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RPG의 위대한 계보 #7 한국 RPG의 찬란했던 시절, 3D MMORPG 시대

2000년대 초부터 2D MMORPG 시대는 황혼기를 맞이합니다. 그리고 최신 그래픽 기술로 무장한 3D MMORPG가 시장의 대세로 자리잡았죠. 3D로 구현된 게임세상은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시각적 충격을 가져왔죠. 먼저 시야가 자유로웠습니다. 고정된 시점에서 벗어나 다양한 각도로 주위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죠. 가까이에 있는 풀 한 포기부터 멀리서 보이는 하늘과 지평선까지, 다양한 시점에서 게임세상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캐릭터의 액션과 그에 따른 다양한 효과들도 늘었습니다. 2D에서 표현하지 못한 다양한 액션들은 게임을 더욱 화려하게 만들었죠.

이것은 한마디로 혁명이었습니다. 표현의 한계를 완전히 바꾸어놓았죠. 사람들은 3D MMORPG의 경이로운 세계에 매료됐습니다. 성능 좋은 개발 엔진들이 나왔고, 개발자들은 엔진을 분석하고 응용해 최고 퀄리티의 MMORPG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막대한 게임 데이터를 담아내기 위한 서버 기술력도 일취월장 했습니다. 3D MMORPG는 한국 게임의 찬란했던 시대를 수놓았죠.

한국에 본격 3D MMORPG 시대가 도래 할 즈음,
외국에선 에버퀘스트나 다크 에이지오 브카멜롯 등의 3D MMORPG가 인기를 끌고 있었죠.

 

미리내 3인방, 뮤 온라인을 만들다

본격 3D MMORPG 시대의 문을 연 게임은 2001년 서비스를 시작한 <뮤 온라인>입니다. 당시 한국 온라인게임 시장은 <리니지>의 독무대였습니다. 대부분 MMORPG들은 <리니지>의 벽을 넘지 못하고 시장에서 사라지거나, 혹은 <리니지>를 그대로 베낀 양산형 게임이 범람했던 시기였죠. 이때 등장한 <뮤 온라인>은 유저들에겐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3D로 표현된 그래픽은 속된 말로 뽀대 부터가 달랐죠. <뮤 온라인>은 작정하고 화면 곳곳에 화려한 임팩트로 도배를 했습니다. 캐릭터의 움직임을 보고만 있어도 흐뭇할 정도였죠.

새로운 시대의 막을 연 뮤 온라인. 놀랍게도 미리내 출신의 개발자 3명이 만들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이 게임을 단 세 명의 개발자들이 만들었다는 겁니다. <뮤 온라인>을 만든 김남주, 조기용, 송길섭 3인방은 한국 게임사에 큰 획을 그었던 미리내소프트 출신 개발자입니다. 그들이 웹젠이란 회사를 차리고 만든 첫 작품이 <뮤 온라인>이죠. 당시 네크워크 기술력으로는 불가능할 것이라 여겨졌던 3D MMORPG를 단 세 명의 개발자만으로 완성했다는 자체가 놀라운 것이었죠.

뮤 온라인은 이후 ‘뮤 오리진’이라는 모바일 게임으로 리메이크되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뮤 온라인>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서비스 한달 만에 개발비를 모두 회수할 만큼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 게임이 얼마나 성공했는지, 웹젠은 코스닥 등록에 이어 국내 게임사로서는 최초로 나스닥에 상장하는 놀라운 성과를 거뒀죠. 특히 <뮤 온라인>은 PC방에서 큰 인기를 끌었죠. 당시 PC방에선 <리니지> 못지 않은 인기를 끌었던 작품이었습니다. 어쨌든 <뮤 온라인>을 만든 웹젠은 <리니지>를 만든 엔씨소프트에 이어 한국 게임의 두 번째 성공신화로 이름을 남기게 됩니다.

 

본격 3D MMORPG 시대의 도래

<뮤 온라인>은 3D MMORPG의 가능성을 열었습니다. 하지만 이 게임은 반쪽 짜리 3D게임이었죠. 캐릭터만 3D로 표현되고 기타 배경 등은 2D 그래픽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때문에 게임플레이도 <리니지>나 <디아블로>를 하든 고정된 시점에서 진행해야 했죠. 엄밀히 말하자면 그래픽만 화려한 2.5D 게임이었죠. 풀 3D MMORPG의 역사는 <뮤 온라인>보다 한달 늦게 출시된 <라그하임>부터 시작됩니다.

뮤 온라인에 이어 3D MMORPG 시대를 이끌었던 또 하나의 걸출한 게임 라그하임.

<라그하임>은 2002년 3월 정식 상용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캐릭터와 배경을 모두 3D로 구현했고, 시점도 자유로이 조작이 가능했죠. <라그하임>은 설정부터 독특했습니다. 판타지와 무협 일색이었던 기존 게임과는 달리 <라그하임>은 판타지와 SF를 적절히 섞어 나름 차별화된 세계관을 보여주었죠.

외계 행성에서 인류의 생존자들이 외계종족들과 싸운다는 설정의 이 게임은 독특한 캐릭터와 다양한 종족들이 등장하죠. <라그하임>은 서비스 되자마자 최단기간 회원 수 100만 명을 돌파하며 대박을 쳤습니다. 비록 <뮤 온라인>의 그늘에 가려 초대박 반열에 오르진 못했지만, 20년이 다되어 가는 지금까지도 꾸준히 서비스되고 있는 롱런 타이틀이죠.

서비스 17년! 이 정도면 게임과 유저가 함께 나이 들어 간다는 게 실감 날만 하죠.

 

월드컵 세대 3인방의 등장

이밖에 <엔에이지>, <탄트라>, <프리스톤 테일> 등 2002년 월드컵 전 후로 출시된 MMORPG들이 연달아 성공하면서 한국의 RPG 전성기는 다시 찾아왔습니다.

이 게임들은 하나같이 높은 기술력과 실험적 시도를 내세워 자기만의 색깔을 만들어냈습니다. <엔에이지>는 <드래곤 라자 온라인>을 만든 이소프넷이 작정하고 만든 3D MMORPG로, 현대를 배경으로 한 점에서 독특했습니다.

3D 시대에 빠르게 발맞춰 출시된 엔에이지, 탄트라.
천편일률적인 서양 판타지의 공식을 깨고 나름 독특한 세계관과 설정으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탄트라>는 스타크래프트와 디아블로를 국내 출시한 한빛소프트가 만든 MMORPG 입니다. 제목처럼 인도의 탄트라를 소재로 동양과 서양의 판타지를 접목시킨 독특한 세계관으로 주목 받았죠. 불교 세계관을 담아서인지 용어나 설정 등이 다소 난해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게임성 면에선 좋은 평가를 받았죠.

<프리스톤 테일>은 당시 최고의 연예기획사였던 예당 엔터테인먼트가 게임 업계로 진출하면서 만든 데뷔작입니다. 풀 3D 그래픽으로 제작되었고, 6등신의 귀여운 캐릭터와 깊이 있는 세계관이 특징이죠. 당시 게임사들은 엄두도 못 냈던 연예인 광고를 전면에 내세우는 등 본격적인 스타마케팅 시대를 연 게임이죠. 게임 광고를 맡았던 하지원의 리즈 시절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이 게임도 지금까지 꾸준히 롱런하며 유저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연예기획사 예당에서 만든 프리스톤 테일. 본격적인 스타마케팅의 시대를 열었죠.
사진은 당시 프리스톤 테일 모델로 활약한 리즈 시절 하지원.

한국 MMORPG, 꽃 길만 걸었다

2002년 이후, 한국 MMORPG는 그야말로 꽃 길을 걸었습니다. 나왔다 하면 성공하는 시대였죠. 이때부터 한국 RPG는 국내는 물론 세계시장에서 통하는 문화 콘텐츠가 됐습니다. 2000년 MMORPG의 맏형 격인 <리니지>가 2000년 대만에 진출해 성공했습니다. 당시 현지에서 <리니지>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냐 하면, 통신망이 폭주해 대만의 국가 전산망까지 마비시킬 정도였죠. 결국 현지 사업자 감마니아가 따로 데이터센터를 구축할 만큼 <리니지>의 인기를 폭발적이었습니다.

리니지는 대만에, 라그나로크는 일본에, 그리고 미르의전설2는 중국 본토까지.
K-POP보다 앞선 게임 한류 바람이 거셌던 시절이었죠.

2년 후인 2002년, 이번에는 위메이드의 <미르의전설2>가 중국 본토에서 대박을 쳤습니다. 14억 중국 시장은 다른 나라와는 차원이 다를 만큼 엄청난 시장입니다. 무협게임으로 제작된 <미르의 전설2>는 중국 유저들에게 그대로 통했죠. 현지 서비스 1년만에 동시 접속자 35만명을 기록했고, 2005년에는 70만명을 돌파했습니다. 하지만 현지 서비스사인 샨다와의 게임 저작권 문제로 지금까지 법적 공방을 계속하고 있죠. 게임이 잘 되도 걱정인 모양입니다.

이밖에 그라비티의 <라그나로크>는 일본시장에 진출해 성공했습니다. 게임 종주국 일본에서 통할만큼 한국 MMORPG의 수준은 올라가 있었던 것이죠. 이렇듯 국내외 성공을 힘입어 엔씨소프트는 <리니지>의 후속작을 조심스럽게 꺼내놓았습니다. 한국 MMORPG 역사에 또 하나의 획을 그은 <리니지2>가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것이죠. <리니지2>는 지금까지 한국형 MMORPG의 특성을 집대성한 작품으로 세간의 엄청난 기대를 한 몸에 받았습니다.

 

한국형 MMORPG 문법의 정석! 리니지2

2000년 이후 한국 MMORPG는 성숙 단계로 접어듭니다. 극단적 레벨 업 플레이와 유저들간의 커뮤니케이션 중심의 게임문화는 한국 RPG의 새로운 문법으로 자리잡았죠. <리니지2>는 한국형 MMORPG가 가진 특징을 최대로 끌어올린 게임입니다.

2003년 <리니지2>가 나올 때쯤엔 시장도 달라지고 있었습니다. <바람의 나라>, <리니지>, <뮤 온라인>처럼 몇몇 개발자들이 열정만 가지고 만들던 시절은 끝났습니다. 수백억 원의 자본과 수 많은 개발자가 투입된 거대 프로젝트로 성장했습니다. 소위 블록버스터 게임 시대가 열린 것이죠.

소수의 몇몇이 열정만으로 게임 만들던 시절은 끝났습니다.
리니지2는 대규모 자본과 수많은 개발인력이 투입된 블록버스터 게임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리니지2>는 2002년 도쿄게임쇼에서 첫 선을 보였습니다. 당시 현장의 반응은 대단했다고 합니다. 애니메이션에서 튀어나온 듯한 미끈미끈한3D 캐릭터는 그 자체만으로도 경탄을 자아냈죠. 3D로 구현된 대규모 공성전은 영화 속 실제 전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실감났습니다. 당연히 <리니지2>는 블리자드의 <월드오브워크래프트>와 함께 MMORPG 시대의 전성기를 수놓을 최고 기대작으로 자리매김 했습니다.

 

웃지 못할 해프닝, 청불판정과 대통령상

2003년 7월, <리니지2>가 오픈 했습니다. 처음엔 좀 삐걱댔습니다. PC방 불매운동에 부딪혔고, 폭력성과 선정성을 이유로 청소년불가 판정을 받기도 했죠. 하지만 이런 해프닝에도 불구하고 <리니지2>는 오픈 일 주 만에 동시접속자 5만 5천명을 돌파하며 예상된 성공가도를 달렸습니다.

그 해 12월 <리니지2>는 대한민국 게임대상 대통령상을 수상했습니다. 청소년불가 게임이라는 ‘오명’과 함께 한국 대표 게임 이라는 ‘명예’를 동시에 얻은 셈이죠. 지금이야 웃어넘길 해프닝이지만, 당시 게임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이렇듯 이중적이었습니다.

시점을 밑에서 올려다보면 치마 속이 보인다는 이유로 선정성 논란에 휘말렸던 리니지2 엘프 캐릭터.

게임의 성공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엄청난 기대작인만큼 이 정도 성과는 당연한 것이었죠. 사람들은 <리니지2>가 한국형 MMORPG에 변화를 가져오길 기대했습니다. 그리고 게임의 진면목은 게임을 하는 유저들에 의해 발휘됐습니다.

 

바츠 해방 전쟁과 한국형 RPG의 스토리텔링

<리니지2>는 지금까지 게임에서 한 번도 보여주지 못한 새로운 서사 패러다임을 보여주었습니다. 사실 초창기 <리니지2>는 <리니지>에서 넘어온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리니지>에서 억압 받았던 피지배 계층들이 마음 놓고 게임 할 곳을 찾아 <리니지2>로 대거 이주한 것이죠. 게임 초반에는 서버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전쟁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서버 내 권력자에 항거한 ‘반왕 전쟁’이 3D 그래픽으로 화려하게 펼쳐졌습니다.

유저들은 마치 현실의 역사처럼 게임 속 전쟁 스토리에 몰입했습니다. 그리고 2004년 6월, 전대미문의 사건이 리니지2의 메인 서버인 바츠 서버에서 일어났습니다. 게임 속 피지배 계층들이 서버를 장악한 거대 권력자들을 몰아낸 초유의 사건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 전쟁은 <리니지2>뿐만 아니라 한국 온라인게임에 엄청난 영향을 줬습니다. 유저들은 소위 ‘내복단’이라는 시위대를 결성해 거대혈맹의 횡포에 대항했죠. 결국 권력자를 몰아내고 서버의 주도권을 잡았습니다(결국엔 실패했지만요).

리니지 뿐만 아니라 한국 게임사에도 한 획을 그은 바츠해방전쟁.
왜 그 많은 게임 중 리니지2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욕망을 펼칠 최적의 공간

<리니지2> 바츠 이야기는 게임을 넘어 사회적으로도 이슈가 됐습니다. 많은 매체에서 ‘사이버 세계의 시민혁명’이라 보도했으며, 개발자들도 이 사건을 표본 삼아 ‘디지털 스토리텔링’을 벤치마킹 했습니다. ‘전쟁’과 ‘전투’를 위주로 한 RVR 콘텐츠가 이후 MMORPG의 필수 조건이 됐습니다. 이 사건 이후 <리니지2>의 동시접속자는 10만 명을 돌파해 전작을 능가하는 수준에 올랐습니다. 2008년 그레시아 업데이트 때 최고 동시접속자 15만 명을 기록하며 전성기를 맞았습니다.

게임 흥행의 일등공신은 플레이어들입니다. 이들은 개발자가 만들어 놓은 콘텐츠를 소비하는데 그치지 않고, 스스로 자신들만의 콘텐츠를 만들어냈습니다. 누구는 그것을 ‘디지털 스토리텔링’이라 하고, 누구는 ‘새로운 서사 패러다임’이라고 합니다. <리니지2>는 유저들의 ‘욕망’이 부딪히는 최적의 공간으로 선택 받았죠. 그들의 욕망이 한곳에 모여 거대한 ‘디지털 서사’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유저들 강한 열정은 한국 MMORPG에 ‘약’이 됨과 동시에 ‘독’이 되기도 했습니다. 극심한 레벨업 노가다 시스템,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 도를 넘은 아이템 현거래와 운영자들의 모르쇠 운영까지… 게임이 흥행하면 할수록 유저들의 신뢰는 낮아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계속 됐죠. 성공에 심취한 한국 RPG는 유저들의 목소리에 귀는 닫고 오만해지기 시작했죠.

10년이 지난 지금, 그 어떤 게임에서도 과거 바츠해방전쟁 같은 사건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리니지2는 선택 받은 게임입니다.

시장을 강타한 또 다른 태풍!

적어도 <리니지2>가 잘나가던 시절까지, 한국 RPG는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이때는 두려운 게 없었죠. 그러나 아쉽게도 역사는 이대로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2004년, 한국 RPG의 뿌리까지 흔들어 놓은 거대한 태풍이 몰아칩니다. 바로 블리자드 발 태풍 <월드오브워크래프트>가 한국에 상륙한 것이죠. 1990년대 한국 패키지 RPG가 <디아블로>를 맞아 악전고투했다면, 이번에는 <월드오브워크래프트>에 맞서 힘겨운 사투를 펼쳐야 했습니다.

<월드오브워크래프트>는 리니지 형제가 쌓아놓은 한국형 MMORPG의 문법을 가볍게 뭉개버리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습니다. 싸움의 룰을 바꿔버린 것이죠. 와우를 해본 유저들은 한국형 MMORPG가 얼마나 지루하고 재미없었는지를 깨닫게 됐습니다. 잘나갔던 한국 MMORPG의 속살이 드러나게 되죠. 사상 최악의 실패라고 할 수 있는 ‘빅3’의 몰락은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다음 회에 다뤄보기로 하죠.

와우가 한국에 상륙하면서 유저들은 지금까지 즐겼던 한국형 MMORPG가 얼마나 재미없고 지루했는지를 알게 됩니다.
한국 RPG는 밑바닥에서부터 다시 고민해야 했죠.


이덕규(게임 칼럼니스트) 게임잡지 피시파워진 취재부 기자를 시작으로 게임메카 팀장, 베타뉴스 편집장을 거쳐 현재 게임어바웃 대표 및 게임칼럼니스트로 활동 중. 게임을 단순한 재미로 보기보다, 게임의 문화적 가치를 살리는데 관심이 많다. 고전부터 최신 게임까지 게임의 역사를 집필하면서 게임을 통해 사회를 보는 창을 제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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