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살기 위해 던진다 – 원종현 선수 인터뷰

“어려운 질문이 좀 많네요 ^^;;”

인터뷰 전에 보내드린 질문지에 대한 소감을 밝히면서 시작한 인터뷰는, 어렵다던 말이 그냥 엄살(?)이었나… 싶을 만큼 아주 부드~럽게 진행되었습니다.

끝나지 않는 155k를 향해 달려가는 원종현 선수를 만나보겠습니다.


다이노스 크리에이터 로고

 

 

 

Q. (들어가며) 사실 오늘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섭외를 희망했던 선수들이 다이노스 창단 당시부터 함께 해온 선수들이다.(주: 김진성 선수 인터뷰와 같은 날 진행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다이노스의 창단과 성장 과정을 함께 바라보고 있어서 많은 애착을 가지고 있다. 다이노스 입단 후에 1군에서 자리를 잡고 활약하는 선수들에게는 더 그렇고.

오늘 인터뷰의 큰 주제는 다이노스에서의 제 2의 야구 인생 – 이라고 잡아봤다.

고교 시절 활약에 대한 자료를 많이 찾을 수가 없었다. 군산상고에서 차우찬 선수와 함께 활약했다는 정도만 알고 있는데, 본인의 고교 시절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면?

A. 고교 시절에는 지금과 달리 오버 핸드 투수였다. 구속이 뛰어나지는 않았던 평범한 투수였고.

차우찬 선수는 2학년 때부터 두각을 나타냈던 ‘제구 되는’ 왼손 강속구 투수로 나보다 한 수 위의 선수라고 생각했다.

3학년 때 함께 활약하면서 대통령배 4강까지 올라가서 오랜만에 모교가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우승을 하지 못했던 건 아쉽지만 그래도 좋은 추억을 많이 쌓았다.

차우찬 선수와도 여전히 연락을 주고 받으며 잘 지내고 있다.

 

Q. 프로 진출 이후의 이야기를 해보자. 2006년 LG에서 지명을 받았는데, 당시 LG에 입단했던 선수들 중 팀에 남아 있는 선수는 아무도 없고(…)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선수도 최승준(SK)을 포함해서 둘 뿐이다. 프로에 입단한 선수들에게도 동기들의 존재는 특별했을 텐데 어떤가?

A. 아쉽게도 입단 동기들이 1군에서 큰 활약을 하지 못했다.

특별히 튀어나가는 선수들이 없이 2군에서만 오래 지내면서 익숙해져 가다 보니 한 명 한 명 떠나게 되고… 결과적으로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Q. ‘익숙해진다’는 이야기를 해서… 예전에 조선일보의 인터뷰 내용 중에 ‘관중이 없는 텅 빈 구장에서 공을 던지는 게 힘든데 거기에 익숙해져 가는 모습이 너무 무서웠다’는 말이 있었다.

일반적인 직장인이라면 그러한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서 여러 가지 변화를 시도할 수 있다. 업무를 옮기거나 회사를 옮기거나.

하지만 선수들의 입장에서 포지션이나 팀을 바꾸기는 쉽지 않은 일이라 어려움이 있을 텐데 당시에 그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들을 했었는지, 당시의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무엇일까?

A. 편하게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너무 위축되고, 잘 되지 않다 보니 그 생활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받아들였던 점이 아쉽다.

이겨 나가려고 좀 더 노력을 했다면, 강한 의지로 변화를 위한 노력을 했어야 했는데 너무 당연하게 ‘내가 못하니까 여기 있구나’라고 받아 들였던 점이 아쉽다.

 

Q. 질문이 너무 우울하게 가는 것 같아서 미안하다. 이 정도로 끊어야 할 것 같다.

A. 괜찮다. 이미 다 지나간 일이다.

Q. 분위기를 바꿔보자. 예전에 방송을 보다가 MBC 스포츠플러스 차명석 해설위원(주: 원종현 선수 LG 입단 당시 투수 코치로 재직 중 이었음)이 원종현 선수의 이야기를 했었던 적이 있다.

LG 코치로 재직 중일 때 당시 팀에서 방출되고 자비로 재활 중이었던 원종현 선수와 계속해서 연락을 주고 받으면서 팀으로 다시 데려오려고 했었다-는 내용으로. 이와 관련해서 자세한 내용을 이야기 해 줄 수 있을까?

A. LG 입단 시기부터 많은 신경을 써 주셨다. 1군과의 훈련이나 교육리그에 참석했을 때도 많은 지도를 해주셨고.

아쉬운 점들을 고치기 위해 많이 알려주셨는데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점이 죄송스럽다.

아쉬운 마음이셨겠지만 내 실력이 부족했던 탓이라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일이고.

팀을 나간 이후에 다시 데려오려고 하셨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직접적으로 이야기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Q. 다이노스 입단 이후의 이야기를 해보자. 투구 폼을 오버핸드에서 스리쿼터 형태로 바꿨는데 오히려 구속이 빨라졌다.

일반적인 통념과 반대인데, 스스로 진단을 하자면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A. 팔 각도를 내렸다고 해도 지금 내 폼이 구속에서 손해를 볼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보다는 공을 던지는 과정에서 허리나 골반을 이용해서 힘을 전달하는 방법을 찾았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나에게 가장 잘 맞는 폼이라고 생각한다.

 

Q. 다른 투수들의 활약을 포함해서 느끼는 건데, 최일언 투수코치는 대체 무슨 마법을 부리는지가 궁금하다.

아마 시절에 주목을 받던 선수들도 1군에서 활약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다이노스의 신인 투수들은 1군에서 시행착오를 겪는 시기가 굉장히 짧다는 느낌이다.

다른 지도자들과 비교해서 특별한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

A. 정말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많이 써 주신다. 어떻게 해야 좋은 폼을 유지할 수 있는지 에 대해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처음에 팔을 내렸을 때도 개인적으로는 혼란스러웠지만 가르침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결국 코치님이 원하는 그림을 맞춰가고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후배 선수들도 가르침을 잘 이해하고 느끼기 시작하면 많이 좋아지는 게 보인다. 최근에는 장현식 선수도 그렇고.

 

 

Q. 2014년 포스트 시즌 LG전. 155km/h를 찍었던 그 경기. 김태군 선수와 마운드에서 어떤 이야기를 나눴었나 ?

A. 정확한 기억은 잘 안 난다. 워낙 오래 전이라. 당시에 구속이 잘 나왔지만 안타를 허용해서 위기 상황이었다.

하지만 느린 변화구를 던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힘으로 더 밀어붙여보자는 이야기를 했었다.

153km/h 직구가 맞아나가던 상황이라 변화구를 던지는 쪽으로 생각할 수 도 있었지만 정면 승부를 선택했고, 155km/h를 기록해서 나도 깜짝 놀랐었다.

 

Q. 당시 4번 타자였던 이병규 선수를 멋지게 삼진으로 돌려세웠는데, 안타깝게도 다음 경기는 좋지 못했다.

만화 슬램덩크의 ‘하지만 이 사진이 표지로 쓰이는 일은 없었다’가 생각났는데

A. 만화를 안 봐서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다 (…)

잠시 슬램덩크에 대한 설명 시간을…

 

Q. (슬램덩크의 북산 vs 산왕 전 이후 패배에 대해 설명) … 3차전에서 너무 힘을 쏟아 부어서 4차전에서 조금 좋지 않았던가 싶었다.

A. 만화에서 그런 장면이 있었나. 사실 ‘마지막이다’는 생각으로 한 경기만 잘 하자는 생각으로 던졌던 거라서.

 

Q. 암 수술 이후 재활을 힘들게 거쳤을 것 같다. 이전에 팔꿈치 수술도 했었고…

운동 선수들이 재활을 많이 힘들어하는데 잘 겪어낸 입장에서 비슷한 처지에 있는 다른 선수들에게 한 마디 하자면 ?

A. 재활이 힘든 건 사실 ‘운동을 못하고 있으니’ 힘든 거다. 경기에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 없어서 지루하고…

결국에는 버텨내고 다시 돌아갈 곳이 있으니 긍정적인 생각을 많이 하면서 미래에 대한 생각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Q. 이전 인터뷰에서 ‘나는 살기 위해 던진다’고 이야기를 했던 게 인상 깊었다. 당시 1군에 올라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고, 지금은 당시와는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지금은 무엇을 위해서 던지는지 한 마디 부탁한다.

A. 결혼도 했고, 아이도 있고. 책임감을 가지고 던지고 있다. 앞으로 더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다.

 

Q. 마지막 질문. 태어날 아이에게 어떤 야구 선수로 기억되고 싶은가?

A. 아직 생각을 못 해봤는데. 잘 모르겠다. (한참 고민 후…) 포기하지 않는 선수.

 

[D-Shot] 위기 상황을 마무리 지은 원종현 (2017.6.7 vs 롯데)

* 본 인터뷰는 2017년 8월 27일 진행되었습니다.


프로필3TL Camp 엔진팀 이정현 님  시즌권을 끊어서 주말에 “만” 경기장에 가는 사치를 부리는 날이 오기를 바라는 회사 생활 6년차의 독거노인(예정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