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DE NC #1 현대 문명에서의 오피스

대한민국 IT 산업의 중심지 판교테크노밸리를 대표하는 공간, 엔씨소프트 R&D센터. 2013년 완공된 이후 첨단 IT 기업을 대표하는 건물로 상징되며 판교의 어엿한 관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엔씨소프트 사옥의 구석구석을 자세히 살펴보며, 건축적 가치와 아름다움을 돌아보고자 ‘INSIDE NC’라는 이름의 새 연재를 시작합니다.

엔씨소프트 R&D센터에 담긴 꿈과 비전, 건축적 공간의 의미와 가치를 살펴보며 엔씨소프트를 보다 가깝고 친근하게 느끼시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 영화 <플레이타임> 속 삭막한 오피스의 풍경

프랑스 코미디의 거장 자크 타티 감독은 1967년, 영화 <플레이타임>을 연출했다. 감독은 스스로 주인공 윌로 씨를 연기하며 기계만능주의와 효율성을 강조하는 현대 도시에서의 부조리를 꼬집었다. 그는 중절모에 레인코트를 걸쳤지만, 절도 있는 다른 신사숙녀들에 비하면 어딘가 어수룩해 보인다. 헐렁한 옷차림과 대조적으로 그가 찾는 오피스는 외관을 유리로 빈틈 없이 마감한 직육면체 건물이다.

유리의 투명한 성질은 벽과 달리 저 너머의 공간까지 중첩시켜 보여준다. 또한 반사 이미지로 뒷면을 보여줄 뿐 아니라, 보는 이마저도 복제한다. 사방의 경계를 희석시킨 나머지 주위를 왕래하는 사람들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유리벽을 통과하는 것처럼 신기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그것은 유리의 한 가지 성질에 경도된 일차원적 감상에 불과하다. 여전히 사람들은 수도 없이 문을 여닫거나, 손이 닿지 않는 쇼윈도 너머의 세상을 동경하기만 한다. 주인공은 반사된 풍경으로 인한 착시 때문에 길을 잃거나, 작은 충격에도 파손되는 재료에 어쩔 줄 몰라 한다.

영화 <플레이타임>에 등장하는 삭막한 오피스의 풍경

게다가 오피스 내부 업무 공간은 시인이자 건축가였던 이상이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에서 모더니즘 건축을 묘사하듯 사각형 내부에 사각형 내부가 연속되어, 마치 러시아 전통 인형 마트료시카를 연상시킨다. 시선을 차단하는 사각 큐비클은 포토샵의 도장 툴로 복제했나 싶을 정도로 사무실 내부를 단조롭게 채우고 있다.

매끄러움과 균질함을 이상적으로 여겼던 모더니즘의 기치는 그동안 사람들이 누려온 많은 기쁨들을 앗아갔다. 우연히 발견하는 새로운 공간, 자연광으로부터 시간의 흐름을 알아채는 감각, 나무와 패브릭에 몸을 밀착시켰을 때 얻는 온기, 작은 공간이 주는 아늑함 들을 말이다.

빈틈 없는 사각형 구조의 오피스 공간 #영화_플레이타임

2차 세계대전 동안 무기를 대량생산하면서 비약적으로 발달한 서구의 제조업은 가래떡 뽑듯 기계에서 철봉을 사출하고, 이를 휘어서 날렵한 구조의 가구를 만들었다. 크롬 도금으로 거울처럼 반짝거리는 철봉 구조에 두터운 검정 소가죽을 얹은 의자는 현대 도시의 욕망을 고스란히 담았다.

이 지나치게 세련된 가구는 임원의 응접실이나 잡지 사진 속에서 가장 아름답다. 불특정 다수가 사용할수록 주위를 반사하던 광채는 언제 그랬냐는 듯 급속히 소멸하고 마는 존재다.

영화 속에서도 의자의 다리는 금속 재질의 바닥과 마찰이 일어나 날카로운 비명을 지른다. 게다가 주인공처럼 경솔하게 가죽 위로 털썩 주저앉기라도 하면 두터운 가죽과 엉덩이 틈으로 민망한 소리가 터져 나오기 십상이다.

까다로운 공간의 규칙을 지키려면 몸가짐을 여간 조심해야 하는 게 아니다. 이렇게 온 감각을 신경 쓰이게 만드는 곳에서 어떻게 안락한 회사 생활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판교의 관문으로 자리 잡은 엔씨소프트 R&D 센터

 

# 판교 사옥에서 선보인 진화

엔씨소프트 R&D센터는 기본적으로 앞서 말한 모더니즘의 어휘에 충실한다. 공간은 육면체를 기본 단위로 하고, 시각적 소통을 위해 외관은 투명한 창으로 마감했다. 내부에서는 엘리베이터 열여섯 대가 분주하게 직원들을 실어 나르며, 그 짧은 와중에 승객들은 디스플레이를 통해 송출되는 사내 소식을 눈여겨본다.

약 3천 여 명의 직원을 수용하는 건물을 짓기에 앞서, 업무, 연구, 교육, 여가, 육아, 보건에 이르기까지 도시 단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활동을 막힘 없이 소화하기 위해 직원들의 업무 패턴을 상세히 분석해야 했다. 그렇게 통계와 시뮬레이션을 바탕으로 면밀하게 설계된 공간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보안, 위생, 피난, 정숙과 같은 목적을 위해 당연히 반영되어야 하는 객관적 근거에 불과하다. 실제 직원들이 맞닥뜨리는 장소는 효율성과 안락함을 최선의 가치로 여기며, 모더니즘이 간과했던 부분들을 보완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속사정은 사옥 인테리어에서 다양한 곡선으로 발현된다.

사우들을 위한 카페 LINC와 접견실 등이 마련된 1층 로비

곡선은 1층 로비의 안내데스크에서부터 눈에 띈다. 정문에서 로비로 이어지는 보행자의 궤적은 무의식 중에 곡선을 그리기 마련이다.

또한 사람은 본능적으로 날카로운 면에 경계심을 갖고 거리를 두는데, 안내데스크는 그 자연스러운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 부드러운 형태로 자리잡아 방문자에게 편안한 이미지를 전달한다. 이는 타원형의 천장 조명과 함께 쌍을 이루는데, 직선과 면이 지배적일 수밖에 없는 현대적 건축에서 곡선과 점으로 대응하며 공간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곡선형의 디자인으로 외부 손님에게 편안한 분위기를 제공하는 안내데스크

1층에 있는 접견실은 모서리를 둥글게 처리해서 각각 독립된 영역이라는 의미를 강조한다. 그래서인지 전통 한옥의 사랑채를 연상케 하는데, 이 둘은 서로 손님을 맞이한다는 본질이 맞닿아 있다.

곡면 프레임에 덧댄 우윳빛 불투명 유리는 방문객의 존재를 노출시키지 않으므로 좀 더 내밀한 대화를 나누기에 적합하다. 따라서 첫 대면의 낯선 순간도 어느새 독채에서의 편안한 경험으로 바뀌게 된다.

‘사랑채’를 콘셉트로 디자인된 접견실로

6명에서 14명까지 수용 가능한 접견실이 13개 마련되어 있다

엔씨인들의 아침 출근길을 반갑게 맞아주고, 반가운 손님들에게 따뜻한 첫 인상을 안겨주는 1층 로비.

이곳의 너른 공간은 크리스마스나 할로윈데이 시즌이면 멋지게 새단장을 하고, 때로는 엔씨소프트를 대표하는 IP 캐릭터로 발랄하게 꾸며지기도 한다. 사우들의 즐거움과 공감을 위해 다채롭게 변모하는 이곳 로비의 풍경에서 엔씨소프트만의 자유로움과 상상력을 엿볼 수 있다.

시즌에 따라 다채로운 모습으로 변모하는 1층 로비의 풍경

 

* 이후 글은 ‘INSIDE NC’ 2화에서 이어집니다.


배윤경 도시와 건축에 대해 글을 쓰는 칼럼니스트다. 연세대학교와 네덜란드 베를라헤 인스티튜트에서 건축을 전공했으며, 단국대와 연세대에서 건축 이론과 디자인을 강의한다. 주요 저서로는 <암스테르담 건축기행>, <어린이들을 위한 유쾌한 세계건축여행>, <DDP 환유의 풍경(공저)>, <가까스로 반짝이는>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