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디자인 레벨업 #3 인터랙티브 무비의 디자인 유형 – 이야기를 ‘플레이’하다

보다 새롭고 창의적인 게임 디자인을 발굴하기 위해, 최신 게임 트렌드와 사례 연구에 힘쓰고 있는 엔씨소프트의 개발전략실!

개발전략실에서 직접 조사하고 연구한 내용을 담은 ‘게임 디자인 레벨업’ 세 번째 편에서는 스토리텔링이 돋보이는 다양한 인터랙티브 무비 게임들을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인터랙티브 무비 게임에 집중해온 프랑스 개발사 퀀틱 드림의 게임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

지난 5월 발매된 후 비평가들의 평가는 엇갈렸지만, ‘AI의 출현에 의한 4차 산업 혁명’이 핵심 이슈로 부상한 현시기에 안드로이드를 다룬 SF 장르 스토리는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또한 물오른 데이비드 케이지 디렉터의 연출력은 인터랙티브 무비가 비교적 낯설었던 국내 유저들에게 해당 장르의 매력을 널리 알리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이처럼 이번 글에서는 인터랙티브 무비 장르로 분류되는 다양한 게임 중 스토리텔링이 중심이 되는 인터랙티브 무비를 다루려 합니다.

스토리텔링 중심의 인터랙티브 무비.

 

# 서구식 어드벤처에서 출발한 북미/유럽의 인터랙티브 무비

다양한 장르에서 스토리텔링을 다루고 있는 현세대의 게임들과는 달리, 과거에는 하드웨어의 제약으로 주로 어드벤처 장르가 스토리텔링을 비중 있게 다뤄왔습니다.

때문에 북미와 유럽에서 제작된 스토리텔링 중심의 인터랙티브 무비는 3인칭 주인공의 서구식 어드벤처 장르를 출발점으로 두고 발전해왔는데요. 근래의 주요 작품들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 하이브리드로 재탄생한 인터랙티브 무비, <파렌하이트: 인디고 프로퍼시>

• 작품명: 파렌하이트: 인디고 프로퍼시(Fahrenheit: Indigo Prophecy)
• 출시년도: 2005년
• 개발사: 퀀틱 드림(Quantic Dream)
• 영상 형식: 리얼타임 3D
• 인터랙션 방식: 분기 선택, 탐색(3인칭), QTE, 아이템의 획득과 사용

오랫동안 주목받을 만한 인터랙티브 무비가 출시되지 않아 해당 장르는 거의 사망 판정을 받은 상태였습니다. 그러다 2005년 프랑스의 이름없는 개발사에서 출시한 작품이 큰 화제를 불러일으킵니다.

퀀틱 드림이 개발한 <파렌하이트>입니다. (미국에서는 <인디고 프로퍼시>로 발매.) 그렇습니다. 이 작품은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 개발사의 출세작입니다.

2015년 출시된 리마스터 버전의 플레이 영상.

<파렌하이트>는 ‘단순히 영상을 지켜보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던 인터랙티브 무비 장르에 다양한 장르의 문법을 참조한 인터랙션 요소들을 추가했습니다.

서구식 어드벤처 스타일의 3인칭 캐릭터 조작을 통한 월드 탐색, 아이템의 획득과 사용, 액션 게임에서 사용되던 QTE, <심즈> 등의 시뮬레이션 게임을 연상시키는 각종 게이지 관리까지 말이죠.

액션 장르스러운 QTE(좌)와
시뮬레이션 장르스러운 각종 게이지 관리(우).

뿐만 아니라 스토리 전개에 큰 의미를 갖지 않는 세세한 장면들까지도 간단한 조작들을 요구하여, 인터랙티브 무비의 ‘인터랙션 부족’을 극복하기 위한 개발자들의 고민과 노력이 느껴졌습니다. (이는 퀀틱 드림의 후속작에서도 공통적으로 등장하는데, 귀찮음을 느끼는 유저들의 비판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인터랙션 방식의 참신함뿐 아니라 복수의 캐릭터가 펼치는 스릴러 장르의 스토리(비록 후반부에는 판타지로 급선회합니다만…)는 어드벤처 장르의 몰락 이후 스토리텔링에 목말랐던 게이머들에게 큰 환영을 받았습니다.

특히 이전 질 낮은 인터랙티브 무비들에서 보기 힘들었던 데이비드 케이지 디렉터의 세련된 연출(미드 ’24’를 참조한 화면 분할 기법 등)이 크게 호평 받았습니다.

원작 미드보다 게임에 더 잘 어울렸던 화면 분할 연출.
후속작 <헤비 레인>에서도 활용됩니다.

 

# AAA급 인터랙티브 무비의 등장, <헤비 레인>

• 작품명: 헤비 레인(Heavy Rain)
• 출시년도: 2010년
• 개발사: 퀀틱 드림(Quantic Dream)
• 영상 형식: 리얼타임 3D
• 인터랙션 방식: 분기 선택, 탐색(3인칭), QTE

<파렌하이트>의 성공으로 업계의 주목을 받은 퀀틱 드림은, 가능성을 눈여겨보고 퍼블리싱을 맡은 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의 지원에 힘입어 AAA급 인터랙티브 무비를 개발합니다.

게임을 위해 개발된 자체 렌더링 엔진과, 움직임과 표정 연기 및 대사까지 한 번에 캡처한 ‘풀 퍼포먼스 캡처’로 만들어진 영상은 <파렌하이트>와 비교도 되지 않는 퀄리티를 자랑했고, 데이비드 케이지 디렉터의 연출 역량을 100% 발휘할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2016년 출시된 리마스터 버전의 플레이 영상.

후반부의 장르 급전환으로 당황을 안겼던 전작과 달리 완성도 높은 범죄 스릴러 시나리오 또한 크게 호평 받았고, 결과적으로 현재까지도 퀀틱 드림에서 개발한 작품들 중 가장 높은 메타크리틱 스코어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파렌하이트>에서 선보였던 다양한 타 장르의 인터랙션 요소들은 깔끔히 정리되었지만, 주인공 중 한 명인 FBI 프로파일러 ‘제이든’을 조작하는 시퀀스에서는 추리 어드벤처 장르의 게임 플레이를 맛볼 수 있는 등 여전히 인터랙션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 엿보입니다.

최첨단 장비로 수사를 펼치는 ‘제이든’.

UI면에서도 주목할 만한 지점이 있는데, 바로 QTE에 관한 부분입니다. 기존 비디오 게임에서의 QTE는 UI(입력해야 할 버튼 표시)를 항상 화면 중앙에 표시하기에 시선을 화면 가운데 두느라 영상에 집중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헤비 레인>은 신(scene)별로 플레이어의 시선이 가 있을 법한 주요 지점에 UI를 표시하여 영상과 UI 를 함께 파악하기 쉬워졌습니다.

플레이어의 시선이 가 있을 법한 지점에
UI를 표시해주는 QTE.

<헤비 레인>의 성공에 고무되어 출시된 또다른 AAA 인터랙티브 무비 게임으로는 <언틸 던>을 꼽을 수 있습니다. 기본 틀은 <헤비 레인>과 동일하나 인터랙션 요소로서 중간중간 건슈팅 시퀀스가 등장한다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AAA 인터랙티브 무비 게임, <언틸 던>.

 

# GOTY를 받은 인터랙티브 무비, <워킹 데드>

• 작품명: 워킹 데드(The Walking Dead)
• 출시년도: 2012년
• 개발사: 텔테일 게임즈(Telltale Games)
• 영상 형식: 리얼타임 카툰 렌더링 3D
• 인터랙션 방식: 분기 선택, 탐색(3인칭), QTE, 아이템의 획득과 사용, 건슈팅

인터랙션의 낮은 비중 탓에 ‘게임이냐 아니냐’ 논쟁에 휘말리기 쉬운 인터랙티브 무비 장르입니다만, 2012년 텔테일 게임즈에서 출시한 <워킹 데드>는 비디오 게임 매체에서 인터랙티브 무비 장르의 존재 가치를 입증한 게임으로 평가받습니다.

출시 전에는 인기리에 방영 중이던 미드의 인기에 편승한 그저 그런 IP 게임으로 치부되었습니다. 그러나 미드는 물론 원작 코믹조차 뛰어넘는, 극한 상황에 처한 인간군상의 드라마는 기존 비디오 게임에서 접할 수 없던 감동을 안겨주었습니다.

특히 ‘아동 캐릭터와의 로드 무비’ 콘셉트는 <라스트 오브 어스>, <갓 오브 워 리부트>,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 2> 등 많은 작품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워킹 데드> 시즌 1 스토리 무비.

게임 디자인적으로는 퀀틱 드림의 인터랙티브 무비처럼 3인칭 탐색과 분기 선택 및 QTE로 구성되어 있으나, 좀 더 서구식 어드벤처에 가까운 아이템의 획득과 사용, 일부 시퀀스에서 등장하는 건슈팅 요소를 차이점으로 들 수 있습니다.

또 주목할 만한 부분은 인터랙티브 무비에서의 ‘선택’의 역할을 되새기게 했다는 점입니다. <워킹 데드>의 몇몇 ‘잔혹한 선택’들은 스토리의 향방을 결정하는 용도뿐 아닌 ‘극한 상황에 놓인 인물의 선택의 고통’을 간접 체험하는 용도로 작동합니다.

‘누구를 살리고, 누구를 죽일 것인가’는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만큼이나 괴로운 질문입니다.

또한 <워킹 데드>는 비디오 게임에 등장하는 ‘도덕적 선택’의 질을 한 단계 끌어올렸습니다.

단순히 게임 진행의 갈래를 결정하는 역할을 하거나(히어로 또는 빌런), 선(善)을 선택해야 이득을 얻는(굿엔딩 등) ‘답정너식’인 종래의 비디오 게임의 도덕적 선택과 달리, <워킹 데드>에서는 ‘양심을 위해 가시밭길을 택할 것인가, 실리를 위해 현실과 타협할 것인가’와 같은 현실적이고 몰입 가능한 도덕적 선택들이 등장합니다.

<워킹 데드> 출시 이후에는 진지한 도덕적 선택을 체험할 수 있는 게임들이 많아졌습니다.
<디스 워 오브 마인>.

UI면에서도 인상적인 부분이 있는데 ‘분기 전환 알림’입니다. 인터랙티브 무비에 등장하는 다양한 선택지들(대사 선택, 행동 선택 포함) 중 어떤 것은 스토리 분기에 의미를 가지고, 어떤 것은 그렇지 않을 수 있어 유저들이 혼란에 빠지기 쉽습니다.

<워킹 데드>는 향후 스토리에 영향을 줄 선택을 한 경우에는 ‘XXX는 이 선택을 기억할 것입니다.’라는 짧은 자막으로 유저들에게 넌지시 가이드를 제공하여 유저들의 답답함을 어느정도 해소시켜 줍니다. 이후 발매되는 텔테일 게임즈의 모든 게임에는 마치 인장처럼 이 UI가 공통적으로 사용됩니다.

좌측 상단에 표시되는 ‘기억할 것입니다’라는 자막은
MBC <두니아>에서도 패러디하였습니다.

<워킹 데드>의 큰 성공에 힘입어 텔테일 게임즈는 <워킹 데드>의 후속작을 비롯하여 다양한 IP의 인터랙티브 무비들을 지속적으로 출시하였습니다.


2014년 출시된 <왕좌의 게임>.


2017년 출시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 일본식 어드벤처에서 출발한 일본의 인터랙티브 무비

서구식 어드벤처 장르에 뿌리를 둔 북미, 유럽의 인터랙티브 무비처럼, 일본의 인터랙티브 무비도 1인칭 주인공의 일본식 어드벤처 장르에서 진화해나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주요 작품들에 대해 소개하겠습니다.

 

# 일본식 어드벤처에서의 장르 확장, <폴리스너츠>

• 작품명: 폴리스너츠(Policenauts)
• 출시년도: 1994년
• 개발사: 코나미(Konami)
• 영상 형식: 2D 애니메이션
• 인터랙션 방식: 탐색(1인칭), 퍼즐, 건슈팅

<메탈 기어> 시리즈로 유명한 코지마 히데오 감독의 히트작 중 하나로, 일본식 어드벤처였던 전작 <스내쳐>와 유사하게 1인칭 시점 정지 화면에서의 탐색으로 게임을 진행해나갑니다.

나아가 2D 애니메이션의 적극적인 사용으로 일본식 어드벤처에서 인터랙티브 무비로까지 장르가 확장된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PS1 버전의 플레이 영상.

사고로 인해 25년 간 우주 공간에서 냉동되었다 2038년에 깨어난 사립탐정(전직 우주 경관 ‘폴리스너츠’) ‘죠나단 잉그램’이 스페이스 콜로니 ‘비욘드 코스트’에서 겪는 모험을 다룬 이야기입니다.

일본식 어드벤처의 특징인 1인칭 시점 탐색과 퍼즐이 주된 인터랙션 방식입니다만 특이하게도 건슈팅 시퀀스를 중간중간 플레이할 수 있습니다. (해당 시퀀스에서는 건 컨트롤러로도 플레이 가능했습니다.)

<폴리스너츠>의 건슈팅 시퀀스.

국내에서도 <폴리스너츠>와 유사한 형태의 인터랙티브 무비 게임을 출시한 적이 있습니다. 1997년 출시한 <디어사이드3>라는 게임으로, <킹덤 언더 파이어> 시리즈의 이현기 디렉터가 젊은 시절 본인 포함 3명의 인원으로 개발한, 요즘 말로 따지면 ‘인디 게임’입니다.

스토리나 아트 콘셉트 등 전반적으로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애니메이션 <페트레이버> 극장판을 떠올리게 하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1인칭 탐색과 퍼즐, 건슈팅(메카닉에 탑승하여 펼치는)으로 구성된 인터랙션 방식은 <폴리스너츠>와 유사합니다만 아이템의 획득과 사용 개념이 있다는 부분은 차이점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1997년 출시된 <디어사이드 3>.

 

# 인터랙티브 애니메이션, <야루도라> 시리즈

• 작품명: 야루도라(やるドラ) 시리즈
• 출시년도: 1998년
• 개발사: 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실 개발사는 Sugar & Rockets)
• 영상 형식: 2D 애니메이션
• 인터랙션 방식: 분기 선택

야루도라(やるドラ)는 하다(やる) + 드라마(ドラ)의 합성어로, ‘보는 드라마가 아닌 플레이하는 드라마’를 의미합니다.

플레이스테이션의 동영상 재생 능력을 활용하여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보고자 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가 1998년에 출시한 시리즈로, 4계절에 대응되는 컨셉의 4작품을 한 해에 출시하였습니다. (봄: 더블 캐스트(ダブルキャスト), 여름: 계절을 안고서(季節を抱きしめて), 가을: 삼파기타(サンパギータ), 겨울: 설앵화(雪割りの花))

 
<야루도라> 시리즈의 ‘겨울’ 테마에 해당하는 ‘설앵화’.

<폴리스너츠> 등의 일본식 어드벤처 장르에서 확장된 인터랙티브 무비와는 다르게, 스토리 분기 선택 외에는 아무런 인터랙션이 없는 본격파 인터랙티브 무비입니다.

특히 <에반게리온>으로 유명했던 프로덕션 I.G와의 협업으로 제작된 고퀄리티 2D 애니메이션은 큰 화제를 모았고, 첫 작품 더블 캐스트에서는 스토리 분기에 따라 히로인의 성격이 극단적으로 바뀌는 등 인터랙티브 무비 스토리텔링만의 매력이 잘 살아났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게임 디자인적으로 눈에 띄는 부분으로 ‘반복 플레이에 의한 선택지 추가’를 들 수 있습니다. 플레이타임이 짧아 수명이 짧은 인터랙티브 무비 장르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야루도라>와 유사한 작품도 같은 해에 출시됐는데, 코나미에서 발매한 <Dancing Blade 제멋대로 모모천사!> 시리즈가 있습니다.


1998년 출시된 <Dancing Blade 제멋대로 모모천사!>.
<야루도라> 시리즈보다 2개월 먼저 발매되었으니 이쪽이 원조?

<야루도라> 시리즈는 PS2 플랫폼에까지 출시가 이어졌습니다. PS2의 DVD 재생 능력을 활용하여 더 나은 영상 품질을 보여주었지만, 큰 주목을 받지는 못하고 이후 시리즈의 맥이 끊겼습니다.


2000년 PS2 버전으로 출시된 <야루도라: 스캔들>.

 

# OSMU로서의 인터랙티브 무비, <블러드 더 라스트 뱀파이어>

• 작품명: 블러드 더 라스트 뱀파이어(Blood : The Last Vampire)
• 출시년도: 2000년(상권/하권으로 분리 출시)
• 개발사: 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
• 영상 형식: 2D 애니메이션
• 인터랙션 방식: 분기 선택, 탐색(분기 서치), 게이지 관리(BLOOD 레벨)

PS2 플랫폼으로 출시된 <블러드 더 라스트 뱀파이어>는 원작 IP를 활용하기 위한 미디어믹스를 위해 인터랙티브 무비 장르를 선택한 케이스입니다.


상ㆍ하권을 통합하고, 불만점을 개선하여 출시된 PSP 버전.

흔히 미디어믹스 게임이라면 대중적인 장르인 액션이나 RPG를 택하게 마련입니다만, 이 작품은 PS1부터 이어진 <야루도라> 시리즈의 하나로서 인터랙티브 무비 장르의 게임으로 출시되었습니다.

비슷한 사례로는 ‘이번 감독은 너다!’라는 광고가 인상적이었던
<신세기 에반게리온 2nd Impression>(좌)과 <배트맨: 더 텔테일 시리즈>(우) 등의
텔테일 게임즈의 인터랙티브 무비들이 있습니다.

<블러드 더 라스트 뱀파이어>는 2000년 개봉한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시작으로 소설, 만화, TVA 등 다양한 매체로 전개된 오시이 마모루의 프로젝트로, 현대를 배경으로 한 흡혈귀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게임 버전은 원작의 주인공인 ‘사야’가 조연으로 등장하는 오리지널 스토리를 보여줍니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인터랙션 방식인데, 기존 <야루도라> 시리즈의 분기 선택뿐 아니라 흡혈귀의 피를 수혈 받아버린 주인공의 콘셉트를 활용한 ‘분기 서치’와 ‘BLOOD 레벨’이란 시스템이 있습니다.

분기 서치란 특정 장면에서 ‘서치’ 액션을 행하면 숨겨진 분기가 나타나는 시스템이며, BLOOD 레벨은 일종의 게이지 관리로 선택지에 따라 가득 차버리면 주인공이 흡혈귀가 되는 시나리오로 흘러가는 시스템입니다.

화면 하단에 BLOOD 레벨 게이지가 가득 차버리면(좌)
그에 맞춰 (주로 안 좋은 쪽으로) 스토리가 분기됩니다(우).

 

# 최초의 인터랙티브 무비, <키노아우토마트>와 그 후계자들

인터랙티브 무비의 역사는 비디오 게임의 역사 못지않게 오래되었습니다. 무려 1967년작 <키노아우토마트>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최초의 인터랙티브 무비 <키노아우토마트>와, 해당 작품의 ‘영화란 함께 보는 것’이란 개념을 이어오고 있는 후예들을 소개합니다.

• 작품명: 키노아우토마트(Kinoautomat)
• 출시년도: 1967년(극장 상영)
• 영상 형식: 실사
• 인터랙션 방식: 분기 선택(다인 투표)

1967년 캐나다 몬트리올 엑스포의 ‘체코관’에서는 특수한 극장이 지어졌습니다. 체코의 라두츠 신세라(Radúz Činčera) 감독이 제작한 <키노아우토마트>를 상영하기 위한 것으로, 이 영화는 최초의 인터랙티브 무비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최초의 인터랙티브 무비, <키노아우토마트>의 최근 재상영된 영상.

극장의 127개 좌석에는 각각 빨간 버튼과 파란 버튼이 설치되어 있고, 영화 상영 중 총 5회에 걸쳐 상영이 중단됨과 동시에 라이브 퍼포머(우리말로 친근하게 표현하자면 ‘변사’)가 무대에 등장합니다. 라이브 퍼포머는 해당 시점에서의 각 버튼의 의미를 설명하고 투표를 요청하며, 투표의 결과(다수결)에 따라 이후 상영될 영상이 변경됩니다.

2가지 선택지에 5번의 분기가 있기에 산술적으로는 최대 64개의 결말이 있을 수 있겠으나, 영사기 2대로 운영되는 심플한 시스템이었던 키노아우토마트는 전개 과정에서의 약간의 변화만 있을 뿐 결말은 동일하고 단순한 구조에 머물렀습니다.

참고로 ‘스토리텔링 중심의 인터랙티브 무비’는 아니지만, 최초의 ‘인터랙티브 무비 게임’은 닌텐도의 <와일드 건맨>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와일드 건맨>의 플레이 영상.

후면 프로젝션 방식으로 설치한 16mm 극장용 필름 영사기(좌)와
1984년 발매된 패미컴 버전(우).

 

# TV로 환생한 키노아우토마트, <라 도루야>

• 작품명: 라 도루야(ラ・ドルヤ)
• 출시년도: 1998년(후지TV 방영)
• 영상 형식: 2D 애니메이션
• 인터랙션 방식: 분기 선택(다인 투표)

1998년 연말 후지TV에서 심야에 방영한 <라 도루야>는 <야루도라> 시리즈를 방송에 활용한 TV 애니메이션입니다. (‘라 도루야’라는 단어도 ‘야루도라’를 뒤집은 것입니다.)

전반부 방영 후 네비게이터(MC)가 등장하여 시청자에게 투표를 요청하고, 전화 투표의 결과에 따라 후반부의 전개가 결정됩니다. 최초의 인터랙티브 무비인 <키노아우토마트>가 30년만에 방송매체를 통해 부활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MBC에서 방영한 <두니아>의 시청자 투표.
일본에서는 20년 전에 있었던 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 키노아우토마트의 후계자, <레이트 시프트>

• 작품명: 레이트 시프트(Late Shift)
• 출시년도: 2017년
• 개발사: 컨트롤 무비(CtrlMovie)
• 영상 형식: 실사
• 인터랙션 방식: 분기 선택(다인 투표)

최초의 인터랙티브 무비 <키노아우토마트>가 상영된지 50년이 지난 2017년, 영국에서 상영된 <레이트 시프트>는 <키노아우토마트>의 적통 후계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야간 경비 아르바이트를 하다 미술품 절도단의 범죄에 얽힌 주인공이 하룻밤 동안 겪는 이야기를 다룬 <레이트 시프트>는, 21세기의 인터랙티브 무비답게 ‘좌석에 설치된 버튼과 라이브 퍼포머’ 대신 ‘스마트폰’ 하나로 손쉬운 인터랙션이 가능합니다.

 
<레이트 시프트>의 플레이 영상.

또한 2대의 영사기로 이뤄진 단순한 시스템 때문에 간단한 스토리 분기밖에 보여주지 못했던 <키노아우토마트>와 다르게, <레이트 시프트>는 컴퓨터와 디지털 영상을 활용하여 더욱 복잡한 스토리 분기를 보여줍니다.

<레이트 시프트>의 스토리 분기.

극장 상영을 마친 후에는 PC와 콘솔로 발매되어 투표 없이 완전히 플레이어 1인의 선택에 따른 이야기 전개를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2018년 5월부터는 MS의 인터랙티브 스트리밍 플랫폼 ‘Mixer’와 연동이 가능해져(PC, Xbox One 버전 한정) 극장에서처럼 투표를 통한 분기 선택이 가능해졌습니다.

‘스트리밍을 통한 인터랙티브 무비’는
또 한번 기술의 발전을 실감하게 합니다.

<레이트 시프트>에서 또 한가지 눈여겨볼 만한 부분은 ‘실사’의 사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인터랙티브 무비 장르에서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던 실사 영상입니다만, 디지털 HD 카메라를 통한 제작비 절감과 전문 영상 연출자의 기용으로 질 높은 영상을 보여주었습니다.


비슷하게 근래에 실사를 사용한 인터랙티브 무비, <더 벙커>.


실사와 리얼타임 CG의 하이브리드작, <콰이어트 맨>(발매 예정).

다음 글에서는 인터랙티브 무비의 ‘플레이’ 영역에 대한 다양한 시도로 색다른 즐거움을 제공했던 인터랙티브 무비들을 소개하겠습니다.


인터랙티브 무비 시리즈

# 1  이게 영화야, 게임이야? – 인터랙티브 무비의 역사

# 2  인터랙티브 무비 속 게임 디자인

# 3  인터랙티브 무비의 디자인 유형 – 이야기를 ‘플레이’하다

# 4  인터랙티브 무비의 디자인 유형 – ‘플레이’ 영역의 더 다양한 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