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과 심리학 #1 게임과 매직서클: 게임의 문화심리학

심리학의 관점에서 현 시대의 게임에 대한 가치와 의미를 되짚어 보는 ‘게임과 심리학’.

문화심리학자 이장주 박사가 들려주는 ‘게임과 심리학’ 1편에서는 인간의 본성에 영향을 미치는 게임의 속성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인간은 도대체 어떤 점이 특별한 것일까요? 많은 학자들은 인간의 문화적 학습능력을 다른 동물들과 차별화된 인간만의 특성으로 꼽습니다.

동물은 두꺼운 털과 가죽같이 추위에 대응하는 능력을 기르려면 수천, 수만 년이 걸리지만, 사람은 몇 시간 혹은 며칠 만에 털옷을 만들어서 대응할 수 있습니다. 또 동물들은 살기에 알맞은 곳을 찾아 이동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이 사는 환경을 알맞게 변화시킵니다. 심지어 자신의 본성까지도 그 변화의 대상이 됩니다.

다른 동물과는 질적으로 다른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진 겁니다. 이런 마법에 대한 가장 근접한 설명은 철학자 요한 호이징하(Johan Huizinga)가 말해줍니다. 매직서클(The Magic Circle)이란 개념으로 말입니다.

네덜란드 태생의 철학자이자 역사가, 요한 호이징하

# 놀이하는 인간, 호모루덴스

마법이 마법일 수 있는 이유는 현실의 법칙을 따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현실을 무시한 마법적 공간을 매직서클이라고 불렀는데요. 이 매직서클은 놀이를 할 때 생겨나는 현실과 구분되는 가상적 시공간을 의미합니다.

게임은 놀이의 발달과정 중 맨 마지막에 나타나는 가장 인간적인 현상입니다. 마법 중의 마법이고, 매직서클 내에서도 가장 안쪽에 위치하는 알짜배기인 것이지요.

오랜 기간 인간은 가상적 시공간에서 현실적 위협 없이 즐기는 동안 동물과는 질적으로 다른 존재가 된 겁니다. 매직서클에서 정신없이 놀다보니 진짜 마법사가 된 겁니다. 이런 이유로 호이징하는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놀이하는 존재’, 즉 ‘호모루덴스’라고 불렀지요.

놀 수 있는 존재, 호모루덴스

 

# 게임에서 비롯된 스포츠의 탄생

게임은 인간의 심리와 사회에 마법 같은 일을 만들어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는 스포츠입니다.

사실 스포츠의 원형은 전쟁입니다.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터에서 적의 머리를 발로 차는 행위는 복수의 세리머니였다고 합니다. 이런 전쟁을 매직서클로 가져온 것이 축구입니다.

축구는 11명으로 구성된 선수가 서로 합의한 규칙에 따라 상징화된 적의 머리인 공을 차는 놀이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열심히 공을 차는 동안 적대감은 사라지고 서로 친구가 되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누가 죽고 죽이는 비극 없이도 갈등을 해결하는 지혜가 게임이라는 형식을 통해 전세계로 확산된 것이지요. 이런 문화적 전통은 지금도 올림픽과 월드컵을 통해 이어지고 있습니다.

전쟁의 잔재에서 멋진 놀이 행위로 전환된 축구

 

# 현실을 바꾸는 매직서클

그런데 이 마법은 매직서클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바꾸었습니다. 현실에서 게임을 하는 동안 사람은 상대방의 행동을 예측하고 거기에 대응하는 전략적 사고 능력을 키웠습니다.

사고 능력을 왕성하게 키워야 할 아이들이 게임에 열광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인간의 발달과업이라고 생각됩니다. 또한 함께 게임을 하는 사람들은 평등해야 한다는 생각이 확산되는 겁니다. 심지어 상대편이라도 말이지요.

그래서 실력이 높은 사람은 낮은 사람을 압도하기보다는 접어주는 방식으로 공존하는 방법을 찾아냅니다. 약육강식의 동물적 본성이 약한 사람을 배려하는 인간적 덕성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게임을 빼놓고는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게임의 본질은 현대에 들어서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스포츠 게임은 물론 최신의 전자기기를 활용한 게임 산업이 날로 성장하며 게임 문화가 확산일로에 있습니다. 국내외와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다양한 매직서클들이 생겨나고 있다는 의미지요.

여기서 일어나는 상징적인 공격 행위들이 혈기왕성한 청소년들의 범죄율을 줄였다고 추정이 가능한 연구들도 여럿 있습니다. 아래 퍼거슨(Ferguson)의 연구를 보면, 폭력적인 게임(실선)이 많이 팔릴수록 청소년 폭력(점선)이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화면상에서 총을 쏘고, 칼을 휘두르는 행위, 즉 상징적 공격 행위는 현대 축구가 사람 머리 대신 고무공을 차는 행위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점이 시사됩니다.

퍼거슨의 2015년 연구 ‘미디어 폭력은 현실 사회의 폭력을 예측하는가?’ 중

우리나라 보건복지부 자료에 의하면 청소년의 대표적인 일탈 행위였던 음주율이 2006년 28.6%에서 2017년 16.1%로 거의 절반 수준으로 줄어듭니다.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치열한 입시경쟁과 강한 사교육 열풍이 가져온 스트레스에도 불구하고 청소년들은 일탈의 유혹을 더 적게 경험했다는 겁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요? 제가 생각할 때, 청소년들의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너나 없이 즐겼던 게임의 마법 효과를 빼고는 설명이 불가한 현상입니다.

그 시절 청소년들에게 유행한 게임은 총탄이 빗발치는 FPS 게임인 <스페셜포스>와 <서든어택>이었습니다. 게임 속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나니 현실의 시험 전쟁은 잠자리 날개처럼 가볍게 느껴진 대비 효과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2006 ~ 2007년 FPS 게임의 인기와
줄어든 청소년 음주율의 상관 관계는 우연일까요, 필연일까요?

물론 상반되는 연구와 주장들도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게임을 많이 해서가 아니라 게임을 덜 해서 매직서클이 충분히 영향을 미치지 못한 까닭은 아닐지 조심스럽게 추론해 봅니다.

 

# 기술과 더욱 가까워질 수 있도록

매직서클은 낯선 사람들뿐 아니라 기술들도 친숙하게 만들어주는 마법을 펼치기도 하였습니다.

최초의 비디오 게임은 1958년 미국 원자력 연구시설에서 근무하던 윌리엄 히긴보덤(William Higinbotham)이 개발하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연구소를 방문하던 방문객이 지루해하는 것을 보고 첨단기술을 이용해 즐거움을 줄 요량으로 게임 개발을 궁리하게 됩니다.

그리고 신호 계측에 사용하던 5인치 아날로그 오실로스코프에 간단한 회로와 간이 조종기를 연결하여 최초의 비디오 게임<테니스 포 투(Tennis for Two)>를 탄생시켰습니다. 무시무시한 원자력 기기가 게임을 통해 친숙한 기기로 전환되는 마법이 일어난 겁니다.

최초의 비디오 게임 <테니스 포 투>

그 후로도 마법은 이어집니다. 개인용 컴퓨터가 청소년들에게 확산된 계기는 색다른 게임 타이틀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게임은 낯설고 복잡한 기계와 청소년을 둘도 없는 단짝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만일 컴퓨터가 학습만을 위한 기계였다면 지금 같은 확산은 어림도 없었을 겁니다.

또 윈도우 게임인 지뢰찾기나 카드놀이도 사실은 마우스를 익숙하게 다루기 위한 훈련용으로 컴퓨터에 내장되었다고 합니다. 조금 더 빠르게 지뢰를 찾고, 카드를 움직이는 동안 마우스의 좌우 클릭, 더블 클릭은 물론 동시 클릭까지 마스터해서 조작의 자신감을 키워주었습니다. 특별할 것도 없는 미니 게임들이 이런 엄청난 일을 했다니 대단하기만 합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PC를 이은 혁신 기술인 스마트폰의 보급과 확산의 선두에는 게임이 있었습니다. 킬러 타이틀이란 이름으로 말입니다.

2016년 기준 애플리케이션 마켓의 80% 이상이 게임 앱 매출이라는 보고가 있습니다. 또한 2018년 5월 대한민국 구글플레이 결제 금액 중 94.4%가 게임에서 비롯되었다는 조사 결과도 있죠. .

요즘 유치원생들도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은 1980년대 슈퍼컴퓨터를 능가하는 성능을 지녔다고 합니다. 불과 한 세대가 지나는 동안 어린아이들도 슈퍼컴퓨터를 거침없이 다룰 수 있는 마법이 펼쳐진 것입니다. 게임이 펼쳐놓은 매직서클이 아니었다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고 저는 믿습니다.

전세계적인 스마트폰 확산에 기여한 모바일 게임

 

#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매직서클

요즘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립니다. 한 마디로 요약하기는 어렵지만, 대략 사람만이 할 수 있다고 믿었던 많은 것들을 기계가 담당하는 시대라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마법 같은 일들이 머지않아 현실 속에 나타난다는 의미입니다. 게임이 만들어내는 매직서클의 힘을 통하지 않고서는 일상 속에 빠르고 깊숙하게 자리잡는 것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는 이미 게임 속에서는 4차 산업혁명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믿습니다. 예를 들어, 고도화된 인공지능은 사람과 구분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람의 능력을 압도할 수 있지요. 알파고처럼 말입니다.

그렇기에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기 위해서는 상대가 사람인지 인공지능인지를 구분하는 능력이 중요합니다. 만일 이런 구분을 하지 못하고 인공지능을 사람으로 착각한다면 아주 안쓰러운 일이 벌어지겠죠.

그런데 게임 속에서는 유저들이 게임 부정 프로그램을 통칭하는 ‘게임핵’에 아주 민감합니다. 사람이 플레이를 했는지, 사람이 아닌 존재가 플레이를 했는지 구분할 수 있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생존에 꼭 필요한 능력이 자라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인공지능을 소재로 다룬 게임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 같은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사람과 인공지능이 함께 어울려 살 때 나타날 수 있는 다양한 상황이나 문제를 미리 경험하고 대처할 수 있는 연습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공상 과학 소설의 거장 아서 C. 클라크(Arthur C. Clarke)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충분히 발달한 과학 기술은 마법과 구별할 수 없다. (Any sufficiently advanced technology is indistinguishable from magic.)”고 말입니다.

마법 같은 기술이 있다면 아마 그 기술은 게임에 가까울 것입니다. 미래가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모르지만, 게임 이끄는 미래라면 저는 낙관적이리라 믿습니다. 왜냐하면 인류의 혁신을 이끌었던 매직서클이 바로 그 게임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장주 문화심리학자. 평범한 사람들이 더 활력 있고, 즐겁게 살 수 있는 길을 찾다가 게임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현재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재직 중이며, 심리학의 관점에서 문화적 이슈를 다루는 글쓰기와 강연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