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디자인 레벨업 #1 이게 영화야, 게임이야? – 인터랙티브 무비의 역사

게임의 재미를 돋우고 몰입감을 높이기 위해 전반적인 규칙과 설계를 구상하는 게임 디자인(Game Design)! 보다 새롭고 창의적인 게임 디자인을 발굴하기 위해 엔씨소프트의 개발전략실에서는 사례 연구와 지식 공유에 힘쓰고 있는데요.

새롭게 시작하는 연재 ‘게임 디자인 레벨업’에서는 개발전략실이 직접 조사하고 연구한 게임 디자인의 트렌드와 방향성에 대해 소개할 예정입니다. 그 첫 번째 편은 최근 화제를 모으고 있는 게임 장르 ‘인터랙티브 무비(Interactive Movie)’의 역사입니다.


올해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과 TV 프로그램 ‘두니아-처음 만난 세계’가 적지 않은 화제를 모았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런 낯선 플레이 경험을 두고 게임인지 영화인지 혼란을 느끼셨을 텐데요. 사실 인터랙티브 무비는 게임의 한 장르로서 꽤 오래 전부터 제작되어 왔습니다.

1993년 32비트 게임기 3DO가 세상에 등장했습니다. 닌텐도와 세가가 장악하고 있던 가정용 게임 시장에 CD라는 저장 매체를 무기로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보다 1년 앞서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정식 발매가 되며 수양대군님의 “우와! 이거 영화야? 게임이야?”라고 탄식(감탄)하던 광고를 기억하시는 분들도 많으실 겁니다. 당시로서는 대용량이었던 CD를 무기 삼아 <데드러스 인카운터>와 같은 인터랙티브 무비를 전면에 내세워 가정용 게임 시장을 공략했습니다.

‘32비트 게임기 3DO’(좌)와 <데드러스 인카운터>(우).
수양대군님의 흑역사 짤방은 검색하시면 쉽게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3DO의 게임들은 실사 영상과 3D 그래픽을 앞세워 게임 시장에 도전했지만 조악한 게임성으로 큰 사랑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3DO는 비록 흥행 참패라는 비운과 함께 사라졌지만 대중들에게 인터랙티브 무비를 적극적으로 소개한 큰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사실 게임 장르로서 인터랙티브 무비의 시작은 그보다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 1세대 – 영화 같은 시각 품질

1983년 발매된 <드래곤스 레어(Dragon’s Lair)>는 월트 디즈니 출신 애니메이션 감독 돈 블루스(Don Bluth)가 만든 최초의 인터랙티브 무비입니다. 지금 봐도 손색없는 애니메이션 완성도로 디즈니의 고전 명작 만화영화에 버금가는 영상미를 보여줍니다. 같은 해 출시되었던 어드벤처 게임 <킹스 퀘스트 1(King’s Quest 1)>과 비교하면 당시 대중들이 받았을 시각적 충격이 어땠을지 짐작이 가실 겁니다.

1983년 같은 해 출시된 <킹스 퀘스트>(좌)와 <드래곤스 레어>(우).
<드래곤스 레어>는 모바일로도 이식되어 구입 후 플레이해보실 수 있으나,
유튜브 플레이를 추천 드립니다.

전체 15분 정도 분량의 애니메이션 사이사이 적절한 입력을 성공시켜, 캐릭터를 마녀의 성 깊숙이 안내하고 용을 무찔러 공주를 구하는 지극히 단순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어떤 안내도 없이 애니메이션 프레임 하나하나 화면이 뚫어져라 지켜보며 키 입력 타이밍을 찾고 외워야 했던 게임 시스템이었는데요.

때문에 전체 15분 분량의 플레이 타임을 갖고 있었지만 사실상 공주를 구한 플레이어가 거의 없을 정도로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했습니다. 플레이어를 깊은 빡침의 세계로 이끄는 <다크 소울> 시리즈는 양반이라고 할 만큼 옴므파탈적 매력의 난이도를 자랑했습니다.

<드래곤스 레어>의 제작비는 130만 달러로 당시 게임 개발 평균 제작비의 10배에 이를 정도로 대작 게임이었습니다. 그리고 출시 후 8개월 간 제작비의 30배에 가까운 3천200만 달러를 벌어들였습니다. 1987년 재개봉한 디즈니의 ‘백설공주’가 첫 주 7천500만 달러를 벌어들인 것을 보면, 15분짜리 애니메이션으로 절반 가까운 수익을 거두었으니 말 그대로 초대박이었습니다. 이후 인터랙티브 무비는 여러 회사를 통해 제작되었고 마치 게임의 미래처럼 보였습니다.

1985년 같은 해 출시된 <로드 레이스(Road Race)>(좌)와 <로드 블래스터(Road Blaster)>(우).
인터랙티브 무비로 만들어진 레이싱 게임 <로드 블래스터>는
최근 출시된 <아스팔트 9>의 QTE 레이싱 시스템의 원형을 보여줍니다.

이와 같이 인터랙티브 무비의 시작은 게임의 시각 품질을 영화 수준으로 높이겠다는 목표에서 출발했습니다. 하지만 시각적 품질에만 몰두하여 플레이어들이 원하는 게임만의 다양한 상호작용을 등한시했고 1995년 <판타스 마고리아>라는 걸출한 호러 인터랙티브 무비를 끝으로 대중들에게서 멀어져 한동안 제작되지 않았습니다.

1995년 발매된 <판타스 마고리아>.
지나치게 변X적이고 하드고어한 영상들로 큰 반향을 일으켰지만,
게임의 나쁜 이미지에도 큰 역할을 합니다. 검색해보지 마시길…

이 시기에 <스트리트 파이터>(격투), <디아블로>(액션 RPG), <스타크래프트>(RTS), <리니지>(MMORPG) 등이 차례차례 세상에 등장했는데요. 이처럼 현대 게임의 플레이 원형이 수립되던 게임 르네상스 시대와 맞물리면서 인터랙티브 무비는 사람들 기억에서 완전히 잊혀진 것 같았습니다. 사실 일본에서 비주얼 노벨이라는 장르로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왔지만, 전세계적 흐름과는 동떨어진 일본 오타쿠 문화의 ‘마르지 않는 요정의 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2세대 – 영화 같은 스토리 몰입

이렇게 역사에서 사라진 것 같던 인터랙티브 무비에 2010년 <헤비 레인>이라는 신호탄이 쏘아 올려졌습니다. 프랑스의 ‘퀀틱 드림’이라는 개발사는 시각 품질에 몰두하던 1세대와 달리 영화와 같은 스토리 몰입을 목표로 인터랙티브 무비를 제작했습니다.

2000년대 들어 급격히 발전한 3D 그래픽은 가상의 캐릭터가 아닌 영화배우를 게임에 등장시켜 실제 연기하는 것을 그대로 재현할 수 있었고, 1세대와 같은 뛰어난 시각 품질과 함께 배우의 탁월한 연기를 통해 플레이어를 마치 영화 관객처럼 게임의 이야기에 몰입시킬 수 있었습니다.

<헤비 레인>은 게임에서 이야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플레이어들과 게임이 요구하는 높은 난이도의 조작 숙련도에 부담을 느끼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어 수익면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언리얼과 같은 3D 엔진의 뛰어난 시각 품질과 제작 기술 대중화로 인해 이후 <워킹 데드>와 같은 유명한 IP를 비롯,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Life is Strange)>와 같은 인디 게임 제작사의 게임들이 시장에 선보였습니다. 또 올해 2018년에는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이 공개되어 인터랙티브 무비에 관심이 없었던 플레이어들에게도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의 히로인 ‘카라’(좌)와 배우 밸로리 커리(우).
게임상의 카라가 더 사람 같은 느낌적인 느낌.

이와 같이 2세대 인터랙티브 무비는 높아진 3D 그래픽 기술을 제공하는 3D 엔진을 기반으로, 영화보다 높은 스토리 몰입을 제공하는 새로운 게임 장르로 확고히 시장에 컴백하게 되었습니다.

영화와의 경계가 더욱 모호해진 2세대 인터랙티브 무비.

 

# 영화 같은 게임을 향해

1세대와 2세대 인터랙티브 무비 모두 ‘영화 같은 게임’이 목표였지만 그 방법이 달랐습니다. 그리고 현재 우리가 열광하고 있는 인터랙티브 무비는 영화 같은 내러티브를 내세우며, 게임을 통해 영화 이상의 스토리 몰입을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인터랙티브 무비의 세대별 디자인 목표.
게임 개발 시 목표 설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워 주는 것 같습니다.

 

# 인터랙티브 무비의 지역적 특징

인터랙티브 무비의 세대별 특징은 제작사의 지역적 특징과도 연관되어 있습니다. 시각적 품질을 중시한, 마치 오락 영화 같은 1세대 인터랙티브 무비는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제작된 반면, 최근 스토리를 중심으로 작가적인 예술 성향을 보이는 2세대 인터랙티브 무비는 프랑스를 중심으로 활발히 제작되고 있습니다.

세대별 인터랙티브 무비 제작사의 지역적 특징.
프랑스 주도의 2세대 인터랙티브 무비는
마치 영화를 탄생시킨 프랑스 영화인들의 헐리우드 상업 영화에 대한 반격 같은 느낌도 줍니다.

 

# 스토리, 게임, 영화 – 융합 지식의 총아

영화와 같은 스토리 몰입을 중요시하는 현재의 인터랙티브 무비는 스토리의 메시지를 영상과 게임의 형태로 플레이어에게 전달하기 위해 개발 초기부터 스토리, 게임, 영화의 전문가들이 참여하고, 상호 간의 융합 지식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인터랙티브 무비 제작을 위한 분야별 전문가와 역할 구분.
서로 다른 미디어들의 창작자들과의 유기적인 협업은 어떤 느낌일까요?

플레이 과정의 성취와 재미를 넘어서 가치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새로운 미디어로서, 게임을 바라보는 도전이 인터랙티브 무비를 통해 계속될 것 같습니다. 게임이 플레이어에게 전달할 수 있는 새로운 감동을 기대하며, 앞으로 등장할 새로운 인터랙티브 무비를 저와 함께 손꼽아 기다려 보시면 어떨까요? 이 새로운 흐름에 과감한 도전장을 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게임 디자인 레벨업’ 다음 편에서는 인터랙티브 무비를 게임으로 만들어주는 게임 디자인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인터랙티브 무비 시리즈

# 1  이게 영화야, 게임이야? – 인터랙티브 무비의 역사

# 2   인터랙티브 무비 속 게임 디자인

# 3  인터랙티브 무비의 디자인 유형 – 이야기를 ‘플레이’하다

# 4  인터랙티브 무비의 디자인 유형 – ‘플레이’ 영역의 더 다양한 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