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과 심리학 #4 우리나라 게이머들이 세계 최고인 까닭

심리학의 관점에서 현 시대의 게임에 대한 가치와 의미를 되짚어 보는 ‘게임과 심리학’.

문화심리학자 이장주 박사가 들려주는 ‘게임과 심리학’ 4편에서는 전세계 e스포츠 대회에서 뛰어난 실력을 선보이고 있는 우리나라 게이머들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열리고 있는 ‘2018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이하 롤드컵)’이 전세계 게이머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올해로 8회째를 맞는 롤드컵이 우리나라에서 두 번이나 개최된 이유는 우리나라 선수들의 월등한실력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금까지 열린 일곱 차례의 대회 중 5회나 우승을 차지할 만큼, 롤드컵을 생각하면 자연스레 대한민국을 떠올립니다.

이게 <리그 오브 레전드>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어떤 버전의 <스타크래프트>든 세계 16강 선수들 중에서 한국인이 아닌 게이머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지난 달에는 <철권>의 ‘무릎’ 선수가 세계 최고의 레벨을 달성했다는 뉴스도 있었고요. 또 초대 <오버워치> 리그에서 우승을 거머쥔 팀 ‘런던 스핏파이어’는 선수는 물론이고 감독, 코치까지 모두 한국인들이었습니다.

전세계 게이머들 사이에서 대한민국은 ‘조용한 아침의 나라’가 아니라 ‘세계 최고의 게이머 산실’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2017 LoL 월드 챔피언십’ 결승전에서 우승을 거머쥔 ‘삼성 갤럭시’.

 

# 풋살이 키운 브라질의 축구 실력

그럼 왜 한국 게이머들이 다른 나라 선수들보다 실력 수준이 월등히 높은 걸까요?

여기에 대한 해답은 브라질의 축구 선수들에서 힌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브라질은 좋은 운동장이나 풍족한 장비 등 축구 인프라가 잘 갖추어진 나라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인데요.

펠레를 필두로 세계의 최고 수준의 선수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할 때 브라질에서는 독특한 현상이 발견됩니다. 바로 풋살 경기장입니다.

풋살은 1930년대 우루과이에서 비가 내릴 때 운동 훈련을 할 수 있는 방법으로 개발됐다고 전해집니다. 그러한 풋살이 브라질로 넘어 온 후, 관련 규칙이 제정되고 빠르게 확산됩니다.

펠레는 말할 것도 없고 지금 활약하고 있는 브라질 출신 선수들은 아주 어렸을 적부터 풋살장에서 수많은 시간을 보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좁은 공간에서 빠르게 축구공을 다루어야 하는 풋살 경기는 다양한 축구 기술을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축구공을 요요처럼 다루는 엘라스티코 동작은 풋살에서 나온 기술입니다. 데스페로, 알바레, 바셀리나 같은 기술도 모두 풋살이 고향입니다.

2018 하계청소년올림픽에서 열린 브라질과 러시아의 풋살 경기.

 

# 한국 게이머의 실력은 PC방 덕?!

브라질 축구 선수에게 풋살장이 있다면, 우리나라 게이머들에게는 PC방이 있습니다.

PC방은 좁은 공간에서 게임을 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공간입니다. 이런 곳은 게임에만 집중하기에 좋습니다. 그리고 바로 옆자리에 있는 상대와 경쟁심을 불태우기에도 아주 좋은 공간입니다.

이런 공간에서 누군가가 놀라운 실력을 발휘하면 ‘젠장 효과(holy shit effect)’가 발동합니다. 대니얼 코일(Daniel Coyle)이 그의 저서 ‘탤런트 코드(The Talent Code)’에서 소개한 개념으로 승부에서 진 사람이 상대에 대해 느끼는 불신, 선망, 시기와 같은 감정이 혼합되는 그런 현상입니다. 이런 감정을 느끼는 사람들은 놀라운 집중력이 발휘됩니다. 그 상대를 이길 때까지 말이지요.

게이머들은 이런 PC방에서 수백, 수천 차례의 게임을 하며 전략 전술을 연마합니다. 빠르고 정확한 마우스의 마이크로 컨트롤은 축구의 엘라스티코 기술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이렇듯 PC방은 최고 수준의 게이머들을 탄생시킨 훈련장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었던 겁니다.

우수한 축구 선수를 길러내기 위해서 풋살장을 많이 만들어 놓으면 다일까요? 당연히 아닙니다. 역시 PC방을 늘린다고 해서 우수한 게이머가 바로 탄생한다고 보장할 수는 없겠죠.

누군가에겐, 노는 게 아니라 훈련하는 중. @PC방

 

# 치열한 경쟁 심리 속 e스포츠의 탄생

우리나라 게이머들이 우수한 실력을 갖게 된 또 다른 숨은 요인이 있습니다.

게임 문화가 우리나라보다 훨씬 발달한 미국이나 유럽 같은 곳에서 게임은 개인이 즐기는 여가활동입니다. 그저 게임은 재미있고자 하는 것이지, 죽고 살기로 매달려서 하는 것은 아니라는 인식이 있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좁은 땅덩이에서 오래 전부터 경쟁에 익숙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지고는 못 배기는 성품이 길러졌지요. ‘젠장 효과’가 아주 오래 전부터 잘 발달되었다고나 할까요? 바로 이게 게임에도 그대로 나타났던 겁니다.

혼자 플레이하기보다는 여럿이 함께하는 것이 실력을 기르는데 더 적합한 조건이 되기에 자연스럽게 온오프라인에서 팀이 조직됩니다. 팀 내에서 역할 분담이 생기면서 게이머들의 훈련을 지원하는 코치들이 탄생하게 됩니다. 마치 스포츠 선수가 최고의 기량을 위해 훈련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또한 게임 훈련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합숙 시스템도 도입합니다. 자생적인 한국형 선수 양성 시스템이 탄생하는 순간입니다. 게임은 그저 혼자 즐기고 마는 개인의 놀이가 아닌, 새로운 경지에 도달하게 됩니다. 바로 e스포츠가 된 것이지요.

수천 시간의 연습과 노력 끝에 탄생하는 프로게이머.

비범한 수준의 플레이를 펼치는 게이머는 더 이상 게이머가 아니라 프로게이머라는 칭호를 얻게 됩니다. 그리고 이들이 활약할 수 있는 리그가 생겨나고 그 경기들을 중계하는 전용 방송국도 탄생합니다.

많은 어린 플레이어들은 방송을 통해 수준 높은 경기를 보고, 그 경기에서 나온 기술을 PC방에서 바로 연습합니다. 수많은 브라질 어린이들이 네이마르 같은 자국의 축구 전설들을 따라하면서 꿈을 키우는 것처럼 선순환 시스템이 마련된 것입니다. 이런 문화적 토양이 지속적으로 세계적인 e스포츠 선수들이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현상은 게임에만 국한되지는 않은 듯합니다. 젊은 게이머들이 <스타크래프트>로 세상을 호령할 무렵 우리나라 기획사에서는 이제까지 없던 가수들을 탄생시킵니다. HOT, 젝스키스, SES, 핑클 같은 아이돌 그룹이지요.

이들을 키워낸 ‘아이돌 양성 시스템’은 구조적으로 보면 e스포츠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집중적인 지원과 훈련으로 개인이 달성할 수 있는 수준을 크게 뛰어넘는 놀라운 퍼포먼스를 만들어내는 시스템이었던 겁니다. 이러한 성과는, 요즘 전세계에서 맹활약을 펼치는 BTS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국 젊은이들의 매력과 실력을 더할 나위 없이 발산하고 있기 때문이죠.

젊은이들의 패기와 열정으로 만들어진 글로벌 문화 축제, e스포츠.

 

# 우리의 젊은이들을 믿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기도 하지요. 젊은이들이 PC방에서 게임하고, 클럽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것은 죄다 기성세대들이 달가워하지 않는 것들입니다. 학교에서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 공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부분에, 우리 젊은이들이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는 비밀이 숨겨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젊은이들을 걱정하는 기성세대는 세계적으로 내세울 것이 없는 반면, 정작 당사자인 젊은이들은 세계를 호령하고 있습니다. 세계인이 열광하는 프로게이머와, 언어와 인종이 달라도 다 함께 떼창을 부르게 만드는 아이돌 뮤지션이 그 생생한 사례입니다.

기성세대가 젊은이들을 가르치거나 고치려고만 들지 말고 그들로부터 배워야 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합니다. 세계 최고의 노벨상을 원하거든 아이비리그를 돌아볼 것이 아니라 우리 젊은이들을 좀 더 애정어린 시선으로 관찰하고, 따라 배워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요즘 열리는 롤드컵은 젊은이들을 배우기에 딱 좋은 기회입니다.

마시멜로 테스트는 아이들이 아니라 기성 세대가 받을 차례입니다.
‘젊은이들’이라는 마시멜로를 얼마나 오랫동안 참고 기다릴 수 있는지 말이죠.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우리나라 한 팀이 롤드컵 16강에서 탈락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그리고 편집할 때쯤 한국의 두 팀이 모두 4강 진출에 실패했다는 안타까운 뉴스를 접했습니다.

이럴 수가, 하면서 자세히 보니 이유를 발견하였습니다. 한국 팀을 이긴 인빅터스 게이밍(IG)과 클라우드 나인(C9)의 코치가 모두 한국인들이었군요. 결승전에 올라가지 못한 아쉬움도 크지만, 그보다 한국 시스템을 잘 흡수해 일취월장의 실력을 뽐낸 외국 팀들을 칭찬해야 할 일이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4강 진출 실패라는 초유의 현상은 지금까지의 방법 말고 새로운 시도를 모색할 때라는 신호로 받아들였으면 합니다.

아마도 한국의 젊은 청년들은 지금도 어디에선가 모여, 더 큰 목표와 승리를 위해 열심히 궁리하고 있을 겁니다. 우리 젊은이들이 누구입니까? 지고는 못 배기는 그 조상의 후손들이 어디 가겠습니까? 내년 롤드컵이 기대되는 이유입니다.


이장주 문화심리학자. 평범한 사람들이 더 활력 있고, 즐겁게 살 수 있는 길을 찾다가 게임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현재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재직 중이며, 심리학의 관점에서 문화적 이슈를 다루는 글쓰기와 강연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게임과 심리학 #1 게임과 매직서클: 게임의 문화심리학

게임과 심리학 #2 게임 플레이와 도파민 이야기

게임과 심리학 #3 은유로서의 게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