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DE NC #3 이웃과 더불어 사는 공간

엔씨소프트 R&D센터의 건축적 가치와 아름다움을 살펴보는 ‘INSIDE NC’.

엔씨소프트 사옥은 판교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건물인 만큼, 사옥 주변에 공개공지를 넓게 책정해 도심 속 작은 쉼터를 만들어 가꾸고 있는데요.

이번 시간에는 판교 시민들을 위해 엔씨소프트 사옥 둘레에 마련한 공개공지와 그 공간적 의미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가상에서 실재로

영화 <플레이타임>이 게임 개발자들에게 흥미롭게 다가가는 점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풍경이 실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감독은 자신의 이름을 딴 ‘타티빌’이라는 도시를 파리 동쪽의 뱅센(Vincennes)에 만들었다.

영화 <플레이타임> 속 가상도시 ‘타티빌’의 풍경

영화에서는 제법 많은 분량을 마천루로 대표할 수 있는 현대 도시의 풍경을 전달하는 데 할애한다. 길은 차량과 지나다니는 행인들로 분주하다. 유리창은 때때로 에펠탑과 개선문을 비추며 이곳이 파리의 한 구역임을 증명하지만, 실상 모두 사진을 부착한 것에 불과하다. 지극히 고전적인 방식으로 구현한 가상현실인 셈이다. 육중한 건물들을 얇고 평평한 표피로 대체해 대로변을 채웠다.

게임의 무대를 구축하는 방식 또한 <플레이타임>의 ‘타티빌’과 비슷하다. 굳이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채울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벽의 내부에 철근이나 콘크리트가 없어도, 게임 속 건물들은 무너지지 않는다. 인물들은 혈관과 장기와 근육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폴리곤의 뼈대만 있어도 모션 캡쳐 데이터에 의한 연산으로 캐릭터는 생명력을 얻기 때문이다.

가상도시 ‘타티빌’이 만들어지는 과정

 

# 도심 속 작은 쉼터, 공개공지

하지만 아무리 훌륭한 가상의 세계를 창조할 수 있더라도, 결국엔 사람의 손을 빌어야 한다. 엔씨소프트 R&D센터는 바로 그 게임 속 세계를 창조하는 개발자들을 위한 작업 공간이다. 3천 여 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사옥을 짓기 위해서는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수많은 제약을 해결해야 한다. 판교에서는 도시 계획이 정한 지구단위계획에 의거해 건물이 차지할 수 있는 최대한의 볼륨을 정해야 했다.

이는 사회적인 합의인 만큼,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한 이익이 분명할 때 몇몇 예외 조항이 작동한다. 의무적으로 포함시킨 조경 면적 이외에 이웃을 위한 휴식 공간을 내준 만큼 용적률 혜택을 받는 경우를 예로 들 수 있다. 이렇게 공익을 위해 헌납하는 공간을 공개공지라 한다. 개인의 땅을 보행자들과 수평선상에서 나눔으로써 건물을 지을 경우 수직선상의 혜택으로 돌려받는다는 개념이다.

판교 시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도심 속 쉼터

성남시 도시계획 조례에 따르면 용적률은 400% 이하여야 하고, 의무적으로 제공해야 하는 공개공지 면적은 필지의 10%이다. 엔씨소프트 R&D센터는 15.57%를 공개공지로 할여했으며 이로 인해 허용 용적률은 423.11%까지 상승하였다.

이렇게 법률이 정한 규정 안에서 항목별로 조율이 이루어지면 이런 형태의 건물을 짓고 싶었다고 마음 먹었던 가상의 덩어리가 조금씩 그 형체를 드러낸다. 건물을 대지에 어떻게 배치할 것인지, 최고 높이는 얼마로 정할 것인지, 어디에 창을 많이 두고, 어디에 적게 둘 것인지, 사람은 어디로 드나들고, 녹지는 어디에 둘 것인지 차근차근 계획이 세워진다.

책정된 공개공지는 보행로와 가까운 C타워 주위로 계획되었다. 상대적으로 넓은 북측에는 은행나무 숲으로 상징적 경관을 조성하였고, 동측 가로변은 사람들이 앉아서 쉴 수 있는 휴게 정원으로 가꾸었다.

잠시 머물다가는 공간이지만 봄, 여름, 가을까지 꽃과 단풍이 끊이지 않도록 조경에 신경을 썼다. 매년 찾아오는 계절의 선물을 누리다 보면 기업이 이웃과 함께한다는 공동체 의식을 점차 깨닫기 마련이다.

사시사철 자연을 즐길 수 있도록 경관을 배려하여 가꾼 공개공간

 

# 판교 이웃들을 위한 휴식 공간

이렇듯 기업의 이미지는 건축이 자연 환경과 어떻게 어울릴지 공간의 태도를 규정짓는 과정에서 가장 선명해진다. 자연을 거스르는 문명은 존재하지 않는다. 건축은 정중하게 자신이 놓인 자리를 허락 받아야 하는 자연의 일부에 불과하다.

게임에서도 마찬가지로 구현하기 가장 힘든 것은 자연이다. 자연은 현실과 가상을 구분 짓게 하는 가장 근본적인 요소다. 중력은 언제나 구축 행위에 도전장을 내밀고, 여름과 겨울의 온도 변화는 주기적으로 건물을 흔든다. 벽에는 먼지가 앉아 때가 타고, 철은 조금씩 녹슬기 마련이다. 이렇다 할 흠이 없던 시절의 모습을 간직하고 싶은 건축에게 시간은 그 자체로 혹독한 시련이다.

하지만 영원함을 보장하지는 못해도 시간을 천천히 가게 하는 방법이 있다. 끊임 없는 관리와 보수는 처음 그대로의 인상을 유지하는 비결이다. 또한 누군가 계속 공간을 유용하게 점유함으로써 건축의 생명은 연장된다.

넓게 책정된 공개공지로부터
지역 환경과의 공존을 추구하는 엔씨소프트의 공간 철학이 엿보인다

아무도 살지 않는 폐가옥의 경우 망가지는 속도는 빨라진다. 사람들이 드나들어야 습도가 일정하게 유지되고, 손 닿는 부분들은 손때가 묻으며 길이 들고, 창이나 문을 열고 닫아야 삐걱거리지 않는다.

공개 공지를 가꾸는 것은 이웃들의 관심과 애착을 이끌어내고, 쓰임의 폭을 넓힌다는 측면에서 결국 건물의 수명과 관계가 있다.

 

* 이후 글은 ‘INSIDE NC’ 4화에서 이어집니다.


배윤경 도시와 건축에 대해 글을 쓰는 칼럼니스트다. 연세대학교와 네덜란드 베를라헤 인스티튜트에서 건축을 전공했으며, 단국대와 연세대에서 건축 이론과 디자인을 강의한다. 주요 저서로는 <암스테르담 건축기행>, <어린이들을 위한 유쾌한 세계건축여행>, <DDP 환유의 풍경(공저)>, <가까스로 반짝이는>이 있다.

 

INSIDE NC #1 현대 문명에서의 오피스

INSIDE NC #2 함께 살아가는 보금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