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과 사회 #11 ‘게임 죽이기’ 사회 심리

게임에 대한 사회적 견해와 의미를 살펴보는 ‘게임과 사회’.

‘게임과 사회’ 11편에서는 게임에 대한 지나친 부정적 가치 판단의 기저에는 어떠한 사회적 심리가 담겨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 게임과몰입에 대한 WHO의 결정은?

최근 세계 보건 기구(WHO)가 ‘국제질병분류(ICD)’ 개정 작업을 진행하며, 비디오 게임을 과도하게 많이 하는 사람을 ‘정신건강장애자’로 진단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영국 과학전문지 뉴사이언티스트(New Scientist)에 따르면, WHO는 올해 발행되는 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판에서 게임중독 및 게임장애를 정신건강질환으로 분류할 예정이다.

WHO의 초안을 보면 ICD-11에 명시된 게임장애 증상은 ‘적절한 게임 플레이 시간 조절 불가, 게임과 여타 행동의 우선순위 지정 장애, 게임으로 인한 부정적인 결과 무시’로 요약된다.

게임 이용 시 스스로 통제가 불가능하고, 항상 게임을 1순위로 생각하며, 게임으로 인한 나쁜 결과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면 정신장애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WHO가 게시한 ‘게임장애’에 대한 안내 동영상

이러한 기준은 미국 정신 의학회(APA)가 분류하는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DSM)’보다 더 보수적이다. DSM에서는 게임장애를 전적으로 ‘물질남용장애’로 보지만, WHO는 게임 콘텐츠뿐 아니라 게임하는 행위 자체도 정신장애로 보기 때문이다.

국내 ‘한국표준질병 사인분류(KCD)’는 통상적으로 WHO의 분류 기준을 따르고 있어, 이 안이 통과될 경우 국내 게임 문화에도 큰 파장이 일어날 것이다.

무엇보다 먼저, 2014년의 뜨거운 감자였던 가칭 ‘게임중독법’ 제정 요구가 WHO의 정신장애 진단을 근거로 다시 강하게 일어날 수 있다. 우리 사회의 게임을 바라보는 관점이 가뜩이나 부정적인데, WHO의 진단을 근거로 게임 이용에 대한 과도한 규제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날 것이다.

 

# 무엇이 진짜 정신질환일까

이러한 의학적 논쟁 이전에도 보수 정부, 보수 언론, 그리고 보수 시민단체들이 게임을 정신건강에 좋지 않은 것으로 ‘단죄’한 예가 많다.

2011년에 시행된 ‘게임 셧다운제’가 그렇고, 2012년에 교육과학부가 제정하려 했던 ‘쿨링오프제’(게임을 2시간 이용하면 10분 간 자동 휴식)도 그렇다. 게임을 하면 뇌가 나빠진다, 게임을 많이 하면 공부를 못한다, 게임은 학교 폭력의 원인이다 등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정서 안에도 게임에 대한 강한 불신과 편견이 있다.

그런데 게임을 정신장애로 분류하려는 WHO와 정신의학계의 시도가 새로운 비즈니스 영역을 개척하려는 논리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그리고 이러한 주장들이 정신적으로 문제되는 점을 없을까 하는 역발상을 해본다.

말하자면 게임 이용을 정신장애로 진단하려는 생각 자체가, 일방적인 편견의 심리에 사로잡힌 일종의 정신질환에 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게임을 둘러싼 숱한 오해와 편견들 ( ̄o ̄)

이는 물론 개인적 차원이 아니라 사회적 차원에서 던지는 질문이다. 게임을 하는 자녀들을 인정 못하고, 가정 불화와 청소년 폭력의 원인을 게임에서 찾으려 하며, 항상 근면히 일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놀이’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는 우리 사회가 과연 정상일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게임과 게임 이용을 의학적 차원에서 정신장애의 범주로 포함시키려는 시도 자체가 ‘게임 죽이기’라는 사회 심리를 드러낸다고 보고 싶다.

이는 일종의 중세의 마녀사냥과 유사하다. 마녀사냥은 성주나 위세 높은 귀족이 한 여자를 마녀로 지목해, 자신의 잘못을 그 여자에게 전가시키는 일종의 ‘권력 게임’이다.

대체로 성주가 폭정으로 민심을 잃거나 귀족 남편이 부정한 일을 저지른 후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여자를 밀실에 가두어 놓고 미친 사람으로 몰아 죽인 후, 백성들과 가족들에게 공포심을 심어 자신에게 복종하게 만든다.

21세기 마녀사냥, 게임 죽이기

지나친 비유일지 모르겠으나 지금 게임은, 『제인 에어』에서 마녀로 몰려 옥탑방에 갇힌 버사 메이슨 부인이나 『주홍글씨』의 여주인공 헤스터 프린처럼 보인다. 중세 시대의 마녀에 대한 공포가 후기 자본주의 시대에 와서는 게임에 대한 공포로 바뀐 것이다.

그렇다면 게임 죽이기의 사회 심리는 어떠한 정신적 문제를 안고 있을까?

 

# 사회적 신경증

게임 죽이기는 개인이 아닌 집단과 사회의 문제이기 때문에, 사회적 심리의 증상으로 간주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신경증의 징후들을 발견하게 한다.

게임 죽이기는 사회적 신경증의 증거이면서 동시에 신경증의 사회적 확산 요인이기도 하다.

정신의학에서 신경증은 ‘내적인 심리적 갈등이 있거나 외부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다루는 과정에서 무리가 생겨, 심리적 긴장이나 증상이 일어나는 인격 변화’를 말한다.

신경증이란 불안 증상 자체와 또 이러한 불안을 다루기 위해 동원된 방어 기제가 합쳐져서 여러 가지 형태의 증상을 유발하는 것이다. 신경증은 환각이나 망각과 같은 정신병의 증상을 보이진 않지만, 모든 사람들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갖게 되는 증상이다.

사회적 신경증에서 비롯된 게임 죽이기 심리

게임 죽이기의 사회 심리가 신경증의 특성을 갖는다는 말은, 게임이 사회적으로 만연한 신경증의 방어기제로 활용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문제 제기와 일맥상통한다.

한국 사회는 신경증이 만연한 사회라 할 수 있다. 개인들, 혹은 특정한 정체성을 공유하는 집단들이 사회적으로 겪는 스트레스나 소외감, 집단적 억압 의식은 사회적 관계들을 파괴했다.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긴 노동시간을 기록하고 있고, 교육 경쟁이 매우 높으며,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되는 한국 사회는 사회적, 집단적 신경증을 생산한다. 여기에 남성들의 가부장적인 권위 의식과 구조화된 서열 사회, 경직된 조직 문화 등도 개인들의 심리상태를 매우 불안하고 예민하게 만든다.

말하자면 한국인들은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이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많다는 것이다. 한국인의 자살률이 세계 최고 수준인 것도 외부에서 오는 많은 스트레스로 불안이 증폭되었기 때문이다. 게임 죽이기의 심리는 바로 이러한 사회적 신경증의 특성을 갖는다.

 

# 반복되는 히스테리

게임 죽이기의 심리 중, 중요하게 언급해야 할 심리 상태가 바로 반복적인 히스테리다.

히스테리는 신경증의 한 유형으로, 외부 자극에 대한 심리적, 신체적 반응이다. 외부에서 오는 심리적 요인이 강렬할 때는 운동 마비와 경련이나 발작, 실성 등과 같은 증상이 나타난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히스테리는 일시적인 상황 변화 때문에 발생하기보다는, 오랜 기간 무의식 속에 잠재된 채로 축적되어 있다가 발현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게임 죽이기에 대한 심리도 하루 아침에 생긴 것은 아니다. 게임에 대한 부정적 생각들이 오랫동안 축적되었고, 게임 관련 반사회적 사건들에 대한 대중들의 집단 공포증이 심리 안에 각인되면서 나타난 결과다.

게임에 대한 대중들의 집단적 공포와 비난 #게임포비아

게임 죽이기 심리는 최근 온라인 게임 환경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아케이드 게임이 지배하던 이른바 전자오락실의 시대에도 있었고, 과거 야외 장터나 놀이공원에서 행해지던 사행성 게임의 시절에도 있었다.

게임 죽이기의 히스테리는 게임을 만들고 소비하는 행위를 사회악으로 몰면서, 특정한 사건이 터질 때 집단적으로 게임을 강도 높게 성토하는 심리적 반응을 대변한다.

게임 죽이기 이전에는 ‘만화 죽이기’가 있었고, 그 이전에는 ‘영화 죽이기’, ‘TV 죽이기’, ‘라디오 죽이기’, ‘축음기 죽이기’가 있었다. 이 모든 것이 히스테리의 증상의 반복이다.

 

# 자녀를 복종시키려는 편집증

게임 죽이기의 또 다른 심리로 편집증을 들 수 있다.

정신의학에서 편집증은 심각한 우려나 과도한 두려움을 특징으로 한다. 대개 비이성적 사고나 착각의 상태에 이르게 된다. 편집증을 망상장애로 일컫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편집증의 대표적 증상으로는 피해망상, 과대망상, 지나친 공격성, 비방중상, 비정상적인 욕심, 독재자적 망상 등이 있다.

이러한 편집증의 심리 중에서 피해망상의 방어기제로 과도한 독선과 주장, 상대방에 대한 과도한 비난과 공격성을 드러내는 현상이 나타나는데, 이는 게임 죽이기 심리의 기저에도 깔려 있다.

모든 잘못의 근원은 게임으로 귀결된다

게임 죽이기는 가족 관계에서 오는 일종의 오이디푸스적 편집증이 사회적 관계로 확장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즉 부모의 권위에 복종하라는 명령 같은 것이다.

“너는 공부는 안 하고 게임만 하니?”, “너 또 게임했지?”, “게임 많이 하면 패가망신한다” 등 부모들의 이 무서운 발언들은 부모 권력에 복종하기를 강요하는 편집증적인 증상을 보인다.

게임이 청소년의 수면권을 해친다, 게임이 미성년자의 뇌를 망가뜨린다는 식의 공포심을 조장하는 보수적 시민단체들의 주장 이면에는 개인의 자유로운 욕망을 용납하지 않으려는 가부장적 편집증이 들어 있다.

엄마아빠가 생각하는 게임하는 자녀의 모습 ( ̄□ ̄lll)

 

# 콘텐츠 조울증

게임 죽이기의 독특한 특징 중 하나가 게임을 바라보는 권력의 이중적 태도다.

게임은 대한민국 문화 콘텐츠의 중심이고 콘텐츠 수출을 주도하는 대표적인 창의 산업이라고 말했다가, 어느 순간 게임은 청소년의 정신을 망치고, 일상의 정상적 활동을 방해하는 사악한 존재라고 말한다.

게임에 대한 찬사와 저주는 지속적으로 또 상황에 따라 선택적으로 반복된다. 긍정과 부정, 가치와 무가치, 놀이와 중독 등 게임에 대한 극단적인 반응들은 심리적으로 볼 때 조울증의 형태를 띤다.

게임을 진흥해야 하지만 또 한편 규제도 해야 하는 국가의 역할은 이해하지만 그 간극이 너무 크고 일관성이 없다는 점에서 심리적 조울증을 동반한다. 이는 게임을 산업과 규제의 대상으로 지나치게 이분화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다.

게임을 향한 극단적 이중 잣대 (︶︹︺)

게임은 한국의 문화 콘텐츠 산업에서 배제할 수 없는 강력한 시장 규모를 가지고 있다. 2017년 기준 한국 게임 산업은 약 12조 원의 매출액을 돌파했다. 문화 콘텐츠의 해외 수출에 있어서도 전체 수출 규모 중 60%를 차지할 정도로 막강하다.

이 같은 게임 산업의 성장에 흥분했다가, 게임과몰입으로 불안에 떠는 권력의 이 이중적 심리상태는 조울증의 증상과 다름 없다.

WHO를 비롯해 개인 집단과 사회의 게임에 대한 부정적 심리는 심각한 수준이다. 이 같은 심리의 기저에는 사회적 신경증이나 히스테리, 자녀에 대한 편집증과 콘텐츠 조울증과 같은 증상을 담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심리 증상이 개선되지 않는 한, 게임 죽이기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 심리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중앙대학교 영문학과에서 <메타비평론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는 문화연구자로서 문화이론과 문화정책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게임 문화연구에도 관심이 깊어 다양한 책과 칼럼을 쓰고 있으며, 대표 저서로는 『문화자본의 시대』, 『게임의 문화코드』, 『게임 이펙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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