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속 스토리텔링 #5 언더테일

게임 칼럼니스트 이경혁 작가가 들려주는 게임 속 숨겨진 스토리텔링에 대한 이야기.

‘게임 속 스토리텔링’ 5편에서는 2015년 출시된 인디 게임 <언더테일>의 독특한 이야기 구조를 소개합니다.


※ 주의: 본 글은 <언더테일>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게임만의 특성, 세이브 & 로드

세이브 & 로드(Save & Load) 기능은 게임만이 갖는 매우 재미있는 특징 중 하나입니다.

특정 지점까지 진행한 내용을 저장하고(세이브), 이를 나중에 다시 이어 플레이하는(로드) 게임의 기능이죠.

인생도 세이브 & 로드할 수 있다면 (∩︵∩)

이는 일종의 일시정지와 같은 역할을 해, 긴 호흡의 게임도 천천히 끊어 갈 수 있게 합니다.

특히 여러 개의 분기점을 갖는 게임에서는 일종의 다중우주와 같은 세계를 열기도 합니다.

새로운 스토리가 열리고, 열리고, 또 열리고 #빙글빙글 #프랙탈

예를 들어 세 개의 엔딩을 가진 게임이 있다고 할 때, 대부분의 게이머는 자신의 뜻대로 진행한 하나의 엔딩으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다양한 엔딩의 수집욕을 자극하는 대표 게임 #프린세스_메이커

보통의 게이머들은 엔딩 분기가 나오는 지점을 세이브해둔 뒤, 다시 그 지점으로 돌아가 자신이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엔딩을 향해 다시 나아가죠.

 

# 다중우주를 닮은 게임

이처럼 여러 개의 분기가 존재하고, 세이브 & 로드를 통해 각각의 분기를 모두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은 게임이 가진 매우 독특한 매체적 특성입니다.

다중우주의 체험이 가능한 유일한 매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수개의 스토리를 경험할 수 있는 게임의 특성 #다중우주 #멀티버스

그런데 이러한 게임의 특징인 세이브 & 로드를 아예 스토리 안으로 끌어당겨, 새로운 이야기로 풀어낸 게임도 존재합니다.

2015년에 등장해 평단과 게이머들의 찬사를 동시에 얻은 인디 게임, <언더테일>입니다.

음악 프로듀서이자 게임 제작자 토비 폭스의 히트작 

 

# 구조적 반전을 꾀하다

<언더테일>은 표면적으로는 매우 평범한 롤플레잉 게임입니다.

인간과 괴물의 세계가 있고, 괴물들을 물리치며 레벨 업한다는 게임의 표면은 별로 대단해 보이지 않습니다.

또 몬스터와의 전투에 들어가는 탄막 슈팅 형태의 미니 게임도 참신하다기보다는 귀찮은 느낌마저 주기도 합니다.

몬스터 잡으러 떠나볼까나~ #눈누난나

하지만 <언더테일>은 결코 겉보기처럼 뻔한 게임이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다른 게임들보다 더 강하게 플레이어의 뒤통수(?)를 후려치는 반전에 무게가 실린 게임입니다.

그리고 그 보편적 상상을 뒤집는 시도의 주 재료에는, 게임 고유의 특징인 세이브 & 로드가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대로, 게임에서 세이브 & 로드는 플레이어의 시간을 선택 이전으로 돌려 다른 세계를 경험할 수 있게 하는 기능입니다.

NPC의 물음에 A를 선택했던 플레이어는 다시 로드해 B를 선택할 수 있죠. 이 때 새로 로드한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사실은 기존에 A를 선택했다가 다시 로드했다는 사실을 NPC는 알지 못합니다.

NPC의 단기 기억 상실 └(・。・)┘ #첫키스만_50번째

그런데 <언더테일>은 이 지점을 무너뜨립니다.

게임 진행 중 NPC로부터 당혹스런 결과를 받은 플레이어는 세이브해둔 앞 부분을 로드해 다시 플레이하게 되는데요.

이때 놀랍게도 NPC는 플레이어가 방금 세이브 & 로드를 했다는 사실을 언급합니다!

어떻게 알았냐??? ┗┃・ ■ ・┃┛#핵당황

로드로 인해 게임 속 세계가 리셋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특정 NPC가 리셋되지 않은 것입니다.

 

# 메타 서사를 그려내다

이러한 <언더테일>의 시도는 일종의 메타 서사를 유발합니다.

세이브 & 로드는 사실 게임의 구조적 기능 중 하나지, 게임 스토리 자체에 포함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 세이브 & 로드가 <언더테일>에서는 이야기 흐름에 개입하는 도구로 작동합니다.

로드한 게임 안에서 ‘그거 너만 아는 것 같아?’라고 묻는 NPC를 보는 순간, 게임의 틀 속을 빠져 나오며 ‘게임’이라는 매체 자체를 이야기로 삼아버리는 기묘함을 낳습니다.

우리가 당신을 놀라게 했나요? ^^

연극이나 영화에서도 등장인물이 화면 밖의 관객을 바라보며 말을 걸어, 매체의 경계를 넘나드는데요.

이러한 ‘메타 서사 기법’을 통해 관객이 이야기를 접하는 구조를 다시 한 번 인식하게 해주죠.

 

# 게임 자체가 곧 메시지

<언더테일> 또한 이 방식을 사용하면서 이야기를 다시 돌아보게 하고, ‘게임’이라는 매체를 한 번 더 돌아보게 하는 ‘자기 성찰적’ 구조를 만드는 것이죠.

마샬 맥루한이라는 미디어 학자는 ‘미디어가 메시지다’라는 말로 현대 미디어를 예견한 바 있습니다. 새로운 매체가 불러오는 변화 자체가 이미 메시지를 품고 있다는 뜻이지요.

이렇게 심오한 게임였군요…

게임이란 미디어 또한 우리 삶을 곳곳에서 바꿔 나가고 있습니다.

때문에 <언더테일>이 메타 서사를 통해 보여주는 ‘게임 매체에 대한 자기 성찰’은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주는 메시지이자, 게임 스토리텔링의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경혁 게임제작 관련업에 종사한 경험이 없는 순수 게이머 출신의 게임칼럼니스트. 게임의 매체성에 주목하며 게임비평을 통해 사회 전반에 게임의 매체성을 환기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저서로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이 있으며, 성균관대학교에서 <게임과 인문학> 교양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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