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과 사회 #6 인문학으로 읽는 게임의 세계

게임에 대한 사회적 견해와 의미를 살펴보는 ‘게임과 사회’.

‘게임과 사회’ 6편에서는 인문학과 게임의 상관관계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다루겠습니다.


# 게임은 인문학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요즘 인문학을 활용하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TV에서는 ‘명견만리’나 ‘어쩌다 어른’과 같은 인문학 강의가 열리고, ‘알쓸신잡’ 같이 인문 지식과 여행이 접목된 지식∙예능 프로그램이 시청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동양고전을 적용해서 경영 철학의 기조로 삼으려는 대기업 CEO들의 인문학 애정은 서점가 인문학 흥행에 큰 영향을 미쳤다.

강신주, 최진석, 배철현 등 스타급 인문학 강사들이 큰 인기를 얻고, 지역 도서관에서 열리는 수많은 인문학 강좌 열풍은 인문학의 위기를 무색하게 할 정도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인문학 강의 프로그램들 #강신주 #최진석

인문학을 낡은 경전으로만 생각하면 그 쓸모는 전공자에게만 있을 것이다. 물론 인문학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학문적인 가치와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학문’의 틀을 넘어서 사람의 글, 생각, 활동을 중시하는 인문학의 요소들은 우리가 향유하는 다양한 문화 콘텐츠에 잠재되어 있다.

텍스트, 사운드, 이미지의 융합으로 구성된 게임 역시 인문학의 그러한 요소들과 무관하지 않다. 아니 게임의 문화적 가치를 언급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인문학적인 분석을 필요로 한다.

대중적인 놀이 콘텐츠인 게임에서 인문학의 요소를 발견한다는 것은 낯설지 않을 수가 없다. ‘이제 게임까지 인문학으로 설명하려 드나?’하고 불편해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게임이라는 텍스트의 이야기 구조, 게임의 배경이 되는 신화와 서사, 게임 플레이의 상호작용적 요소들, 게임 캐릭터와 플레이의 심리 구조, 특정 게임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게임이 인문학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알려준다. 이제 본격적으로 이 이야기를 해보자.

스토리텔링, 신화, 상호작용, 심리, 메시지 등 게임에 속한 다양한 인문학적 요소들!

 

# 게임의 인류학적 코드

전세계의 수많은 신화와 그림, 그리고 영화에서 발견되는 인류학적 코드는 인간과 문명의 역사적 차이를 규명하는 ‘탐색’과 ‘놀이’의 법칙으로 존재한다.

그것은 인간이 특정한 문명 혹은 집단을 형성하는 원리와 규칙을 의미한다.

탐색과 여정, 종족을 구별하기, 증여와 강탈,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갈등, 성취와 욕망 등과 같은 인류학적 코드들은 인간의 삶과 집단의 진화를 위한 규칙의 중요한 요소다.

가령 인디언 원시부족 사이에서 행해진 ‘포틀래치(potlatch)’는 단순히 선의의 선물 교환 예식이라기보다는, 자기 가족과 부족의 우월감을 과시하려는 일종의 대리전쟁의 ‘게임’으로서 ‘도전과 응수’라는 원리를 가진다.

사람들을 초대해 음식과 선물을 나눠주는 인디언 사회의 풍습, 포틀래치

게임은 이러한 인류학적 코드와 밀접한 관련이 있을뿐 아니라, 그 자체로 인류학의 중요한 코드라 할 수 있다.

온라인 게임에 등장하는 부족들의 탄생과 투쟁, 종족들의 공통의 라이프스타일, 집단들의 커뮤니티 의식, 전투를 위한 예식들, 탐색의 오디세이, 그리고 상징적 자산으로서 아이템 취득에 대한 경쟁은 여지 없이 인류학적 코드를 가지고 있다.

또한 초창기 PC 시대에 가장 인기를 얻었던 <페르시아의 왕자>와 같은 초기 액션 어드벤처 게임은 도전과 모험, 영토 정복을 위한 ‘여정’이라는 인간의 원초적 욕망에 기초하고 있다.

공주 구출을 위한, 지하 던전에서 탑까지의 지난한 여정

<피파 온라인> 같은 스포츠 게임은 경쟁과 승리의 욕망을, <스트리트 파이터>, <하드코어 짐> 등의 격투기 게임은 ‘맞짱’이라는 인간의 원초적 욕망을, <서든어택>이나 <배틀필드>와 같은 1인칭 슈팅 게임은 전쟁에 대한 대리욕망을 표상하는 인류학적 코드를 갖고 있다.

고스톱과 포커 같은 웹보드 게임들은 인류학의 오랜 토픽이라 할 수 있는 ‘내기’와 ‘놀이’의 원초적 욕망을 기초로 한다.

맞짱으로 최고의 무도인을 가리자! ( •̀ω•́ )σ

동서양을 넘나들며 오랫동안 행해진 주사위 놀이, 변장술, 불꽃놀이, 장기, 바둑, 체스는 놀이의 형식이면서 동시에 인류학적 원형과 사건을 가지고 있다.

오락적 성격이 강한 콘솔 게임이나 온라인 게임 안에도 이러한 인류학적인 원형과 코드를 읽을 수 있는 여지는 얼마든지 많다.

가령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나 <리니지> 같은 온라인 게임의 배경이 되는 서사는 북유럽의 신화에 바탕을 둔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안에 존재하는 가상세계 ‘아제로스(Azeroth)’의 흥망성쇠의 역사는 장구한 인류학적 서사를 가진다.

부족의 유형과 스타일과 캐릭터의 행동 패턴들은 게임을 즐기기 위한 하나의 아이템 놀이의 수준을 넘어서, 문화인류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기호적 구조를 갖는다.

수많은 와우인들의 운명이 엇갈리는 결전의 땅, 아제로스

 

# 하이퍼텍스트로서의 게임 서사

게임은 하나의 하이퍼텍스트(hypertext)다.

전통적인 문학 텍스트는 작가의 완결된 작품(works)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온라인 게임에서의 텍스트는, 게임을 만든 개발자와 그 게임을 즐기는 게이머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해 만들어진 텍스트(text)를 의미한다.

게임의 텍스트는 언제나 ‘이미 완결된 상태’일 수 없다. 게임의 텍스트를 최종적으로 완결시키는 주체는 게이머들이다. <오버워치>를 하든 <리그 오브 레전드>를 하든, <동물의 숲>이나 <리니지 M>을 하든 게이머의 플레이는 매번 텍스트를 새롭게 쓴다.

게임 안에 존재하는 ‘게임 맵’과 ‘캐릭터’, ‘아이템’은 하나의 이야기의 재료나 소재에 불과하다. 그러한 이야기와 소재를 갖고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은 게이머의 역할이다.

게임 스토리의 최종 주체는 게이머 그 자신! ( ̄▽ ̄)ノ

게임이 하이퍼텍스트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게이머의 플레이에 의해서 수백만, 수천만 개의 스토리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게임의 플레이는 소설이나 시를 읽은 독자의 감상평과는 다르다. 게이머는 게임 텍스트에 구체적으로 개입하고, 플레이를 통해서 미완의 텍스트를 이야기가 있는 텍스트로 완성한다.

게임은 수없이 많은 이야기의 생성이 가능하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게이머가 만든다는 점에서 게임은 상호작용적인 하이퍼텍스트라 할 수 있다.

프랑스 문화기호학자인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는, 텍스트에는 두 가지 상반된 관점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읽는 텍스트(readerly text)’고 다른 하나는 ‘쓰는 텍스트(writerly text)’다.

‘읽는 텍스트’는 단순한 독자로서 소설이나 시에서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읽은 것이고, ‘쓰는 텍스트’는 독자가 작가의 의도와는 관계 없이 자신의 욕망과 의지대로 텍스트를 즐기는 것을 말한다.

게임은 ‘읽는 텍스트’가 아니라 ‘쓰는 텍스트’다. 그것은 창작자의 전유물이 아니라 향유자의 유희를 위한 것이다.

게임은, 주체적으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쓰는 텍스트’! σ(≧ε≦o)

 

# 철학으로 게임 읽기

철학자 루크 커디(Luke Cuddy)와 마이크로소프트 연구소의 연구원 존 노드링거(John Nordlinger)의 공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와 철학』이란 저서는 대표적인 MMORPG인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하나의 철학 텍스트로 분석한다.

이 책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 등장하는 서사와 인물과 장소를 철학자의 관점으로 기술한다.견습생 철학자에서부터 전문가 철학자, 장인 철학자, 마스터 철학자까지 철저히 철학자의 입장에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라는 게임 텍스트를 심층적으로 분석하는 책이다.

이 책은 다음과 같은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언제쯤 가상의 정체성은 실제가 되는가? 부패한 피가 고이는 전염병은, 우리에게 미래의 공공보건의 파국을 경고하는가? 실제 삶이 게임 속 사건에 침공을 받을 때, 어떤 위험이 있는가? 원시주의와 고도기술 사회가 결합된 아제로스의 세계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철학자가 바라 본 와우는 어떤 모습일까 ( ̄o ̄)

대부분의 게임들은 게이머의 즐거움을 위해 존재한다. 그러나 몇몇 게임의 경우에는 철학적 탐구의 대상으로 봄직한 것들도 있다.

사실 가상세계 안에 존재하는 게임은 게이머를 ‘온라인 자아(Online Self)’로 변형시킨다. 아이디를 부여 받은 온라인 자아는 가상세계의 게임 안에서 완벽하게 자아의 형태를 취한다.

온라인 자아들이 만나는 게임 속 길드의 세계는 우리가 실제 세계에서 조우하는 공동체 그룹들보다 훨씬 더 강한 연대감을 가진다. 온라인 자아와 게임 길드는 허구가 아니라 그 자체로 또 다른 자아, 또 다른 공동체를 형성한다. 자아와 공동체의 분열이 생기는 것이다.

온라인 게임에서 자아는 철학적으로 보면 데카르트적인 근대주체의 인식론에서 벗어나 ‘시선과 응시’가 분열된 자아로 존재한다.

 

# 게임인문학 연구가 필요하다

게임 안에 인문학적 요소가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게임을 인문학의 관점으로 연구한다는 것은 여전히 낯설다.

게임 연구가 그 동안 너무 중독 이슈나 콘텐츠 개발 쪽으로 치우치다 보니 인문학이란 관점으로 게임을 연구한다는 것은 선뜻 동의하기가 어렵다.

게임도 인문학적 의미를 지닌다는 사실!

때문에 게임은 규제와 진흥이라는 양분법에 갇혀, 게임의 인문적 의미나 문화적 가치를 살필 기회가 없었다.

상대적으로 영화는 인문학적, 미학적, 역사적 분석이 많이 개진됐지만, 게임은 그렇지 못했다. 청소년 보호와 음란물 시비, 폭력 묘사로 인해 영화 산업이 위기를 맞을 때, 게임 산업과 달리 대중들의 비난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던 것은 연구자들이 적극적으로 영화의 인문학적, 문화적 가치를 이론적으로 변호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게임 산업과 게임 문화가 좀 더 성숙해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게임 텍스트와 그 문화 안에 내재해 있는 인문학적 요소들과 문화적 가치들을 좀 더 깊이 있게 탐구해야 한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중앙대학교 영문학과에서 <메타비평론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는 문화연구자로서 문화이론과 문화정책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게임 문화연구에도 관심이 깊어 다양한 책과 칼럼을 쓰고 있으며, 대표 저서로는 『문화자본의 시대』, 『게임의 문화코드』, 『게임 이펙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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