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RPG의 위대한 계보 #6 리니지와 2D 시대의 풍운아들

넥슨의 <바람의 나라>는 한국 RPG 역사에 큰 이정표를 남겼습니다. CD로 즐기는 패키지 RPG에서, 온라인으로 즐기는 MMORPG 시대가 온 것이죠. 당시 업계에서 MMORPG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했습니다. 일단 돈이 되는 게임이었죠. 클라이언트는 무료로 판매하고 이용료를 받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불법복제 리스크에서 자유로웠습니다. 또, 부족한 부분은 즉시 인터넷을 통해 패치가 가능했기 때문에 버그로 인한 비난도 피해갈 수 있었습니다.

중요한 건 당시 국내 인터넷 환경이 온라인게임에 적합한 환경으로 발전하고 있었다는 것이죠. 전국적으로 고속 인터넷 망이 보급되고, PC방 창업열풍이 불면서 누구나 네트워크 게임을 쉽게 할 수 있게 됐죠. 느려터진 속도에 전화비까지 걱정해야 했던 PC통신 시대는 지났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아는 유명 RPG들이 이 시대를 수놓기 시작했습니다. 바야흐로 2D MMORPG 시대가 열렸습니다.

지난 2016년은 <바람의 나라> 오픈 20주년이었죠. 게임이 서비스된 날 태어난 사람이 지금 22살이 됐네요.

 

리니지는 먹고 살기 위해 만든 게임

몇 년 전 엑스엘게임즈 송재경 대표를 찾아 인터뷰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에게 리니지를 개발하게 된 동기를 물었습니다. 뭔가 거창한 대답을 기대했건만, 막상 돌아온 대답은 심플했죠.

“좋은 게임 만들겠다는 생각보다는 게임 만들어 먹고 살아야 한다는 생존본능 같은 것이 더 많이 작용했죠”.

지금이야 PC, 모바일을 통틀어 최고의 흥행게임으로 군림하고 있지만, 적어도 리니지의 시작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습니다. 외국게임에 대한 열등감, 게임에 부정적인 사회인식, 여기에 자금난 등 각종 악조건 속에서 만들어진, 그야말로 먹고 살기 위해 만든 게임이었죠.

<바람의 나라>를 만든 송재경씨는 넥슨을 나와 아이네트라는 회사에 입사했습니다. 그는 <쥬라기 공원>과 <바람의 나라> 이후 차기작을 구상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목표는 울티마 같은 게임이었습니다. 울티마 같은 자유도 높은 게임을 만드는 게 꿈이었죠. 그는 평소 즐겨보던 신일숙 씨의 작품 <리니지>를 게임으로 만들어보기로 했습니다. 그는 신일숙 작가를 여러 차례 찾아가 설득한 끝에 게임개발 허가를 받았죠.

신일숙 작가의 동명의 원작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MMORPG  <리니지>
실제 게임에선 만화의 설정만 가져왔을 뿐 스토리는 완전 다릅니다.

순탄치 않은 개발기간

<리니지> 개발은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1997년 당시, IMF 금융위기가 한국을 강타하면서 기업들이 줄줄이 파산하는 사태가 속출했습니다. 송재경이 몸담고 있는 아이네트도 예외는 아니었죠. 회사가 어려워지자 <리니지> 팀은 구조조정 압박에 시달렸습니다. 아이네트는 <리니지> 프로젝트를 전면 중단했고, 팀은 회사로부터 찬밥신세로 전락했죠. 만약 이때 팀원들이 흩어졌다면 지금의 <리니지>는 세상에 없었을 겁니다. 리니지 팀원은 실낱 같은 희망을 걸고 게임개발에만 몰두했습니다.

그러던 중 기사회생의 기회가 찾아왔죠. 아무도 보지 않은 이 게임을 유독 관심 있게 바라본 인물이 있었습니다. 바로 엔씨소프트의 창업자 김택진 대표죠. 그는 우연찮은 기회에 리니지 개발버전을 보고 이 게임에 인생을 걸어보기로 했습니다.

서울대학교 전자공학과를 나온 그는 대학 동아리에서 만난 이찬진씨와 함께 한글 워드프로세서인 아래아 한글을 만들었습니다. 대학 졸업 후 현대전자에 취업한 그는 돌연 잘나가는 대기업을 그만두고 벤처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당시 지인들은 “게임으로 밥 벌어 먹고 살수 있겠냐?”며 걱정부터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김 대표는 회사를 창업하자마자 계속되는 자금난에 시달려야 했죠. 이런 상황에서 송재경씨가 이끄는 <리니지>프로젝트를 만난 겁니다. <리니지>를 본 김택진 대표는 ‘바로 이거다!’며 무릎을 쳤다고 합니다. 아이네트에선 천덕꾸러기 신세였던 <리니지>가 그의 눈에는 미래의 가능성으로 보였죠. 마침 회사에서 팀이 퇴출위기에 몰리자, 그는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리니지 프로젝트를 인수했습니다. 물론 게임팀을 인수하기 위해 은행에 집까지 담보 잡힐 정도로 빚을 내야 했죠.

올해 20주년을 맞는< 리니지>. 지금의 화려한 수식어와는 달리 초창기에는 순탄치 않은 길을 걸었습니다.

 

한국형 MMORPG의 공식을 쓰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살아남은 <리니지>프로젝트는 1997년 마무리 됐습니다. 2년여의 개발 기간과 10개월의 테스트 기간을 거쳐 1998년 9월 첫 상용서비스를 시작했죠. 그리고 예상치 못한 흥행기록을 거뒀습니다. 서비스 2개월 뒤 동시접속자 1000명을 돌파하더니, 1999년 12월 1만 명, 2000년 12월 10만 명, 2001년 12월 3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처음엔 지루한 레벨노가다 게임으로 저 평가 받았지만 입소문을 타면서 순식간에 흥행게임으로 발돋움했습니다. <리니지>가 중요한 것은 단순히 대박을 쳤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바로 한국 MMORPG의 공식을 새로 쓴 것이죠.

지금까지 한국 RPG는 외국게임을 모방하는 선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따지고 보면 <창세기전> 같은 게임도 <파이널판타지>나 <드래곤퀘스트>같은 일본 RPG를 계승했고, <리니지>도 울티마를 한국식으로 만들어보자는 취지에서 시작됐죠. 처음엔 그렇게 시작했지만, 막상 나온 게임은 개발자가 의도한 방향과는 다르게 흘러갔습니다.

울티마 같은 게임을 만들기 위해 리니지를 개발했다고 합니다. (사진: 울티마 온라인)

 

그림으로 치자면 <리니지>는 여백의 미를 살린 동양화 같은 게임입니다. 개발자가 공급한 콘텐츠를 유저가 소비하는 수동적인 플레이방식에서 벗어났죠. 게임은 개발자가 만들되 콘텐츠의 방향은 유저 스스로가 결정하는 구조입니다. 유저는 게임 안에서 또 다른 룰을 만들 수 있습니다. 어떤 세계가 완성될지는 아무도 모르죠.

유저들은 게임 속에서 타인과 관계를 맺고, 경제활동을 하고, 정치행위를 하면서 자신들만의 스토리를 만들 수 있습니다. 개인의 이야기도 있지만 집단의 이야기도 만들 수 있죠. 혈맹을 결성하고, 상대편과 전쟁을 펼치면서 각자 독특한 계급구조를 보여주는데, 이는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외국게임에서 찾아보기 힘든 한국형 MMORPG만의 특징입니다.

<리니지>는 서버마다 스토리가 제 각각입니다. 죽도록 싸움만 하는 서버도 있고, 전쟁이 없는 서버도 있죠. 독재자가 나와 전횡을 펼치는 서버도 있고, 대중들이 힘을 합쳐 독재자를 몰아내는 서버도 있습니다. 운영자는 유저가 만드는 역사에 개입하지 않고 조력만 할 뿐이죠. 이렇듯 유저간의 욕망이 서로 부딪혀 역동적인 스토리를 만들어내죠. 그런 의미에서 <리니지>는 자의든 타의든 한국형 MMORPG의 공식을 확립한 건 틀림없습니다. 이후 출시된 MMORPG들은 대부분 <리니지>가 확립한 공식을 계승 발전시킨 역할을 하니까요.

1999년 리니지는 혈맹 중심의 공성전을 업데이트하면서 한국형 MMORPG 공식에 방점을 찍었습니다.
당시 공성전 콘텐츠는 유저들에게 충격과 동시에 환상 그 자체였었죠.

 

애증의 게임, 리니지의 그늘

<리니지>는 그 빛나는 성공만큼 그늘도 많았습니다. 먼저 태생적으로 아이템 현금거래의 딜레마에서 자유롭지 못했죠. MMORPG가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는 게임이다 보니 게임 안에서 잘나가는 아이템은 현금으로 수 천 만원에 팔려나갔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템을 팔아 돈을 벌어보려는 작업장들이 우후죽순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작업장은 게임을 좋아하는 청소년들의 값싼 노동력을 이용해 리니지 아이템을 모으고, 이를 시장에 팔았죠.

엔씨소프트도 아이템이 그렇게 비싸게 거래된다는 사실을 알고 당황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이템 현금거래를 철저히 금지시켰죠. 아이템 현거래 행위가 드러나면 계정을 삭제하는 등 강경하게 조치했습니다. 거래를 하다 계정을 정지당한 유저들이 회사로 찾아가 항의하는 일이 빈번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유저들이 회사 앞에서 시위를 벌이거나, 집단 소송으로 이어지기도 했죠.

필자는 이때 엔씨소프트가 아이템 현금거래에 관해 좀 더 신중하게 대처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처음 아이템 현금거래 문제가 지적됐을 때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지 않고 무조건 금지로 일관한 것이 지금과 같은 음성적인 거래시장을 키운 원인이 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만약 이때 유저들과 터놓고 진지하게 고민하고 대책을 내놓았다 어땠을까요? 유저의 사랑 못지않게 원망도 만만찮은 애증의 게임으로 남지는 않았을 겁니다.

초창기 리니지는 요정, 마법사, 군주, 기사로 시작했습니다. 특이한 것은 군주 캐릭터죠.
다른 캐릭에 비해 전투능력은 떨어지지만, 오직 군주캐릭터만이 혈맹을 만들 수 있습니다.
스탯으로 표현할 수 없는 리더십을 갖춘 캐릭터죠.

 

이보다 화려할 순 없다! MMORPG의 황금기!

<리니지> 이후 한국 MMORPG 시장은 전성기를 맞이 합니다. 대부분 ‘포스트 리니지’를 외치며 시장에 출사표를 내밀었죠. 어떤 게임이 나왔는지 일일이 꼽을 수도 없을 정도로 게임들이 많았습니다. 그야말로 MMORPG의 황금기였죠.

먼저 MMORPG의 본가 넥슨은 <바람의 나라> 이후 <어둠의 전설>과 <일랜시아>를 내놓았습니다. 둘 다 높은 자유도를 바탕으로 퀴터뷰 형식의 2D MMORPG로 개발됐죠.

쿼터뷰 방식의 2D MMORPG로 개발된 <어둠의 전설>

<바람의 나라>, <리니지>에 이어 만화를 원작으로 한 작품도 많이 나왔습니다. 1999년 말 황미나 작가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레드문>이 대표적이죠. 이 작품은 한때 <리니지>의 아성을 넘을 만큼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외에도 이명진 작가의 <라그나로크>를 원작으로 한 동명의 게임 <라그나로크 온라인>이 만화 원작게임의 흥행을 이어가죠.

초창기 MMORPG 흥행공식 중 하나는 만화를 원작으로 했다는 점이죠.
제이씨엔터테인먼트의 <레드문>과 그라비티의 <라그나로크 온라인>도 만화원작의 게임입니다.

 

 

무협살수 3인방의 시대!

무협배경의 MMORPG도 인기를 끌었습니다. 테울엔터테인먼트의 <영웅문>은 <리니지>가 나오기 전 한국 MMORPG 시장의 강자로 군림한 게임입니다. 이 게임은 당시 한국을 강타한 신무협 열풍을 타고,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습니다. 중국풍 무협에서 탈피해 한국을 무대로 한 새로운 무협판타지를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리니지>가 나오면서 권좌를 내주어야 했죠.

리니지가 나오기 전 한국 MMORPG 시장을 지배했던 <영웅문>. 이 시절 무협 콘텐츠의 힘은 대단했습니다.

 

<영웅문> 계보를 이은 무협게임은 1998년 출시된 <미르의 전설>입니다. <미르의 전설>은 고대 신화에 무협과 판타지를 절묘하게 섞은 퓨전 무협게임으로, 당시 주류였던 신무협의 실험 정신을 도입해 화제를 일으켰죠. <미르의 전설>은 국내에선 <리니지>에 밀려 큰 인기를 끌지 못했지만 이후 2편이 중국에서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성공가도를 달리죠.

<미르의 전설>로 탄력을 받은 액토즈소프트는 <천년>이라는 게임을 내놓으며 또 한번 MMORPG 시장을 호령합니다. <천년>은 여러모로 한국 무협RPG의 완성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소설을 통해 상상으로 떠올리는 무공 기술들을 화려한 2D 그래픽으로 표현했죠, 그래픽 뿐만 아니라 시스템 적으로도 무와 협을 정신을 잘 담아낸 수작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좋은 게임성에도 불구하고 서비스 초반 게임 외적인 문제로  인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야기했던 게임이기도 하죠. 어찌되었든 <천년>은 초반 부정적 이슈를 딛고 흥행적 면에선 대성공을 거둡니다.

한국 무협 RPG의 완성작이라 평가 받는 무협게임 <천년>

 

한편 <영웅문>을 만든 태울도 비장의 무기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2001년 11월, 태울은 영웅문의 후속작인 ‘신영웅문’을 공개했습니다. 수십 억 원의 개발비를 들이고, 톱스타를 광고모델로 기용하는 등 파격적인 마케팅을 펼쳤죠. 그 결과 신영웅문은 70만명이 넘는 회원 수를 확보하고, 수 만 명의 동접자가 발생했습니다. 초반 인기는 리니지의 아성을 뒤엎는 듯 했지만 뒷심이 약했습니다.

 

2D 시대의 황혼

 

<리니지>가 서비스된 1997년부터 2000년 초반까지, 한국 MMORPG는 그야말로 화려하게 만개를 했습니다. 셀 수도 없이 많은 작품들이 이 시대 등장했다 사라졌습니다. 2000년 이후 2D MMORPG는 급격히 황혼기에 접어듭니다. 인터넷 환경과 기술의 발전으로 MMORPG는 더 이상 낡은 그래픽에 머물 이유가 없었습니다.

2001년 출시된 <드래곤라자 온라인>과 <판타지포유>는 2D MMORPG의 마지막 세대의 작품입니다. 두 작품 모두 대규모 자본과 엄청난 기대를 안고 출시된 대작 게임들이죠. <드래곤 라자 온라인>은 이영도 작가의 동명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게임입니다. 이름값만으로도 기대를 한 몸에 모았죠. 하지만 거대한 원작과는 달리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리니지>와 비슷한 게임성으로 실망을 안겨 주기도 했습니다.

 

 

2000년대 초반 2D MMORPG의 황혼기에 출시된 <드래곤 라자 온라인>
역대급 원작을 기반으로 엄청난 제작비와 마케팅을 쏟아 만든 블록버스터 게임이었죠.

 

<판타지포유>는 가수 김건모 씨의 동생 김동건 씨가 만들어 화제가 된 게임입니다. 물론 김건모씨가 게임 광고에도 출연했었죠. 이 게임은 2D MMORPG 연출의 끝판왕을 보는 것 같은 화려한 그래픽이 특징입니다. 호쾌한 타격감과 독특한 세계관 연출로 일찌감치 <리니지>를 잡을 유력주자로 알려진 게임이죠.

하지만 아쉽게도 게임 퀄리티는 좋지만 운영면에 허술한 부분이 드러나 실패한 게임입니다. 불안정한 서버와 극악의 노가다 플레이로 유저들의 불만을 샀었죠. 결국 2003년 서비스가 종료되면서 게임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이후 제작진은 후속작을 개발했으나 어쩐 이유에선지 개발이 중단되고 말았죠. <판타지포유>는 좋은 게임성에도 불구하고 운영 때문에 실패한 비운의 게임으로 남아있죠.


이덕규(게임 칼럼니스트) 게임잡지 피시파워진 취재부 기자를 시작으로 게임메카 팀장, 베타뉴스 편집장을 거쳐 현재 게임어바웃 대표 및 게임칼럼니스트로 활동 중. 게임을 단순한 재미로 보기보다, 게임의 문화적 가치를 살리는데 관심이 많다. 고전부터 최신 게임까지 게임의 역사를 집필하면서 게임을 통해 사회를 보는 창을 제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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