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과 보안 #16 MMORPG를 통한 사회적/반사회적 행동 관찰 Part 1

지난 편에서는 서로 다른 두 종류의 MMORPG 데이터를 분석하여, 사람과 게임봇이 다른 이유를 살펴봤습니다. 사람은 욕망의 동물이기 때문에 충성심과 같은 고차원의 욕구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기적인 행동을 통해 이익을 추구하는 성향이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온라인 게임은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할 수 있고, 특히 MMORPG는 대규모 이용자들이 서로 교류하는 사회 현상을 관찰할 수 있는 좋은 가상 세계라는 점에서 데이터 분석가들로부터 많은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이번 연재에서는 MMORPG 내에서 친사회적(prosocial) 또는 반사회적(antisocial) 행동을 관찰한 예를 소개하겠습니다.


몇 년 전 빅데이터 분석 기법이 등장한 이래, 트위터나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 미디어들을 분석하여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사회 현상을 관찰하는 연구가 전성기를 맞았다.

기존에는 설문 조사와 제한된 조건 하에서의 관찰만이 연구 방법이었지만, 이제는 온라인상에서 사람들 간에 맺어진 연결망을 관찰할 수 있는 훌륭한 도구가 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트위터나 페이스북은 그 설계상 할 수 있는 행동이 극히 제한이 되어 있어서(예: 트윗, 리트윗, 팔로우, 좋아요, 공유, 댓글 정도) 사람들의 다양한 행동을 묘사하고 있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온라인 게임은 인간의 행동이나 사회 현상을 관찰하기에 너무나 좋은 플랫폼이다. 개인의 행동 외에도 소속된 길드와 사회의 다양한 협력 및 갈등 관계를 볼 수 있고, 행동 그 자체도 전투, 사냥, 대화, 이동, 생산 등 다양한 면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온라인 게임 데이터의 특징을 이용하여 사회에 극단적인 상황이 왔을 때(대규모 괴질이 창궐했다거나 등) 이용자들이 어떠한 행태 변화를 보이는지 살펴보겠다.

 

# 기존 사례 1: 이 세계가 멸망할 때 과연 인류는?

2012년 11월, 스퀘어 에닉스의 <파이널 판타지 14>는 그간 잘못된 게임 디자인과 운영으로 유저들이 모두 떠나가고 있었다.

이에 게임이라는 가상 세계에 ‘종말’이 오는 것으로 시나리오와 기획을 업데이트해 유저들을 결속시키고, 모든 유저들이 가상 세계 내에서의 종말이 ‘실제로 게임 서비스의 종료’가 되도록 했다[1].

더불어 2013년 8월 말에 <파이널 판타지 XIV : 어 렐름 리본>이라는 새로운 서비스로 이어지게 했다.

<파이널판타지 14> 서비스종료영상

종말이 오는 것으로 포장된 게임 시나리오에 유저들이 다시 몰입을 했고, 게임을 떠났던 유저들 중 일부가 복귀하여 서로 단결하며 대화를 얼마나 긍정적으로 나누었는지에 대한 스토리가 계속해서 회자되고 있다.

 

# 기존 사례 2: 이 세계에 괴질이 창궐할 때 과연 인류는?

2005년 9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북미 서버에서는 대규모 디버프 전염으로 유저 대다수가 사망하는 ‘오염된 피 사건(Corrupted blood incident)’이 발생했다[2].

당시 블리자드에서 새롭게 업데이트한 줄그룹(Zul’Group)이란 던전의 보스몹 학카르(Hakkar)는 공격을 통해 상대의 체력을 지속적으로 감소시키고 이를 주변 플레이어에게 전염시키는 도트 스킬인 ‘오염된 피’를 시전했다.

‘오염된 피’ 스킬은 본래 플레이어가 던전을 벗어나거나 일정 시간이 지나면 해제되는 게 정상이었으나, 시스템 버그로 인해 감염된 상태에서 텔레포트로 이동하고 타 유저에게 디버프 상태를 전염시켰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라는 가상 세계에 없었던 ‘치료 불가능한’ 질병이 갑자기 창궐하게 된 사건이었다. 그 결과 서버 내 대다수의 유저들이 사망하는 등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되어 결국 서버를 롤백(백섭)하는 결과를 낳았다.

<월드오브워크래프트>오염된사건

이는 실제 괴질이 창궐할 때 질병이 전파되는 양상을 관찰할 수 있는 훌륭한 시뮬레이션 데이터가 된다는 점에서 많은 의료연구기관들이 관심을 가졌고, 연구자들은 관련 글들을 기고했다.

이때 흥미롭게도 질병이 전파되는 과정에서 상당히 다양한 형태의 인간군상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한다.

감염된 캐릭터를 도와주려고 헛된 노력이란 걸 알면서도 계속 힐을 시도하다가 전염되어버린 캐릭터는 물론이고, 재미 삼아 일부러 던전에 들어가 감염된 뒤 텔레포트하여 사람들에게 무차별적으로 돌진하여 다수에게 전염시킨 캐릭터도 있다. 또 감염된 뒤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된다며 구석에서 조용히 죽어간 캐릭터도 있고, 감염되자마자 패닉에 빠져 돌아다니다 본의 아니게 타인을 전염시킨 캐릭터도 있었다.

실제로 괴질이 창궐할 경우에 ‘저런 사람이 꼭 있을 것 같다!’라고 생각되는 행동들이 상당수 관찰됐다.

 

# 종말이 올 때 당신의 선택은?

지구의 종말이 몇 월 며칠에 온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당신은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내일 지구에 종말이 오더라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을 것인가? 아니면, 이왕 세상 끝장나는 거 평소에 못해보았던 일탈을 할 것인가?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온라인 게임 데이터를 활용해 실험을 진행하였다.

알다시피 CBT나 OBT는 서비스 기간이 정해져 있다. 대개 CBT 기간이 지나면 모든 게임 서버 내 데이터가 리셋되고 다음 단계의 테스트(OBT) 또는 상용 서비스로 이어지게 된다.

즉, CBT 기간은 마치 종말이 언제 올지 날짜가 정해져 있는 가상 세계라 할 수 있다. 모든 유저들이 ‘종말의 날짜’를 알고 있는 셈이다.

예컨대 한 달의 CBT 기간이 주어진다면, 유저들이 첫 2~3주까지는 성실하게 퀘스트도 수행하고, 파티 플레이도 하면서 친구와 관계도 다져 나가고, 집도 짓고, 재화도 축적하는 등 성장을 위한 꾸준하고 모범적이고 평안한 삶을 영위한다.

CBT 종료직전 PK난무할까? (lll)

그러나 마지막 주가 되면 갑자기 돌변하여 PK(Player Killing)를 하거나, 몇주 간 열심히 지은 집을 스스로 부순다거나, 애써 모아둔 돈으로 비공정을 타거나 무의미한 강화 반복 행위로 날려버리진 않을까?

또 아무 일도 안하고 지내거나, 괜히 높은 곳에서 일부러 추락하여 경험치 다운 및 레벨 다운을 발생시킨다거나, 상대도 안될 NPC를 공격하는 자살행위를 하는 등 소위 ‘반사회적인 행위’가 창궐하지 않을까?

이와 같은 가설을 검증하고자 A모 MMORPG의 CBT 데이터(2011년 12월 8일 ~ 2012년 2월 20일, 총 11주 동안)를 수집하여 이용자들의 행태를 관찰해봤다. 해당 기간 동안 수집된 플레이 레코드 건수, 플레이어 수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3].

사실 분석가의 입장에서도 마지막 주인 11주차가 다가올수록 극적인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즉 착하게 살던 대다수의 유저들이 갑자기 돌변하는 극단적인 행위가 보여지길 내심 기대했었다.

하지만 의외로 마지막 주가 될 때까지 전투, 공성전, 인던 플레이, 원정대 플레이, 집 짓는 행위, 파티 플레이, 레이드, 아이템 생산, PvP 등 대부분의 행동에서 극적인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11주요행동별발생량의방사형차트

매주차별개인들의수입대비지출비율

하다못해 그간 모아둔 재화라도 한번에 다 쓰고 죽자, 라는 유저들이 많지 않을까 살펴보았는데, 마찬가지로 소비율의 급격한 증가는 관찰되지 않았다.

물론 여러 해석이 가능할 것 같다. 종말이 다가오는 마당에 재화를 한방에 쓰고 싶은 욕구조차 사라져 버려 소비를 위축시켰을 수도 있고(내일 지구가 망한다는데 돈을 써서 무엇하랴), 지구가 멸망하는 와중에 좋은 장비를 구매한들 사용할 시간도 없지 않나, 하는 계산적인 속내도 있을 것이다.

시간경과에따른 PK

위 그림은 게임 내 시간 경과에 따른 일반적인 PvP와 살인에 대한 상대 빈도를 표현한 것이다.

CBT 초반에 살인 행위가 좀 더 많았고, 그 후 살인율이 줄어들었다가 종말이 다가오면서 다시 살인이 만연해지기 시작하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초반에는 가상 사회 내 규범이 제대로 정착되지 않았을테고, PK 기능을 테스트해볼 겸 시도해보았을 수도 있다. 그 후에는 평판이라든가 가상 세계에서의 암묵의 규범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감소했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어차피 종말이 다가오니 더 이상 평판을 잃을 것도 없고, 설령 살인 행위를 많이 한다 하더라도 본인의 이러한 반사회적 행동으로 응징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 들어서 증가한 것으로 보여진다.

 

# 누가 사과나무를 심고, 누가 일탈하는가

물론 마지막에 반사회적 행위가 증가하긴 했지만 모든 유저들이 저러한 행동 변화를 겪는 것은 아니다. 즉 일부 유저들에 의해 사건 발생량이 늘었을 뿐, 모든 유저가 평소에 안 하던 살인을 한두 번씩 해보기 시작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이 종말의 전날까지 사과나무를 심고(서버 종료일까지 묵묵히 퀘스트를 해나가고), 또 어떤 사람들은 일탈을 하게 되는 것일까?

놀랍게도 마지막에 돌변하여 많은 살인을 저지르는 유저들은, CBT 기간 동안 꾸준히 로그인하여 플레이했거나, 길드에 소속되어 타 유저들과 협력 플레이를 즐기지 않았던 유저들이다. 초기에 가입하고, 게임 플레이를 별로 하지 않고, 유저들과 친교를 맺지 않은 경우다.

즉, 사회에 정착하여 공동체에 뿌리내린 유저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겉돌고 외로운 늑대 성향을 보였던 유저들이 반사회적 행동을 하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이런분들이 PK하는겁니다 (o)

 

# 이 연구, 어디에 활용할 수 있을까?

물론 하나의 게임에 대해 관찰한 결과를 어느 곳에라도 활용할 수 있겠다고 추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긴 하다. 하지만 이런 재미있는 분야에 응용할 수 있지 않을까?

장기간 스트레스를 감내해야 하는 극단적인 상황에서, 스트레스를 잘 해소하고 팀워크를 깨지 않으면서 조화롭게 팀 플레이를 할 수 있는 사람인지 테스트하는 용도로 이 실험을 응용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예를 들면, 오랜 시간 스트레스를 견디고 사고의 위험이 있는 ‘화성 탐사팀’에 소속되기 전 MMORPG를 몇 달 간 플레이하면서 대략의 행동 성향을 미리 추정해 보는 용도로 활용한다든지 말이다.

이번 연재에서는 MMORPG 내 극단적인 환경 속 유저들의 행동을 관찰했다. 다음 편에서는 게임내에서 긍정적인 행동을 관찰한 사례를 제시해보도록 하겠다.

참고 문헌

[1] “어느 게임의 흔한 서비스 종료”, THIS IS GAME, http://www.thisisgame.com/webzine/nboard/11/?n=59898

[2] “오염된 피 사건”, https://ko.wikipedia.org/wiki/오염된_피_사건

[3] Kang, Ah Reum, et al. “I Would Not Plant Apple Trees If the World Will Be Wiped: Analyzing Hundreds of Millions of Behavioral Records of Players During an MMORPG Beta Test.” Proceedings of the 26th International Conference on World Wide Web Companion. International World Wide Web Conferences Steering Committee, 2017.


김휘강 고려대학교 정보보호대학원 부교수. KAIST 산업경영학과를 마치고 산업공학과에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게임봇 탐지 및 작업장 탐지, 계정도용 및 결제부정 탐지와 관련하여 지속적인 연구를 수행 중에 있으며, 고려대학교 해킹대응기술 연구실은 온라인게임보안 분야에서 전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연구 성과를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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