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를 찍기 위해 필요한 변곡점 – 권오철 작가 인터뷰 (1)

 

지난주에는 천체사진가 권오철 작가님이 울릉도에서 찍은 독도의 일출 타임랩스 영상으로 2015년 을미년 (乙未年) 새해 인사를 드렸습니다. 이 감동적인 영상 기억하시나요? 이 촬영은 독도와 태양을 일직선으로 볼 수 있는 제한된 관측 시기와 통제할 수 없는 변수인 날씨 등 다양한 어려움 속에서, 과학적 분석을 바탕으로 한 도전으로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엔씨소프트 블로그에서는 천체사진가로서 정상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준비하고 도전하는 권오철 작가님의 이야기를 인터뷰와 기고문으로 소개하려고 합니다. 오늘은 먼저 인터뷰로 만나 보시죠. 🙂

 

천문학자 이명현 박사가 천체사진가 권오철 작가를 만나다.

우주를 찍기 위해 필요한 변곡점 – 권오철 작가 인터뷰 (1)


 

권오철을 만났다. 울릉도에서 독도를 품은 일출 사진 촬영에 성공해서 요즘 유명세를 치르고 있는 천체사진가 권오철. 서로 친분을 쌓고 지낸지 오래됐고 방송을 같이 하기도 하고 일식여행을 같이 가기도 했지만 공식적인 인터뷰를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엔씨소프트 사옥에 조금 일찍 도착해서 로비 한구석에 앉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몇 달 전 광화문 지하도에 위치한 광화랑에서 열렸던 그의 천체사진전 때 본 이후 처음 만나는 자리였다.

“오랜만이네요.”

어느새 내 옆에 그가 와 있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서 반가운 마음에 손부터 내밀다가 흠칫했다. 그가 이렇게 컸던가? 사실 그는 나 보다 키가 한 뼘은 더 크다. 알면서도 그와 대면하면 늘 그의 큰 키에 움찔하곤 한다. 이날따라 그가 ‘거인’처럼 보였다. 키만 큰 거인이 아니라 도전 끝에 큰 성취를 이루고 또 다른 도전을 시작하는 고독한 거장 같은 거인의 모습이 그에게서 보였다.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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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체사진가 권오철

 

요즘 빅히스토리가 유행이다. 빅뱅부터 시작해서 생명의 역사를 거쳐서 인류의 역사를 거대사적 관점에서 바라보자는 것이다. 역사를 그 흐름 속의 큰 변곡점으로 나누고 그 시점과 사건을 중심으로 역사를 기술해 보자는 것이다. 권오철이 생각하는 자신의 인생의 변곡점이 언제였는지 물었다.

“저도 빅히스토리에 관심이 많습니다. 요즘 우주와 진화와 관련된 책을 많이 읽고 있습니다. 물질의 역사와 생명의 역사를 알아야 인류의 역사를 알 수 있으니까요. 제 인생에 있어서 두 번째로 중요한 변곡점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인생의 첫 번째 변곡점은 태어난 순간이겠죠, 라고 별생각 없이 물었는데 뜻밖의 대답이 튀어 나왔다.

“제 인생의 첫 번째 변곡점은 아내와 결혼한 사건입니다. 그날 저는 다시 태어났지요.”

남편들의 의례적인 말이 아닌 것 같았다. 그는 진심어린 말투와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얼마 전에 아내가 어디서 듣고 와서는 제 명줄이 아흔을 넘길 것 같다고 하더라구요. 순간 깜짝 놀라서 소름이 돋았어요. 마누라 없이 어떻게 살아, 그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아내가 연상이예요. 먼저 죽고 나만 오래 살면 큰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거예요. 저는 아내에게 기생해서 사는 기생동물이거든요. 마누라가 살아있으니까 나도 살고 있지요.”

더 이어진 권오철의 아내 사랑이야기는 귀호강으로 묻어두고 두 번째 변곡점 이야기로 넘어간다.

“2009년 12월 31일에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던졌어요. 전업 천체사진가가 된 것이죠.”

당연히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더 늦기 전에 천체사진가로 살고 싶었어요. 문제는 경제적인 것이었죠. 회사를 안 다니면 굶어죽을 것 같다는 공포가 있었죠, 당연히. 회사를 그만두면 어떻게 먹고 사나 10년째 고민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천체사진가로 먹고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거예요. 2009년은 제겐 특별한 해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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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은 세계 천문의 해였다. 나는 한국조직위원회 문화분과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권오철과 여러 작업을 같이 했다.

 

“2009년에 세계천문의 해를 기념해서 천체사진전을 열게 됐어요. 제가 책임자가 되어서 전시회를 기획하고 실행했지요. 전국 곳곳을 다니면서 전시를 했어요. 꽤 성공적이었지요.”

업계 종사자수가 단시간에 가장 많이 줄어 든 것이 사진가였고 사진관의 수도 급격히 줄어들고 있던 때가 2009년이었다. 하지만 권오철의 마음속에서는 오히려 작은 불꽃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한 사람 정도는 천체사진가로 먹고 살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어요.”

세계 천문의 해가 그에게 남긴 선물이었다. 준비된 권오철에게 행운이 이어졌다. 캐나다 오로라 원정대에 사진 강사 및 사진전문가로 초청된 것이었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오로라 원정대 기간이 연말이 다가오는 12월 초였던 것이다.

“회사원이 12월 초에 일주일 동안 휴가를 낸다는 것은 인사고과를 완전히 포기하겠다는 거예요. 가장 바쁘고 업무상 가장 예민한 시기거든요.”

며칠 고민했지만 권오철의 결정은 ‘참가’였다.

“초청을 받아서 가는 것이니 공짜였구요! 오로라를 너무 보고 싶었어요.”

결국 회사에 휴가를 내고 그는 캐나다로 달려갔다. 오로라 원정대 여행을 가서 제일 놀랐던 것은 오로라의 장관이 아니라 같이 갔던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아니 정확하게는 그 사람들의 직업이었다.

“회사원은 나밖에 없었어요. 사진가, 만화가, 작가, 모두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먹고 사는 사람들이었어요. 자유로운 영혼들이었죠.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그들이 모두 굶어죽지 않고 잘 살고 있다는 것이었어요.”

학교에 다닐 때는 학교와 도서관과 집만 왔다 갔다 했고 취직해서는 회사와 집만 오가던 모범생 권오철에게 캐나다에서 만난 그들의 자유로움은 충격 그 자체였다. 더구나 잘 먹고 잘 살고 있다니!

“사람이 변해서 돌아왔어요. 저도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서 돌아왔죠.”

오로라 원정대로 캐나다에 간 것이 권오철의 세 번째 해외여행이었다. 첫 해외여행이었던 태국 방콕 출장길에서는 도착하는 순간 발생한 사기 사건 때문에 호텔에서 본사와 업무 연락만 취하다가 귀국했었단다. 중국 상하이에서 있었던 개기일식 관측여행에도 휴가를 길게 낼 수가 없어서 1박 2일로 참여했다. 그의 두 번째 해외여행이었다. 좀 더 길게 상하이에 머물렀던 나를 부러워하며 발길을 돌리던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세 번째 해외여행에서 처음으로 자유로움을 만끽했다고 한다. 같이 간 사람들의 자유로운 영혼과 오로라의 장관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고 평안하게 해주었을 것이다.

“12월 31일 마침내 사표를 던졌습니다.”

권오철은 이미 결심은 섰지만 귀국한 후 일주일이나 버티다가 사표를 던졌다. 여전히 다양한 불안감이 그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끝까지 용기가 없어서 머뭇거렸어요. 우발적인 사건을 빌미로 사표를 던지고 회사를 뛰쳐나왔지요. 불안감이 증폭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마음이 너무 편했어요.”

문제는 아내였다. 당장 먹고살 걱정을 해야 하는 당사자니까.

“그래.”

아내는 의외로 담담하게 반응했다고 한다. 여러 회사를 다니면서 그가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또한 천체사진가로서의 삶을 얼마나 간절히 갈망했는지 잘 아는 아내가 그에게 준 더할 나위 없이 큰 연말 선물이었다. 지옥 같은 회사 생활 속에서 스트레스가 극에 이르러 위벽이 허물어져 내리기도 했던 그의 이력을 잘 아는 아내가 내뱉은 ‘그래’라는 말 한마디에서 나는 권오철을 향한 그녀의 배려와 사랑을 본다. 인생의 첫 번째 변곡점으로 아내와의 결혼을 꼽았던 그의 혜안을 본다.

“밤에 너무 상쾌했어요. 날아갈 것만 같더라구요.”

2009년 12월 31일, 권오철의 두 번째 인생의 변곡점은 그렇게 탄생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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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오철은 오로라를 보기 위해 여러번 캐나다를 찾았다. 『신의 영혼 오로라』는 권오철의 캐나다 옐로나이프 오로라 여행을 담은 책이다

 

“열흘만에 다시 취직이 됐어요. 다행이죠. 월급을 받으면서 천체사진가로 살아갈 수 있게 됐으니까요.”

권오철의 오랜 지인인 천문우주기획 이태형 사장이 그의 퇴사 소식을 듣고 연락을 해왔던 것이다. 그는 천문우주기획에 취직해서 천체사진도 찍고 회사의 전산 업무도 보는 ‘회사생활’을 다시 시작하게 됐다.

“촬영이 많아서 외근이 잦아졌고 편집을 해야 하는데 집에 있는 컴퓨터가 더 좋은 사양이어서 집에서 주로 편집을 하다 보니 회사에 가는 일이 거의 없어졌어요.”

이태형 사장의 배려로 취직은 했지만 천체사진을 찍고 편집하는 일이 그에게 주어진 일의 거의 전부였다. 천체사진가로 연착륙하는데 큰 도움이 된 사건이었다. 다시 회사원이 되었지만 동시에 전업 천체사진가로서의 길도 걸을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기회는 왔고 권오철은 준비된 사람이었다.

“천체사진가로 살아가야하는데 ‘사진’으로는 답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영상’에 주목했지요. 2000년 초부터 디지털 카메라가 더 발달되면 천체사진을 타임랩스로 찍어서 영상을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한 20년 정도 후면 그런 세상이 오리라 생각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열화 노이즈 문제 같은 것이 해결되면서 10년 만에 디지털 카메라로 천체 영상을 찍을 수 있게 됐지요.”

천체투영실에서 상영할 천체 영상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고 방송과 광고에서 권오철의 천체 영상을 찾기 시작했다. 다시 바쁜 생활이 시작되었다.

“지금은 장비와 소프트웨어가 좋아져서 많은 사람들이 쉽게 천체 영상을 디지털 카메라로 찍을 수 있게 됐어요. 하지만 당시에는 장비도 허술해서 찍는데 많은 시간과 노동이 요구됐지요. 소프트웨어도 변변치 않아서 하나하나 손으로 다 작업을 해야 했구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갔지요.”

그만큼 천체 영상은 귀했고 수준 높은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작가도 많지 않았다. 세계적으로도 권오철은 세손가락 안에 드는 천체 영상 작가로 발돋움했다. 일이 많아지던 어느 날 그는 새로운 도전을 감행했다.

“퇴직금으로 킬리만자로 산으로 촬영 여행을 떠났어요. 산정상에는 가지 않고 그 주변을 돌면서 킬리만자로를 배경으로 열심히 천체 영상을 촬영했지요. 당시로서는 쇼킹한 영상을 만들어서 세상에 내놓았지요.”

그리고 그는 더 바빠졌다. 천체사진가로서 천체영상작가로서 그의 입지는 굳건해져갔다. 사진에서 영상으로 트렌드가 바뀌는 것을 간파한 그의 뛰어난 촉감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생각하는 것보다 더 철저하게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이었다.

“전업 천체사진가가 되겠다고 결심하면서 SWOT 분석을 먼저 했었어요.”

대기업 사원 시절 배웠던 SWOT에 대한 예측을 통해서 대응 방안을 마련해 두고 있었다. 자신이 하려고 하는 천체 영상 작업의 강점(Strength), 약점(Weakness), 기회(Opportunity), 그리고 위기(Threat)에 대한 분석과 예측 그리고 그에 대한 대응 전략을 이미 퇴사 10년 전에 마친 상태였던 것이다.

“경쟁상대가 하지 못하는 나만의 것을 하자는 것이었지요. 시장을 선점하고 우위를 점령하면 전업 작가로서 먹고 살 수 있다고 생각했지요. 그때 만든 액션 플랜으로 여기까지 온겁니다.” 

그는 그동안 정점에서 늘 다시 도전하는 진정한 승부사의 보습을 보여 왔다. 필름 카메라로 풍경과 천체가 어우러지는 사진을 찍어내면서 그 분야 최고수로 불리던 시절 과감하게 디지털 카메라로 전향한 것이 그였다. 모두들 의아해했지만 결국 그가 옳았다. 그의 지금 그는 자신에게 어떤 또 다른 도전을 주문하고 있을까?

“비밀입니다.”

듣는 사람에게는 다소 힘이 빠지는 대답이었지만 그의 목소리는 단호하고 절실했다.

“지금이 위기예요. 타임랩스 천체 영상 분야에서 제가 정점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좋은 장비와 소프트웨어로 무장해서 제 뒤를 바짝 좇아왔어요. 더 이상 권오철의 독주 시대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영업비밀이라며 끝끝내 자세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만 그라면 또 다른 멋진 도전을 할 것이라고 믿는다.

“변곡점이 가까워진 느낌이예요. 가속도가 줄어들었다고나 할까요.”

권오철, 이 남자, 정점에 도달한 사람이 놓치기 쉬운 자기 성찰을 하고 있었다. 그는 나이가 들어서인지 그런 것을 느낄 수 있다고 겸손해 했지만 나는 삶의 지혜가 그를 감싸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제 저도 변해야 해요. 마음속에 기획해 둔 건 있어요. 경쟁자가 많아진 이 시점에서 저도 먹고 살아야하니까요.”

미래는 현재에 있다는 진리를 그는 누구 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변곡점 위에 우뚝 서 있는 그의 모습이 거인처럼 보였다.

 

우주를 찍기 위해 필요한 변곡점  – 권오철 작가 인터뷰(2) 로 이어집니다.

 

천체 사진가 권오철의 도전 – 울릉도에서 독도를 품은 일출을 촬영하다.

영상 : ⓒ KWON, O CHUL

 

 


권오철

천체사진가.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과 벤처기업에서 잠수함설계, 소프트웨어 개발, 유무선 인터넷 관리 등 다양한 일을 했다. 일은 재미있으되 대한민국에서 회사원으로서의 삶은 행복하지 않아 사진가로 전업했다. 수입은 절반 이하로 줄었으나 백배 이상 행복을 느끼며 살고 있다.
다섯 번의 개인전을 가졌으며 다섯 권의 책을 출간했다. 미국 NASA의 Astronomy Picture of the Day에 한국인 최초로 선정되었고, 미국 National Geographic 사이트에 사진을 제공하고 있다. 세계 유명 천체사진가 33인으로 구성된 TWAN(The World At Night, www.twanight.org)의 일원으로 UNESCO 지정 ‘세계 천문의 해 2009’의 특별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인터뷰어 : 이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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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저술가. 외계 지성체를 탐색하는 세티(SETI) 연구소의 한국 책임자다. 초등학생 때부터 아마추어 천문가 활동을 시작하여 네덜란드 흐로닝언대학교에서 전파천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세티코리아 조직위원회에서 전파망원경을 이용해 우주로부터 오는 인공 전파를 포착해 외계 지적생명체의 존재를 찾고 있으며, 우주와 외계생명체에 대한 강연과 교육을 통해 대중과 정보를 나누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이명현의 별 헤는 밤》《빅 히스토리 1》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