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과 사회 #5 게임은 예술이다

게임과 관련된 사회적 견해와 의미를 살펴보는 ‘게임과 사회’.

‘게임과 사회’ 5편에서는 게임이 예술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는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다루겠습니다.


# 스미소니언 박물관이 주목한 ‘게임’

미국을 대표하는 스미소니언 박물관은 2012년 3월부터 9월까지 ‘비디오 게임 예술(The Arts of Video Game)’이라는 주제로 전시회를 개최했다. 이 전시회를 소개한 웹 사이트는 전시회의 취지를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현대 사회 안에서 비디오 게임은 가장 유행하는 매체이자, 갈수록 표현력이 상승하는 매체다. 최초의 홈비디오 게임이 도입된 이래 지난 40년 동안, 게임의 장은 이례적일 정도로 예술적 재능을 뽐내왔다.’

스미소니언 박물관에서 개최한 ‘비디오 게임의 예술’ 전시

회화, 서사, 조각, 음악, 영화와 같은 전통적인 예술형식들을 융합하여, 비디오 게임은 이전에는 예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관객들과 소통하고 그들이 몰입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전시회 ‘비디오 게임의 예술’은 놀라울 정도의 시각적 효과와 새로운 테크놀로지의 창의적 활용에 초점을 맞추었다. 예술적 매체로서 비디오 게임의 지난 40년 간의 진화를 탐구하게 하는 전시였다.

아트 작품으로 승화한 <팩맨> #박물관에서_쿠키를냠냠

이 전시회는 무려 6개월 간 지속되면서 총 80여 개의 유명 비디오 게임을 전시했다.

3일 동안 초기 비디오 게임 개척자들과 다양한 예술가들이 함께 논의하는 ‘게임페스트’를 개최했고, ‘게이머 심포니 오케스트라’, ‘게임 음악’, ‘게임 미술’, ‘게임 시연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스미소니언이라는 미국 최고 권위의 박물관에서 열린 이 전시회는 ‘게임은 예술’이라는 것을 선언하는 것과 다름 없었다.

스미소니언 박물관 벽을 수놓은 <지오메트리 워즈>

 

# 게임은 예술인가

한국에서 게임은 예술의 지위를 획득하고 있는가?

아쉽게도 아직은 그런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지는 못하다. 게임은 경제를 위한 산업진흥과 청소년 보호를 위한 규제의 대상으로 간주된다.

현재 ‘문화예술진흥법’에서 정의하는 ‘문화예술’에는 게임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 법의 정의에 문화예술은 ‘문학, 미술, 음악, 무용, 연극, 영화, 연예(演藝), 국악, 사진, 건축, 어문(語文), 출판 및 만화’로 정의하고 있다.

만화는 문화예술의 정의에 포함되어 있는 반면, 게임은 포함되어 있지 못하다. 게임은 아직까지는 대중들이 즐기는 단순한 놀이나, 문화예술적인 가치가 높지 않은 상업적인 오락물로 간주되고 있다.

만화는 예술이고 게임은 아니다?! 「(°ヘ°)

게임이 가장 상업적인 문화 콘텐츠인 것은 분명하다.

게임은 돈을 벌기 위한 IT 상품이거나, 그저 어두운 PC방에서 시간을 때우는 가치 없는 놀이로 간주하는 게 일반적인 생각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게임의 스토리텔링, 게임 콘텐츠를 구성하는 요소들, 게임 플레이의 역동적인 스타일은 현대 예술이 추구하는 새로운 특성들과 무관하지 않다. 더욱이 예술의 오랜 역사에서 게임의 놀이적 특성은 창작을 추동하는 중요한 원천이 되기도 했다. 게임은 예술의 지위를 얻을 수 없을까?

 

# 예술과 게임의 연관성

네덜란드의 역사가이자 문화학자인 요한 호이징가는 인간과 놀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놀이는 문화보다 오래되었다. 모든 놀이는 자발적 행위이며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언제나 함께 해왔고 다양하게 발전했다. 인간은 생각하는 인간인 동시에 놀이하는 인간이었다.’

놀이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됐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예컨대 주사위는 운명을 정하는 놀이를, 체스는 전쟁을 놀이로 재현하는 행위를, 가면은 변장하고 싶은 원초적 욕망의 놀이를 비유한다.

놀이의 역사는 곧 인류의 역사

예술행위는 그 자체로 놀이의 행위이다.

폴 세잔의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은 놀이의 일상성을 그림으로 재현하고 있고, 현대 미술의 개념을 바꾸어 놓은 마르셀 뒤샹은 자신 작품에서 체스 게임은 중요한 모티브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폴 세잔의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

또한 모빌 아트의 대가 알렉산더 칼더는 ‘여섯 살 아이들이 자신의 가장 귀중한 팬’이라고 생각했고, 미국의 현대 화가 엘리자베스 머레이는 어린이들이 예술과 함께 놀 수 있는 전시회를 더 많이 디자인하고자 했다.

 

# 예술로서의 게임

그렇다면 게임은 어떤 예술의 특성을 가지고 있을까?

먼저 언급할 것은 게임의 종합예술 장르라는 점이다. 게임은 사운드, 이미지, 텍스트가 융합한 콘텐츠이다.

가령 대표적인 MMORPG인 <리니지>는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하지만, 온라인 환경에서 펼쳐지는 세계는 혁신적인 사운드와 판타지를 자극하는 이미지, 그리고 풍부한 서사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환상적인 3D 그래픽을 구현한 <리니지2>

대표적인 온라인 축구 게임인 <피파온라인>은 거의 실제 경기장과 선수들을 연상케 할 정도로 그래픽 기술이 뛰어나다.

또 <서든어택>과 같은 1인칭 슈팅 게임이나 <1942 : 퍼시픽 에어워> 같은 비행 시뮬레이션 게임 역시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선명하고 화려한 영상이미지를 보여준다.

실제 경기장과 흡사한 <피파온라인3> 그래픽

이처럼 게임은 기술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예술 장르의 세 가지 요소인 사운드, 이미지, 텍스트를 가장 앞장서서 재현하고 있다.

두 번째 언급할 것은 게임이 미디어 아트의 상호작용적 놀이 속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현대 미디어 아트의 많은 예술 창작물들이 게임적인 요소들을 많이 차용하고 있다. 미디어 아트는 기본적으로 작가와 관객과의 상호작용적 놀이에 기반한다.

가령 MIT 미디어랩의 ‘리빙 월(Living Wall)’과 같이 센서를 활용한 작품들은 관객들의 움직임과 반응에 따라 작품이 살아 움직이고 변형된다.

MIT 미디어랩의 ‘리빙 월(Living Wall)’

오스트리아의 대표적인 미디어 아티스트인 크리스타 소머러는 ‘정원수(Eau de Jardin)’와 같은 작품에서 상호작용적 미디어 기술을 활용, 스크린에서 자동적으로 생성되는 일종의 ‘인공 생명 예술(Artificial Life Art)’을 보여주었다.

크리스타 소머러의 ‘정원수(Eau de Jardin)’

또한 사물놀이의 대가 김덕수는 홀로그램을 활용하여 4명의 김덕수가 동시에 무대에서 사물놀이 연주를 하는 장면을 연출하고, 사물놀이의 장단과 가락의 변화에 따라 꽃이 피고 지는 ‘디지로그 사물놀이’를 만들었다. 이러한 미디어 아트는 관객과의 상호작용적인 놀이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김덕수의 ‘디지로그 사물놀이’

한때 콘솔 게임에서 유행했던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도 게임 텍스트와 게임 유저 사이의 상호작용적 놀이에 기반한다. 예를 들어 MMORPG 요소인 ‘동접’과 ‘공성전’은 게임의 맵에서 벌어지는 ‘길드’와 ‘길드’의 상호작용적 놀이 전투에 기반한다.

무엇보다도 온라인 게임에서 유저가 게임 콘텐츠를 변형시키고, 자신의 감각대로 전환시킬 수 있는 것이 게임이 같은 현대 예술의 가장 중요한 상호작용적 특성이라 할 수 있다.

유저들이 새로운 스토리텔링을 만들어나간 ‘바츠해방전쟁’

마지막으로 언급할 것은 게임 플레이의 기술적 진보가 극장과 전시회의 고전적인 틀에서 벗어나려는 인간의 미적, 감성적 욕망을 내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몇 년 전 지하철에서 <애니팡>을 하는 중년의 여성을 만난 적이 있다. 엄청난 속도로 스테이지를 깨는 모습을 보고, ‘아, 저건 예술이다’라고 속으로 중얼거린 적이 있었다.

게임 유저의 놀라운 ‘신공 플레이’를 보거나, 생생한 게임 캐릭터의 디자인과 게임 맵에서 벌어지는 실시간 변형 행위들을 보면, 인간의 다양한 미적 욕망과 감각의 능력을 확인하게 된다.

물론 모든 게임이 온전하게 예술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많은 게임들은 이미 예술적 재현과 미적인 감각, 그리고 상호작용, 자기 변형, 융합 기술이라는 미래 예술의 잠재성을 보유하고 있다.

시드니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제작한 <아이온>의 게임 음악 ♬

게임 사운드가 오케스트라에 의해 연주되고, 게임 캐릭터들이 미술관에 전시되고, 게임 스토리텔링이 영화로 만들어지는 사례는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게임은 이미 예술의 지위를 얻을 충분한 자격이 있다. 다만 게임을 예술로 바라보려는 우리의 인식 전환이 필요할 뿐이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중앙대학교 영문학과에서 <메타비평론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는 문화연구자로서 문화이론과 문화정책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게임 문화연구에도 관심이 깊어 다양한 책과 칼럼을 쓰고 있으며, 대표 저서로는 『문화자본의 시대』, 『게임의 문화코드』, 『게임 이펙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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