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게임 #19 대항해시대 2

게임회사 사람들이 꼽는 ‘내 인생의 게임’은 무엇일까요?

세계 여행에 대한 갈증을 풀어주고 세계 역사와 문화까지 공부하게 했던 게임 ‘대항해시대 2’에 얽힌 추억담을 이두환 님이 전합니다.  ٩(๑•̀o•́๑)و


 

방구석 여행자들이 선호하는 EBS의 세계테마기행.
유명한 관광지부터 오지까지 집에서 HD 화질로 즐길 수 있게 해주는 고마운 프로그램이다.

때는 랜선여행(LAN線여행)이 본격화되기 전, 지금보다 해외에 대한 환상이 높았으며 각종 서구문화가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90년대였다.

88 올림픽을 기념하여 89년에 해외여행 자유화가 되었다곤 하지만 여전히 해외의 최신 문화는 신문 방송 잡지 정도로 접하거나, 직접 다녀온 사람의 무용담을 경외심에 찬 눈으로 바라보며 듣는 게 고작이었다.

유럽 배낭여행도 소수의 대학생이나 겨우 다녀오는 상황에서 당시 학생이었던 필자가 자유롭게 세계 여행을 다닌다는 건 그저 환상에 불과했다.

 

당시 청춘의 로망이었던 배낭여행. 단돈 2,500원만 있으면 여러분도 유럽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유럽 여행에 대한 환상을 어느 정도 채워줄 수 있는 게임을 발견하였으니 바로 ‘대항해시대 2’ 였다.

비록 배경이 15세기~16세기 이야기이긴 했지만 역사적인 사실과 맞물려 미지의 세계로 모험을 떠나는 내용은 흥미를 가지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단순히 여행이나 탐험을 소재로 한 게임이라고 해서 플레이가 재미있다는 보장은 없다.

대항해시대 2에는 가볍게 시작했다가 플레이 할수록 빠지게 되는 요소들이 충분했는데, 다양한 캐릭터와 그에 따른 스토리가 대표적이다.

 

금수저, 해적, 탐험가, 상인, 지도제작자, 군인으로 구성된 주인공들

6명이나 되는 개성 있는 주인공들의 존재는 게임을 몇 번이나 플레이 하게 만들었다.

단순히 여러 캐릭터로 비슷한 내용의 게임을 플레이 하는 게 아니라, 한 명 한 명의 개성 강한 캐릭터를 고유의 스토리로 즐길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캐릭터의 국적과 직업이 다르고, 무역, 해상전투, 탐험, 지도 제작 등 “항해”라는 테마 하에 여러 가지 활동을 경험하게 만들었는데, 그래서 여러 번 플레이를 하더라도 매번 몰입하여 재미있게 즐길 수 있었다.

 

당신의 선택에 따라 바다의 악당이 될 수도 있다.

게임의 핵심이 되는 선단 구성도 플레이 목적에 따라 매우 달라졌다.

효과적인 지도 제작이나 발견을 위해 배 한 척만으로 스피드를 살려서 항해하며 해적들을 피해 다니거나, 함포를 많이 실을 수 있는 배 위주로 확보하여 오히려 도망가는 해적들을 찾아 다니는 식의 플레이가 가능했다.

 

술집에서 면접과 채용이 바로 이루어지는 HR 프로세스. 서류 전형 따위는 생략한다.

필자도 선원들을 모집하고 선단을 구성하고 세계를 탐험하는 등 시간가는 줄 모르고 게임의 여러 요소를 즐기면서 플레이를 하였는데, 항해를 나가면 바다 위에는 폭풍우와 괴혈병 외에도 공포의 대상이 있었으니…… 주로 지중해에서 활동하며 주인공 캐릭터에 상관없이 어떤 식으로든 마주치게 되는 해적 하이레딘 레이스와 그의 동생 아이딘 레이스였다.

 

초반에 저렇게 걸리면 모골이 송연 해진다.

이들 형제는 게임 상에서 최강의 해적들로 지구 끝까지 쫓아와서 전투를 걸지만, 쿨하게 항복하면 돈을 일부 남겨주거나, 돈이 없을 때는 적선도 하고 가는 특이한 행동을 보이는 해적들이었다.

게임 초반에는 매우 버거운 상대라서 도망가기 바쁘지만 고렙이 되어 강한 선단을 구축하거나 희귀 아이템을 장착하여 일기토를 걸면 쉽게 물리 칠 수 있었다. 그럴 땐 오히려 전리품과 베네치안 갤리어스 같은 배를 몇 척씩 공짜로 얻을 수 있는 바다 위의 호구들이 되었다.

 

인정을 베푸는 줄 알았으나…… 알고 보니 더 큰 그림을 그렸던 하이레딘 레이스

물론 이들을 쉽게 물리칠 수 있을 정도의 레벨이면 전리품 보다는 재미로 전투를 하는 상황일 것이다.

어쨌든 이렇게 몇 번 레이스 형제에게 역으로 해적짓을 하다 보면 나중에 이들은 그 강력한 함대를 잃어버리고 허접한 배를 겨우 구해서 타고 돌아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혹은 실업자로 항구를 떠도는걸 항해사로 픽업하여 부하로 삼을 수도 있었는데, 스스로 “이런 곳에서 죽다니!” 식으로 말해놓고 계속 부활하여 주위를 맴돌던 이 해적 형제들은 주인공들 외에 가장 기억에 남는 캐릭터들이었다.

 

실업자가 되어 술집 HR 프로세스 진행 중인 바다의 왕자

게임 플레이 외에도 대항해시대 2를 이야기 하다 보면 또 하나 빠질 수 없는 게 있으니 바로 게임음악이다.

작곡가 칸노 요코가 만든 게임 음악은 당시 도스 게임의 midi음으로 들어도 매우 퀄리티가 좋았으며 게임과 잘 어울렸다.

특히 오프닝과 엔딩을 비롯하여 지역의 변화나 전투 같은 상황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음악은 웅장함과 비장함, 신비감, 슬픔 등 플레이어에게 다양한 감정을 선사해주었다.

여러 명곡이 있지만 엔딩곡인 “Close to home”을 들으면서 엔딩을 보고 있으면 모험이 끝났다는 허무함과 동시에 뭔가 가슴 벅찬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대항해시대2 엔딩곡 “Close to home”

 

물론 이 게임이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지역마다 분위기를 다르게 가져갔다곤 해도, 항구의 구조는 거의 비슷비슷한데다가 항구 자체로는 특별히 재미있는 요소도 별로 없었기 때문에 전세계의 항구를 돌아다니면서 무역을 하기에는 다소 지루한 감이 있었다.

처음 한 두번이야 교역하는 재미가 있지만 결국에는 돈을 벌기 위해선 특정 루트(이스탄불의 융단과 아테네의 미술품)만 반복하게 되었고, 대부분 캐릭터의 초반은 거의 비슷한 패턴으로 흘러갔다.

 

나의 무역패턴은 아테네-이스탄불-아네테-이스탄불-아테네!

그리고 버그이거나 버그에 가까운 장면들이 연출 되곤 하였는데, 주인공 조안 페레로가 본인 집에 들어가는데 집사가 “우리 가문에 무슨 용건이십니까?” 라고 한다거나, 게임상에 존재하는 모든 발견물을 다 찾았는데도 더 찾아오라는 미션 때문에 엔딩을 못 본다거나, 바다 한가운데에서 선원을 해고시킬 수 있다던가 하는 경우들이 있었다.

아울러 기부 활동이나 좋은 선수상으로 운을 올려놓지 않으면 서아프리카 앞바다에서 미칠듯한 폭풍우에 시달려서 게임 플레이를 더 할 수 없는 상황이 되는 등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이런 상황은 한 번 겪고 대비하게 되면 다음부터는 웃으며 넘길 수 있는 요소가 되니 게임성을 해치는 큰 장애 요인까지는 아니었다.

 

가끔 난감하긴 해도 사실 큰 문제는 아니었다.

어쨌거나 플레이는 계속하게 되었고, 하다가 느끼게 된 의외의 효과가 있으니 바로 학습 효과였다.

주제가 탐험이다 보니 게임에서의 지도는 초반의 일부만 보여주고, 나머지 지역은 항구를 발견해가면서 지도를 만들어 나가는 시스템이었다.

세계 지도의 윤곽이야 많이 봐서 대략적인 그림은 익숙하긴 했지만, 관심을 가지고 자세히 본 적은 거의 없었으니 어느 나라가 어디에 붙어있는지 알 턱이 있나.

그러다 보니 세계 지도 완성을 위해서 당시 학교에서 매년 교과서로 나눠 주지만 사용할 일은 일년에 한 두 번도 안됐던 사회과 부도를 펴보면서 게임을 하였으니, 자연스럽게 세계 지리 공부 효과가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의 용도는 딱 세 가지였다. 1. 낙서용 2. 대항해시대용 3. 세계 수도 이름 맞추기 용

아울러 주인공의 탐험에 감정 이입하여 플레이 하다 보니 내가 발견한 지역에 대하여 자연스럽게 관심이 생겼고, 이런저런 자료들을 추가로 찾아보면서 세계 역사와 문화까지 공부를 하고 있던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물론 국영수 중심으로 공부해야 되는 환경에서 세계 지리나 역사는 학생이 공부해야 하는 내용의 매우 일부분이었기 때문에 실제 학교 성적 향상에는 별 도움은 되지 않았다. (학교에서 애들끼리 어느 나라 수도 맞추기 내기하고 할 때는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게임이 단순히 의미 없는 시간 보내기용이나 청소년들을 타락의 길로 이끈다는 사회적 인식 속에서, 게임을 통해 재미와 학습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는 것에서 대항해시대 2는 바람직한 학습 게임의 롤모델이 아니었을까 한다.

 

게임과 학습의 자세한 내용은 우주정복 블로그의 뇌과학 시리즈를 읽도록 하자.

지금은 랜선 여행이 너무나 발달하여 세계의 거리뷰까지 볼 수 있는 시대지만, 대항해시대 2는 당시 PC통신도 경험하지 못했던 필자에게는 방구석 세계 여행을 통하여 모험과 여행의 갈증을 채워주며, 스스로 학습까지 하게 만들어준 기억에 남는 인생 게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두환 우주정복호를 타고 NCSOFT에서 기항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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