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게임 #32 리턴 투 캐슬 울펜슈타인

게임 회사 사람들이 꼽는 ‘내 인생의 게임’은 무엇일까요? ( ͡° ͜ʖ ͡°)

한국에서 당신의 게임을 다시 부활시켜 보고 싶다고 존 카멕에게 개인적으로 연락까지 하게 만들었던  ‘리턴 투 캐슬 울펜슈타인(Return to Castle Wolfenstein)’을 TL Camp 이펙트팀 곽대규 님이 소개합니다.


인생 게임의 정의는 무엇일까요?

“XX 때문에 개발자가 되었습니다”

“XX 플레이 중에 연인을 만났어요.”

“XX 덕에 병이 나았습니다.(?!)”

저에게 인생 게임은 이런 화려하고 고상한 문구가 어울리는 게임은 아니었습니다.

 

무식무면 상태로 24시간 이상 플레이 하고, 게임 종료 직후 극도의 피로감을 느끼며 그대로 침대에 쓰러져 죽음에 대한 간접 체험을 할 수 있게 한 게임. 금요일 저녁 클랜 매치 때마다 여자친구에게서 “매주 한번씩 누가 돌아가시네…” 라는 말을 듣게 한 게임. 그리고 통상적으로 세 분 정도 돌아가시면 자연스럽게 이별 통보를 받는 추억을 남겨준 게임.

그렇습니다. 저에게는 <리턴 투 캐슬 울펜슈타인(Return to castle Wolfenstein, 이하 RTCW)> 이 그런 게임이었습니다.

 

리턴 투 캐슬 울펜슈타인이 불러온 흔한 이별 풍경.jpg

 

대전 FPS의 명작 <퀘이크 3 아레나>와 동일 엔진을 사용한 울펜슈타인 3D의 후속작

RTCW는 2001년 중순 ‘이드 소프트(id Software)’가 <울펜슈타인 3D>의 후속작으로 9년만에 선보인 게임입니다.

울펜슈타인 3D (좌) / 리턴 투 캐슬 울펜슈타인(우)
울펜슈타인 시리즈는 나치의 음산한 회색 빛 성에서 주인공이 독일군을 섬멸하는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합니다.

참고로 이드 소프트웨어는 1999년 퀘이크 시리즈의 3번째 작품으로 멀티 전용 게임을 출시하여 대전 FPS 장르에 커다란 획을 그은 게임사로 RTCW는 이 <퀘이크 3 아레나>의 엔진을 사용하여 제작되었고 <퀘이크3 아레나>가 가지고 있던 여러 가지 장점들을 이어나갔습니다.

싱글 플레이가 없는 멀티플레이 전용 FPS 게임 <퀘이크 3 아레나>
당시에는 생소한 방식이었으나 대전 FPS 장르에 큰 획을 그은 작품입니다.

 

직접 소장하고 있는 <퀘이크 3 아레나>와 <리턴 투 캐슬 울펜슈타인> 정품 CD

 

RTCW은 특이하게도 싱글플레이와 멀티플레이를 각각 다른 스튜디오가 개발하였는데요, 싱글은 그레이 메터 인터렉티브(Gray Matter Interactive)가, 멀티는 너브 소프트웨어(Nerve software)가 개발하였습니다.

 

 

임무수행과 병과의 구분이 매력적인 게임

게임은 기본적으로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여 연합군과 주축군의 대립으로 시작되며 임무는 크게 세 가지 -밸런스가 잘 맞게 설계된 맵에서의 시설물 파괴, 오브젝트 운반, 깃발 빼앗기 – 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플레이어는 메딕(위생병), 장교(탄창 보급), 엔지니어(시설물 폭파), 솔져-베놈(헤비머신건), 팬저파우스트(바주카), 플레임샤워(화염 방사기), 마우져(스나이퍼) 중 한 가지 병과를 선택하고 맵에 따라 공격과 방어 임수를 수행하게 됩니다.

‘뭘 좋아할지 몰라 다 준비해 봤어.’ 의 느낌으로 병과를 골라봅니다.(출처: 육군 홈페이지)

 

RTCW의 매력은 임무수행과 병과의 구분에서 크게 느껴집니다.

저는 전황을 이해하고 기본적인 전투력을 필요로 하는 엔지니어(폭탄설치&해체)를 주로 담당했는데요, 다이너마이트를 설치할 때 혹은 적의 오브젝트를 훔쳐서 귀환할 때의 긴장감은 심장을 두 배 정도로 빠르게 뛰게 합니다. 물론 설치된 다이너마이트를 해체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이너마이트를 설치하러 가기 전의 내 모습.jpg

사실 RTCW 병과의 꽃은 총을 잘 쏘는 딜러가 아니라 쓰러진 팀원을 부활시키는 메딕이었습니다. 빗발치는 적의 공격을 뚫고 쓰러진 동료를 주사 한 방으로 부활 시키는 것은 전세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따라서 적의 메딕이 동료를 살릴 수 없도록 적을 넉다운(약 20초 후 리스폰) 시킨 후 시체처리까지 해야 하는 컨디션이 재미를 증가 시켰습니다.

 

2% 아쉬움으로 결국 카스의 물결을 이겨내지 못한…

안타깝지만 RTCW가 출시되었을 당시인 1999년 말은 밸브사의 Half Life MOD로 출발했던 카운터 스트라이크에 잠식되어가는 상태였습니다. (사실 저도 RTCW 후에 결국 카스로 갈아탔던 기억이 나네요… ಠ_ಠ;;;)

1999년 큰 인기를 끌기 시작했던 카운터 스트라이크

 

사용자들은 운이 좋아서라도 적을 사살할 수 있는 마치 현실적인 전투를 원했고 카운터 스트라이크의 게임성과 그래픽은 한정적인 자원으로 아주 절묘하게 그것을 표현했습니다.

반면 RTCW는 2차 대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개발자들은 고증조차 크게 신경 쓰지 않았고 그만큼 그래픽에서도 소소한 감동을 주지 못했습니다. 결국 여러 부분에서 비현실적인 점들이 발견되었고 이러한 점들은 아쉽게 느껴집니다. 예를 들면 연합군 장교가 무전기를 메고 있다던가 독일군은 병과마다 복식이 크게 다른데 하나로 통일 되었다던가 팬져파우스트는 독일의 대전차 무기인데 연합군에 동일하게 주어진다던가 하는 부분들이었죠.

2차 세계대전에서 대전차 화기로 미군은 주로 바주카(좌)를 사용했고 독일군은 팬져파우스트(우)를 사용했습니다만,
RTCW에서는 미군, 독일군 모두 soldier 병과는 팬져파우스트를 사용했었지요.

더불어 핑의 미세한 차이 – 핑이 100일 경우 총을 발사했을 때 0.1초 후에 탄이 발사 됨 – 만으로도 결과가 현격히 달라지는 퀘이크 3 아레나 기반의 게임이었던 RTCW는 이런 섬세한 조작이 필요했기 때문인지 올해의 게임(GOTY, Game Of The Year) 수상 이후 시간이 지날수록 북미를 제외한 전 세계적인 인기를 이어가지는 못했습니다.

그 외에도 수동패치의 불편함, ADSL 10Mbps 정도의 회신과 고성능 dedicate 서버 필수 사항, 퀘이크 3 엔진과 기본 FPS 장르에 대한 이해가 없을 경우 느껴지는 높은 진입 장벽, 게임 자체가 가진 난이도, FPS 장르에 대한 이해 부족과 더불어 불법 복제 치명타가 게임 저변화의 발목을 잡았고 결국 국내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매니악한 게임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발행 후 전세계 판매량 약 100만장의 기염을 토했으나 국내에서는 약 3천장 판매로 마무리를 하고만 <리턴 투 캐슬 울펜슈타인>
(판매량은 3천이지만 공식 홈페이지의 패치 다운로드 수는 약 2만 건에 이른다는 슬픈 이야기가….)

당시 유통사인 VISCO는 국내에서 Dedicate 서버를 3기 운용하였고 동접 약 150명을 간신히 유지했습니다. 그 마저도 2기 3기는 점점 사용자가 줄어들었습니다. (대부분 카스로….ㅠ_ㅠ)  VISCO는 PC방을 전체로 빌려 각 클랜들을 모아 밤새도록 리그전 방식의 매치를 하는 랜(LAN)파티 문화로의 발전도 모색해 봤지만 역부족이었죠.

<리턴 투 캐슬 울펜슈타인>의 인기로 국내 서버 오픈을 알린 당시 기사
랜파티를 개최하는 등 다양한 마케팅을 펼쳤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기사 출처: 아이뉴스24뉴스 (링크))

 

가장 큰 감명을 준 인생게임, 리턴 투 캐슬 울펜슈타인
: 존 카멕의 친필 사인을 받기까지

이런 아쉬운 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리턴 투 캐슬 울펜슈타인>은 저를 골수 FPS 게이머가 되게 만들기엔 충분했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당시 어느 플레이어도 게임 자체에 대해 불만을 나타내지 않았고 그만큼 아주 잘 준비된 게임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심지어 2010년에 이드 소프트웨어에 근무하는 동생을 통해 개발자인 존 카멕에게 RTCW를 한국에서 부활시켜 보고 싶다는 메시지를 부탁했었는데요,

퀘이크 3 엔진은 내가 혼자 만든 것이라 내 주변 사람들 외에 다른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라는 답변과 함께 존 카멕을 포함한 RAGE 개발자들의 싸인 CD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아직도 존카멕의 답변이 진짜인건지 아니면 좋게 거절하려고 둘러댄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존카멕 정도의 천재라면 진짜일수도…)

2차 세계대전에 관심이 많고 FPS 장르에 거부감이 전혀 없었던 저에게는 이드 소프트웨어의 RTCW는 마치 커다란 선물과도 같았습니다. 여러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유통사가 포기하기 전까지 약 1년 여간 제 개인 게임사에 가장 감명을 준 게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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