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과 심리학 #2 게임 플레이와 도파민 이야기

심리학의 관점에서 현 시대의 게임에 대한 가치와 의미를 되짚어 보는 ‘게임과 심리학’.

문화심리학자 이장주 박사가 들려주는 ‘게임과 심리학’ 2편에서는 우리에게 즐거움과 행복을 선사하는 신경전달물질 도파민과 게임 플레이의 관계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여행은 준비할 때가 가장 즐거운 법입니다. 막상 여행지에서 겪는 낯선 경험은 그리 유쾌한 것이 못되지요. 그러나 여행에서 돌아와 그 고생했던 경험을 회상하는 일은 어느새 즐거운 기억으로 변합니다. 덕분에 여행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부동의 1위로 꼽히는 여가 활동이지요.

좋은 것들은 쉽게 얻기 어렵습니다. 시간, 돈, 마음의 여유 같은 현실의 벽이 가로막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게임의 세계로 훌쩍 여행을 떠납니다. 꿩 대신 닭이라고 해야 할까요?

 

# 신이 선사한 선물, 도파민

우리 몸에서 체험하는 경험은 여행이나 게임이나 구조적으로 다르지 않습니다. 그 핵심에는 도파민(dopamine)이라는 신경화학물질이 있기 때문입니다.

흔히 도파민은 쾌감을 일으키는 물질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중독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단골손님이 되기도 하지요. 하지만 이건 도파민이 수행하는 많은 기능들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해서 생긴 편견이라고 생각합니다.

도파민의 주요한 역할은 운동, 학습, 주의, 정서 등의 아주 다양하고 중요한 기능을 담당합니다. 도파민이 작동해야 어려움을 극복하고 지속적으로 노력하여 성취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때 모든 사람은 쾌감을 느끼게 되지요. 즉 쾌감이란 그냥 신체적인 감각이 아니라 무언가 유능해지고 있다는 신체 신호인 겁니다.

‘행복 호르몬’이란 별칭이 붙은 신경전달물질 도파민

 

# 지루함을 참는 것은 위험한 일?!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하고 싶지 않은 일만 하고 사는 것을 불가능합니다. 유능함의 반대 방향으로 작동하는 것은 몸에서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초기에는 지루함으로, 더 심해지면 우울감으로 나타납니다.

일생에서 도파민이 가장 많이 분비될 때는 사춘기입니다. 몸과 마음이 성장하며 빠르게 유능해지는 시기이기 때문이지요. 자신이 유능해질 수 있는 분야를 탐색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해리스(Harris)라는 학자의 2000년 연구에 의하면, 강의와 수업을 듣는 것은 많은 청소년들이 유능감을 느끼지 못하는 대표적인 활동입니다.

너무 어렵게 설명했나요? 그냥 지루하다는 뜻입니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거나 창의력을 발휘할 수 없는 경우 지루함은 더 참을 수 없게 됩니다. 상처가 났을 때 대처할 수 있도록 신호를 주는 통증과 같은 원리입니다.

메리필드(Merifield)와 동료 연구자의 2014년 연구를 보면 흥미로운 결과를 알 수 있습니다. 지루한 영화를 보고 있는 사람은 재미있거나 슬픈 영화를 보고 있는 사람보다 심장박동수가 증가했다는 겁니다. 지루함을 그냥 참고 있다가는 큰일 나는 겁니다. 마치 자동차의 액셀과 브레이크를 같이 밟고 있는 상황이라고나 할까요?

엄마, 언제 퇴근해요 ㅠㅠ #세상_위험한_강아지

이럴 때 사람들은 일상에서 탈출을 시도합니다. 그리고 이런 시도는 짜릿함을 안겨주지요.

과거에 약물이나 범죄 혹은 오토바이 폭주와 같은 현실적인 위협을 주는 일탈 행위들이 주를 이루었다면, 최근에는 액션, 스릴러 영화나 게임이 그런 탈출구 역할을 합니다. 위험천만한 상황에서도 무사하게 지낼 수 있다는 것처럼 유능함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기회는 드물지요.

그런 점에서 요즘 문제가 있다는 게임들은 도파민 수준에서 볼 때 “오! 그거 해 볼 만한 게임이네.”, “이거 나를 위한 게임이네!”라는 신호를 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를 뒷받침할 만한 연구가 있습니다. 스카이다이버를 대상으로 한 우드맨(Woodman)과 동료들의 2008년 연구를 보면, 자신의 삶에 대해서 답답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스카이다이빙을 하고 나면 그런 기분이 해소되었다고 합니다. 삶이 답답할수록 하드코어 게임을 더 매력적으로 느낄 가능성이 시사되는 연구라고 하겠습니다.

우리에게 톰 크루즈가 필요한 이유 #믿고보는_톰형

 

# 때때로 게임이 지루해지는 이유

그래서 사람들이 중독에 빠지는 것 아니냐구요? 만일 이런 의문이 있으시다면 도파민을 과소평가하신 겁니다. 도파민은 아주 중요한 기능을 하는 만큼 요긴한 곳에만 사용하는 소중한 자원입니다.

도파민 연구의 개척자 슐츠(Schultz)는 원숭이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도파민이 ‘기대’와 연관된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원숭이에게 사과주스를 주기 전에 신호를 주었더니 도파민 수용기가 반응하더라는 겁니다. 무언가 좋은 것을 얻었기에 분비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기대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 때 분비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여행을 계획할 때 즐겁고, 입시에서 입학식날보다는 합격자 발표 날이 더 기쁜 이유라고 할 것입니다.

슐츠의 도파민 실험 논문 중 #원숭이_손가락_시선강탈

그런데 기대라는 것은 반복되면 될수록 무뎌지기 마련입니다. 불타던 사랑도 식어가듯, 밤낮없이 즐기던 게임도 어느덧 무료해집니다. 더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기가 싫어지는 것이죠. 중독의 핵심 증상인 내성(tolerance)과 금단 현상(withdrawal symptoms)이 게임에는 없다는 근거이기도 합니다.

뽀로로에 열광하던 아이가 자라면 뽀로로를 시시해 합니다. 뽀로로보다 더 많은 지식과 능력을 갖게 되었을 때지요. 그때쯤 터닝메카드와 같은 좀 더 어려운 장난감에 열광합니다. 그리고 더 커서 형들이 하던 롤과 배그를 할 때쯤 되면 터닝메카드는 거들떠 보지도 않게 됩니다.

이 모두가 도파민의 변화가 만들어 낸 현상입니다. 게임에 영원히 빠져 살 것이라는 생각은 뽀로로나 터닝메카드를 영원히 즐길 것이라고 믿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아이들의 성장이 막힘없이 이루어진다면 말입니다.

 

# 도파민이 게임 플레이에 미치는 영향

게임 초기에 파밍을 충분히 한 게이머는 중반 이후 자원이나 아이템을 얻고자 노력하지 않습니다. 인생도 비슷합니다. 인생 초기에 새로운 재료를 얻기 위해 다량의 도파민이 필요했다면, 인생 후반부는 새로울 것이 크게 없는 반복의 연속입니다.

중년기가 되면 이제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한 과업이 됩니다. 짜릿함보다는 은근한 안락함을 추구하게 됩니다. 이런 예측 가능한 안락함은 새로움이 선사하는 쾌감을 희생해야 얻을 수 있는 기쁨입니다.

인생을 알아갈수록 도파민 < 세로토닌, 옥시토신

나이가 들수록 도파민 분비량은 줄어듭니다. 대략 10살이 늘어날 때 마다 10% 가량이 줄어든다고 합니다. 대략 20살 때를 100으로 본다면 40세에는 80 수준, 60세에는 60 수준으로 떨어지는 셈입니다. 옥시토신이나 세로토닌 같은 신경화학물질이 도파민의 자리를 이어받게 됩니다. 그리고 게임이 예전처럼 재미가 없어집니다.

사람들은 평균 33세부터 더 이상 새로운 음악을 듣지 않는다는 조사가 있었습니다.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 스포티파이(Spotify)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랍니다. 이 분석에 의하면, 10대는 대중음악에 심취하지만 20대를 지나면서 점차 흥미가 떨어지고 30대에는 음악 취향이 성숙해진다고 합니다.

기존에 이용하던 것들보다 좋은 것이 나와도 새롭게 무언가를 하는 것이 귀찮아서 원래 하던 것을 지속한다는 겁니다. 특히 남성들에게서 잘 나타나는 이런 현상을 ‘자물쇠 효과(lock in effect)’ 라고도 하는데, 굳이 신경화학물질로 설명하자면 도파민이 줄어든 탓이라 하겠습니다.

이분도 자물쇠 효과 탓? #마크저커버그

음악이나 게임이나 콘텐츠를 소비하는 패턴은 비슷한 점이 있는 듯합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의 나이가 30대 중반 이전이라면 열심히 새로운 게임들을 찾아 즐기시길 바랍니다. 왜냐하면 평생 동안 즐길 게임 목록이 곧 마감되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은 아닙니다만, 저를 돌아볼 때 진짜 그런 듯합니다. 중장년을 지나고 있는 독자 여러분들께서는 어떠신가요?


이장주 문화심리학자. 평범한 사람들이 더 활력 있고, 즐겁게 살 수 있는 길을 찾다가 게임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현재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재직 중이며, 심리학의 관점에서 문화적 이슈를 다루는 글쓰기와 강연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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