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과 신화 #1 게임으로 만나는 북구 신화

우리는 게임에서 종종 신화 속 등장인물을 연상시키는 캐릭터나, 신화와 유사한 스토리 전개를 접할 수 있습니다.

이는 게임 기획 단계부터 특정 신화를 모티브로 했기 때문인데요, 상징적 이미지와 탄탄한 서사구조를 지닌 신화는 게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도 합니다.

게임과 관련된 신화를 요모조모 파헤쳐 보는 ‘게임과 신화’. 1편에서는 RPG부터 FPS까지 다양한 장르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북구 신화에 대해 알아볼까요?  ( ͡° ͜ʖ ͡°)


우리에게 신화는 곧 그리스 신화입니다. 어릴 때부터 그리스·로마 신화 책을 읽고 ‘올림포스 가디언’을 보다 보니, 뭐 자연스러운 현상이죠.

생각해 보니 우리가 평소 한국 민족의 신을 언급하는 경우는 ‘단군 이래 최악의 가뭄’ 이런 표현이 다가 아닐까 싶습니다. 

너 때문에 그리스 신화 밖에 모르는 바보가 됐으니 책임져

하지만 전세계적으로 현대 대중문화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북구 신화입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판타지 문학의 시조인 톨킨의 <반지의 제왕>은 북구 신화를 많이 원용하고 있습니다. 

요즘 잘 나가는 마블 캐릭터인 토르와 로키도 북구 신화의 대표적인 신이죠. 신인데 인간에 불과한 아이언맨을 못 이기는 것을 보면 좀 안타깝기도 합니다만… #역시돈이최고 #아이언맨짱짱맨 

e5a5bb568df41377f01778f7a558f656이 자막은 실제 영화 내용과는 별 연관이 없습니다…

북구 신화에는 신과 거인, 인간, 정령, 그리고 괴물까지 매우 다양한 캐릭터들이 등장합니다.  신들은 축구에서 1부 / 2부 리그를 나누듯 그룹이 따로 있고, 거인족은 신과 거의 동등한 위치에 있어서 구분이 잘 안 되죠. 

이를테면 우리가 토르의 동생으로 알고 있는(이건 마블 탓이 크죠) 로키는 어떤 문헌에서는 거인족(요툰)으로 나왔다가 어디서는 신족(아스)로 나옵니다. 각기 다른 이름으로 나오는 신이 알고보면 동일인물이어서 아리송한 경우도 많고요. 

여기서 오딘, 토르, 로키, 발더 등이 누군지를 구구절절이 설명하지는 않겠습니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왜 게임에 북구 신화가 자주 등장하느냐 하는 것이니까요. 

# 게임 속 북구 신화

위에서 언급한대로 북구 신화는 등장인물이 매우 많습니다. 매력적인 캐릭터가 많다는 건 게임 입장에선 땡큐죠.  북구 신화의 등장인물만 잘 갖다써도 캐릭터와 스토리텔링이 해결되니까요.

이처럼 북구 신화의 캐릭터와  지역 명칭 등이 게임 내 사용된 사례는 엄청나게 많아서,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세계관 전반에 북구 신화가 깔려 있는 대표적인 게임은 ‘라그나로크 온라인’입니다. 이름부터 북구의 차가운 냉기(?)가 느껴지죠? 이명진 작가의 동명의 만화를 기반으로 만든 MMOPRG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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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탄이 1탄보다 잘 안 된 게 넘나 안타까운…

기왕 RPG 이야기했으니 일본 RPG 시리즈의 최고봉인 ‘파이널 판타지’ 이야기도 하고 넘어가죠.   파이널 판타지 7편에는 ‘니블하임’이나 ‘미드가르’ 같은 북구 신화의 지명이 나오고 라그나로크라는 이름의 무기도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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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최대 걸작으로 꼽히는 파이널 판타지 7

다른 시리즈에서도 오딘이라는 이름의 소환수가 우정출연하고, ‘발할라’라는 북구 신화의 사후세계도 배경으로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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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파이널)’이라면서 어느덧 14번째 시리즈까지  ^ㅁ^; 

방대한 세계를 자랑하는 게임 ‘엘더스크롤’ 시리즈에 등장하는 노르드족은 아예 이름부터 고대 스칸디나비아인의 실제 이름입니다. 게임 등장인물 이름 짓는 것도 노가다일 텐데, 북구 신화가 한 큐에 해결해 준 사례죠. 

사람들 이름의 철자도 모두 고대 노르드어 스타일이라,  대체 이걸 뭐라고 발음해야 좋을지 대략 난감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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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더스크롤5: 스카이림에 등장하는 노르드족의 모습

*)  발음하기 난감한 노르드 스타일 이름을 지어주는 웹사이트도 있으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죽어도 쉬지 못하는 사후세계, 발할라 

북구 신화가 게임에서 각광받는 또 다른 이유는 극적인 설정 때문입니다.  인물도 극적이고, 무대도 극적이고, 세계관도 극적이죠.  

특히 무대는 무려 지옥의 밑바닥입니다…이보다 더 게임같은 설정이 있을까요?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갈 북구 신화의 두 가지 개념이 있습니다. 하나는 ‘라그나로크’로 대변되는 종말론이고, 다른 하나는 ‘발할라’라는 매우 특이한 사후세계의 관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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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할라! 영화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에도 등장하죠 

라그나로크(고대 노르드어로 ‘신들의 황혼’을 뜻함)는 신들과 그 적들 사이에 벌어지는 미래의 대전쟁을 가리킵니다.

그때는 끊임없는 전쟁으로 오딘, 토르, 로키 등과 같은 신들이 죽고 세계가 바다 속으로 가라앉게 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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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그나로크를 묘사한 그림 

이런 대재앙이 지나고 나면 겨우 생존한 신들과 단 두 명의 인간 생존자가 다시 세상을 풍요롭게 만든다고 해요. 이런 종말론은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발할라’라고 하는 사후세계는 매우 독특합니다.

전투 중 사망한 전사들이 발할라에 오는데, 오딘의 휘하에서 라그나로크를 대비하기 위해  꾸준히 전력을 다지는 게 목표입니다. 

그래서 종말의 그날이 올 때까지 발할라에서 계속 고기와 술(!)을 먹고 계속 서로 싸웁니다.  싸우다 죽어도 걱정할 게 없습니다. 발할라에서 해가 지면 다시 부활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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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어라 마셔라~ 발할라는 이런 곳입니다 

‘엘더스크롤5: 스카이림’의 퀘스트 중 하나는 주인공을 진짜 발할라로 보냅니다. 신화 속 발할라에 간 전사들처럼 줄창 싸우는 거죠.

보통은 전투에서 용감히 싸우다 죽으면 내세에서 어떤 보상을 약속받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북구 신화에서는 싸우다 죽는다고 해서 편안한 내세가 보장되진 않습니다.

내세에서도 계속 치고받고 싸워야 합니다. 그것도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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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영원히!? 

고기와 술이 무한으로 제공된다는 것은 물론 좋은 일(!)이지만… 북구의 거친 환경과 싸움에 대한 독특한 인식이 다른 신화에서는 보기 힘든 내세관을 만든 게 아닐까 합니다.

 

#북구 신화가 대중 문화를 지배하게 된 까닭 

게임을 비롯한 대중문화를 지배하는 북구 신화. 그 인기 비결은 대체 무엇일까요? 발할라의 고기·술 무한리필의 매력 덕택…이라고 보기엔 좀 무리가 있겠죠.

멀리 거슬러 올라가면 16세기 문화 운동의 영향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때부터 북유럽을 거점으로 8세기 말부터 11세기 초까지 맹활약을 펼쳤던 ‘바이킹’을 재발견하는 소위 ‘바이킹 리바이벌’이라는 움직임이 있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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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앙! 곰도 때려잡는 바이킹의 위엄! 

바이킹은 고대 노르드어로는  ‘해적’이라는 뜻이지만,  단순히 그런 의미보다는 보다 낭만적인 영웅의 느낌도 있습니다. 이러한 의미를 부여한 대표적인 사례로 스웨덴의 시인이자 작곡가인 에리크 구스타프 예이예르가 19세기 초에 쓴 <바이킹>이란 시가 꼽힙니다.

예이예르는 고대 스칸디나비아를 재조명하면서 바이킹 리바이벌에 큰 역할을 한 예타회(Geatish Society)라는 문예 단체의 창립 멤버였습니다. 

예타회 소속인 에사이아스 텡네르가 쓴 <프리트히오프의 사가>라는 영웅 서사시도 유명하죠. 이것이 영국, 미국, 독일까지 널리 퍼지면서 북구 신화에 대한 관심을 높였습니다. 이게 결국 북미 게임에까지 영향을 준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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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킹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블리자드의 고전 게임 ‘길 잃은 바이킹’

스칸디나비아 지역의 국가가 아님에도 지리적 인접성 때문에 북구 신화의 영향을 받은 나라들도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곳은 독일입니다. 

심지어 나치 독일 또한 북구 신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유럽에서 민족주의가 부흥하자, 기존 유럽 기독교 체제를 거부하고 기독교가 들어오기 이전의 북구 민족 고유의 종교를 부활시키려는 신이교주의(neopaganism) 또한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독일도 예외가 아니었죠. 20세기 초에 툴레(Thule Society)라는 신이교주의+오컬트 단체가 탄생했는데 이 단체는 나치와 연관이 깊습니다. 루돌프 헤스, 하인리히 히믈러, 헤르만 괴링 등의 초기 나치당 주요 인사들이 모두 이 단체 소속이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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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문양과 유사한 툴레의 심볼 

히틀러가 툴레에 가입했었더라는 카더라 썰도 있는데, 공식적인 문헌에 기록된 바는 없습니다. 

툴레의 영향을 받은 게임을 좀 살펴볼까요?  1981년 첫 출시 후 여러 가지 새로운 방식을 시도해 온 ‘울펜슈타인’ 시리즈도 배경에 툴레의 존재를 깔아놓고 있습니다.

2차 대전의 승리를 위해 초자연적인 능력을 이용하려는 나치 독일을 공격하는 과정을 그린 1인칭 슈팅 게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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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에 선보인 ‘울펜슈타인 : 뉴 오더’

이런 역사적인 사례들을 살펴보면, 북구 신화가 현대 대중문화를 제패하게 된 것은 하루아침에 일어난 일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고대를 지배한 문화가 그리스 로마 신화라면, 근현대를 지배하는 문화는 북구 신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가장 핫한 대중문화인 게임에서 북구 신화가 단골로 등장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게임과 신화, 다음 편에서는 이집트 신화와 게임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커밍순. 


김수빈김수빈 게임을 만들고 싶었다. GW 베이직으로는 안되길래 책을 보니 C를 배워야 한대서 엄마한테 학원 보내달랬더니 공부나 하라고 해서 포기. 게임 잡지 기자가 되고 싶었으나 게임 잡지들이 하나씩 망하는 것을 목격. 매일 수련을 거듭하고 있으나 나라를 위해 싸우지는 않으며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목숨을 걸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