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무협게임의 계보 #5 블소의 무협 세계관

한국 무협게임의 역사와 특징을 되짚어 보는 ‘한국 무협게임의 계보’.

이번에는 무협게임의 새로운 기준을 보여준 <블레이드 & 소울>의 무협 세계관을 살펴보겠습니다. ( ͡° ͜ʖ ͡°)


한국 온라인 게임의 역사에는 두 개의 뿌리가 있습니다. 하나는 <반지의 제왕>에서 시작된 서양판타지 게임이고 다른 하나는 김용의 무협 소설을 기반으로 한 무협게임입니다.

판타지 계열은 <리니지>, <뮤 온라인>,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아이온>으로 이어지면서 시장의 주류를 형성했습니다.

무협게임들은 늘 판타지의 그늘에 가려졌었죠. 하지만 무협게임 특유의 정서와 감성이 한국 게이머들에게 큰 영향을 준 것은 사실입니다.

특히 무협의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던 <블레이드 & 소울>이 많은 사랑을 받았죠. ( ͡° ͜ʖ ͡°)

 

# 난세는 영웅을 만든다

2000년 중반, 한국의 무협게임은 전에 없던 암흑기를 맞았습니다. 신작들마다 서비스 중단, 혹은 혹평에 시달렸죠. 새로운 것을 원하는 유저들의 눈높이를 따라 잡지 못했습니다.

물론 <미르의 전설 2>나 <열혈강호 온라인>처럼 성공한 게임도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해외에서 성공했을 뿐 국내에선 평타 수준에 머물러 있었죠.

하지만 무협 소설에는 이런 말이 있죠. ‘영웅은 난세에 태어난다.’

2012년 국내 무협게임의 판도를 뒤엎었던 불세출의 게임이 등장했습니다. 바로 <블레이드 & 소울>이었습니다.

당시 게이머들을 비주얼 쇼크에 빠지게 했던 <블레이드 & 소울>

이 게임은 처음부터 예상을 뒤엎는 반전 스토리를 보여줬습니다. 판타지가 아닌 무협의 세계관을 따른 것이죠.

또 김형태 씨의 빼어난 캐릭터 원화와 화려한 경공 연출은 유저들의 눈을 사로잡기에 충분했습니다. 온라인 게임에서 이 정도의 비주얼을 구현하다니, 그야말로 충격이었죠. 당연히 유저들의 기대감 또한 엄청나게 상승했죠.

이거 무협게임 맞아?! 충격의 첫 트레일러 영상

<블레이드 & 소울>의 첫 모습이 공개되자 기존 무협 팬들 사이에선 논란이 일었습니다.

정통 무협과는 분위기가 완전 달랐고, 캐릭터부터 이질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또 정통 중국식이 아니라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한 과장된 외형의 캐릭터들이 화면을 가득 채웠죠.

또 무협 세계에서는 당치도 않을 권총과 총기류 캐릭터들이 대거 등장했죠. 한편으로는 무협게임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마카로니 웨스턴 혹은 만주 웨스턴 같은 느낌이었죠.

개틀링 건을 사용하는 미소녀 캐릭터 포화란

스토리 또한 기존 무협게임과 결이 달랐습니다. 기존 무협게임은 캐릭터가 문파에 가입하고 세력을 모은 뒤 중원을 평정한다는 내용이 주 스토리였습니다. 특히 구성원 간 상명하복의 질서와 끈끈한 결속력이 핵심이었죠.

그러나 <블레이드 & 소울>은 철저하게 이야기를 따라가는 스토리텔링 게임으로 나왔습니다.

물론 문파도 있지만 부수적인 요소죠. 문파에 가입하지 않아도 충분히 게임을 즐길 수 있습니다.

때문에 무협의 고리타분한 분위기에 거부감을 가진 젊은 세대들도 쉽게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그냥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고수로 성장할 수 있었죠.

화려한 경공만으로도 플레이할 가치는 충분!

특히 무협의 꽃이라고 불리는 경공을 그 어떤 게임보다 화려하게 잘 살려냈습니다.

공중을 유유히 날아다니는 캐릭터들을 보면 감탄을 넘어 황홀감마저 느낄 정도죠. 현란한 카메라 워크와 캐릭터들의 역동적인 액션은 일본 애니메이션과도 비슷했습니다.

이렇듯 <블레이드 & 소울>은 기존 무협의 공식이 아닌 ‘동양 판타지’라는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 블소에 녹아든 무협의 정서

<블레이드 & 소울>의 네러티브는 무협의 정서를 그대로 담았습니다. 장면 하나하나가 무협 소설의 한 페이지를 보는 듯 하죠.

우선 복수를 테마로 한 무협의 법칙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정파와 사파의 대립구조도 충실히 구현했죠. 게이머는 정파를 대표하는 ‘무림맹’, 사파를 표현하는 ‘혼천교’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무림맹 VS 혼천교 #정파와_사파의_대결

등장하는 캐릭터 또한 무협 소설 속 인물과 유사합니다.

주인공(막내)은 진서연 일당에게 사형들과 사부를 잃고 복수를 다짐합니다. 전투 중 묵화에 중독된 주인공은 <의천도룡기>에서 악당에게 혈도를 찍힌 장무기를 보는 듯 하죠.

둘 다 가까운 사람들이 비명횡사하고, 자신은 더 이상 무공을 익힐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복수를 다짐하죠. 무협소설에서 복수는 이들을 각성시키는 원천입니다.

복수와 관용의 아이콘 장무기 #무협지의_전형적주인공

악당 캐릭터들도 나름의 사연이 있죠. 예를 들어 극 초반 최강의 악당인 진서연은 <신조협려>의 이막수 혹은 <사조영웅전>의 매초풍과 닮았습니다. 절대악이 아닌 자신만의 사연이 있는 악당으로 등장하죠.

이막수와 진서연 #미모도_닮은꼴

또, 게임 속 절세고수로 통하는 천하사절은 <사조영웅전>에 등장하는 동서남북(동사, 서독, 북계, 남제) 고수들을 연상케 합니다. 실제로 고수들의 성격이나 특징이 소설 속 인물과 비슷하죠.

이후 게임에 등장하는 팔부기재는 무림의 구파일방과 비슷합니다. 또 시즌 2의 핵심 세력으로 등장하는 흑룡교는 <의천도룡기>의 악의 축인 명교(마교)를 떠올리게 하죠.

초반 스토리를 주도해나가는 천하사절

이렇듯 <블레이드 & 소울>의 정서와 스토리는 철저히 김용의 무협 소설을 모티브로 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유저들은 게임을 하는 중에도 마치 무협 소설을 읽듯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죠.

이에 만만치 않은 난이도에도 불구하고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습니다. 애니메이션 같은 밝은 그래픽으로 초보 유저들을 끌어들이고, 깊이 있는 무협 스토리로 몰입도를 높였죠.

무협게임이 속수무책 나가 떨어지던 그 시절, 새로운 무협의 방향을 제시한 의미 있는 작품입니다.

안녕, 막내야… 흑흑… #홍문파_5번째_화중사형

 

# 모바일로 환생한 무협게임들

사실 <블레이드 & 소울> 이후 국산 무협게임은 맥이 끊겼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모바일 게임의 시대를 맞아 중국산 무협게임이 속속 국내에 상륙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죠.

<사조영웅전>, <신조협려>, <의천도룡기>, <절대쌍교>, <소호강호> 등 기존 무협 소설을 원작으로 한 게임들이 줄줄이 출시됐습니다. 하지만 시장에 큰 반향을 일으키진 못했습니다. 너무 올드해서죠.

그나마 최근엔 중국 최대 게임사인 텐센트에서 개발한 <천애명월도>가 인기를 모으고 있습니다.

중국 텐센트사가 만든 <천애명월도>

 

# 협객들의 강호를 그리며

한때 국내에선 무협게임의 전성기가 있었습니다. 나왔다 하면 대박을 쳤던 시절이 있었죠.

하지만 현실에 안주했던 무협게임들은 유저들의 새로운 감성들을 따라잡지 못했습니다. <블레이드 & 소울> 같이 이례적인 게임도 있지만 대부분의 게임들이 역사 속에 사라져갔죠.

하지만 무협게임 속에 흐르는 정서는 지금도 여전히 통합니다. 무협지 속의 이야기는 늘 사람들의 가슴을 뛰게 하는 에너지가 있죠.

더욱 젊고 새로운 감성의 무협게임이 다시 한 번 우리에게 큰 감동을 줄 그날을 기대해 봅니다. 지금까지 <한국 무협게임의 계보>를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덕규(게임 칼럼니스트) 게임잡지 피시파워진 취재부 기자를 시작으로 게임메카 팀장, 베타뉴스 편집장을 거쳐 현재 게임어바웃 대표 및 게임칼럼니스트로 활동 중. 게임을 단순한 재미로 보기보다, 게임의 문화적 가치를 살리는데 관심이 많다. 고전부터 최신 게임까지 게임의 역사를 집필하면서 게임을 통해 사회를 보는 창을 제시하고자 한다.

 

한국 무협게임의 계보 #1 무협게임의 르네상스

한국 무협 게임의 계보#2 동양 무협, 판타지 게임 속으로

한국 무협게임의 계보 #3 화려했던 그 시절

한국 무협게임의 계보 #4 무협게임, 그 비운의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