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과 신화 #2 본격 이집트 신화 게임, 파워 슬레이브

우리는 게임에서 종종 신화 속 등장인물을 연상시키는 캐릭터나, 신화와 유사한 스토리 전개를 접할 수 있습니다.

이는 게임 기획 단계부터 특정 신화를 모티브로 했기 때문인데요, 상징적 이미지와 탄탄한 서사구조를 지닌 신화는 게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도 합니다.

게임의 신화적 요소를 요모조모 파헤쳐 보는 ‘게임과 신화’. 2편에서는 고대 이집트 신화를 테마로 한 고전 FPS 게임 ‘파워 슬레이브’를  중점적으로 소개합니다.  ( ͡° ͜ʖ ͡°)


이집트는 예로부터 신비 그 자체로 여겨져 온 나라입니다.

한국의 신흥 종교들이 대부분 기독교에서 그 권위를 빌려오듯, 유럽에서 신비주의 냄새를 풍기려면 ‘사실 이게 고대 이집트에서부터 내려온…’이라는 밑밥을 깔아야 했죠. 

한국에서도 꾸준히 유행하는 타로 카드도 그 권위는 고대 이집트에서 기원했다는 설이 바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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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널리 알려진 마르세이유 타로 카드

하지만 실상은 다릅니다. 사실 이집트 신화는 일정한 체계가 없는 게 특징이죠. 

물론 오시리스니 이시스니 하는 주요 신들은 존재합니다만, 이들에 대한 신화도 워낙 버전이 제각각이라 하나로 정리하기란 불가능하다고 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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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의 주요 신, 오시리스와 그의 아내 이시스 

대부분의 이집트인들은 문맹이었고, 그 때문에 대부분의 신화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세월이 흐르는 동안 유실됐습니다. 

현재 남아있는 것들은 모두 그림이나 문서로 기록된 것들 뿐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남아있는 기록들은 신화의 내용에 대해 상세하게 적어놓지 않았다는 게 특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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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그림을 통해 신화의 내용을 유추해 봅시다 

게다가 역사가 흐르면서 이쪽 지역에서 주로 숭배한 신들과 저쪽 지역에서 숭배한 신들이 합쳐지는 등, 여의도 정가처럼 끊임없이 이합집산을 거듭해왔습니다. 

그 결과 이집트 신화는 하나의 거대한 짬뽕탕이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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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많이 합쳐져서 원조가 뭔지 #알수가없어 

어디서는 세계를 창조한 신이 아툼이라고 하고, 또 어디서는 프타라고 하고, 다른 출처에서는 아문이라고 하고… 다른 데서는 태양신으로 숭배되던 라가 창조신 아툼과 M&A를 하여 아툼-라가 되기도 합니다.

그리스 신화처럼 이집트 신화도 수백 년간 사골 우려먹듯 해와서 그런지,  이집트 신화만을 기반으로 만든 게임은 많지 않습니다. 몬스터 하나가 이집트풍으로 등장하는 정도가 대부분이죠. 

또한 이집트 신들이 등장하는 게임은 ‘스마이트’처럼 다른 신화의 신들과 함께 나오는 게 대부분이라, 게임 전반에서 이집트 특유의 분위기를 느끼기는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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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신을 골라 플레이할 수 있는 온라인 배틀 RPG 스마이트 

맨 오른쪽 캐릭터가  바로 이집트의 전쟁과 사냥의 신 ‘니스’입니다.

하지만 90년대에 출시된 게임 중 전적으로 이집트를 배경으로 한 게임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도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FPS 장르의 게임이죠.

‘둠’이 FPS의 신기원을 연 이후인 1996년에 나왔으나, 비슷한 시기에 나온 ‘듀크 뉴켐 3D’ 등의 인기에 밀려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파워슬레이브’라는 게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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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슬레이브 오프닝 화면

듀크 뉴켐 3D를 만든 3D렐름스의 엔진(‘빌드 엔진’)을 썼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시절 FPS 게임들이 다 그렇듯 시놉시스는 단순명쾌하기 그지 없습니다. 정체불명의 세력이 이집트의 카르낙 신전 지역을 장악하며 게임이 시작됩니다. 

주인공은 진상을 파악하고 카르낙을 되찾기 위해 투입된 특수부대원입니다. 그런데 타고 있던 헬리콥터가 격추되면서 주인공만 홀로 살아남아 카르낙을 탐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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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DOS판 파워슬레이브의 첫 레벨 모습

주인공의 체력 상태 등을 보여주는 탭에서도 이집트의 향기(?)가 물씬 풍깁니다 

외로운 관광객에게 친구가 없으면 쓸쓸하겠죠. 작고 귀여운(?) 쥐부터 아누비스 st.의 괴물과 미이라, 악령 등 다양한 친구들이 주인공을 반갑게 맞이합니다.

이들은 ‘킬마트’라고 하는, 외계에서 지구를 정복하러 온 사악한 존재들입니다. 그리고 주인공은 혈혈단신으로 이들을 모조리 무찔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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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아누비스 st.의 괴물을 가장 많이 마주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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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이건 또 뭐람 #용도_아닌것이_전갈도_아닌 

파워슬레이브는 PC(MS-DOS)를 비롯해 콘솔(세가 새턴, 소니 플레이스테이션)용으로 선보였는데 PC와 콘솔 버전은 많이 다릅니다. 레벨 디자인도 다르고 심지어 엔딩도 다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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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슬레이브 새턴 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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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워슬레이브 플레이스테이션 ver.

PC 버전의 파워슬레이브는 마지막 레벨에서 킬마트의 모선에서 장착된 핵무기를 무장 해제하는 미션을 수행합니다. 실패하면 (당연히) 지구가 멸망합니다.

성공하면 킬마트가 지구에서 퇴각하는데, 주인공은 킬마트의 모선에 갇혀 빠져나와야 하는 상황에 처합니다. 

어째 진짜 해피엔딩은 하나도 없죠? 아마도 후속작을 위한 포석이었던 것 같은데… 아시다시피 후속작은 결코 나오지 못했죠. #후무룩 

PC 버전 파워슬레이브 플레이 동영상

콘솔 버전은 좀 더 요상한 스토리로 진행됩니다. 킬마트가 카르낙을 점거한 이유가, 세계 정복을 하려고 고대 이집트 파라오 람세스의 미이라에서 에너지를 흡수(!)하기 위해서라는 거예요.

람세스는 주인공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자신의 미이라를 킬마트로부터 구해줄 것을 부탁합니다.

(아니 그런데 미이라에서 그렇게 강력한 힘이 나온다면 그냥 람세스 스스로 자신의 미이라를 구하는 게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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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 선생님과 담소 중 

콘솔 버전에서 게임을 클리어하면, 람세스가 감사를 표하면서 영생과 세계의 권좌를 선물로 드립니다. 역시 파라오라  통이 참 큽니다, 그쵸?  FPS 게임 중에 이렇게 엄청난 해피엔딩은 처음 봅니다.

게임 전반에 이집트 분위기가 물씬 풍기긴 하지만, 사실 파워슬레이브는 이집트 신화를 철저하게 고증한 게임은 아닙니다.

등장하는 신들의 모습을 보면, 이집트 신화에 대한 간단한 지식만 있어도 쉽게 알아차릴 만한 디자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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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대체 어떤 이집트 신을 참고한 걸까요? #누구냐넌 

게임성도 물체를 폭파시키며 진행을 하거나, 지형지물을 직접 이동시켜야 진행이 가능하다든지 하는 약간의 참신한 점을 제외하면 다소 지루한 면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게임을 굳이 꼽은 이유는,  이집트 신화 하나를 집중적으로 파고들어서 분위기를 제대로 연출한 게임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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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면볼수록 정이 가는(?) 몬스터 

이런 저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파워슬레이브는 이집트 테마 하나로만 밀어붙인 뚝심이 빛나는 추억의 고전 FPS 게임입니다.

그런 특징 때문일까요, 작년 즈음 한 게임 디자이너가 직접 파워슬레이브를 최신 엔진으로 리메이크해서 ‘파워슬레이브 EX‘란 이름으로 무료로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확실히 그래픽이 훨씬 좋아졌죠?

현재는 저작권 관련 문제 때문에 다운로드가 불가능한 것이 안타깝습니다. 파워슬레이브 EX 플레이 동영상을 보시면서 그 아쉬움을 달래 보시죠. 


김수빈김수빈 게임을 만들고 싶었다. GW 베이직으로는 안되길래 책을 보니 C를 배워야 한대서 엄마한테 학원 보내달랬더니 공부나 하라고 해서 포기. 게임 잡지 기자가 되고 싶었으나 게임 잡지들이 하나씩 망하는 것을 목격. 매일 수련을 거듭하고 있으나 나라를 위해 싸우지는 않으며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목숨을 걸 뿐.

 

 

 

 

게임과 신화 #1 게임으로 만나는 북구 신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