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과 사회 #12 게임과 폭력: 게임의 가치 논쟁

게임에 대한 사회적 견해와 의미를 살펴보는 ‘게임과 사회’.

‘게임과 사회’ 마지막 편인 12편에서는 비디오 게임을 사회적 폭력의 원인으로 생각하는 사회적 현상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 트럼프: 총기 사건의 원인은 비디오 게임

지난 3월 8일 미국 백악관은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비디오 게임의 폭력성(Violence in Video Games)’이라는 제목의 동영상을 올렸다.

<콜 오브 듀티 : 모던 워페어 2>, <울펜슈타인 : 더 뉴 오더>,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 등에서 나오는 잔인한 장면들을 편집한 이 동영상은 모두 17세 이상 이용가인 M(Mature) 등급의 게임들을 다루고 있다.

목이 잘려나가고, 사지가 찢겨지고, 선혈이 낭자한 하드코어 게임들의 가장 폭력적인 장면들로만 편집되어 동영상의 수위는 매우 잔인하기 이를 데 없다.

이 동영상이 백악관 공식 유튜브에 게시된 것도 충격적이지만, 17세 이상 이용가 게임물에서 가장 잔인하게 플레이된 장면으로만 편집된 동영상을 누구나 다 볼 수 있게 공개한 것은 더 충격적이다.

게임의 폭력성을 국민들에게 확실히 알리고 싶은 취지는 이해할 수 있으나, 이 동영상만 보면 비디오 게임은 미국에서 벌어지는 모든 폭력적 사건의 주범처럼 느껴진다.

백악관 유튜브에 게시됐던 동영상 ‘Violence in Video Games’

트럼프 대통령은 동영상을 올리기 전 2월 22일 학생들의 안전을 주제로 한 간담회에서 비디오 게임의 심각성을 토로했다. 이 간담회는 지난 2월 14일에 플로리다의 한 고등학교에서 있었던 총기난사 사건으로 17명이 목숨을 잃은 사건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작심한 듯 비디오 게임이 너무 폭력적이어서 청소년들의 사고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반복해서 말했다. 그리고 교사들이 만일 총기로 무장했으면 이러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트럼프의 말대로라면, 플로리다주 고등학교 총기 사건의 주 원인은 폭력적인 비디오 게임이고, 그 사건의 방지를 위한 대안은 교사의 총기 소지인 셈이다.

더글러스 고교의 희생자 가족, 교사, 학생과 면담 중인 트럼프

비디오 게임을 비난하며 총기 소지 확대를 조장한 트럼프의 발언과 게임의 폭력성을 강조한 동영상이 큰 파장을 몰고 오자, 국제 게임 개발자 협회(International Game Developer Association, IGDA)는 게임과 총기 사고는 관련성이 없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또 동영상이 게시된 3월 8일에는 엔터테인먼트 소프트웨어 협회(Entertainment Software Association, ESA)의 협회장 마이클 갤러거 등 게임업계 관계자들이 백악관을 예방해 트럼프 대통령과 설전을 벌였다.

트럼프는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비디오 게임의 폭력성이 사회 안에 만연된 실제 폭력을 조장한다는 발언을 했고, 총기 소지를 더 강화하는 정책에 지지를 보낸 바 있다. 트럼프의 이러한 사고는 미국 내 백인 주류사회의 보수적 가치관을 대변하는 것으로 비디오 게임을 사회적 희생양으로 몰아가려는 통치 위기관리 전략으로 볼 수 있다.

비디오 게임의 폭력성은 멈춰져야 한다! #도널드_트럼프

 

# 오바마: 게임은 창의적 교육의 원천

트럼프 대통령과는 달리 오바마 전 대통령은 게임이 창의적 교육에서 차지하는 역할을 강조했다.

2013년 2월 초 재선에 성공한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2기 행정부의 집권 계획을 발표하는 화상토론회에서 수학과 과학, IT를 학교에서 제대로 교육시킬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특히 이 자리에서 고등학교 교육과정에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강화하는 이른바 ‘코딩 교육’을 도입하겠다고 언급하면서, 컴퓨터와 인터넷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게임을 디자인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적극 권장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컴퓨터와 인터넷이 널리 보급된 현재, 아이들은 그것에 매료되어 있다. 따라서 그들이 단순히 콘텐츠를 소모하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를 이용해 실제로 뭔가를 만드는 방법을 반드시 알려줘야 한다.”라고 언급했다.

이어서 “마크 저커버그(페이스북 CEO)는 게임에 대한 흥미를 바탕으로 스스로 프로그래밍을 독학했다.”라며 “많은 젊은이들이 고등학교에서 ‘본인의 게임을 디자인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울 기회를 얻고 싶을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나 이 작업을 위해서는 수학이나 과학적 지식이 요구되고, 그래픽 디자인 등에 대한 이력이 필요하다. 대학 과정 이전에 고등학교에 이러한 프로그램을 도입하기 위해 준비를 시작할 때다.”라고 학교 정규 교육에서 게임 제작 수업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코딩을 배우세요! 코딩은 당신의 미래이고 조국의 미래입니다

놀랍게도 오바마 전 대통령의 이러한 언급은 2012년 12월 14일 미국 코네티컷주 샌디훅 초등학교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이 있고 난 후 불과 몇 개월이 안 된 시점이었다.

이 사건은 애덤 피터 랜자라는 사람이 어머니를 총으로 살해한 후, 어머니가 자원봉사로 일하고 있던 학교에 들어가 총기를 난사해 학생 20명, 교직원 6명을 죽음으로 몰고 자신도 자살한 초유의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총기 소지 논란에 대한 국민적 여론이 들끓었고, 연방수사국의 조사 과정에서 범인이 평소에 총격과 관련된 비디오 게임에 빠져있었는지가 조사되기도 했다. 실제로 범인의 형의 증언에 의해서 그가 평소 즐겨했던 게임 리스트가 공개되기도 했다.

이 사건 역시 반사회적 총기 사건의 원인이 폭력적인 비디오 게임인가, 아니면 실제 사회 폭력의 만연에 따른 공동체 사회의 무관심인가, 하는 논쟁을 야기했다. 여기서 적어도 오바마 전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는 달리 사회적 폭력의 원인을 비디오 게임에 전가시키지는 않았다.

트럼프는 왜 게임업계 관계자를 백악관에 초대하는가 #워싱턴포스트

 

# 게임은 정말 사회 폭력의 주범인가?

앞서 언급했듯이 트럼프 행정부의 비디오 게임 폭력성에 대해 국제 게임 개발자 협회(IGDA)가 반박한 성명서는 다음과 같은 7가지의 내용이 담겨져 있다.

1. 게임과 총기 범죄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 해보자. 우리는 더 이상 희생양이 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연구 결과를 보아도, 게임 플레이가 총기 범죄와 연관성이 있다고 입증하지 못했다.

2. 대법원은 브라운 사건(Brown v. Entertainment Merchants Association) 판결에서 비디오 게임을 보호받아야 할 ‘표현의 자유’의 영역임을 밝혔다.

3. ‘게이머’를 불만이 많은 십대 소년으로 스테레오타입화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미국 150만 명 이상의 게이머 중 41%가 여성이다. 35세 이상 여성 게이머가 10대 소년 게이머보다 많다.

4. 미국은 전 세계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동일한 게임을 즐긴다. 하지만 총기 범죄는 미국만의 특이한 문제다.

5. 게이머는 다양한 삶을 사는 다양한 구성원들이다. 게임을 하는 사람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한다. 그 안에는 선생님도 있고 학생도 있고, 부모도 있고, 자녀도 있다.

6. 우리는 준법정신을 지키는 시민으로서 사건에 대한 철저한 배경 조사, 범프 스탁과 대용량 탄창 금지, 총기 구매 최소 연령의 21세 규제를 지지하며, 미국인 대다수가 위 내용에 동의한다.

7.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총기 제한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위해 비디오 게임(은 물론 어떤 형태의 미디어)을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행위를, 많은 미국인들이 원하고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는 식이 거짓에 속아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IGDA가 트위터에 게시한 성명서

물론 협회의 발언은 게임산업계를 지키기 위한 이익의 논리를 대변한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발언은 미국사회에서 반복되는 총기 사건의 심층적인 사회 원인과 그 책임을 미디어에 전가하려는 전형적인 미국 주류 보수 정치사회를 겨냥한 것이다.

사실과 통계를 왜곡하면서 사건의 일부분만을 부각시켜 자신들이 저야 할 사회적 책임들을 행위자가 즐겨하는 문화적 표현물에 돌린다는 판단이다. 트럼프 같은 미국 백인 주류 정치인들은 총기산업계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사회적 폭력으로 인해 이익을 보는 기업들의 경제 논리를 옹호해왔다.

중요한 것은 반사회적 폭력의 근본 원인이 어디인가를 성찰하는 데 있다.

물론 폭력적 표현이 강한 게임물이 사회에 만연한 폭력 현상과 완전히 무관하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사회적 폭력의 현실 그 자체와 폭력의 표현이나 재현을 동일하게 보아서는 안된다.

사회적 갈등과 폭력의 실제 요인은 교육, 정치, 경제, 노동, 이주, 생태, 안전 등 다양한 곳에 있다. 게임은 그러한 폭력적인 사회 현실을 반영하는 문화적 표현물이다.

게임이 폭력적이어서 사회가 폭력적이라기보다는, 사회가 폭력적이어서 게임도 폭력적이다라는 이해가 우선되어야 하지 않을까?

게임과 폭력은 동의어가 아닙니다!

 

# 게임은 어떤 사회문화적 가치를 갖는가

비디오 게임의 폭력성을 강조한 트럼프 행정부의 도발적인 조치와, 게임과몰입을 정신질병의 한 유형으로 편입하려는 WHO의 계획이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주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게임의 사회문화적 가치와 의미를 제고하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그동안 한국의 게임 담론과 정책은 기업의 이윤을 중시하는 ‘산업 육성론’과 게임을 악으로 규정하는 ‘게임규제론’만 존재했다. 게임의 사회문화적 가치에 대한 담론들은 기업이건, 정부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게임 기업들도 너무 경제적 가치만을 강조해서는 안 된다.

게임은 전 세대가 즐긴다. 청소년이 제일 많이 즐긴다는 통념은 가설에 불과하다. 그러나 게임이 청소년 세대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게임의 가치를 생각할 때 청소년들을 먼저 고려하지 않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청소년들에게 게임이 전적으로 해로운가에 대한 논의는 주관적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연구를 통해서 검증할 사안이다. 한국보다 먼저 청소년들의 게임과몰입이 사회적 문제가 되었던 미국은 게임과몰입이 또래 문화와 학교 문화에 미치는 영향을 장기적으로 연구하여 그 대책을 세우고자 했다.

또한 게임이 가족 문화와 학교 교육에 무조건 해만 끼치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 문화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에 대해서도 연구할 필요가 있다. 게임을 통한 창의적 상상, 감각적인 사고력, 또래 문화의 협동심, 놀이의 즐거움과 같은 긍정적인 가치를 제고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게임을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게임의 사회문화적 가치 확산은 단기적인 사업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 게임 문화에 대한 다양하고 장기적인 연구와 담론 확산을 통해서 게임의 문화적 의미들을 알리는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더불어 게임의 창의적인 요소들을 리터러시 교육과 접목시키는 프로그램들을 다양하게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 청소년 게임기획 창작 워크숍과 게임 문화예술 교육 등의 사업들은 앞으로 게임의 창의적 가치들을 확산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게임 기업들의 사회적 책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게임문화재단의 사업 중에서 문화적 가치를 확산시키는 사업들을 더 많이 확대해야 한다. 또 게임 기업들의 사회공헌사업 중에서 청소년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게임의 놀이적 의미들을 긍정적으로 알리는 다양한 사업들이 실행되어야 한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중앙대학교 영문학과에서 <메타비평론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는 문화연구자로서 문화이론과 문화정책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게임 문화연구에도 관심이 깊어 다양한 책과 칼럼을 쓰고 있으며, 대표 저서로는 『문화자본의 시대』, 『게임의 문화코드』, 『게임 이펙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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