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를 찍기 위해 필요한 변곡점 – 권오철 작가 인터뷰 (2)

 

천문학자 이명현 박사가 천체사진가 권오철 작가를 만나다.

우주를 찍기 위해 필요한 변곡점 – 권오철 작가 인터뷰 (2)

 

우주를 찍기 위해 필요한 변곡점(1)에서 이어집니다.


 

권오철 자신의 인생의 변곡점에 대한 큰 이야기를 나누었으니 이제 그의 주변으로 눈을 좀 돌려보기로 했다. 어떤 사람에 대해서 알고 싶으면 그 사람 주위의 사람이나 사물을 보라고 하지 않았던가.

하고 있는 일과 관련해서 생각나는 사람이 누군지 물었다.

“고등학교 때 ‘이태형의 별자리 여행’이라는 책을 보고 인생이 바뀌었어요. 별을 사랑하게 된 것이지요.”

하지만 그는 천문학과에 진학하지 않고 공대를 갔다. 당시 TV 드라마에 등장했던 천문학과 출신 백수 캐릭터가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었다고 그는 고백했다. 물론 당시 남학생들의 공대행 러시도 그의 결정에 한몫했다고 한다.

“학교 아마추어천문 동아리에서 선배였던 이태형을 만났을 때 그 기쁨은 말로 할 수 없었어요. 제 인생의 책을 쓴 저자를 만나다니! 그 책의 개정판에 실린 이태형의 사진은 제가 찍어 준 거예요.”

둘의 인연은 그 후로도 계속 이어진다.

“당시 청년 이태형이 운영하던 하이텔 별사랑 동호회에서 아내를 만났어요. 주례를 부탁드렸는데 나이를 이유로 고사하시고 조경철 박사님을 소개해주셨지요. 조박사님이 주례를 맡아주셨어요.”

이태형이 <별과 우주>라는 잡지를 창간했을 때도 권오철은 천체사진가로서 그의 사진을 제공하면서 이들의 인연은 이어졌다. 회사를 그만두었을 때 천체사진가로 연착륙할 수 있도록 권오철을 불러준 것도 이태형이었다. 그렇게 두 남자의 인연을 계속되고 있다.

카메라에 대해서 물었다. 혹시 애정이 가는 소장품이 있는지 물었다. 의외의 대답이었다.

“예전에는 카메라가 소장품이었지만 지금은 작업을 위한 소모품이예요. 별다른 애장품은 없습니다.”

전업 천체사진가가 된 이후 특히 디지털 카메라는 작업을 위한 최상의 조건을 만들어주는 소모품일 분이라는 것이다. 렌즈를 계속 바꿔야만 한다고 한다.

“천체사진은 해상력이 가장 큰 문제예요. 점으로 보이니까요.”

새로운 렌즈가 나오면 몇 개를 사서 테스트를 해보고 가장 해상력이 좋고 천체사진에 적합한 렌즈를 고른다고 한다. 3년 정도 지나면 해상력이 좋던 렌즈도 성능이 덜어지기 때문에 교체한단다. 계속 바꿔야하는 것이니 소모품일 수밖에.

천체사진가의 정체성을 아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가 현재 어떤 촬영 장비를 사용하는지 보는 것일 것이다. 그가 알려준 현재 그의 장비 목록이다. 이 목록이 곧 현재 시점에서의 권오철 자신이라고 우기면 너무 과한 것일까?

권오철_렌즈

 

권오철은 한 때 풍경과 천체를 어우르는 사진으로 유명한 사진작가였다. 필름 작업에 대한 미련은 없을까?

“평생 쓸 필름을 냉동 보관 중이예요. 단종된 필름들이죠. 아직 못끝낸 필름 프로젝트가 있거든요. 상업적인 접근으로는 그 작업을 재개하기 힘들어요. 언젠가 기회가 되면 마무리 할 겁니다.”

그는 천체사진가이기도 하지만 아마추어천문가이기도 하다. 좋아하는 별자리에 대해서 물었다.

“예전에는 포말하우트라는 별을 좋아했어요. 그 별 이름을 제 필명으로 쓰기도 했지요. 하지만 요즘은 그런 거 없어요.”

자신이 본 밤하늘의 경이로움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작업을 하다 보니 요즘은 특정한 별이나 별자리 보다 ‘별무리’의 모습에 눈길이 간다고 한다.

“별무리의 느낌이 중요해졌어요. 별들의 무리지은 궤적이 주는 경이로움 같은 거죠. 짧은 궤적이 있는가 하면 긴 궤적도 있지요. 각각 곡률이 다르니 동적으로 보이기도 하구요. 이런 밤하늘의 다양하고 다이나믹한 느낌을 사진에 담으려고 해요.”

밤하늘의 느낌이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그는 또 균형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한다.

“밤하늘의 느낌을 살려서 전달하려고 하다 보니 오히려 너무 밝은 천체는 방해가 되더라구요. 균형을 방해하거든요. 피해서 찍으려고 노력합니다.”

취미가 있는지 물었더니 싱겁지만 예상했던 대답이 돌아왔다.

“촬영이 일이자 취미예요.”

천체 사진과 영상을 찍는 촬영 여행을 다니고 집에 돌아와서는 편집 작업을 하는 것이 요즘 그가 하는 일의 전부란다. 다른 취미가 끼어들 틈이 잘 보이지 않는다.

IMG_0814

혹시 음악은?

“작업할 때는 음악도 듣지 않아요. 운전할 때 듣습니다. 신해철 음악을 특히 좋아해요. 앨범 전부 갖고 있지요. 지금 몰고 다니는 1995년 산 액센트에서 테이프로 들어요. 그런데 이젠 테이프가 늘어나서 듣기가 점점 힘들어져요.”

촬영 여행을 다녔던 곳 중에서 다시 가보고 싶은 데가 있는지 물었다.

“킬리만자로에 꼭 다시 가보고 싶어요. 퇴직금을 털어서 한번 가 본 이후 기회가 없었어요. 꼭 다시 가보고 싶은데 촬영 의뢰가 들어오질 않네요.”

오로라 촬영을 위해서 캐나다 옐로우나이프에는 열 번도 넘게 다녀왔고 서호주와 아이슬란드 그리고 백두산도 몇 차례 갔다 왔지만 킬리만자로에 유독 미련이 남아있다고 한다. 더 좋은 장비가 손에 들어올수록 더 그리워지는 곳이 바로 그곳 킬리만자로라고 말했다.

요즘 읽고 있는 책이 있는지 궁금했다.

“리차드 리키가 지은 『제6의 멸종』이라는 책을 읽고 있어요. 어, 그런데 책이 어디 갔지?”

책을 보여주려고 가방을 뒤졌는데 책이 보이질 않는다. 어디서 흘렸나보다, 라면서 혀를 찬다. 권오철은 요즘은 주로 우주에 관한 책이나 진화이론에 관한 책을 읽는다고 한다. 우주의 근원과 인간의 기원에 대해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주제의 책에 끌린다고 한다. 좋은 책을 권해 달라고 해서 최근에 나온 <센스 앤 넌센스>라는 진화이론에 관한 책을 한권 소개했다. 그가 책 이름을 메모하는 사이 『달과 6펜스』를 읽어 봤냐는 질문을 하려고 했었다. 고갱을 모델로 한 이 책의 주인공의 삶이 어쩐지 권오철의 인생과 닮은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그가 느닷없이 다른 이야기를 꺼내는 바람에 말 할 기회를 놓쳤다. 지면을 통해서라도 그런 마음이 들었었다는 것을 전하고 싶다.

“한 600년 쯤 더 살고 싶어요. 한반도에 개기일식과 금환일식이 몇 년 사이에 연이어서 일어나는 시기가 있거든요. 그럴 때면 우연이겠지만 역사적인 변고가 동반되기도 하구요. 천체의 변화도 직접 관측하면서 역사의 현장을 목격하고 싶다고나 할까요.”

과학기술이 점점 더 발달함에 따라서 앞으로 많은 것들이 더 많이 변할텐데 그런 변화의 현장을 보고 싶다는 것이다. 나도 동감한다. 우리는 한참 동안 유전공학 이야기며 인공지능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 문득 영화 「맨 프럼 어스」가 생각났다. 만 사천년 전부터 지구상에서 늙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 올드맨이 역사의 현장에서 겪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내용이다. 그는 한때 자신이 크로마뇽인이었고 예수였고 부처였다고 말한다. 인류의 역사를 목격하면서 살아온 것이었다. 권오철과 함께 올드맨처럼 오랜 시간을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분명히 변해가는 밤하늘의 모습을 보고 싶어 할 것이다. 특히 세월 따라 변하는 북극성을 바라보는 느낌은 상상만 해도 가슴이 벅차다. 직녀성이 북극성이 되어 밝게 빛나는 장면을 권오철과 같이 보고 싶다.

IMG_0776

권오철에게 숨겨놓은 보물이 있는지 물었다.

“대학생 때부터 시작된 20년 넘은 버릇이 있어요. 수첩에 메모를 하는 것이지요.”

인터뷰를 하면서도 계속 무엇인가를 끄적거리던 수첩을 보여준다. 일정이나 할 일이나 그 아무 것이라도 써넣은 수첩이 20년 치가 넘게 쌓여있다고 한다.

“옛날 정보가 필요할 때 유용해요. 수첩 속의 메모를 보면서 그 당시의 상황을 재현해 볼 수 있지요. 호텔 예약할 때도 몇 호실에서 해가 보였는지 알 수 있지요. 기록이 기록을 지배한다는 말처럼, 오래된 수첩 속의 정보가 꽤 유용해요.”

인터뷰를 마무리 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개발시대의 이데올로기에 붙잡혀 있는 기성세대가 주장하는 성공논리는 틀렸어요. 시대가 다른데 자신들의 방식으로 현재를 지배하려고 하는 것이지요. 그 논리에 굴복하거나 길들여지면 노예가 되는 겁니다.”

인생은 그 자체가 도전이지만 무모한 개발시대 식의 도전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도전에 앞서 한발 물러서서 냉철하게 자신을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권오철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도전을 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꿈을 버려야할 것 같아요. 헛된 꿈 말이죠. 개발시대의 무모한 꿈같은 것 말이지요. 모든 것에 대한 욕심은 버려야 해요. 원하는 것 한 가지만 남을 때까지 다 버려야 해요. 짧은 인생이잖아요. 현실을 직시하고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것에 전략적으로 매진해야 해요.”

인간의 일생이 날 수로 계산하면 3만일이라는 그의 말을 들으니 정말 인생이 짧다는 생각이 확 들었다. 100년 이러면 긴 것 같은데.

IMG_0835

“굶지만 않는다면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라고 권하고 싶어요. 생존 자체가 도전인 시대니 헛된 꿈보다는 방향성을 갖고 도전하면서 살아야겠지요. 제 홈페이지의 제목이 그래서 ‘사진가로 살아남기’입니다.”

10년 후를 미리 준비해서 천체사진가가 된 권오철은 늘 신중하게 이야기 한다. 그 자신의 성공담도 ‘살아남기’라는 말로 대신하곤 한다. 그만큼 믿음이 간다.

“왜곡된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눈이 밝아야 합니다.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필요하지요.”

권오철은 끝끝내 삶의 긴장감을 놓지 않는다. 그는 계속 고민 중이고 무엇인가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궁리를 한다. 그리고 집착을 하고 이끌어낸다. 떠오르는 태양빛의 실루엣에 의해서 그 존재감을 증폭시키는 독도의 모습처럼 권오철도 자신의 사진을 통해서 우리들 각자의 존재감을 느끼게 해주는 마법을 가졌다. 벌써 그가 그립다.

 


권오철

천체사진가.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과 벤처기업에서 잠수함설계, 소프트웨어 개발, 유무선 인터넷 관리 등 다양한 일을 했다. 일은 재미있으되 대한민국에서 회사원으로서의 삶은 행복하지 않아 사진가로 전업했다. 수입은 절반 이하로 줄었으나 백배 이상 행복을 느끼며 살고 있다.
다섯 번의 개인전을 가졌으며 다섯 권의 책을 출간했다. 미국 NASA의 Astronomy Picture of the Day에 한국인 최초로 선정되었고, 미국 National Geographic 사이트에 사진을 제공하고 있다. 세계 유명 천체사진가 33인으로 구성된 TWAN(The World At Night, www.twanight.org)의 일원으로 UNESCO 지정 ‘세계 천문의 해 2009’의 특별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인터뷰어 : 이명현

원형프로필

과학 저술가. 외계 지성체를 탐색하는 세티(SETI) 연구소의 한국 책임자다. 초등학생 때부터 아마추어 천문가 활동을 시작하여 네덜란드 흐로닝언대학교에서 전파천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세티코리아 조직위원회에서 전파망원경을 이용해 우주로부터 오는 인공 전파를 포착해 외계 지적생명체의 존재를 찾고 있으며, 우주와 외계생명체에 대한 강연과 교육을 통해 대중과 정보를 나누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이명현의 별 헤는 밤》《빅 히스토리 1》이 있다.

 

 


 

인터뷰는 재밌게 보셨나요? 3월에는 권오철 작가의 ‘도전’에 관한 이야기가 3회에 걸쳐 연재될 예정입니다.  많이 기대해 주세요. 🙂

<연재 보기>

1편 : 권오철의 도전 (1) 울릉도에서 독도를 품은 일출을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