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과 심리학 #5 공작새 꼬리와 게임의 공통점?!

심리학의 관점에서 현 시대의 게임에 대한 가치와 의미를 되짚어 보는 ‘게임과 심리학’.

문화심리학자 이장주 박사가 들려주는 ‘게임과 심리학’ 5편에서는 진화심리학을 기반으로 게임이갖는 사회적 상징성과 의미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은 드문데 왜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보다 훨씬 더 많을까?

이제까지 심리학은 주로 미시적인 측면에서 접근을 해왔다. 예를 들면, 게임은 즉각적으로 결과를 알려주기 때문에 흥미를 유발하는 반면, 공부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지속하기 어렵다는 설명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다른 시각으로 살펴볼 여지가 충분히 있다. 예를 들면, 아이들에게 길거리 자동차나 전기 콘센트를 조심시키기는 어려운 반면, 거미나 뱀은 도시에서 태어나 이것들을 실제로 본 적이 없는 5개월된 아기들에게까지도 위험 요인으로 빠르게 인지된다.

이렇듯 개인의 미시적 경험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들을 비교적 잘 설명해주는 심리학 분야가 진화심리학(evolutionary psychology)이다.

진화학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인간의 심리, 진화심리학

 

# 원초적 본능에 따라 행동하는 동물과 인간

진화심리학의 핵심 주제는 간명하다. 다른 동물들이 그렇듯 인간도 생존과 번성(reproduction)이라는 원초적 본능 위에 인간 특유의 심리가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이를 성적 본능과 공격 본능으로 달리 표현한 바도 있다.

개인적이고, 단기적인 차원에서 분명히 손해가 되는 행동이지만 이것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은 장기적이고, 종족 차원에서 생존과 번성에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진화심리학자들은 설명한다. 더글러스 T. 켄릭(Douglas T. Kenrick)이라는 학자는 논리적 합리성과 대비시켜 이를 ‘심층적 합리성(deep rationality)’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더글러스 T. 켄릭의 저서 『이성의 동물』

 

# 공작새가 화려한 꼬리에 공들이는 이유

이제껏 게임과 관련된 많은 억제 정책들이 나왔지만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매년 최대 인파를 갱신하는 지스타가 대표적인 사례다. 나는 심층적 합리성이 게임과 게이머에서도 작동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심층적 합리성의 대표적인 사례는 공작새 꼬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진화론의 창시자인 다윈은 공작새의 꼬리 때문에 자신의 이론을 완성하는데 애를 먹었다고 한다. 화려한 공작새의 꼬리는 천적들의 눈에 잘 띄므로 생존에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해서 진화해왔는지 설명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내가 왜 이렇게 꼬리에 목숨 거냐면 말이지…

『종의 기원』이 출간된 지 12년이 지난 후 다윈은 오랜 고민의 결과물을 담은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이란 책을 통해, 천적에게 들키지 않는 것보다 암컷의 눈에 띄는 것이 수컷 공작새에게는 장기적으로 더 유리한 전략이라는 ‘성선택설’을 주장하기에 이른다.

아모츠 자하비(Amotz Zahavi)는 성선택 이론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핸디캡 이론(Handicap Theory)’을 주장한다. 다양한 예들이 이후 보고되는데, 그 중 하나가 ‘스토팅(stotting)’이다.

천적들이 나타나면 용감하고 젊은 수컷 가젤은 성급하게 도망을 치는 대신 그 천적의 눈에 잘 띄도록 제자리에서 껑충껑충 뛰는 특이한 행동을 하는데 이를 ‘스토팅’이라 부른다. 천적에게 ‘도발’을 하는 것이다.

이런 행동은 자신이 뒤늦게 도망가는 핸디캡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음을 과시하는 것이다. 이런 위험한 행동은 자신의 체력, 민첩성, 용감함과 같은 특성을 동족들에게 잘 보여주는 좋은 전시 기회가 된다.

가젤의 스토팅 현장 #잡아볼테면_잡아봐

사람도 비슷하다. 시험 기간 동안 공부는 안하고 게임을 했다고 떠벌리는 청소년은 인간 버전의 ‘스토팅’인 것이다. 이성에게 자신의 능력이 어필될지는 모르겠지만, 이것을 지켜보는 엄마의 마음은 새까맣게 타들어갈 것이다. ‘저눔의 시끼가~’

 

# 게이머의 행동에서 다윈의 ‘성선택’ 흔적 찾기

성선택은 두 가지 과정으로 구분된다.

하나는 ‘동성 간 경쟁’이다. 화려한 꼬리나 멋지고 우뚝한 뿔을 가진 수컷들은 더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자 경쟁을 펼친다. 동성 간 경쟁에서 이런 꼬리나 뿔은 그 자체로 상징적이다.

비교가 안 되는 꼬리나 뿔을 가진 수컷은 경쟁에서 밀려난다. 경쟁에서 밀려난다는 말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자신뿐 아니라 후손들의 존재 가능성까지 위기로 몰리는 것이다. 어떻게든 이런 최악의 상황만은 피하려 한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총동원하고도 부족한 것을 부풀리려고 애를 쓴다. 허세나 허풍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허세나 허풍을 구별하는 능력 역시 매우 중요하다. 자신보다 못한 능력의 소유자에게 속아서 밀리는 것은 이제까지 노력을 헛수고로 만들기에 참을 수 없는 분노를 유발한다.

마, 이게 수컷의 뿔이다 #남자의_자존심

게임이 청년, 특히 남자 청년들에게 중요한 동성 간 경쟁의 상징이라면, 요즘 일어나는 현상들이 비교적 쉽게 설명된다.

남자 청년들이 즐겨하는 대결 게임에서 공작새 꼬리의 역할은 랭킹이나 티어가 담당한다. 애써 배치고사를 통과하여 겨우 겨우 상위 티어에 들어왔더니, 누군가는 게임 핵이나 대리 게임을 통해 자신과 같은 위치에 왔다는 것을 확인할 때 그 분노는 이성적으로 설명이 안되는 엄청난 분노가 작동한다. 아주 오랜 전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그 원초적 분노 말이다.

또한 능력이 아니라 과금으로 올라가는 레벨 역시 비슷한 분노의 메커니즘이 작동하게 된다. 내 능력이 부당하게 절하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순한 평가절하를 넘어 생존과 번성의 본능적 경쟁에서 밀리는 치명적인 위기로 인식된다. 이럴 때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포기하기 어려운 끈질기고 집요한 복수극을 펼치게 된다.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먹는 것과 같이 말이다.

본능에 따른 게임 플레이 #내몸에선_게임이_뛴다

성선택의 또 다른 과정은 ‘이성 간 경쟁’이다. 동성 간의 경쟁이 동성에서만 머물지 않고 이성에게도 선택되었을 때 핸디캡 행동은 증가된다.

다윈은 이성 간의 선택 과정을 ‘암컷 선택’이라고 불렀다. 그가 관찰한 바로, 동물계 전체 내 대부분의 종에서 어떤 상대와 짝짓기를 할지를 선택하는 쪽이 암컷이기 때문이다.

게임에서도 이런 현상이 관찰된다. 실제로 게임을 열광적으로 플레이하는 쪽은 남성 쪽이 월등히 많다. 하지만 이런 대결이 펼쳐지는 이스포츠 현장의 관람객 남녀 비율은 비슷하다. 즉 여성의 남성 프로게이머에 대한 관심도가 본인이 직접 플레이를 하는 것보다 압도적으로 높다. 프로게이머들은 왜 남성이 대부분이고, 관람석에는 여성이 그렇게 많을까에 대한 작은 실마리를 성선택이론이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선택이란 슬픈 사람을 늘 만들게 마련인가보다. 현실 속의 여성들에게 인기가 적은 남초 게임에서는 사이버상 여성에게 선택 받는 연출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현실에서 선택받지 못한 서러움을 사이버 공간에서 해소한다면 너무 과한 해석일까?

 

# 게이머는 본능에 따라 움직인다

만일 이런 가설이 옳다면, 이제까지의 게임에 대한 관점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 우선 게임을 중독의 핵심 원인으로 보는 것이 잘못되었다. 단지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명성의 기준이라는 것이다.

챈스(Chance)라는 학자에 의하면 인간의 명성은 문화에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수렵채집 사회에서는 훌륭한 사냥 기술을 가진 사람이, 학계에서는 좋은 논문을 발표하는 사람이 명성을 얻는다. 어떤 문화에서는 문신이나 피어싱의 수가, 또 다른 문화에서는 자동차의 브랜드와 크기가 높은 명성의 상징이 된다.

누군가에겐 사냥 능력과 좋은 차가 명예이듯, 누군가에겐 게임이!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가장 많은 주의를 받는 사람의 속성과 의사 스타일, 행동에 주목하고, 이를 모방함으로써 자기 문화의 명성 기준을 배우게 된다. 게임은 과거 많은 위험한 명성 기준들을 바꾸었다. 과거에 빈번했던 폭주나 음주, 흡연, 본드 흡입과 같은 위험한 행동들을 대체해 왔다.

그리고 지금 게임은 또 다른 명성 기준들로 서서히 대체되는 있는 듯하다. 다양한 콘텐츠를 생산하는 1인 미디어 크리에이터들에 의해서 말이다.

문화적 명성이라는 의미는 이들이 갈구하는 본질적인 것이 게임이나 유튜브 자체가 아니라 자신이 최고로 인정 받을 그 무엇이란 의미다. 이런 대안 없이 게임을 적당히 하란 말은 깃털 빠진 공작새의 운명으로 평생을 주눅들어 살라고 젊은 청년들에게 강요하는 것과 같으리라.

문학을 수학으로 접근하려는 것은 현명한 방법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본능의 문제를 이성으로 접근하려는 것 역시 잘못된 접근이다. 게임의 문제는 인간 본성, 즉 게이머 본위(本位)로 접근해야 한다. 게이머를 가르치려 들지 말고, 게이머의 시각으로 대안을 찾아야 한다. 진화심리학적 가설이 옳다면 말이다.


이장주 문화심리학자. 평범한 사람들이 더 활력 있고, 즐겁게 살 수 있는 길을 찾다가 게임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현재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재직 중이며, 심리학의 관점에서 문화적 이슈를 다루는 글쓰기와 강연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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