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게임#23 전설의 오우거 배틀

게임회사 사람들이 꼽는 ‘내 인생의 게임’은 무엇일까요?

이번 게임은 SRPG의 전설이라 불리는 ‘전설의 오우거 배틀’입니다. 이 게임의 엔딩을 보기 위해 수험 공부도 제쳐두고 플레이에 몰두했었다는데요.

수능도 막을 수 없었던 게임의 재미는 무엇이었을까요? VPD 개발지원팀 백광훈 님이 직접 소개합니다~! ╰(°ㅂ°)╯


누군가 “네 인생의 게임이 뭐냐”고 묻는다면 만화 《하이스코어 걸》 주인공 같았던 유년시절로 거슬러올라갑니다.

8비트 애플2 컴퓨터로 나름 게임 조기교육까지 받은 저는 게임을 빼면 인생이 좀(많이) 심심합니다. 신작 게임이 나오면 용산으로 달려갔고 비싼 게임을 사기 위해 찹쌀떡을 파는 일도 불사했죠.

그런 제게도 고3은 찾아왔고.. 불행히도(?) 제 인생의 게임은 이 때 만나게 됩니다.

만화 《하이스코어 걸》의 주인공
다른 점이라면 만화 속 주인공 옆에는 여자 주인공이 있지만 현실은 T_T

#비극의 서막

때는 1993년.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 대한민국 수험생들을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었습니다. 학력고사가 폐지되고 ‘수학능력시험’ 일명 ‘수능’이 도입된다는 것 이었죠.

개편된 정책으로 시험은 8월과 11월, 2회에 걸쳐 보고 둘 중 높은 점수로 대학에 지원할 수 있었습니다.

수능이 뭔데 2번이나 보는 거죠?
#이걸기회로삼았던나를저주한다 \(ㅠ▽ㅠ)/

“이제 게임은 좀 쉬고 열심히 공부해야겠구나” 라고 다짐한 3월 중순, 입시공부 전 마지막으로 게임을 즐기기 위해 용산을 방문했습니다. 그 때는 이 행동이 제 게임 인생, 아니 인생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죠. .

오늘 소개할 게임은 용산에서 운명처럼 만난 게임 <전설의 오우거 배틀>입니다. 아무 정보 없이 케이스만 보고 반해버렸습니다. 게임샵에서 이 그림을 보는 순간 사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연애 한번 해본 적 없는 저에게
첫눈에 반한다는 느낌을 알려준 게임입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지금은 최고의 일러스트레이터인 ‘요시다 아키히코’의
첫 게임 데뷔작이었습니다.

 

《전설의 오우거 배틀》 오프닝
오우거 배틀 사가 에피소드 5, The March of The Black Queen

 

처음 보는 분들에겐 흔한 레트로 게임 오프닝 같겠지만 24년 전에는 시대를 앞서간 그래픽과 사운드였습니다. 매장에서 게임을 지켜보다 오프닝에 반해 바로 구입했습니다.

게임을 구입하고 저는 다짐합니다.

‘그래~ 3월을 마지막으로 열심히 게임 하고 4월부터 공부하자.’

4월부턴 정말 공부만 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일본어를 전혀 몰라 이웃집 할아버지께 물어물어 게임을 했습니다. <전설의 오우거 배틀>은 제가 지금까지 경험해 본 게임 중 가장 어려웠습니다.

언어만 해결되면 승산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전설의 오우거 배틀>은 언어의 압박이 아닌 게임 자체의 시스템이 매우 복잡했고 숨겨진 요소들 또한 너무 많았습니다. 게임 인생 처음으로 거대한 벽에 부딪힌 것 같았습니다. 더욱더 도전정신이 발동했습니다.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승부를 내보자.”라고요.

이 녀석을 클리어 할 때까지 일단 공부는 접는다.

 

#남자는 혁신에 무너진다

<전설의 오우거 배틀>은 당시 ‘퀘스트’*라는 회사에서 만든 시뮬레이션 RPG입니다. 맵을 이동하는 건 실시간 RTS와 비슷하고 전투는 턴 제로 진행합니다. 바둑판 모양의 공간을 순서대로 이동하지 않고 실시간으로 이동하는 건 놀라움 그 자체였죠

*현재는 ‘스퀘어 애닉스’에 흡수 되었다.

부대의 이동은 실시간 RTS
그 당시엔 혁신이었다

부대간의 전투는 턴방식
디테일한 유닛 표현과 연출은 당대 게임의 기준점을 한없이 높여버렸!

세계관 또한 방대하고 시나리오도 뛰어나서 이후 ‘오우거 배틀 사가’ 시리즈로 출시했죠.

오우거 배틀 사가 3부작
좌측부터 발매 순서대로 《전설의 오우거 배틀: 제5장 The March of the Black Queen》
《택틱스 오우거: 제7장 Let us Cling Together》
《오우거 배틀 64: 제6장 Person of Lordly Caliber》

무엇보다 이 게임을 ‘인생 게임’으로 만들어 준 건 앞으로 소개할 두 시스템 덕분(?)입니다. 게임의 재미와 난이도를 엄청나게 높였죠. 바로 ‘타로 카드’와 ‘카오스 프레임’입니다.

 

# <전설의 오우거 배틀>의 핵심 ‘타로 카드’

<전설의 오우거 배틀>을 상징하는 시스템은 단연 ‘타로 카드’입니다.

무려 요시다 아키히코가 직접 디자인한 타로카드입니다.

타로 카드는 게임의 완성도를 높이는 독특한 시스템이었습니다. 게임의 시작이자 과정이고 끝이었죠.

제가 생각하는 중요도는
이 정도 ( •᷄ὤ•᷅)?

게임을 처음 시작하면 반란군의 지도자인 주인공을 만들게 됩니다. 기존의 게임들은 캐릭터의 이름과 성별, 직업 정도를 선택할 수 있는 수준이었습니다. 1990년대 초반 커스터마이징은 존재하지도 않았죠.

<전설의 오우거 배틀>의 캐릭터 생성에는 타로 카드가 있었습니다. 게임을 시작하면 점성술사가 타로 점을 봅니다. 먼저 리더로 적합한지 묻습니다. 대답에 따라 캐릭터 유형을 결정하는 6개의 질문이 랜덤하게 나옵니다. 이 대답으로 캐릭터를 결정합니다.

점성술사의 질문은 지금도 선택하기 곤란한 것들이 많았습니다. 질문 몇 개를 소개하죠.

사람으로써, 해선 안될 일 중 가장 중요하다 생각되는 것은 어떤 일인가?
1. 남을 속이는 일
2. 남을 희생시키는 일
3. 남의 것을 훔치는 일

운명은 잔혹한 것, 가족 중 한 명만 구해야 한다면 누구를 구할 것인가?
1. 어머니
2. 연인
3. 자식

뭔가 좀 심오하죠? 캐릭터 선택부터 시작해 타로 카드는 게임의 방향을 결정했습니다. 게임 중 획득하는 타로 카드로 전략을 고민했죠. 게임 속에서 만나는 모든 카드들은 엔딩을 결정짓는 다양한 경우의 수를 발생시켰습니다.

 

#혼돈의 카오스 ‘카오스 프레임’

지금 생각해보니 정말 “혼돈의 카오스”였습니다.

게임의 엔딩은 ‘카오스 프레임’으로 결정됩니다. ‘카오스 프레임’은 우측 상단에 표시된 수치로, 주인공이 이끄는 반란군의 행동에 따라 증감합니다.

이것이 악명 높은 “카오스 프레임”

카오스 프레임은 쉽게 말하자면 민중의 지지율이라고나 할까요? 민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건 게임에서도 쉽지 않더군요. 기존의 전략게임들은 잘 키운 주력 부대로 게임을 공략해나가는 것이 정석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게임에서 무조건적인 공략은 민심을 잃게 할 수 있었죠. 그리고 모든 유닛은 선과 악의 속성을 갖고 있어서 속성에 따른 전략과 판단이 필요했습니다.

즉, 압도적인 강한 유닛이 매우 약한 유닛을 쉽게 사냥한다거나, 악한 속성의 유닛으로 구성한 부대가 도시를 해방한다거나 하면 민심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스템도 잘 모른 상태에서 ‘맨땅에 헤딩’하는 방법으로 게임을 하니 1993년 4월도 다 지나갔습니다. 결국 저는 게임은 포기… 아니 쉬기로 하고 입시공부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공부가 쉬웠네요.

 

#드디어 클리어.. but  

시간이 지나고 더위가 시작할 무렵이었습니다. 참고서를 사러 서점에 갔던 저는 보면 안될 것을 보고야 말았죠.

전설의 오우거 배틀 100% 공략!!!

수능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게임챔프’는 선악과를 따먹으라고 유혹했습니다. 결국… 저는 참고서 살 돈으로 ‘게임챔프’를 구입했습니다.

“어차피 수능시험은 2번 보잖아? 나는 2차 시험에 올인할거야. 내가 포기한 게임은 있을 수 없어”

치직~ 1993년의 백광훈씨 들리십니까? 반드시 참고서를 사세요.

공략집의 도움이 있었지만 ‘카오스 프레임’은 제 발을 밟았습니다. 게임을 할수록 떨어지는 카오스 프레임에 다시 하기를 수 차례, 얼마 후 8월 1차 수능 시험을 치르게 됩니다.

결과는 뻔하죠? 괜찮습니다. 저에겐 2차 시험이 있습니다.

이후 정신차리고 겨울에 실시하는 2차 시험을 위해 열심히 공부 했습니다. 그리고 그 해 11월

정말 망했어요~!

저 또한 1차 수능보다 무려 20점 이상 하락했기에 모든 것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전설의 오우거 배틀>공략에 도전합니다.

공부를 포기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결국 그 해 겨울, 《전설의 오우거 배틀》을 클리어합니다.

클리어 한 순간은 감격 그 자체.

드디어 해방이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엔딩을 보게 되었죠. 그런데 엔딩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바로 옆집 할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듣게 된 충격적 사실

너희 둘, 왜이래???

처음부터 저와 함께 싸운 동료에게 암살을 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이 영웅이 됩니다.

내가 이런 엔딩을 보기 위해 이렇게 고생했단 말인가~~~

결국 이렇게 1993년은 지나갔습니다. 20년이 훨씬 지났지만 아직도 제 고3시절의 가장 큰 임팩트는 수능이 아니라 <전설의 오우거 배틀>로 남아있습니다. 지금은 회사의 사정으로 시리즈가 끊긴 게 안타깝습니다. 제 인생에도 일정부분 영향을 준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때가 그립습니다.

지금도 사무실에는 그때의 추억이 있습니다.

 


백광훈 어린 시절 잘하는 것이 게임뿐이었고 결국은 게임으로 밥 벌어 먹고 사는 사고방식이 20대에서 멈춘 40대 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