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씨북스#350 구무협과 신무협으로 나눠서 보는 한국 무협 소설 트렌드의 변화

장르 소설 분야 중 많은 매니아층을 거느리는 무협 소설!

한국 무협 소설은 스토리텔링 방식에 따라 구무협과 신무협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구무협과 신무협을 구분하는 기준을 설명하고, 이를 통해 한국 무협소설 트렌드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살펴봅니다. 그와 함께 각 시기를 대표하는 작가의 작품을 추천드립니다.


구무협은 무협물 창작 1세대를 포함 1990년대 이전에 출판한 작품을 지칭합니다. 이 시기를 대표하는 작가는 금강, 서효원, 야설록 등이 있습니다.

무협 1세대의 작품들은 대체적으로 3~5권으로 분량이 짧고, 피가 낭자하는 잔혹하고 무거운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후 비교가 되는 신무협에 비해 내용이 다소 과장되거나 비현실 적입니다.

당시 장르소설은 출판사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습니다. 자극적인 내용을 넣지 않으면 출판을 해주지 않는 등 악습이 존재했습니다. 독자를 끌어오기 위해 외설적인 장면을 넣거나, 잔혹한 묘사를 더했습니다. 이로 인해 독자들에게 무협에 대한 안 좋은 선입견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이런 외설적이고 자극적인 내용은 오히려 어른들보다 청소년들에게 인기가 많았습니다. 부모님 세대들이 우리가 게임하는 걸 싫어하듯이, 무협과 같은 오락용 소재들을 터부시했던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극적이고 외설적인 매체를 접하기 힘들었던(?) 젊은 층에선 하나의 유흥거리가 되었습니다.

또한 구무협의 무분별한 찍어내기 식 표현들과 ‘기연’을 통해 모든 사건이 해결되는 뻔한 플롯은 독자들의 외면을 가속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기연’은 구무협의 소설들이 대부분 차용했던 클리셰입니다. 작중 주인공이 한계 상황에 부딪혔을 때 기적처럼 찾아와 상황을 극복하게 하고, 먼치킨적 인물로 변모시켜 상대를 찍어 누르는 내용입니다. 흔히들 알고 있는 절벽에서 떨어졌는데, 이름 모를 동굴에서 선대 고수가 남겨 놓은 비전을 획득하고 내공을 얻어 환골 탈태하는 식의 전개를 말합니다. 당시 출간된 많은 소설들이 이런 플롯이었기에 장르 소설 시장을 위협할 만큼 독자들의 외면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런 출판 업계의 상황들이 신무협의 태동을 이끌게 되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구무협 추천작가 | 서효원

1세대 무협 작가로 길지 않은 생애 동안 128편, 1000여권의 저서를 남겼습니다. 진부하지 않은 사건 위주의 내용 전개, 작중 묘사와 수식어를 최대한 배제한 문체로 한 번이라도 그의 소설을 본 독자는 누구나 서효원의 소설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또한, 무리수를 두지 않는 전개 또한 서효원 무협소설의 특징.

서효원의 작품 대부분은 부활을 주제로 했습니다. 여기서 부활이라 함은 실제 죽은 다음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죽기 직전까지 내몰리다가 이를 극복해내고 돌아오는 식입니다. 이런 플롯은 구무협의 전형적인 방식이지만 그의 작품은 초기 설정이나 사건 전개를 탄탄하게 구성해 무리하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작가는 일찍이 암 판정을 받았는데, 아무래도 시한부로 짧게 살다 간 그의 인생이 작품에 녹아 많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입니다.

대표작으로는 대자객교(1983), 대설(1985), 실명대협, 대곤륜, 제왕성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이중 대자객교가 대표작이고 실명대협은 소설로도 인기가 있었지만 이후 황성 작가가 만화화 해 만화방 등에서 손님들이 즐겨 찾기도 했습니다.

(부연: 이 밖에도 많은 구무협 소설들이 2011년 경부터 전자책으로 출판되고 있어 구무협의 향취를 느껴보고 싶다면 전자책을 찾아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이어 신무협은 용대운의 태극문(1994), 좌백의 대도오(1995)로부터 출발합니다. 신무협은 대한민국 무협 소설의 새로운 형태를 뜻하는데요. 무협 2세대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이미 독자들은 양산되고 있던 구무협에 염증을 느꼈고, 작가들은 무협이 더 이상 읽히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앞서 언급한 작가들을 필두로 무협 소설의 흐름을 바꿔나가기 시작합니다.

신무협은 내용이 좀 더 현실적(?)입니다. 이야기의 전개를 주인공의 성장에 맞추고 부단한 노력 끝에 대성하는 식으로 글 전체가 개연성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신무협도 ‘기연’이라는 클리셰가 없어진 건 아닙니다. 강호를 떠돌던 스승이 우연한 기회에 주인공을 만나게 된다든지, 주인공의 성장을 위해 사부의 희생이 있다든지, 성장을 위한 재료(영약이나 단약, 혹은 무공비급 등)들이 우연히 발견된다는 등 그럴듯한 설정으로 내용에 녹아 있습니다. 우연에 모든 걸 기댄 구무협에 비해 합리적인 기연이 탄생한 것입니다.

신무협 추천 작가 | 용대운

용대운은 구무협 때부터 왕성한 집필 활동을 해왔습니다. 대표적으로는 신무협의 기준이 되는 태극문과 강호무뢰한, 독보건곤, 냉혈무정 등을 들 수 있습니다. 그중 독보건곤은 굉장히 암울한 분위기의 소설로 만화 베르세르크를 닮았습니다. 주인공의 처절한 몸부림을 느낄 수 있는 소설입니다. 또 군림천하는 아직까지 연재 중인 작품입니다. 장기 연재(?)에 힘입어 신무협 초반의 작풍과 현재의 작풍을 같이 느낄 수 있습니다. 나약한 문파의 장문인이 강호에 출두하면서 엮이는 사건 사고와 또 문파에서 배출했던 과거 천하제일인의 발자취를 추적하면서 밝혀지는 강호의 비사들이 짜임새 있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마치며, 신무협이 탄생한 1994~1995년 이후, 한국 무협은 플랫폼의 발전, 중국 무협 트렌드의 변화 등 다양한 요인으로 또 다르게 나아가고 있습니다. 지금 출간되는 무협소설들도 신무협의 테두리에 있다고 보면 됩니다.

이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무협소설도 문화의 흐름에 맞춰 정착되었고 또 그 안에서 많은 변화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이야기가 진부해지기도 하고 또 그런 분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작품이 나오기도 합니다.

무협을 포함해 장르소설이 더 이상 저급하지 않다 생각하고, 가볍게 글 읽는 재미를 느껴보고 싶으신 분들은 이 기회에 무협의 세계로 오시는 것이 어떨까요?


권기후 성공은 밤낮없이 거듭된 작고도 작은 노력의 산물.

 

 

 

 

 

권기후 님 추천 책 다시 보기

엔씨북스 #280 『전생검신』

엔씨북스 #286 『후아유』

엔씨북스 #295 『달빛 조각사』

엔씨북스 #301 『숭인문』

엔씨북스 #316 『패왕의 별』

엔씨북스 #327 『나 혼자만 레벨업』 

엔씨북스 #338 『책 먹는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