생활도 하면서 공감대도 잘 맞았다. 리니지가 한창 커갈 땐 그런 재미가 있었다. 누군가 이거 해볼까 말 꺼내면 그게 곧 게임에 등장하는 식이었다.

97년부터 2000년까지는 일한 기억 밖에 없다. TV볼 시간은 당연히 없었고, H.O.T.도 몰랐다. IMF도 실감하지 못할 정도로 바빴다. 굳이 리니지의 경쟁작을 꼽자면 ‘바람의 나라’인데, 당연히 볼 시간도 없었다. 사무실에만 있어 계절도, 시간도 실감하지 못했었다. 당시 현장의 개발자들 중에도 리니지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예상이 안 되기도 했지만, 사실 일이 너무 많아 예상할 시간이 없었다.

2000년인가, 비로소 짬이 나서 뒤를 돌아보니 3명으로 시작했던 개발팀 인원이 수십 명이 되어있었다. 그땐 젊다 못해 어린 시절이었다. 다 같이 모여서 개발하고 동료 선후배들과 소주 한 잔 나눠 마시고 또 개발하고 했던 시간들은 생각해보면 굉장히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런 경험들이 지금의 엔씨소프트를 있게 한 바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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