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RPG의 위대한 계보 #5 한국 온라인 게임과 PC통신 시대

겨울이 가고 새로운 봄이 오듯, 한국 게임 시장에는 패키지 시대가 저물고 온라인 게임이라는 새로운 계절이 왔습니다. RPG 장르도 변화에 직면했죠. 이른바 MMORPG의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게임의 근본부터 바꾸는 완벽한 변화였습니다.

MMORPG는 다중접속온라인 역할수행 게임이라 부릅니다. 인터넷을 통해 여러 명이 함께 플레이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 RPG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MMORPG는 혼자 하는 게임이 아닙니다. 파티를 맺고 길드에 참여하는 등 다른 사람과의 ‘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러나 패키지 RPG는 게임의 목적과 방식이 정형화되어 있습니다. 개발자가 정해놓은 스토리에 따라 레벨을 올리고 보스를 물리치면 엔딩을 볼 수 있는 구조였죠.

반면 MMORPG는 끝을 가늠할 수 없는 게임입니다. 게임 안에서 주인공의 인생을 대리 체험하는 것이 아닌, 직접 자신의 욕망을 분출하는 게임이 MMORPG입니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함께 즐기다 보니 개개인의 욕망이 충돌해 예상치 못한 재미를 만들곤 하죠. 자유도가 더 높고, 경쟁도 치열합니다. 물론 엔딩도 없죠. 이런 MMORPG의 에너지는 순식간에 한국인들을 매료시켰습니다.


RPG의 원류는 TRPG(테이블탑 역할수행 게임)으로
MMORPG는 플레이어간의 상상과 대화로 즐기는
TRPG를 계승한 장르입니다. (출처: 위키백과)

MMORPG의 뿌리, PC통신과 대학교 동아리

한국 MMORPG의 씨앗은 과거 PC통신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1990년대 초에는 국내 인터넷 서비스의 원조라 할 수 있는 텔넷이 전국에 보급된 시절이었습니다.

이를 기반으로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 등 PC통신들이 생겨나면서 MMORPG의 토양이 갖춰지기 시작했죠. PC통신은 게임 크리에이터들에게 그야말로 신세계였습니다.


1990년대 초반부터 등장한 PC통신은
게이머들에게 신세계를 펼쳐 보였습니다.
당시 많은 크리에이터들이
PC통신 동호회를 중심으로 활동을 했었죠.

컴퓨터 통신을 통해 얼굴도 모르는 여러 사람들이 함께 게임을 즐긴다는 자체가 당시로써는 경이로운 경험이었죠. 하지만 요즘처럼 일반가정에서 누구나 네트워크 게임을 즐기기는 쉽지 않았죠.

90년대 초에는 지금처럼 인터넷이 전국에 깔려있던 시절이 아니었습니다. 하다못해 PC방도 없었죠. 마음 놓고 네트워크를 사용할 수 있는 곳은 대학교 전산실이나 일부 컴퓨터 학원 정도였죠.

이렇게 대학교 연구실이나 PC통신 동아리를 중심으로 확산된 소규모 네트워크 게임이 지금의 MMORPG의 뿌리입니다. 이때 유행한 네트워크 게임들은 상업용으로 팔기엔 부족한 면이 많았습니다. 제작자 또한 게임을 팔려는 목적보다 함께 공유해 즐기는 차원에서 만들었죠.


1990년대 초반 대학교 전산실.
비교적 네크워크 시스템이 잘 갖춰진 대학교 전산실은
온라인 게임 개발하고 공유하는데 가장 좋은 장소였죠.
(출처: e영상역사관. 국가기록사진)

머드 게임, TRPG의 계보를 잊다

당시 대학가에선 서양에서 들어온 TRPG가 유행했습니다. TRPG는 여러 명의 사람들이 테이블에 모여 주사위를 굴리며 대화를 나누면서 즐기는 일종의 보드게임입니다. 함께 모여 있는 기회가 많은 대학생들에게 TRPG는 재미있는 놀이거리였죠.

학생들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RPG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네트워크를 통해 TRPG를 즐기는 방법이죠.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 MMORPG의 원조로 불리는 ‘머드 게임’입니다.

초창기 머드 게임은 그래픽 없이 텍스트 위주로만 구성됐습니다. 지금 보면 게임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였죠. 인터페이스도 단순한 명령어 입력 방식이었습니다.

아이템 획득, 캐릭터 성장, 전투까지 모든 진행이 텍스트로 출력되는 방식입니다. 접속부터 시작해 공격, 이동까지 전부 타이핑해야 하는 게임이었죠. 지금 보면 불편하기 짝이 없지만, 당시에는 획기적이었죠.

무엇보다 머드 게임은 여러 사람이 소통하며 미션을 풀어나가는 재미 때문에 한번 시작하면 손을 놓을 수 없는 마력이 있었습니다. 머드 게임에 매료된 학생들은 PC통신 동아리를 만들어 게임을 공유했습니다. 일부에선 외국 게임을 가져와 번역해 즐기곤 했습니다.


1980년 등장한 RPG의 원조 <로그>.
TRPG에서 던전 탐험 부분만 따와 간단히 즐길 수 있는 게임으로
국내 머드 게임에 큰 영향을 준 게임입니다.

온라인 게임 대모(大母)의 등장과 <단군의 땅>

<창세기전>,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같은 패키지 RPG가 흥행돌풍을 일으키던 무렵, MMORPG(엄밀히 말해 머드 게임)는 몇몇 마니아들의 전유물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이후 <쥬라기 공원>과 <단군의 땅>이 PC통신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면서 머드 게임의 존재가 알려지기 시작했죠.

두 게임은 국내에서 상용화된 최초의 온라인 게임입니다. 이중 <단군의 땅>을 제작한 마리텔레콤의 장인경 대표는 한국 온라인 게임의 ‘대모’로 알려진 인물입니다.

그는 여학생으로는 최초로 서울대 전자공학과에 입학해 주목 받았습니다. 여성 우주인이 되기 위해 전자공학과에 입학한 그는 1970년대 서슬 퍼런 유신시절을 보내면서 꿈을 접어야 했죠. 이후 삼성전자를 거쳐 한국생산기술연구원에서 근무했던 그는 게임에 빠져 있는 카이스트 학생들을 만나면서 새로운 목표를 정했다고 합니다.

당시는 게임이 사회악으로 치부되던 시절이었습니다. 어렵게 공부시켜 좋은 학교 보냈는데 고작 한다는 게 게임이나 만드냐며 무시 받기 일쑤였죠. 온라인 게임 1세대 개발자들은 뛰어난 천재성에도 불구하고 게임을 만든다는 이유만으로 주변으로부터 무시 받았죠.

장인경 대표는 게임에 빠져 학업을 계속하기 힘든 후배들을 모아 벤처회사를 차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한국 온라인 게임의 모태가 된 마리텔레콤입니다. 1994년 나우콤에서 서비스를 시작한 <단군의 땅>은 동시접속자 최대 200명을 달성하며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낯선 서양식 판타지 대신 고대 아사달 시대를 배경으로 한국의 역사를 전면에 내세워 대중적인 인기를 얻을 수 있었죠. 이 게임이 얼마나 인기 있었냐 하면, 통신비를 마련하기 위해 막노동을 하거나, 고시생이 시험을 포기하는 일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카이스트 출신 개발자들이 모여 만든
국내 최초의 상업용 머드 게임 <단군의 땅>.
당시에 공부 잘 하는 녀석이 게임이나 만든다며 개발자들을 무시했다.

‘울티마 키드’ 송재경과 <쥬라기 공원>

<단군의 땅>보다 며칠 앞서 발매된 <쥬라기 공원>은 같은 카이스트 출신인 송재경 씨가 개발한 작품입니다.

<울티마> 시리즈를 광적으로 좋아한 송재경은 전투가 아닌 퀘스트 중심의 머드 게임을 만들고 싶었죠. 플레이어가 쥬라기 공원의 각종 문제를 해결하고 탈출하는 내용으로 한국 유저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영화를 배경으로 상상력과 긴장감을 자극해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쥬라기 공원>은 <단군의 땅>보다 며칠 앞서 나온 게임으로
전투보다 퀘스트 위주의 진행방식이 특징이다.

송재경 씨는 이후 <바람의 나라>와 <리니지>를 개발하면서 한국 온라인 게임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으로 등극합니다. 두 게임의 성공에 힘입어 90년대 초반 한국 게임 시장은 머드 게임 전성기가 도래했습니다. 분당 2~30원의 비싼 통신비에도 불구하고 머드 게임 유저들은 급속도로 늘어갔죠.

하이텔과 나우누리 등 통신사업자들도 자사 서비스에 게임을 추가했고, 이런 분위기가 더 많은 머드 게임이 개발되는 토대를 마련했죠. 이 시기 <오로라캠프>, <드래곤 랜드>, <퇴마요새>, <SF 1999>, <시간여행자> 등 다양한 머드 게임이 인기를 끌었습니다. 특히 <퇴마요새>는 당시 최고의 베스트셀러 소설이었던 ‘퇴마록’을 소재로 해 인기를 더했습니다.


<단군의 땅>과 <쥬라기 공원>이 성공하자
<퇴마요새>(위)와 <드래곤 랜드>(아래)와 같은
다양한 머드 게임들이 PC통신을 통해 서비스됐습니다.

기회의 땅 인터넷과 <바람의 나라>

당시 기술력으로 머드 게임에 그래픽을 입힌다는 건 엄청 힘든 작업이었습니다. 일단 모뎀을 기반으로 한 느린 통신환경에선 그래픽으로 온라인 게임을 돌리기가 사실상 힘들었죠. 통신비 부담도 컸습니다.

하지만 때를 기다리면 기회는 온다고 했던가요. IMF 이후 국가적 차원의 투자가 이루어지면서 초고속 인터넷망이 빠르게 확산됐습니다. 패키지 게임은 CD가 안 팔려 한숨 쉬는 동안 머드 게임은 분당 20원 안팎의 비싼 이용료에도 불구하고 이용자들이 갈수록 늘어났죠.

이렇듯 인터넷은 게임 개발자들에게 새로운 기회의 땅이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먼저 그 기회에 손을 뻗은 게임이 있었으니, 본격적인 온라인 게임 시대를 개막한 <바람의 나라>죠.

지금은 굴지의 게임 회사인 넥슨이지만, 초창기 <바람의 나라>를 만들 때만 해도 10평짜리 오피스텔에 5명 안팎의 직원들이 일하는 작은 벤처기업이었습니다. 창업주 김정주는 <쥬라기 공원>을 만든 송재경 등 카이스트 동문들을 영입해 넥슨이란 회사를 차렸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게임을 내놓았죠. 그 게임이 바로 머드 게임에 그래픽을 더한 <바람의 나라>였습니다.


머드 게임에 그래픽을 입혀 만든
머그 게임 <바람의 나라>

만화와 사랑에 빠진 게임들

<바람의 나라>는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고구려 대무신왕 시대를 다룬 MMORPG입니다. 어찌 보면 <단군이 땅>과 같은 맥락의 게임이죠.

원작 만화 <바람의 나라>는 송재경 씨가 평소에 재미있게 보던 만화였다고 합니다. 실제로 <바람의 나라>를 시작으로 <리니지>, <레드문>, <라그나로크> 등 만화 원작의 게임들이 초창기 온라인 게임 시장을 이끌었죠.

어쨌든 <바람의 나라>는 많은 난관을 극복하고 시장에 정착했습니다. 초창기 서비스 때에는 동시접속자 30명이 채 안됐고, 유료 서비스를 시작하고 첫 달 매출이 고작 백만 원 수준에 그쳤죠. 하지만 인터넷 환경이 좋아지고, 새로운 게임에 대한 유저들의 열망이 커지면서 흥행에 탄력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김진의 원작 만화 ‘바람의 나라’.
원작 또한 한국 만화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명작이다.

이후 <바람의 나라>는 게임 속 커뮤니티 기능을 강화하고 그래픽과 시스템을 보강해 현재 MMORPG의 틀을 만들었습니다. 게임 안에서 다른 사람과 만나고, 동료가 되고, 함께 사냥을 하고, 이야기하는 사회성을 제공했죠. 사람들은 게임을 단순히 즐기는데 그치지 않고 자신들의 소소한 일상사를 이야기하는 소통의 장으로 활용했습니다.

또 결혼 시스템을 추가하면서 실제 게임에서 만나 결혼까지 하는 커플도 생겼죠. 당시로써는 화려한 그래픽과 견고한 커뮤니티성을 내세워 머드 게임 유저뿐만 아니라 온라인 게임을 몰랐던 유저들까지도 흡수했습니다.


<바람의 나라>는 낯선 서양 판타지 대신 한국 역사를 채택해
우리나라 유저들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왔죠.

온라인 게임 시대의 토대를 마련하다

<바람의 나라>를 성공시킨 넥슨은 <어둠의 전설>, <일랜시아> 등 MMORPG들을 연이어 내놓았습니다. 이렇듯 <바람의 나라>는 국내 게임 역사의 전환점이 된 작품입니다.

<리니지>, <영웅문>, <미르의 전설> 등 한국형 MMORPG들이 나올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바람의 나라>가 가진 의미는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넥슨은 <바람의 나라> 이후 커뮤니티 기능을 강화한
<어둠의 전설>(위)과, <일랜시아>(아래)를 서비스하면서
한국형 MMORPG의 근간을 마련합니다.


 

 

이덕규(게임 칼럼니스트) 게임잡지 피시파워진 취재부 기자를 시작으로 게임메카 팀장, 베타뉴스 편집장을 거쳐 현재 게임어바웃 대표 및 게임칼럼니스트로 활동 중. 게임을 단순한 재미로 보기보다, 게임의 문화적 가치를 살리는데 관심이 많다. 고전부터 최신 게임까지 게임의 역사를 집필하면서 게임을 통해 사회를 보는 창을 제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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