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RPG의 위대한 계보 #8 찬란하지만, 아팠던 그 시절… 한국MMORPG와 공허의 유산

바츠라는 굴레에서…

필자는 지난 편에 리니지2를 설명하면서 ‘바츠해방전쟁’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이 내용에 대해 “그만 우려먹으라”. “철 지난 이야기 지겹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인정합니다. 지겨울 만하죠. 필자는 바츠를 통해 리니지 추억팔이를 하려는 게 아닙니다. 바츠해방전쟁은 한국 RPG의 빛과 함께 어둠을 드러낸 사건이기도 합니다. 사실 온라인상의 혁명 전쟁이란 하나의 현상은 흥미롭지만, 게임 운영상 이러한 사건은 일어나선 안되는 일이죠.

당시 개발자들도 자신들이 전혀 예상치 못한 사건이라고 공공연히 밝혔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이 것은 기획과 운영이 뜻하는 대로 되지 않았다는 겁니다. 개발자들이 예상하고 컨트롤하지 못하는 지경까지 왔다는 것이죠. 이후 한국 RPG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유저의 플레이에만 의존했습니다.  RPG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세계관, 스토리, 캐릭터 같은 콘텐츠들은 소홀히 했죠. 콘텐츠는 부실하기 짝이 없더라도 유저들만 북적북적하면 잘 만든 게임으로 착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한국형 MMORPG하면 종종 언급되는 바츠해방전쟁. 한국 MMORPG의 빛과 함께 어둠을 보여주는 희귀한 사건이었죠.

 

이런 게임에서 유저가 할 수 있는 건 하루 종일 플레이 해도 1도 올리기 힘든 혹독한 레벨 노가다와 길드끼리 서열을 매기고 싸우는 편가르기식 전쟁밖에 없었죠. 이것을 게임사들은 장엄한 전쟁 이야기로 포장해 대규모 공성전 RVR을 추구한다고 광고 했습니다. 겉만 번지르르하고 정작 그 속에는 즐길 만한 게 아무것도 없는 공허한 게임들이 쏟아졌습니다.

이렇게 2000년대 중반까지, 한국 RPG는 겉만 보고 달려왔습니다. 엄청난 동접자가 몰리면서 매출은 천정부지로 뛰었고, 해외 수출도 대박을 처서 그야말로 KRPG의 전성기가 열리는 듯   했죠. 성공에 취해 자기 반성이 없었죠.

 

한국을 강타한 와우 트라우마

기존에 보지 못했던 전혀 다른 게임을 만났을 때 유저가 느끼는 충격은 상상 이상으로 크죠. 리니지2가 성공한 직후, 블리자드는 ‘월드오브워크래프트(와우)’란 게임을 한국에 내놓았습니다. 당시 한국시장은 ‘와우’의 상륙에 바짝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이른바 ‘리니지’를 대표하는 한국형 MMORPG와 ‘와우’를 대표로 한 서양식 MMORPG의 충돌이 가시화됐죠. 그래픽부터 플레이 방식까지 전혀 다른 두 게임이 온라인게임 종주국 한국에서 어떻게 충돌할 것인가?

먼저 ‘와우’ 이전 시대를 봅시다. 그때만 해도 한국 MMORPG는 ‘리니지’처럼 ‘비움의 미학’을 따랐습니다. 개발자는 환경만 제작하고 그 안의 콘텐츠는 유저에게 맡겼죠. 유저들이 알아서 사냥을 하고, 파티를 맺고, 조직을 결성하고, 게임의 스토리를 만드는 지경까지 왔습니다. 유저 주도의 패러다임은 한국형 MMORPG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게임 속 모든 캐릭터들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가지고 살아 숨쉬는 세계.

와우는 한국형 MMORPG에서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신세계를 보여주었죠.

 

유저들은 게임 속에서 자신의 욕망을 제어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욕망들이 게임 안에서 차곡차곡 쌓여 누구도 예측 못하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연출됐죠. 하지만 부작용도 있었습니다. 게임이 너무 획일화되고, 유저간의 경쟁이 심해졌죠. 캐릭터를 성장시키기 위해 단순반복 작업을 감수해야 했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고가의 현금거래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노가다 게임’, ‘현질 게임’이라는 반갑지 않은 별명까지 얻었습니다. 유저들도 이런 한국형 MMORPG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죠.

이런 한국형 MMORPG에 고개를 갸우뚱하는 유저들에게 와우는 새로운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유저가 아닌, 개발자가 주도해 콘텐츠를 쌓아가는 방식이죠. 퀘스트, 던전, 전쟁, 이야기 등 하나부터 열까지 개발자에 의해 연출되고 설계됐습니다. 의미 없는 사냥으로 시간을 허비할 필요 없이 스토리와 탐험을 즐기는 되죠. 와우가 제공한 콘텐츠의 만찬은 유저들을 열광시켰습니다.

동접자 10만 명을 가뿐히 넘었고 전 세계 수 천 만 명의 마니아들을 양산했죠. 그에 비해 한국 MMORPG들은 너무나 부족했습니다. 퀘스트는 어설펐고, 스토리는 빈약했죠. 엔씨소프트 김택진 대표도 지난 서울대학 강연에서 “와우 외에 다른 게임은 솔직히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말할 정도였으니까요. 이때부터 한국게임의 와우 트라우마가 시작됐습니다.

출시된 지 10년이 넘은 늙은(?) 게임이지만 확장팩이 나올 때 마다 여전히 유저들의 가슴을 뛰게 하는 월드오브워크래프트.

 

콘텐츠의 숙제를 받다!

이렇게 한국MMORPG의 고민이 시작됐습니다. 와우의 가장 강력한 힘은 콘텐츠입니다. 탄탄한 세계관과 스토리, 그리고 촘촘하게 구성된 퀘스트, 방대한 던전 등이 잘 어우러져 거의 완벽에 가까운 콘텐츠를 보여주었죠. 게임의 세계에 들어가 제대로 모험을 즐긴다는 느낌, RPG의 법칙에 가장 충실한 게임이었죠.

리니지를 시작으로 탄탄대로를 달렸던 한국게임은 새로운 숙제를 받았습니다. 바로 ‘콘텐츠’라는 숙제입니다. 앞으로 이 콘텐츠 이슈 때문에 수많은 한국게임이 울고 웃게 되죠. 게임의 운영이나 서버 문제보다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불만이 가장 치명적일 정도로 콘텐츠의 비중이 높아졌죠.

한국 게임은 그동안 방치해 두었던 콘텐츠를 재점검하고 내실을 다지는데 주력했죠. 당시 장르 간의 경쟁도 치열했습니다. 캐주얼게임 인기가 주춤하고, FPS와 MMORPG가 시장의 패권을 놓고 격돌했죠. 이 당시 ‘서든어택’의 장기집권을 종식시키기 위해 수많은 MMORPG들이 출사표를 던졌습니다.

대중적으로 가장 인기가 높았던 MMORPG장르가 2000년대 중반부터 서든어택 같은 FPS 장르에게 주도권을 내어주게 됩니다.

 

치열한 경쟁, 살아남은 게임들

개중에는 마비노기처럼 특색을 살린 작품들도 나왔습니다. 마비노기는 전투, 사냥, RVR에 치중된 기존 게임과는 달리, 요리, 음악, 대화 등 생활형 콘텐츠를 내세웠죠. 이 작품은 넥슨의 MMORPG의 명맥을 잇는 효자게임이라는 점이죠. 넥슨 대표 스튜디오인 데브캣이 제작을 맡아 기존에 없던 새로운 MMORPG 문법을 제시한 점에서 의미 있는 작품입니다. 유저끼리 싸우지 않고 함께 모여 캠프파이어를 하거나, 악기를 연주하는 등 소소한 일상의 재미를 살렸죠.

같은 시기 열혈강호 온라인도 롱런 한 작품입니다. 인기 무협만화 열혈강호를 원작으로 한 게임으로 국내는 물론 해외시장에 진출해 큰 성공을 거둔 작품이죠. 원작의 코믹한 분위기를 살린 캐주얼한 MMORPG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열혈강호 온라인은 중국과 일본에 진출한지 1년 만에 동시접속자 45만명을 기록했죠. 하지만 2012년에 출시된 열혈강호2는 전작과는 달리 진지한 분위기를 내세웠지만, 아쉽게도 흥행엔 실패하게 됩니다.

생활형 콘텐츠로 인기를 모은 마비노기와 해외시장에서 대박을 친 열혈강호 온라인은 당시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은 게임들입니다.

 

블록버스터라는 어두운 터널

2006년 등장한 ‘빅3’의 실패는 한국 게임사에 뼈아픈 오점을 남겼습니다. 앞서 리니지2의 성공, 와우의 상륙으로 국내 MMORPG 시장은 한껏 고무되어 있었죠. 게다가 중국 등에 수출되어 큰 성공을 거두었으니, 더욱 분위기가 좋았죠. 한국 온라인게임의 주가는 치솟았습니다. EA, THQ, 유비소프트 등 글로벌 메이커들도 한국 온라인게임 배우기에 열을 올렸습니다. 그렇게 2006년의 새해가 밝았습니다.

2006년, 한국 게임시장은 이른바 규모의 싸움으로 변했습니다. 과거 참신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소수 개발자들이 헝그리 정신으로 게임 만드는 시대를 지났습니다. 이 시기 MMORPG 시장은 ‘리니지2’와 ‘와우’의 양강구도 였습니다. 물론 많은 작품들이 나왔지만, 규모나 게임성 면에서 두 게임을 넘을 만한 타이틀은 없었죠.

2004년, CCR의 ‘RF온라인’과 NHN의 ‘아크로드’가 블록버스터 시대의 포문을 열었습니다. 국민게임 포트리스를 만든 CCR과 거대 게임포털 NHN이 작정하고 만든 작품이란 점에서 세간의 관심은 컸습니다. 하지만 두 게임은 나름 인기를 끌었지만, ‘리니지2’와 ‘와우’를 넘지는 못했습니다. 두 작품 다 ‘리니지2’의 겉모습만 본 따 만든 아류작 취급당했죠. 하지만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습니다. 한국 MMORPG는 이미 ‘블록버스터’라는 어두운 터널에 진입하게 됐으니까요.

2004년 당시 ‘타도! 리니지2’를 외치며 등장한 RF온라인과 아크로드.

엄청난 자본과 인력이 투입된 블록버스터급 게임입니다. 이때부터 MMORPG의 규모가 커지기 시작합니다.

 

‘빅3’의 도전과 좌절

당시 MMORPG는 개발 규모는 커졌지만 시장을 이끌 만한 혁신적인 작품이 없었습니다. 가장 답답한 곳은 한국 온라인게임의 원조집으로 통하는 넥슨이었습니다. ‘바람의 나라’로 MMORPG 혁명을 일으킨 넥슨은 안타깝게도 그 과실을 마음껏 따 먹진 못했죠. ‘어둠의 전설’, ‘일렌시아’, ‘마비노기’ 같은 MMORPG를 내놓았지만 ‘리니지’의 인기를 넘지 못했습니다.

넥슨은 아예 작정하고 블록버스터급 MMORPG를 내놓았습니다. 지금은 이름조차 찾아보기 힘든 블록버스터 게임 ‘제라’죠. 여기에 악튜러스와 라그나로크를 만든 김학규 PD의 ‘그라나도 에스파다’도 빅3 맴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유통사는 국내에 스타크래프트를 들여온 한빛소프트가 맡았으니 흥행은 따 놓은 당상이었죠. 뮤 온라인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둔 웹젠도 ‘썬 온라인’으로 전선에 참여했습니다. ‘제라’, ‘그라나도 에스파다’, ‘썬 온라인’, 이른바 ‘빅3’는 하나같이 천문학적인 개발비와 인력이 투입된 블록버스터급 게임이었습니다.

결과부터 말해서 이 작품들은 리니지와 와우를 넘기는 커녕 시장을 위기로 몰아넣을 만큼 참담한 실패를 겪었습니다. 잦은 버그와 운영미숙, 기대 이하의 콘텐츠는 ‘빅3’라는 화려한 명성을 ‘빛 좋은 개살구’로 만들었죠. 2006년부터 차례로 오픈한 ‘빅3’는 제대로 실력도 발휘하지 못하고 무너졌습니다.

한국 게임사의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꼽히는 빅3.

(넥슨의 제라, 한빛소프트의 그라나도에스파다, 웹젠의 썬온라인)

한 때 모르면 간첩으로 통하는 대작이었지만 지금은 이런 게임이 있는지도 모르는 유저들이 많겠죠.

 

실패의 대가는 가혹했습니다. 넥슨은 창사 이래 최초로 게임 서비스를 중단하는 사태를 겪었습니다. 웹젠은 ‘썬 온라인’ 실패 후 기업이 휘청거릴 정도로 매출에 타격을 받았습니다. 한빛소프트도 ‘그라나도 에스파다’와 이후 출시된 ‘헬게이트’의 연타석 실패로 사세가 급격히 기울었습니다.

게임사만의 타격으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빅3 실패는 흥행작 가뭄으로 이어졌습니다. 2006년부터 2007년까지 2년 동안, 시장을 리드할 흥행작이 하나도 없었죠. 이런 극심한 가뭄 속에서 ‘리니지’와 ‘와우’만 승승장구하고 있었죠. 과거 ‘성냥팔이소녀의 재림’이란 영화가 망하면서 국내 영화계가 움츠러 든 것처럼, 빅3의 실패는 한국의 MMORPG 개발 붐을 위축시켰습니다. 실패하면 회사가 망할 정도로 타격을 받는 장르가 MMORPG였던 것입니다.

이 영화의 실패로 잘나갔던 1990년대 영화계가 폭삭 망했죠.

10년 후, 영화판의 실수를 게임이 그대로 재연했으니… 그만큼 거대자본을 들인 블록버스터의 성과는 업계에 큰 영향을 줍니다.

 

아이온, 9회말 투아웃에 구원타자로 나서다

국내 대표격 개발사 엔씨소프트의 고민도 깊어 졌습니다. 업계에선 리니지같은 대작이 빨리 나와서 한국게임의 자존심을 살리길 내심 바랬죠. 엔씨소프트도 믿는 구석이 있었죠. 극비리에 리니지3(L3)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배재현, 박용현 등 리니지 신화를 일구었던 핵심인력들이 대거 투입됐죠.

또, 엔씨소프트가 영입한 ‘리처드 게리엇’의 신작 ‘타뷸라 라사’ 도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리니지3’로 아시아 시장을 석권하고, ‘타뷸라라사’로 서구권 시장을 공략하면서, 동, 서양을 아우르는 거대한 온라인제국을 건설하려는 포부였죠. 하지만 불행히도 두 프로젝트 모두 좌절되고 말았습니다. L3 프로젝트는 내부 개발자들의 소스유출 사건으로 좌절됐고, ‘타뷸라라사’도 흥행에 실패했습니다. 그 여파로 엔씨는 리처드 게리엇과 결별했죠.

회사의 모든 역량을 쏟아 부은 간판 프로젝트가 좌절되면서 엔씨소프트는 멘붕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내부에서 따로 진행중에 있는 ‘프로젝트A’를 간판 타이틀로 내세웠죠. 그야말로 도박이었습니다. 마치 9회말 투아웃의 위기에서 이름 없는 신인을 구원타자로 보낸 것이죠. 하지만 이 게임이 엔씨소프트를 위기에서 구할 구세주였다는 것을 이때는 아무도 몰랐었죠.

울티마의 아버지 리처드 게리엇이 엔씨소프트에 들어와 만든 타뷸라라사.

‘실패’란 말이 어울리지 않은 최고의 기대작이었죠.

 

가장 뜨거웠던 승부사, 아이온 VS 헬게이트의 대권경쟁

아이온은 개발과정 자체가 한편의 승부사였습니다. 밑바닥부터 수많은 경쟁자들을 하나하나 밟고 올라가야 했다. 만약 엔씨의 차기작이 ‘리니지3’였다면 이런 치열한 생존경쟁은 치르지 않았을 겁니다.

당시 ‘아이온’의 라이벌로 지목된 게임은 플래그십 스튜디오의 ‘헬게이트: 런던’입니다. ‘헬게이트’는 블리자드 개발자들이 분사해 나와 만든 야심작으로 이름만 다를 뿐 ‘디아블로’의 정통 후계자나 다를 바 없었죠. 대형 게임사 한빛소프트가 마지막 사활을 걸고 내놓았죠. 명성이나 규모 면에서 블록버스터 대작의 풍모를 완벽히 갖춘 게임입니다.

비슷한 시기 나온 ‘아이온’과 ‘헬게이트’는 여러모로 비교가 됐습니다. ‘외국게임과 국산게임의 경쟁’, ‘빅3 이후 차세대 대권을 노리는 기대작’, ‘블리자드 출신 개발자와 엔씨소프트 개발자의 자존심 대결’ 등 두 게임의 묘한 경쟁관계는 수많은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렸죠. 유저들 사이에선 ‘아이온이냐, 헬게이트냐’를 놓고 갑론을박이 한창이었습니다(MMORPG 팬 입장에선 즐거운 비명이 절로 나왔던 시절이었죠).

2006년 빅3 실패 이후 또 한 번의 멋진 승부사를 펼쳐 보였던 아이온과 헬게이트: 런던.

뜨면 살고, 지면 죽는 냉혹한 시장의 현실을 보여주었죠.

 

먼저 나온 게임은 ‘헬게이트’ 였습니다. 2008년 1월 오픈한 ‘헬게이트’는 오픈 첫날 동접자 10만 명을 가뿐히 넘었습니다. 설날 연휴까지 겹쳐 이용자는 계속 늘었고, 개발자들도 성공을 확신했죠. 그러나 성공의 여신은 헬게이트 편이 아니었습니다. ‘헬게이트’는 곧 한계를 드러냈습니다. 턱없이 부족한 콘텐츠, 더딘 업데이트, 갈팡질팡한 운영 등 과거 빅3가 보여준 폐단을 그대로 답습했습니다.

‘헬게이트’가 무너진 후, 유저들의 시선은 ‘아이온’에 집중됐습니다. 그 사이 ‘프리우스 온라인’(CJ인터넷)’, ‘SP1’(넥슨) 등 중견 MMORPG가 도전장을 냈지만 큰 반향은 일으키지 못했습니다. ‘아이온’은 ‘헬게이트’가 오픈한 후 거의 1년 가까이 지난 2008년 11월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아이온’은 천족과 마족의 대결구도를 기본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였습니다. 전작인 리니지2와는 달리 게임의 내실을 탄탄히 했죠. 촘촘히 구성된 퀘스트와 레이드, 대규모 RVR 등은 리니지와 와우의 중간 지점의 재미를 보여주었죠.

 

넥슨의 SP1(좌)과 CJ인터넷(현재 넷마블)의 프리우스(우).

나름 대작 게임 반열에 올랐지만, 아이온과 헬게이트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다.

 

독특함보다 익숙함을 따른 게임

아이온의 정서는 ‘리니지’와 비슷하지만, 게임 속 질서는 ‘와우’와 닮아 있습니다.

평소에는 ‘와우’처럼 퀘스트를 풀고 던전을 돌면서 콘텐츠를 소비하다가 전쟁이 벌어지면 서로 힘을 합쳐 상대 종족을 막아내야 합니다. 와우식 PVE에서 리니지식 RVR(집단전투)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구조로 되어 있죠. ‘리니지’의 단점을 보완하고, ‘와우’의 장점을 도입하면서 ‘아이온’만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죠. 독특한 콘텐츠를 만들기보다 익숙한 콘텐츠를 적제적소에 배치한 것이죠.

흥행도 대단했습니다. 하루 만에 ‘서든어택’을 밀어내고 피시방 순위 1위에 올랐죠. 4일 만에 동시접속자 20만 명을 넘겼고, 보름 만에 상용화에 들어가서 안정적인 매출을 뽑았습니다. 3개월 만에 엔씨소프트는 1,334억 원을 벌어들여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냈습니다. 2012년까지 국내 PC방 점유율 160주 연속 1위를 달성했고, 2013년에는 누적매출 1조원을 돌파해 제왕의 자리를 확고히 했죠. 처음 서비스 된 2008년부터 5년간은 한국 게임시장은 ‘아이온’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천족과 마족을 기반으로 한 나름의 스토리와 악기연주 같은 생활형 콘텐츠 등 다양한 게임에서 돋보이는 콘텐츠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했습니다.

 

아이온의 실각과 한국 MMORPG의 쇠퇴

필자는 200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블록버스터 터널에서 가장 빛나는 한국 게임은 ‘아이온’이라고 생각합니다. 흥행 면으로 볼 때 아이온은 ‘리니지’, ‘와우’와 함께 한국 MMORPG의 화려한 제국을 수놓았습니다. 그러나 ‘아이온’은 ‘리니지’나 ‘와우’처럼 게임시장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던지지 는 못했습니다. 익숙한 재미를 적절하게 조율한 ‘웰메이드’ 게임으로 자신의 한계를 그어버렸죠.

유저들은 때깔만 좋은 뻔한 재미에 싫증을 냈죠. 힘을 잃은 ‘아이온’은 너무나 빨리 유저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졌습니다. 160주 동안 PC방 1위를 기록했던 저력은 어디 가고, 지금은 순위권 밖으로 멀찌감치 떨어졌죠. 엔씨소프트의 주력게임이 아직도 20년 전 ‘리니지’라는 사실이 더욱 씁쓸하게 다가옵니다. ‘독창성’을 배재한 ‘아이온’은 태생부터 한계가 있었습니다. 다음 세대에 물려줄 비전이 없었던 것이죠.

아이온의 실각으로 한국 MMORPG는 급격히 쇠락합니다. 이미 시장의 대권은 ‘리그오브레전드’ 같은 AOS 장르로 넘어갔죠. 다음편에는 한국 MMORPG가 마지막으로 찬란한 빛을 발했던 2010년 이후의 역사를 말해 볼까 합니다. 마치 아마게돈과 같은 최후의 블록버스터 전쟁과 남은 게임들의 쓸쓸한 퇴장까지… 역사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2012년 엔씨소프트 게임 중 가장 실험적이고 완성도 높은 블레이드앤소울이 나오지만 이미 시대는…


 

이덕규(게임 칼럼니스트) 게임잡지 피시파워진 취재부 기자를 시작으로 게임메카 팀장, 베타뉴스 편집장을 거쳐 현재 게임어바웃 대표 및 게임칼럼니스트로 활동 중. 게임을 단순한 재미로 보기보다, 게임의 문화적 가치를 살리는데 관심이 많다. 고전부터 최신 게임까지 게임의 역사를 집필하면서 게임을 통해 사회를 보는 창을 제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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