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DE NC #7 창작의 의미

엔씨소프트 R&D센터의 건축적 가치와 아름다움을 살펴보는 ‘INSIDE NC’.

판교테크노밸리의 상징적 건물로 자리매김한 엔씨소프트 R&D센터는 최고의 게임을 꿈꾸는 사람들이 한 데 모인 꿈과 목표의 공간입니다.

이번 ‘INSIDE NC’ 마지막 편에서는 대한민국 대표 문화 콘텐츠인 게임 산업을 이끌어가고 있는 크리에이터들을 위해 마련된 게임 회사 사옥의 의미와 그 가치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관문의 형상은 일종의 액자가 되어 보이드 너머의 풍경을 담는다. 이는 전통 건축에서 즐겨 쓰는 ‘차경’ 기법이다. 네모난 창문으로 재단된 바깥의 풍경은 벽에 그림은 걸어둔 것과 유사한 효과를 준다. 이렇게 자연으로부터 빌린 경치는 실내에 속한 사람에게도 자연의 일부가 된 소속감을 전한다.

그렇다면 판교테크노밸리에서 눈에 담을 자연은 무엇일까. 주위로 운중천이 흐르고, 이 지류를 따라 여러 공원이 시민들의 쉼터로 사랑 받고는 있지만 울창한 산림이 병풍을 두른 자태와 비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바야흐로 도시에서만 자란 세대에게 건물이 밀집한 풍경은 익숙한 자연이다. 이들에게는 수직으로 뻗은 아파트 숲이나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자동차 무리가 더 고향의 정취인 것이다.

판교 일대는 이미 그 자체로 고유의 특성을 지녔다. 엔씨소프트 R&D센터라는 거대한 액자가 담는 풍경이란 그런 것이다. 인공적으로 계획된 개천과 근린공원에 심은 식수들의 고즈넉한 정취, 이들과 대비되는 콘크리트 아파트의 무표정, 그 안에서 발아 중인 중산층 가정의 행복, 밤늦도록 불을 밝힌 IT 기업들의 열정.

관문은 누구에게나 흔쾌히 열려있다. 도심의 인구는 이를 통해 녹지로 쉽게 접근하고, 변화하는 계절의 기운은 도심으로 퍼져간다. 거대한 공백은 ‘차경(借景)’을 넘어 서로의 경계를 이은 ‘연경(連境)’인 셈이다.

주변의 자연 경관과 어우러지는 모습의 엔씨소프트 사옥 전경

지극히 현대적인 디자인에 인격을 부여하는 방식은 입면에 반복적으로 돌출된 장식에도 적용되었다. 3mm 두께의 알루미늄 시트로 마감한 돌출부의 숫자는 엔씨소프트 사옥에 몸담고 있는 직원의 수와 대동소이하게 산정한 것이다. 한옥 처마의 서까래를 닮은 형태가 지붕을 받치는 데 있어 실질적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직원 각자가 기업을 안정적으로 지탱하는 주인이며 이들이 한데 모이면 엔씨소프트를 대표하는 이미지가 된다는 개념이다.

또한 동일한 간격을 두고 반복되는 패턴은 디지털 세상을 구성하는 0과 1이기도 하며, 이러한 개념은 삼성동 사옥에서부터 줄곧 이어온 주요 디자인 컨셉이기도 하다. 사옥이란 무릇 기업의 정체성을 나타내고 직원들의 소속감을 고양시켜야 한다. 하지만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듯, 이러한 특성을 은연중에 품고 있는 경우도 있다. 아마도 현대에 짓는 모든 오피스 빌딩이 태생적으로 갖는 미덕일 것이다.

엔씨소프트 R&D센터에서는 평면을 구획하는 모듈이 그러하다. 여러 가지 편의를 위해 건물 내의 수직적 이동을 담당하는 엘리베이터와 비상계단을 중심으로 화장실, 전기, 공조실 등은 매 층 동일한 위치에 놓여 있다. 이들은 타워를 지지하는 굳건한 척추가 되기 때문에 코어(Core)라는 명칭을 갖는데, 이러한 코어를 평면상 어디에 두는지, 또 얼마나 차지하는 지에 따라 건물 전체의 구성이 결정된다.

실상 코어의 규모는 사용자 수에 따라 법적 근거를 토대로 산출되는 만큼 획기적으로 달라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사무실 내부를 어떻게 구획할 것인지, 직원들은 어떤 동선을 따라 움직일 것인지, 몇 명의 직원이 모여 하나의 부서를 이룰 것인지 등 업무 효율과 직원 편의를 도모하는 데 달려있다.

판교의 야경 속에서 빛나는 엔씨소프트 사옥

엔씨소프트에서는 남측은 사무 공간, 북측은 연구와 회의 공간으로 양분하고 이를 위해 코어는 평면의 중심이 아닌 측면에 두었다. 결과적으로 일반적인 오피스 코어에서의 구성과 달리 화장실을 외벽에 면하게 둠으로써 화장실에서 창문을 통한 자연 환기가 가능해졌다.

코어의 외부로는 바닥과 벽을 지지하기 위한 수직 기둥을 세우는데, 그 반복되는 모듈은 12m x 12.6m로서 정사각형에 가까운 규격이 평면을 확장하는 기본 단위가 된다.

철골 콘크리트 기둥은 이 간격을 유지하며 지상 12층에서부터 지하 5층을 수직으로 관통한다. 사무실 내부의 모든 구획은 이 기둥을 적절히 품거나, 교묘하게 숨기거나, 부딪히지 않게 피하면서 이루어진다. 직원이 업무를 보는 책상의 배치와, 회의실의 크기에서, 여러 행사가 열리는 컨벤션홀, 신체활동을 위한 피트니스까지 사옥에서 일어나는 행위들은 일률적인 규칙을 따르고 있는 셈이다.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직원들의 엘리베이터 또한 이러한 규칙의 소산이다. 지하 4층까지 쾌속으로 내려가면 한 번에 280대의 자전거를 수용하는 주차장에 도달한다. 페달을 밟는데 익숙한 사람들이라도 사무실까지 걷는 길은 번거롭지 않다. 운동에 지친 통근자에게 주는 선물처럼 내부 코어가 자전거 주차장에서 매우 가깝기 때문이다.

지상에서 지하로 곧바로 연결되는 자전거 전용 주차장

비록 그 규모가 세세한 단위로 지각될 정도로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하나의 건축에 적용되는 디자인들은 사용자의 신체와 경험을 반영하고 있으며, 이때 고려 대상이 되는 최소 단위는 언제나 한 명이다. 게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MMORPG장르에서 제작자들은 대규모의 다중 접속자를 염두에 두지만 모니터 앞에 앉은 게이머 한 명의 시점에 스스로를 가장 자주 대입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결국 현실이든 가상이든 특정 ‘세계’를 창조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언제나 동일한 선상에서 출발한다. 우리가 누군가를 직접 대면하지 않아도, 혹은 말을 하지 않는 사물과도 어느 순간 연결된 기분을 느끼는 데에는 내가 중심이 되어 이루어진 창작의 세계를 감지했기 때문일 것이다.

완벽한 방음시설이 갖춰진 개별 사운드실(위)과
대한민국 게임회사 최초로 사내에 구축된3D 스캔 스튜디오(아래)

지하주차장 등의 편의 시설에서부터, 카페 LINC와 라운지와 같은 휴식 공간, 엔씨푸드코트와 피트니스, 메디컬센터로 대표되는 복지 공간, 게임 회사에만 존재하는 전문 업무 공간, 그리고 이러한 모든 개념을 종합한 12층의 라이브러리까지.

직원들을 위해 세세하게 직조된 엔씨소프트 R&D센터는 작은 생태계에 버금갈 정도로 유기적으로 얽혀있다. 그 안에서 부딪히며 꿈틀대는 에너지는 공간과 사람, 사람과 자연, 자연과 사물 사이에서 순환하며 다양한 형식의 세계로 모습을 갖추어갈 것이다.


배윤경 도시와 건축에 대해 글을 쓰는 칼럼니스트다. 연세대학교와 네덜란드 베를라헤 인스티튜트에서 건축을 전공했으며, 단국대와 연세대에서 건축 이론과 디자인을 강의한다. 주요 저서로는 <암스테르담 건축기행>, <어린이들을 위한 유쾌한 세계건축여행>, <DDP 환유의 풍경(공저)>, <가까스로 반짝이는>이 있다.

 

INSIDE NC #1 현대 문명에서의 오피스

INSIDE NC #2 함께 살아가는 보금자리

INSIDE NC #3 이웃과 더불어 사는 공간

INSIDE NC #4 빛, 공기 그리고 위생

INSIDE NC #5 엔씨소프트의 어번 보이드(Urban Void)

INSIDE NC #6 구름 위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