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과 사회 #9 게임과 문화전쟁

게임에 대한 사회적 견해와 의미를 살펴보는 ‘게임과 사회’.

‘게임과 사회’ 9편에서는 게임을 비롯한 대중문화를 규제하고 억압하는 ‘문화전쟁’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 대중문화를 죽이는 문화전쟁

1997년 「청소년보호법」이 제정되었을 때, 문화전쟁의 희생양은 만화였다.

발단은 일진회 사건이었다. 학교 폭력 사건에 연루된 학생들이 경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일본의 만화를 보고 범죄를 모방했다고 진술한 것이다.

그러자 언론이 사실을 선정적으로 보도했다. 곧바로 보수적인 청소년 단체들과 종교계는 일제히 만화를 강력하게 규제해야 한다고 성토했다.

일진회 사건은 「청소년보호법」이 제정되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당시 일본 불량 만화 수백만 권이 폐기되고, 인기 만화작가 이현세의 『천국의 신화』 청소년판이 청소년 유해 매체로 고시되었다.

청소년 유해 매체 논란이 일었던 #천국의신화

「청소년보호법」 제정 이후 영화와 대중음악 상당수 곡들이 유해매체로 고시되면서 큰 화를 입었다. 규제의 대상이 만화에서 영화와 대중음악으로 바뀐 것이다.

음반 사후 심의가 청소년보호위원회로 넘어오면서, 2006년에서 2011년까지 청소년 유해매체로 지정된 곡은 모두 3,538곡에 이르렀다. 그 당시 이렇게 많은 곡들이 청소년 유해매체로 지정된 까닭은, 술과 담배 관련 표현이 나오는 곡의 경우 모두 유해매체가 되었기 때문이다.

1960년대에는 ‘어린이 날’을 맞이해 공개 장소에서 청소년의 정신건강을 해치는 만화를 불태우는 행사를 벌였다고 한다.

국민학교에서 시행됐던 나쁜 만화 불태우기 (」゜ロ゜)」

1970년대에는 유신 긴급조치로 가요계 정화운동이라는 미명 아래 많은 가요들이 금지곡이 되었다. 유신 정권 시절에는 역사상 가장 많은 금지곡이 지정되었는데, 1975년 긴급조치 9호로 인해 당해 연도에 금지곡으로 지정된 곡들만 해도 국내 가요 222곡, 해외 가요 261곡, 총 483곡이나 되었다.

당시 한국문화윤리위원회라는 검열기관이 정한 금지곡의 기준을 보면 황당하기 이를 데 없다. 아래 금지곡 기준을 보자.

왜색, 창법저조, 창법퇴폐, 비탄조, 가사무기력, 가사현실도피, 가사조속, 허무감조장, 가사현실불만의식조장, 선정적, 냉소적, 치졸, 야유조, 주체성 없음, 너무 우울, 품위 없음, 반항감, 비참, 잔인성까지.

황당한 이유로 금지되었던 대중가요 #양희은 #송창식 #정미조

그런데 2014년에 논란이 된 가칭 「게임중독법」의 제정 배경을 생각하면, 이것이 1970년대 금지곡 기준의 황당함과 별반 다르지 않다.

게임을 마약이나 알코올, 도박과 동급으로 간주해서 중독물질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에게 밤12시 이후에 게임을 못하게 하는 게임 셧다운제 역시 황당하기로는 유신시대의 금지곡 기준에 버금간다.

이렇듯 보수적인 종교계와 청소년 단체들은 대중매체를 사회악으로 규정하면서 오래 동안 문화계와 싸움을 벌였다. 지금은 게임이 만화나 대중음악을 대신해서 싸움이 대상이 되었다.

우리는 이것을 ‘문화전쟁(culture war)’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 문화전쟁의 기원

서구에서 문화전쟁은 오랜 역사적 기원을 가지고 있다.

문화전쟁은 19세기 후반 로만 카톨릭 교회의 세력 확장에 반대했던 독일 비스마르크 대제가 선거 기간에 종교 문화 그룹들 간에 벌인 충돌을 말한다.

캐나다에서 문화전쟁은 동서 지역, 농촌 대 도시, 진보와 보수 진영 사이에서 캐나다인의 정체성과 문화적 가치를 놓고 벌인 논쟁을 통칭한다.

미국에서는 전통 보수주의자와 자유주의자 간에 문화매체를 놓고 벌인 논쟁이 가장 유명하다.

특히 1989년 워싱턴 코코랜 화랑에서 있었던 사진작가 로버트 메이플소프(Robert Mapplethorpe)의 전시회를 놓고 벌인 보수와 진보 진영의 싸움이 대표적이다.

도발적인 주제를 대담하게 사진에 담았던 작가, 로버트 메이플소프

로버트 메이플소프는 동성애, 변태성욕, 악마주의 등 당시 사회적으로 금기시 했던 주제들을 급진적으로 표현하여 논란의 중심에 섰던 작가였다.

더욱이 워싱턴 전시회가 연방정부 예술진흥재단의 후원을 받은 것이 알려지면서 공화당 소속 정치인들의 반발이 거셌다. 제시 헴스(Jesse Helms)라는 노스캐롤라이나 출신 상원의원은 이 전시회에 국가 재단이 후원한 것에 강력히 항의하고, 예술지원에 대한 엄격적 도덕적 기준을 부여할 것을 주장하였다.

심지어 그는 전시회를 취소하지 않을 경우 예술 진흥 재단의 해체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공화당은 같은 시기에 성조기를 불태우며 반국가 시위를 한 대학생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며 로버트 메이플소프를 응원하는 거리의 시민들

반면 진보적 자유주의 진영에서는 로버트 메이플소프를 옹호하면서 창작자의 표현의 자유가 보호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였다. 결국 전시회는 취소되지 않았고, 공화당 의원들에 의해 소송 제기한 대학생들의 국기모독죄는 대법원 판결에서 무죄로 선고되었다.

이들의 행위를 미국 수정헌법 제 1조가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의 차원에서 정당한 정치적 항의 방법으로 판결한 것이다. 당시 집권 대통령이었던 부시 대통령이 국가를 모독하는 행동을 처벌할 것을 골자로 수정헌법 개정을 요구하였지만, 대법원은 헌법 수정안을 부결시켰다.

 

# 문화전쟁의 희생양, 게임

한국에서의 문화전쟁은 오랜 논쟁을 야기했고, 지금 한국에서는 게임이 문화전쟁의 중심에 서 있다. 게임의 폭력성, 중독성, 사행성을 강하게 규제해야 한다는 보수주의자와 게임 이용의 개인 권리를 주장하는 문화주의자들 사이의 논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1980년대 당시 전자오락실의 불법영업이나 청소년 출입을 집중 단속하는 신문 기사들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유흥 오락업소 집중 단속 기간에 전자오락실은 빼놓을 수 없는 단속 장소였다.

전자오락실 출입자들 간의 폭력행위, 불법 사행오락실 운영, 가출, 탈선의 장소로서 전자오락실을 우범지대로 단속하는 기사들이 끊이지 않았다.

불온 장소로 낙인 찍혔던 80년대 오락실 (출처: 중앙일보)

1990년대 중반 컴퓨터 게임을 인기를 얻으면서 시청자들 사이의 게임 대결을 방송으로 편성했던 KBS의 「게임천국」과 SBS의 「달려라 코바」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이 프로그램에 대해 한 사설에서는 ‘단지 감각적 오락과 사행심만을 조장한다. 어쩌면 컴퓨터가 가진 가장 큰 폐해만을 TV가 선택한 것인지 모른다’는 부정적인 논조를 피력했는데, 이것은 당시 컴퓨터 게임에 대한 학부모와 기성 사회가 갖고 있었던 일반적인 생각이었다.

전화기 붙잡고 연습하던 기억, 다들 있으시죠? #달려라코바

이렇게 보면 게임은 아케이드 오락실이 생긴 때부터 PC방이 보편화되고, 스마트폰으로 누구나 게임을 즐길 수 있게 된 현재에 이르기까지 단 한 번도 좋은 평가를 받아본 적이 없는 듯하다.

보수적인 청소년 단체들은 청소년들이 머리가 나빠지고, 공부를 안 하고, 가정불화를 일으키는 모든 원인이 게임에 있다고 본다. 게임만 없어지면 청소년들이 건전하게 생활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게임의 문화전쟁은 2014년 게임중독법 제정 논란을 통해 해소되기는커녕 강화되었다. 게임이 사회에 미치는 효과에 대한 연구와 여론은 대부분 중독, 폭력, 사행성과 같이 부정적인 관점들이 주를 이룬다.

 

# 게임 문화전쟁의 미래

전세계적으로 게임은 문화전쟁의 가장 중요한 전쟁터가 되었다. 디지털 문화 시대에 게임이 지배적인 문화콘텐츠로 모든 사람들이 즐기다보니, 이용에 대한 강력한 규제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게임의 모든 내용들은 적절한 연령이 이용할 수 있도록 등급으로 분류되고 있다. 일부 게임들은 스토리텔링의 특수성 때문에 특정 국가에서는 아예 판매가 금지되고 있다. 게임이 문화전쟁을 넘어 이념전쟁, 종교전쟁으로 확대된다.

가령 한국은 북한과 통일, 이슬람 국가들은 이슬람 테러 왜곡이나 문화 비하, 독일은 나치 등장, 중국은 티베트 독립과 관련한 내용을 담은 게임들에 대해서는 판매 금지를 적극적으로 고려하고 있다.

구글 위키피디아에서 제시된 각 국가별 수입 금지 비디오 게임의 목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주요 국가별 비디오 게임 금지 목록

한국은 디지털 문화가 가장 앞선 나라이고 기독교의 영향력이 강한데다, 청소년들에 대한 보수적인 시각이 지배적인 상황이므로 게임의 문화전쟁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게임을 문화로 볼 것인가, 아니면 청소년의 정신 건강을 해치는 백해무익한 매체로 볼 것인가 하는 문화전쟁은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게임의 문화전쟁은 이미 존재하며, 언제나 존재할 수 있다. 또한 이것은 단지 게임업계나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예술계 전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문제다. 그런 점에서 문화전쟁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그것을 다른 문화의 영역과 연계하며, 정당하고 타당한 근거와 논리를 마련할 수 있는 노력들이 요구된다.

게임 기업들 내부에서도 문화전쟁의 문제의식을 폭넓게 가져가야 하고, 문화콘텐츠를 대중들에게 전달하는 기업으로서의 자기 책임의식도 더 많이 견지해야 한다.

이러한 문화전쟁의 국면을 통해서 한국의 게임문화 환경이 좀 더 진일보할 수 있기 위해 연구자, 기업, 게임 유저 및 다른 문화콘텐츠 그룹들과의 공동 이해와 협력이 필요한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중앙대학교 영문학과에서 <메타비평론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는 문화연구자로서 문화이론과 문화정책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게임 문화연구에도 관심이 깊어 다양한 책과 칼럼을 쓰고 있으며, 대표 저서로는 『문화자본의 시대』, 『게임의 문화코드』, 『게임 이펙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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