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RPG의 위대한 계보 #4 한국 RPG의 종말,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종말의 전주곡, 스타크래프트와 와레즈

1990년대 말, 밀레니엄을 앞두고 한국 게임업계에는 또 한번 격랑의 파도를 만났습니다. IMF라는 유래 없는 경제불황을 만났고, 그 와중에 <스타크래프트>라는 전에 없는 국민게임이 나온 것이죠. IMF가 한창인 1998년, 대기업도 파산하는 마당에 중소기업 위주였던 게임사들은 극심한 자금난에 시달렸죠. 회사가 망하거나 명맥만 유지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유저들의 소비심리도 급격히 줄어들었죠. 웬만하면 지갑을 열지 않았죠. 그런 이유로 98, 99년 출시된 <8용신 전설>, <해저드>, <제3지구의 카인>,<하르모니아 전기> 같은 RPG 기대작들이 줄줄이 실패하게 됩니다. 그나마 잘나갔던 소프트맥스도 창세기전 외의 신작은 엄두도 못 낼 정도였으니까요. 이런 암담한 상황에서 <스타크래프트>는 한국게임산업을 살릴 한줄기 빛 같은 존재였습니다.


<스타크래프트>
경제불황의 어려운 시절. 한국 게임시장을 살린 스타크래프트.
이 게임 이후 한국 게임의 주류는 RPG에서 RTS로 새롭게 재편됩니다.

<스타크래프트>의 흥행은 한국 게임산업의 지축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PC방, 프로게이머란 새로운 일자리가 생겼습니다. 너도나도 게임산업에 투자하려 했고, 은퇴한 직장인의 자영업 일 순위로 PC방이 각광받았죠. <스타크래프트> 하나로 게임산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됐습니다.

장르의 변화도 확연했습니다. 대부분의 게임사들은 스타크래프트 같은 RTS (Realtime strategy,실시간전략게임) 게임을 만들었습니다. RPG 명가 소프트맥스도 <판타라사> 같은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을 내놓았을 정도니까요. RTS 물결과 함께 초고속 인터넷 망이 빠르게 보급됐습니다.

이런 초고속 인터넷 망은 와레즈로 대표되는 불법복제시장을 비정상적으로 팽창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죠. 안타깝게도 한국 RPG는 기술의 발전과 유저들의 달라진 눈높이를 따라가지 못했죠. 이것이 재앙의 근원이었습니다. 그 끝이 안 보이는 추락은 여기서 시작됩니다.

<해저드(좌)>, <레이디안(우)>
펌프킨 소프트의 ‘해저드’(1998년)와 가람과 바람의 ‘레이디안’(1999년).
실험적인 시스템과 괜찮은 게임성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던 세기말 RPG의 대표작들.

 

RPG 유망주 씰, 5천장 팔렸는데 패치 다운로드는 수 만 건?

그리고 몰락을 예고하는 전주곡이 울려 퍼졌습니다. 바로 ‘가람과 바람’에서 제작한 신작 RPG <씰>의 실패죠. <씰>은 잘 만들어진 게임이었습니다. 큰 개발사의 유명 IP가 아니라도 이 정도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 수 있구나 하는 가능성을 심어준 작품이죠. 개발사 ‘가람과 바람’은 RPG <레이디안>으로 그 실력을 인정 받은 촉망 받는 신예였습니다.

게임에서 돋보이는 점은 스토리입니다. ‘예언과 운명’이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 예언에 관한 비밀을 하나씩 풀어나갈 때마다 그 비밀이 서로 맞물리면서 하나의 결말을 완성한다는 시나리오는 지금 봐도 탁월한 구성이죠.

<씰 – 게임 표지(좌)>, <씰 – 게임 속 전투 화면(우)>
필자는 씰을 한국 RPG 중 가장 재미 있는 작품 다섯 손가락 안에 꼽습니다.
하지만 외부적인 악재를 만나 성공하지 못했던 비운의 게임이기도 하죠.

여기에 서브 이벤트와 박진감 넘치는 전투시스템, 플레이어의 편의를 중시한 인터페이스 등 단점보다 장점이 더 많은 게임이었습니다. 충분히 명작 반열에 오를만한 게임이었죠.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씰>은 좋은 게임성에도 불구하고 흥행에 참패했습니다.

출시 후 와레즈의 집중 타겟이 되었습니다. 여기에 개발사와 유통사의 불화, 잡지 번들 파동 등 온갖 악재를 만나 결과적으로 5천 카피라는 초라한 판매고에 그쳤죠. 여담이지만 게임은 5천장 팔렸는데 패치를 다운받은 사람은 수만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씰은 이런 씁쓸한 결과를 남긴 채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씰 온라인>
씰은 이후 온라인게임으로 다시 리뉴얼 됐지만 게임의 분위기나 시스템은 완전 다른 작품이 되어 나왔다.

 

손노리 최후의 명작 악튜러스

<씰>의 실패 이후 한국 RPG의 제작편수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습니다. 당연한 결과입니다. 들이는 노력에 비해 실패 가능성이 큰 RPG보다 복사 위험이 없는 온라인게임이나, PC방에서 통하는 RTS 게임을 만드는 편이 더 안전했겠죠. 이런 와중에 한국 RPG의 건재함을 과시하는 작품이 나왔으니, 다름 아닌 손노리/그라비티의 <악튜러스>입니다. <악튜러스>는 <창세기전 파트2>와 함께 2000년 대미를 화려하게 장식한 명작입니다.

그 동안 묘한 라이벌관계를 유지했던 손노리(사실 손노리보다 그라비티가 대부분 만들었지만)와 소프트맥스가 신작RPG로 진검 승부를 펼친다는 점에서 화제를 모았죠. 두 회사는 한국 게임업계의 양대산맥으로 불렸지만 한 번도 같은 시기 맞붙은 적이 없었죠. 물론 당시 게임시장은 <스타크래프트> 천하였지만 적어도 RPG팬들은 두 작품의 출시를 가슴 설레며 기다렸습니다.

<악튜러스 광고>
게임 발매 전 공개된 악튜러스 광고.
제작진들이 당시 모 유명 CF를 패러디 해 직접 찍었다고 합니다.
다소 유치해 보이지만 그래도 그때는 풋풋한 재기 발랄함이 있었죠.

<악튜러스>는 국산게임 중 최고수준의 그래픽을 보여주었습니다. 풀 3D로 제작된 맵과 2D로 제작된 캐릭터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었죠. 흡사 애니매이션 같은 분위기를 무리 없이 표현해 냈습니다. 여기에 현란한 카메라 워크와 3D 가속 필터링을 이용한 화려한 연출도 볼거리를 제공했습니다.

전투 시스템은 커맨드 입력 때 외에는 기본 리얼타임으로 진행되는데 각 캐릭터의 전략이나 액션이 잘 표현되어 있어 시원시원하고 박진감 넘치게 진행되죠. 무엇보다 대단한 것은 게임의 시나리오였죠. 앞서 <창세기전>이나 <씰>도 그랬지만 이 시기 한국 RPG는 그야말로 스토리의 꽃이 만개했던 시절이었죠. 그 중 <악튜러스>는 스토리텔링의 정점에 이른 작품입니다.

<악튜러스>
그래픽, 시스템, 스토리 등 모든 요소에서 빠질게 없는 악튜러스. 그런데 왜 망했을까요?

 

이야기는 크게 3개의 파트로 진행됩니다. 1부는 주인공들의 모험이야기와 각자의 사연이 소개됩니다. 2부는 전쟁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주인공들이 속한 나라가 거대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며, 빠른 속도로 결말로 치닫게 되죠. 3부는 종교적, 초자연적인 요소가 가미된 종말에 대한 이야기로 끝을 맺습니다. 아기자기한 그래픽과는 달리 상당히 진지하고 철학적인 주제의식을 보여주었죠.

 

창세기와 요한계시록, 시작과 끝의 변주곡

공교롭게도 <악튜러스>와 <창세기전>은 성서를 기반으로 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습니다. <창세기전>은 성경의 첫 부분인 ‘창세기’에 기반을 뒀고, <악튜러스>는 성경의 마지막 장인 ‘요한계시록’을 바탕으로 합니다. 내용도 상반되죠. <창세기전>이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영웅들의 이야기였다면, <악튜러스>는 세기말 종말을 주제로 다소 어두운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실제로 1999년에 개발된 <악튜러스>는 당시 우리 사회에 팽배했던 종말론, 휴거 등의 사회불안을 콘텐츠에 고스란히 담았습니다. 게임 내에서도 성경구절이 자주 인용되곤 하죠.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종말을 다룬 <악튜러스>는 한국 RPG의 끝을 앞당기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악튜러스2 (좌)>, <악튜러스3 (우)>
처음엔 밝고 유머스러운 분위기로 시작하지만, 게임이 진행될수록 어둡고 비극적인 내용으로 치닫습니다.
1장과 2장 사이에 역대급 반전이 드러나면서 게이머들을 충격에 몰아넣었죠.

 

발매연기, 표절, 그리고 버그! 망하는 요소 3종 세트

<악튜러스>는 우여곡절이 많은 게임이었습니다. 손노리의 전매특허인 잦은 출시연기는 유저들의 애간장을 녹였습니다. 출시도 온전하지 못했습니다. 발매 직전 캐릭터 표절문제가 터지면서 돌연 한정판 제작을 취소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그 후 일반판 초도 물량을 전량 폐기하고 발매일을 늦추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이어졌습니다. 당연히 유저들의 항의가 빗발쳤죠. 발매 이후에도 문제는 계속됐습니다. 고질적인 병폐인 버그문제부터 발목을 잡았습니다. 게임을 제대로 진행할 수 없을 정도의 치명적 버그들은 유저들의 혀를 내두르게 했죠. 또, 서둘러 잡지 번들로 내놓으면서 유저들을 또 한번 멘붕에 빠졌습니다. 제값 주고 게임을 구매한 유저들은 배신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악튜러스>를 번들로 낸 게임잡지는 완판 됐습니다.

잦은 발매연기, 표절, 그리고 극심한 버그. <악튜러스>는 망하는 3종 세트를 그대로 답습했죠. 결과적으로 <악튜러스>는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10억원 이상의 개발비를 들여 7만장 정도 팔렸다고 합니다. “게임을 해본 사람은 많은데 판매는 저조하다”는 한국 게임업계 불편한 진실이 또 한번 드러나는 순간이었습니다.

<라그나로크(좌)>, <라그나로크M (우)>
그라비티는 악튜러스의 소스를 그대로 온라인으로 옮겨 MMORPG를 내놨습니다.
그리고 그 시스템이 그대로 라그나로크 모바일로 재창조됐죠. 이렇듯 악튜러스는 라그나로크로 다시 태어난 셈이죠.

 

마지막 겨울, 신화마저 무너지다!

2001년 겨울, 한국 RPG의 숨통을 끊어 놓은 바로 그 작품이 등장합니다. 한국 RPG 역사상 최고의 기대작이자, 최악의 망작으로 기록된 <마그나카르타>가 그 주인공입니다. RPG 명가 소프트맥스는 <창세기전>시리즈를 끝내고, 차기작으로 새로운 RPG를 발표했습니다.

<마그나카르타>라는 이름의 이 게임은 순식간에 RPG팬들을 열광시켰습니다. 출시 전, 가수 엄지영 씨의 타이틀곡 ‘Time Passes By’가 공개될 때만 해도 분위기는 좋았습니다. 유저들은 ‘우리도 파이널판타지 같은 게임 만들 수 있구나’하는 기대감에 설레어 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에는 흔치 않은 풀3D 그래픽과 감성적인 스토리는 창세기전의 여운을 채워주기에 충분했죠.

 

마그나카르타 주제곡 엄지영 씨의 ‘Time Passes By’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게임은 죽어서 OST를 남긴다는 말이 이런 경우를 말하나 봅니다^^

 

<마그나카르타>
소프트맥스의 신작이란 점에서 당시 마그나카르타에 대한 유저의 기대는 정말 대단했습니다.
하지만 그 끝은 너무나 비극적이었죠.

소프트맥스답게 매우 탄탄하고 치밀한 스토리를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후반의 반전은 <창세기전 파트 2>의 결말과 맞먹을 정도로 충격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스토리를 너무 부각시키다 보니 RPG의 또 다른 재미인 성장과 수집 부분에서 미흡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게임 시스템은 RPG의 기본적인 부분도 갖추고 있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액션 어드벤처에 가까웠죠.

무엇보다 이 게임이 ‘최악’이란 오명을 받은 이유는 발매초기에 벌어진 일련의 파문 때문이었습니다. 역시나 버그 문제죠. 버그가 한국 게임의 고질적인 문제라지만 <마그나카르타>의 버그는 인내심의 한계를 넘는 수준이었습니다. 게임진행을 방해하는 잦은 버그는 보통이고, 정상적인 플레이가 불가능 할 정도였으니까요. 초기 버전에선 웬만해선 엔딩 보기가 불가능 할 정도였습니다(오죽하면 ‘버그나 깔았다’라는 소리까지 들었을까…).

 

<마그나카르타>
마그나카르타는 고질적인 버그에 시달리며 ‘버그나깔았다’, ‘만들다 말았다’ 라는 오명을 쓰기도 했습니다.
결국 ‘패키지 전량 리콜’이라는 극단적 조치까지 이르게 되죠.

 

여기에 매뉴얼에서 설명된 게임 시스템과 실제 게임 시스템이 다르다는 황당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알파버전을 판매한 게 아니냐는 의심까지 받게 됩니다. 결국 소프트맥스는 시중에 판매된 물량을 전량 리콜 조치 하게 됩니다. 그리고 지속적인 패치를 내놓은 후에야 겨우 버그사태를 잠재울 수 있었죠. 결국 <마그나카르타>로 인해 한국 RPG에 대한 유저들의 신뢰를 완전히 바닥을 치게 됩니다.

개발자는 불법복사 때문에 게임이 안 팔린다고 하소연하고, 이에 유저들은 돈 주고 살만한 가치가 없으니 복사를 하는 것이라고 맞섰습니다. 게임이 나올 때 마다 이런 웃지 못 할 논쟁이 되풀이됐죠.

 

<마그나패키지(좌)>, <마그나패키지2 (우)>
필자가 아직도 가지고 있는 마그나카르타 초도물량 패키지. 각종 설정집과 창세기전 카드까지 포함된 화려한 구성.
무엇보다 박스 크기가 어마 어마! 이런 패키지가 전량 리콜되다니…

 

마지막까지 처절했던 2003년 그 날…

앞서 손노리와 소프트맥스가 몰락하면서, 한국 RPG시장은 폐허가 됐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희망을 걸고 나온 타이틀이 무협RPG <천랑열전>이었죠. 엄밀히 말해 2003년 <천랑열전> 이후 한국 PC 패키지 RPG의 명맥은 끊겼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더 슬픈 건 마지막 모습까지도 처절했다는 겁니다.

<천랑열전>은 <레이디안>, <씰>, <나르실리온> 등으로 수많은 팬들을 확보했던 가람과 바람의 작품입니다. 동명의 유명만화를 원작으로 한 <천랑열전>은 초토화된 RPG 시장의 부흥을 이끌 대작으로 기대를 모았습니다. 하지만 기대는 한 순간에 실망으로 변했습니다. <천랑열전>은 최악의 버그 파동을 일으킨 게임으로 국산게임의 병폐를 하나부터 열까지 고스란히 보여준 작품으로 남게 됩니다.

<천랑열전>
폐허가 된 한국RPG 시장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나온 천랑열전.
그러나 마지막까지 처절한 작품이었습니다.

 

발매초기, ‘버그열전’이란 조롱을 받을 만큼 게임의 버그는 심각했습니다. 일부 PC에선 아예 진행자체가 불가능 했습니다. 버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당초 게이머들에게 약속했던 ‘월하랑 스토리’ 등의 일부 요소가 아예 포함돼 있지 않은 것입니다. 미완성인 게임을 출시해버린 격이죠. 이는 발매일정에 맞춰 게임을 무리하게 출시하려다 생긴 결과입니다. 유저들도 설마 설마 했지만 이 정도로 참담할 줄 몰랐었죠.

<천랑열전>은 단순히 게임만 놓고 보자면 그리 나쁘지 않은 작품이었습니다. 카툰렌더링을 이용한 그래픽은 다소 어색한 부분도 있지만 원작의 분위기를 무리 없이 표현했고, 사운드 역시 게임에 잘 녹아 있었죠. 이후 지속적인 패치과정을 거쳐 완벽히 제 모습을 갖추게 된 건 출시 이후 3개월이 지나서였습니다. 하지만 이미 게이머들은 <천랑열전>에 등을 돌린 후였죠. 이렇게 한국 패키지 RPG의 역사는 막을 내리게 됩니다.

 

<천랑열전2>
당초 나오기로 되어 있었던 월하랑 스토리의 일부 요소가 아예 포함되지 않아,
만들다 말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정품 산 게이머가 바보가 되는 환경! ‘3B의 저주’

한국 패키지 RPG가 이렇게 급격히 몰락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버그(Bug)’, ‘복사(Boksa(?))’, ‘번들(Bundle)’, 이른바 3B의 저주 때문입니다. 이들 폐단들은 각각의 문제로 끝나지 않고 서로 맞물려 돌아가면서 시장을 무너뜨렸습니다. 개발환경부터 잘못됐죠.

당시 개발자들은 거의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해야 했습니다. 당시 국민게임 <창세기전> 시리즈도 일년에 한번 꼴로 신작을 내놓을 만큼 강행군에 시달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출시 연기는 기본, 각종 버그는 물론이고 일정에 쫓기다 보니 목표한 콘텐츠를 다 구현하지 못하고 그냥 출시하는 경우가 다반사였죠. 당연히 게임에 대한 유저들의 신뢰는 바닥을 칠 수 밖에 없었죠.

이런 상황에서 불법복제는 몰락을 부추기는 암처럼 시장 깊숙이 파고 들었습니다. 사람들은 “복사판으로 먼저 해보고 괜찮으면 정품 사겠다” 혹은 “정보의 자유로운 공유”라는 이상한 논리로 불법복사를 정당화 했습니다. 마침 초고속인터넷 망에 와레즈까지 퍼지면서 불법복제는 마른 풀밭에 불지피듯 퍼져나갔습니다.

여기에 게임 잡지사들의 번들 경쟁도 패키지 시장의 몰락에 한 몫 했죠. 잡지사들은 언제부턴가 판매율을 높이기 위해 정품게임을 번들로 제공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인디게임이나 데모게임을 내놓다가 경쟁이 심해지면서 출시 된지 얼마 안 되는 최신작들까지 내놓기 시작했죠. 심지어 한번에 2~3개 이상의 게임을 번들로 내놓는 정신 나간 끼워팔기도 성행했습니다. 당시 잡지사 편집장들은 좋은 기사를 내보내는 것보다 잘 팔리는 번들 계약을 따오는 게 더 중요한 업무였죠. 유저들 사이에선 “정품을 왜 사? 조금만 기다리면 번들로 풀릴 텐데!”라는 자조 섞인 농담까지 나왔죠.

지나친 번들경쟁으로 정품 시장에 독이 됐던 게임잡지들도, 패키지 게임 시장이 몰락함과 동시에 대부분 폐간되거나 사라졌다.

 이렇듯 게임사는 불법복제를 한 유저들을 탓하고, 유저들은 버그투성이 게임을 만든 게임사들을 비난하고, 이를 이용해 잡지사들은 최신 번들을 팔아 돈벌이에만 급급했습니다. 결국 제값 주고 정품 산 게이머가 바보가 되는 환경! 이것이 한국 패키지 게임 몰락에 마침표를 찍은 셈이죠.

 

————–그 외 2000년대 주요 작품들 ————–

 

드로이안2 (2000년)

KRG소프트가 개발한 SF배경의 액션RPG.
광선검과 초능력을 이용한 전투가 특징입니다.

 

제노에이지(2000년)

가마소프트가 개발한 전형적인 일본식 SRPG.
깔끔한 캐릭터와 만화를 보는 듯한 스토리가 장점인 게임.

 

나르실리온(2002년)

가람과 바람 팀이 그리곤엔터테인먼트로 자리를 옮긴 후 개발한 작품.
레이디안의 후속작으로 완성도 면에서 호평을 받았습니다.

 

페이트(2002년)

한국판 디아블로2를 표방한 액션RPG.
2년 동안 발매연기 반복하며 겨우 출시됐지만 큰 반응 없이 사장된 작품. 하지만 게임성은 좋았습니다.

 

엘릭서(2002년)

3년의 제작기간 끝에 발매된 액션 RPG.
<페이트>와 마찬가지로 너무 늦게 나온 탓에 큰 반응 없이 쓸쓸히 사라져간 비운의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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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꽃은 가장 화려할 때 진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국 RPG가 그랬습니다. 2000년대 이후 한국 RPG는 가장 화려한 전성기를 보낸 후 급격히 내리막길을 걸었습니다. <천랑열전> 이후 사실상 한국 패키지 RPG는 명맥이 끊긴 것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씰>, <창세기전>, <어스토니시아스토리> 등 유명 IP는 온라인 게임으로 재활용됐지만 성공한 타이틀은 거의 없었습니다.

어찌 보면, 한국 RPG의 종말은 과거 공룡의 멸종과 비슷합니다. 지구 최강자였던 공룡이 운석 충돌로 하루 아침에 사라진 것처럼, 1990년대를 화려하게 수놓았던 패키지 RPG도 어느 시점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춰버렸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살아남은 포유류가 지구의 새 주인이 된 것처럼, 게임으로 인정 받지 못했던 MMORPG가 시장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MMORPG는 패키지 RPG가 걸어온 길을 그대로 걷지 않았습니다.

개발자가 만들고 유저는 즐기는 공급과 소비의 관계가 아닌, 게임 속에서 인간과 인간의 욕망이 충돌하는 새로운 세상을 펼쳐놓은 것이죠. 다음 시간에는 시간을 다시 되돌려 초창기 온라인게임이 열어젖힌 한국 RPG역사 2막을 다뤄보겠습니다.

<머드게임>
한국 MMORPG의 효시가 된 단군의 땅. 이걸 RPG로 인정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죠…

 

이덕규(게임 칼럼니스트)

게임잡지 피시파워진 취재부 기자를 시작으로 게임메카 팀장, 베타뉴스 편집장을 거쳐 현재 게임어바웃 대표 및 게임칼럼니스트로 활동 중. 게임을 단순한 재미로 보기보다, 게임의 문화적 가치를 살리는데 관심이 많다. 고전부터 최신 게임까지 게임의 역사를 집필하면서 게임을 통해 사회를 보는 창을 제시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