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프로게이머 삼인방의 “그땐 그랬지”

엔씨소프트에는 화려한 이력을 지닌 직원들이 많습니다. 그중 이번 NC PEOPLE에서 소개할 주인공은 2000년대 초반, 워크래프트3의 프로게이머로 이름을 날렸던 삼인방입니다!

같은 게임, 같은 길드를 거쳐 같은 회사에 입사하기까지. 삼인방의 화려한(!) 프로게이머 시절이 현재의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들어보았습니다.

LE QA팀 황연택 차장, 리니지2 QA팀 최승걸 과장, 리니지1 QA팀 오창정 대리가 들려 주는 ‘그때 그 시절’로 함께 가 보실까요~? ( ͡° ͜ʖ ͡°)


# 밀레니엄, 그리고 온라인 게임

때는 세기말의 기운이 가득했던 1999년. 당시 스타크래프트(이하 ‘스타’)를 필두로 한 온라인 게임의 인기는 실로 대단했다. 피씨방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너도나도 그곳에서 밤을 샜으며, ‘쌈장’이라는 ID를 쓰는 게이머가 TV 광고에 나오기도 했으니까.

이기석 코넷

이 CF를 기억한다면 당신도 아…아재!? 

게임을 누구보다 좋아했던,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삼인방이 프로게이머가 된 것은 자연스러운 선택이자 운명과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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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최승걸 과장, 황연택 차장, 오창정 대리 

오창정 대리(이하 ‘오창정’) 어릴 때부터 게임을 좋아했는데, 스타가 나온 뒤론 뭐 정신을 못차렸죠(웃음). 자연스레 한 공간에 몇몇이 모여 게임을 하게 됐고, 그러다 보니 전문적으로 게임을 하게 됐어요. 그때 한창 공부할 나이였는데…ㅠㅠ

황연택 차장(이하 ‘황연택’) 왜, 그때 게임해서 잘 풀렸잖아요?(웃음) 저는 그때 ‘웨스트우드’라는 게임사에서 만든 ‘레드얼럿’을 열심히 했었어요. 대회도 많이 나갔고요. 워크래프트3(이하 ‘워3’)가 나온 뒤엔 그쪽 대회에서 입상을 많이 해서, 자연스레 워3 프로게이머가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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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사람이 청춘을 바친 게임, 워3 

최승걸 과장(이하 ‘최승걸’) 저는 고3 겨울방학에 프로게이머들을 후원해주는 일종의 ‘스폰서’ 같은 피씨방에서 알바를 했는데, 거기서 게임하는 친구들을 많이 알게 됐어요. 워3만 열심히 했는데, 하다 보니까 어느새 티비에 나오고 있더라고요. “꼭 프로게이머가 될 거야.”하고 결심해서 된 건 아니구요.

 

# 게임이 직업이 될 수 있는 세상

지금은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이 익숙하지만,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그렇지 않았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 같은 직업이자, 앞으로 계속 존재할지 알 수 없는 직업이면서도, 당시 10대들의 선망을 한 몸에 받는 직업이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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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을 하며 돈을 벌 수 있다니 넘나 좋은 것! 

최승걸 그땐 직업이라는 인식이 없었어요. 대회에 나가서 이기고 싶다, 상금도 타면 좋겠다, 이런 도전욕구가 강해서 대회에 나가고 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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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걸 과장 

황연택 프로게이머로 등록돼 있지 않으면 상금이 ‘불로소득’으로 분류돼서 세금을 30퍼센트나 내야 했어요. 하지만 프로게이머로 등록을 하면 그게 내 ‘직업’이 되기 때문에 세금을 3.3퍼센트 뗐죠. 세금 많이 내는 게 싫어서 프로 타이틀을 가지고 싶었던 것 같아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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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게이머의 조건은 이랬답니다 

오창정 지금은 프로팀이 있어서 선수들이 지원을 많이 받지만 그때는 그런 게 없었어요. 화려해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죠. 수입이 일정한 것도 아니라, 하루하루의 운에 맡겨야 했고요.

최승걸 그래도 연택 씨는 총 상금 합치면 1억 넘지 않아요? (일동 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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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 억이라니!!!  ( ゚Д゚)

황연택 에이~아니에요. 그렇게 많진 않아요. 상금 받아도 팬들이랑 도움 주신 분들에게 밥 몇 번 사고 이래저래 하다 보면 수중에 남는 게 없었어요. 게임하다가 허리디스크 와서 치료하느라 거금 쓰기도 했고…남는 게 없었어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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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 상금 앞에서도 시크한 표정.jpg 

최승걸 그땐 프로게이머라고 친구들이 우러러보고 이런 것도 없지 않았어요? 돈을 많이 버는 직업도 아니고, 오래할 수 있는 직업도 아녔으니까요. 그 실체를 알만한 사람들은 별로 부러워하지 않았죠(웃음).

 

# 플레이 스타일도 제각각

우직하게 밀어붙이는 스타일, 정석대로 플레이하는 스타일, 조조 뺨치는 지략가 스타일…프로게이머마다 플레이 스타일이 다른 것은 당연지사. 2002년에 전성기를 찍은 삼인방의 플레이 스타일은 각각 어떻게 달랐을까?

오창정 게임을 하다 보면 좀 쉽게 이길 수 있는 방법들이 있기도 한데, 그런 방법은 거의 쓰지 않고 이기든가 지든가 둘 중 하나의 플레이를 하는 편이었죠. 전투지향적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면을 많이 좋아해주셨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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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창정 대리 

황연택 남들은 유리한 스킬을 계속해서 쓰는데, 창정 씨는 약한 종족이면서도 그러지 않았어요. 우직하게 밀어붙이는 타입이라 인기가 많았죠. 당시 꽃미남 외모도 한 몫 했고…(일동 웃음)  

오창정 대리님 과거 사진

위 사진과 동일인물입니다(아 세월이여…)

황연택 저는 이기기 위한 게임을 해서, 재미있게 게임하는 스타일은 아니었어요. 온게임넷에서 우승했을 때도 ‘건물 러시’라고 버그는 아니지만 밸런스 면에서 강한 유닛이 있었는데, 그걸 주로 활용해서 경기를 하다 보니 ‘재미도 없고 이게 뭐냐’라는 일부 안티팬들의 반응이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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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연택 차장

오창정 밸런스를 잘 활용하는 게 뭐 어때서? 어차피 게임은 이기는 게 목적이잖아요.

최승걸 그러게. 저는 정석대로 플레이해서 별명이 ‘정석의 달인’이었어요. 남들이 가장 많이 하는 방식을 따른 거죠. 아마 제가 경기 수도 제일 많고 연습량도 가장 많았을 거예요. 하루에 30~40판 정도는 무조건 했으니까요.

 

# 오로지 게임, 게임, 게임

게임이 좋아 프로게이머가 된 삼인방. 당시 먹고 자는 시간 외에는 게임에 ‘올인’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루 평균 플레이 시간은 얼마나 됐을까?

오창정 하루에 20시간은 기본이었죠. 잠 자는 시간 빼고 나머지는 다 게임만 했으니까요.

최승걸 그때 몸무게가 51킬로까지 빠졌어요(일동 경악!). 게임하느라 하루 한 끼도 먹는 둥 마는 둥 했거든요. 이거 안 먹으면 죽겠다 싶을 때 먹었죠. 생각해 보니까 진짜 폐인이네. 으하하!

코미디빅리그_시즌_2_라이또_게임폐인

게임이 직업이라 버린자식 취급은 안 받았습니다만

황연택 난 안 그랬는데? 체력이 약해서 밤 10시면 자고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상쾌하게 게임하고 그랬어요.

최승걸 그게 뭐가 상쾌해! 아침 6시부터 폐인 생활한 거지 뭐~(일동 빵터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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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 경기, 그리고 또 연습…

최승걸 저는 게임에 정말 많은 시간을 투자했어요. 진짜 살면서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노력을 했던 것 같아요. 

오창정 회사 생활보다 그때 더 노력을 많이 하셨군요(웃음). 

황연택 왜, 그 경험이 밑거름이 돼서 지금 잘 살고 있는 거잖아요~.

최승걸 그때 했던 노력의 절반만큼만 해도, 절대적인 노력의 양이 되게 크더라고요. 직업 정신이 강하진 않았지만 승부욕이 대단했던 것 같아요. 결국은 타고난 재능 앞에서 무너졌지만(웃음).

 

# 영광 혹은 고난의 순간들

승리 아니면 패배. 결과가 명확하게 나뉘는 게임의 특성상, 승리의 환호를 외친 순간만큼 패배의 절망감을 맛본 순간들도 많았다. 어린 나이에 사회생활을 경험하며 매일매일을 긴장 속에 살았던 이들의 ‘영광 혹은 고난의 순간들’은 언제였을까? 

황연택 게임 대회에서 우승한 적이 있는데, 결승 당시 버그가 있었어요. 중요한 순간에 같은 버그가 발생했고, 제가 버그를 고의적으로 이용한 거 아니냐는 의혹 아닌 의혹이 있었죠.답답하고 억울해서 해명글을 올리기도 했고요.  

그때 참 힘들었는데, 호사다마라고 그 경험 덕에 엔씨에 입사했어요. 면접 당시 질문이 “가장 인상적인 버그가 무엇인가”였거든요. 할 말이 무지 많았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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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걸 저는 게임 실력이 좋은 편이 아니었어요.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출전했던 대회에서 120등까지 16강에 올라가는데, 그 120명 안에 들지 못한 대기자가 20명 정도 있었고 저도 그 중 한 명이었죠.

예선 출전을 포기하는 인원만큼 대기자들이 올라갈 수 있었는데, 제가 바로 그 턱걸이로 16강에 올라가게 된거예요! 순간 이게 꿈인가 싶었죠. 살면서 아무리 기쁜 일이 있어도 그때 기분과는 비교가 안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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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천하를 다 얻은 것 같구나! 

오창정 MBC 게임 개인대회에서 두 번 연속 8강에서 떨어지고 3번 째로 16강에 올라갔는데,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정말 열심히 연습을 했어요.

16강을 뚫고 8강에서 3명과 경기를 해서 먼저 2승을 하면 4강에 올라갈 수 있었는데, 3명이 모두 2승 1패 동률이 나와서 재경기를 하게 됐고 거기서 저만 떨어졌죠. 게이머 시절을 돌이켜 볼 때 가장 안타까운 기억이에요. 

 

# 시작과 끝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게임이 좋아 고교 시절 프로게이머가 된 이들이지만 어느 순간 ‘이제 게임을 접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는 인생이 시즌1과 시즌2로 나뉘는 듯한 중요한 분기점이 되었다. .

오창정 프로게이머를 그만두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군입대였죠. 23살에 군대에 갔는데, 게임 대회를 계속 나가다 보면 졸업이 너무 늦어질 것 같더라고요. 당시 워3의 인기도 좀 시들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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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걸 워3 프로게이머 중에 ‘장재호’ 라는 선수가 있어요.  가장 실력이 뛰어난 선수라고 평가받았고, 중국을 비롯한 해외에서의 인기도 어마어마했죠. 그 친구가 게임하는 걸 보니까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더라고요.

같은 종족이고, 워3에 대해 모르는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 친구의 플레이는 정말…똑같이 해보라고 하면 전 못하겠더라고요. 그때 한계를 느꼈어요. 이제 그만할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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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베이징 올림픽 당시 성화 봉송(!)을 한 장재호 선수 

황연택 미래가 불투명했어요. 하루는 프랑스에서 열릴 대회를 앞두고 집에서 예산을 치르는데, 전과 달리 엄청 긴장되더라고요.

집에서도 이렇게 긴장을 하는데, 막상 대회장에 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자 이제 게임을 접어야겠다 싶었어요. 게임 기량이 가장 뛰어날 때가 20대 초반인데, 그 시기를 넘기기도 했고요.

 

# 엔씨 QA팀에서의 새로운 삶

세 사람은 시기는 저마다 달랐지만 모두 엔씨소프트 QA팀에 입사했다. 게임을 직접 플레이하며 문제점을 찾아내는 QA 업무에, 전직 프로게이머 경험은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황연택 2005년 입사 당시엔 사내에 프로게이머 출신이 거의 없었어요. 게임을 전문적으로 플레이해 본 경험이 있다는 게 큰 강점으로 작용했죠. 게임을 세밀하게 본다는 장기를 살려 QA팀에 입사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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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QA의 핵심은 매의 눈으로 게임 뜯어보기 

최승걸 프로게이머들은 게임을 ‘뜯어보는’ 특징이 있어요. 2007년에 전역하자마자 입사를 했는데, 그런 경험치를 높게 사 주신 것 같아요. 게임을 분석하는 습관이 있어서 현재 업무에도 큰 도움이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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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창정 맞아요. 게임을 하면서 버그를 겪어 본 경험치가 많다 보니, 게임을 보는 시야 자체가 다르죠. 분석력도 남다르고요. 신입 공고 모집을 보고 첫 주에 고민하다가 이력서를 안 냈는데, 그 다음 주에 공고가 또 떠서 ‘이건 운명이다.’라는 생각으로 지원했는데 연락이 와서 기뻤어요.

 

# ‘그때 그 시절’을 추억하며

노랗게 물들인 머리와 사이버틱한(!) 옷차림으로, TV 중계에 나가 많은 이들의 환호를 받았던 이들. 10년이 훌쩍 넘은 추억을 다시금 꺼내 보는 것은 어떤 경험이었을까?

홍진호

당시 흔한 프로게이머의 복장 

황연택 요새는 온라인 게임을 잘 안 하거든요. 이런저런 옛 이야기를 하다 보니 ‘아, 내가 게임을 정말 좋아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전의 열정도 되살아나고요. 다시 게임을 하고 싶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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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창정 이제는 평범한 직장인이라고 생각하는데, 인터뷰를 하면서 ‘나도 저런 영광을 누렸던 시절이 있구나’. 하고 떠올릴 수 있어서 좋았어요(웃음).

최승걸 제 생각과 행동의 기반에 프로게이머 시절의 경험이 뼈대처럼 자리하고 있다는 걸 평소엔 못 느끼며 살았어요. 그때의 경험이 있어서 지금의 제가 있고, 또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과거 프로게이머 경험을 기반으로 엔씨소프트에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한 삼인방의 인터뷰, 재미있게 보셨나요?

NC PEOPLE 다음 편도 많이 기대해 주세요~ //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