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가 되자, 지금 당장 – 김영하

 

“예술가가 되자, 지금 당장!”

– 소설가 김영하

지난 8월 20일 수요일 늦은 저녁! 특유의 해학과 매력이 넘치는 표현을 통해 예술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김영하 소설가님께서 NC Culture Class 강연을 위해 판교 R&D센터를 방문해 주셨습니다. 본격적인 강연을 시작하기 전, 게임회사에 강연을 하러 오는 김에 몇 가지를 생각해 보셨다며 게임에 대한 작가님의 개인적인 생각들을 이야기 해 주셨는데, 어떤 내용인지 함께 알아볼까요?


 

 

소설과 게임

지금 일부 사람들은 게임이 위험하고 불온하다고 생각하지만, 19세기에는 소설도 그러한 비판을 받았습니다. 돈키호테처럼 흡인력이 강한 소설은 남미에서는 수입을 막은 적도 있어요. 소설에 대한 중독성의 예로…보스턴 항구에 찰스 디킨스의 소설이 도착할 때면 몇 백 명이 항구 앞에 나가 기다리기도 했다고 해요. 당시 식자들은 ‘사람들이 하잘것없는 남자의 연애 이야기, 집 나간 이야기 등의 내용을 보고 있으니 나라의 미래가 어둡다’ 라며 통탄하기도 했죠. 그런데 지금은 게임이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있네요.

제가 좋아하는 미래학자가 한 분 계십니다. 그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들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기 위해서는 역사적으로 출현한 순서들을 한 번 바꿔보세요.’ 라는 이야기였습니다. 그걸 소설과 게임에 적용을 하면, 게임이 소설보다 먼저 출현했다고 생각하는 세상이 존재할 수 있겠죠. 그리고 소설은 21세기에 등장하는거예요. 그랬을 때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거꾸로 된 반응을 보이지는 않을까요? ‘요즘 애들은 여럿이 모여서 할 수 있는 게임을 안하고 자기 집에 틀어박혀서 소설을 읽고 있다. 큰일났다. 애들 사회성이 다 떨어지게 되었다. 애들이 나와서 게임을 하게하자. 게임은 이미 안전한 걸로 입증이 되었지 않느냐. 게임은 사회성을 기를 수 있고 문명을 배우고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는데, 왜 이상한 이야기가 가득 든 소설을 읽느냐.’

과거 워싱턴 포스트에서 작가들이 사랑하는 소설의 순위를 뽑았어요. 1위가 톨스토이의『안나 카레니나』고, 2위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였어요.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보면 유부녀가 바람을 피우는 이야기지요. 『롤리타』는 세계문학 반열에 올라있지만, 한 중년 남자가 10대의 롤리타를 사랑하는 이야기에요. 교훈도 없고 받아야 될 메시지도 없어요. 그러나 세계 명작으로 분류되어 서울대에서 추천하고 그러니깐 부모님들이 소위 ‘안전한’ 소설인줄 알고 다 읽었냐, 독후감 썼냐 하는데… 사실 그걸 읽고 무슨 독후감을 쓸게 있겠습니까?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선입견이라는 것이 무서운 거죠.

소설도 읽어보면, 모든 소설이 안전하다고만은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 문학이라는 건 제도 안에 들어갔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안전해 보일 수 있는거지요. 하지만 사실 대부분의 소설은 미스터리와 부도덕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고, 주인공은 대부분 변태이거나, 바보이거나, 살인자이거나 그렇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 『죄와 벌』의 주인공도 살인자잖아요. 이런 인물들로 가득 차 있어요. 그런데 세계명작들은 왜 명예의 전당에 가서 사람들이 두루 읽어야 되는 걸로 회자되는가? 생각해보면 되게 흥미로운 주제입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이 부분에 대해서도 좀 더 이야기 하도록 하죠.

 

김영하

 

 

우리는 모두 예술가로 태어난다

우리는 모두 예술가로 태어납니다. 어렸을 때는 예술가로 태어나지만 나이가 들어서 점차 그것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아이들이 하는 대부분의 것들은 그 자체가 예술이죠. 아이들을 내버려 두면 계속 이야기하고 춤추고 하죠. 사실 그 노래나 춤의 수준이라는 것은 자기 아이가 아니라면 참아주기 힘든 수준입니다. 견디기 힘들 정도로 아이들은 반복을 좋아해서, 똑같은 노래를 부르고 똑같은 춤을 춥니다. 아이들은 그 자체가 너무 재미있는 거에요. 노래만 부르는 게 아니라 춤도 추고 벽지만 보면 뭐든 그리고… 이렇듯 아이들이 원초적으로 반복하는 행위는 예술행위입니다. 아이들은 소꿉놀이를 할 때도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도 그냥 앉아서 굉장히 즐겁게 하고 있어요. 그것은 아주 단순한 형태지만 드라마의 형태를 가지고 있죠. 갈등도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소꿉놀이는 일종의 연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느 날 제 아내에게 어렸을 때 뭘 하고 놀았냐고 물었더니, 부모님이 나가시면 남동생을 식탁 밑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우산으로 막은 다음에 ‘우리는 이제 고아야, 너는 이제 누나랑 살아야 해…’라고 말하며 동생을 울렸다고 말하더군요. 이것이 말하자면 아이들이 시작하는 연극입니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아이들은 연극에 갈등이 필요하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고 갈등을 만들어요. 그리고 그게 재미있는거죠.

그러다 아이들은 4~5살이 되면 거짓말을 시작합니다. 아이들이 거짓말을 시작하는 순간은 스토리텔링의 시작이에요. 현실에서 자기가 보지 못한 것을 말하는 거잖아요. 이것은 일정 수준 이상의 지력이 없으면 못하는 거에요. 아이는 이야기를 계속해서 지어냅니다. 그러나 지력이 떨어지는 순간 몇 번 지어내다 스스로 한계를 느끼고 스토리텔링을 멈추게 되죠. 아이들은 처음에 어떤 한마디를 던지고, 그 다음 문장을 지어냅니다. 이런 식의 스토리텔링은 전문적인 작가의 그것과 구조가 동일합니다. 우리 같은 소설가도, 첫 번째 감당할 수 없는 문장을 일단 던져놓고 본 다음에 그 다음 문장을 쓰죠. 이렇듯 아이가 하는 수많은 활동들을 통해 우리는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예술가로 태어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라면서 억압되는 예술적 충동

우리는 어렸을 때 예술가로 태어나지만 예술가로서의 본능 같은걸 잃어버리고 점점 더 평범한 사람이 되어 가죠. 동물 행동학에 대해 연구하는 최재천 교수님이 이런 말을 했어요. 동물의 행동과 인간의 행동이 다른 게 있다는 말이었어요. ‘인간이 하는 대부분의 행동은 동물도 다 합니다. 사랑도 하고, 리더도 있고 파벌도 만들고 정치도 하죠. 그런데 동물이 절대 하지 않는 행동이 있는데, 바로 강의 행동이에요.’ 동물들이 경청한다는 건 있을 수가 없어요. 그런데 여러분은 가만히 앉아서 제 말을 듣잖아요. 별로 재미없는 말도 가만히 앉아서 듣는단 말이에요. 이게 굉장히 문명화된 행동이고, 인간의 행동인 것인데 우리는 이런 것들을 학교에서 배우게 되죠. 학교의 교육과정을 거치면서 우리는 남이 이상한 말을 해도 참고 버티는 연습을 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학교를 다니며 예술활동을 더 이상 해서는 안 된다는 압력을 받게 되요. 그래서 결국에는 자신의 충동을 억압하게 됩니다. 자기 내면의 예술적 충동들을 억압하고, 부모들도 이 억압을 통해 자기 아이가 학습에 적합한 아이가 되길 원하죠. 학습에 적합한 아이라는건, 가만히 앉아서 시키는 대로 숙제를 하는 또는 공부를 하는 그런 아입니다. 요즘은 가만히 앉아서 공부해야 하는게 정상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아이들은 친구와 같이 있을 때 혼자 나와서 노래를 부르면 안된다, 학교 벽에 낙서하면 안된다, 그런 여러 가지 규칙들을 배우며 평범한 아이가 되어갑니다.

제가 중학교 2학년때 경복궁으로 사생대회를 갔어요. 사생대회를 가면 눈앞에 아름다운 풍경을 그려야 하는데 그리는 것이 싫어서 도화지를 까만색으로만 칠하고 있었어요. 거의 다 칠했을 때 뒤를 돌아보니 선생님이 계셨죠. 뭘 그린거냐고 물으시는 선생님께 ‘어두운 밤 나무 위에 까마귀가 앉아서 울고 있어요’ 그래서 그걸 그린다고 했죠. ‘영하는 그림실력은 없는데 굉장한 스토리텔링의 능력을 가지고 있구나…’라고 말해주면 좋았겠지만… 전 결국 제대로 그리지 않은 벌로 제가 그린 그림을 입에 물고 경복궁 앞에 서 있었어요. 굉장히 상처가 되었죠. 분명히 저는 말이 된다고 생각했는데 선생님은 입만 살았다며 저를 혼내셨죠.

그 뒤로 제가 대학을 졸업하고 유럽에 배낭여행을 가보니 미술관 마다 이런 그림들이 걸려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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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무제에요. 바젤이나 파리의 미술관에 마치 황토벽지 같은, 제목도 없는 작품이 걸려있는 거에요.

전 억울했죠. 이 사람들이 그린 그림은 이렇게 작품으로 인정을 받는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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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은 피카소의 ‘황소’라는 작품인데요. 이 작품은 피카소 집 앞에 버려놓은 자전거 안장과 핸들을 붙여서 황소라고 명명을 한 작품이에요. 오른쪽은 변기가 아니라 마르셀 뒤샹의 ‘샘’이라는 작품이죠. 이런 그림을 보며 현대 미술이란게 이런거구나 하는 깨달음이 왔어요. 말이 안되는 걸 만든 다음 그럴듯 하게, 말이 되게 만들면 되는 건데… 좀 억울하단 생각이 들었죠. 나중에 찾아보니 피카소가 이런 말을 했더군요. “나는 보는 것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생각한 것을 그린다.” 그리고 이게 바로 제가 하고 싶은 말이었어요. 내가 까마귀를 생각하며 까마귀를 그리고 있는데, 왜 혼나야만 했을까…무척 억울했죠. 어쨌든 이런 과정을 거쳐서, 우리는 본디 지니고 태어난 예술가적 본성을 억누르는 사람이 됩니다.

 

우리 마음 속 어린 예술가들은 죽지 않고 살아있다

그런데요, 우리 마음속의 어린 예술가는 죽지 않아요. 어렸을 때 느꼈던 즐거웠던 경험들이 누구나 하나씩은 있을텐데요,  이런 것들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습니다. 제가 한국종합예술학교에서 교수로 몇 년 일을 하면서 글쓰기를 가르쳤어요. 그 때 가르치던 학생들에게 가장 행복했던 경험에 대해 써보라고 했는데, 물론 예술학교라 특히 더 그랬던 부분도 있겠지만 예술적 경험을 했던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기억하고 있는 거에요. 언니와 피아노 치던 경험, 칼춤을 춘 경험, 연극을 했던 경험… 그런 경험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아이들이 많았어요.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어릴 적 했던 예술적 기억을 잊지 못하더라구요. 저 역시 대학시절 음대에서 배웠던 수업시간이 좋은 경험으로 남아있어요.

우리 마음 속 어린 예술가들은 계속 억눌린 채로 있을 뿐이지 사라지진 않아요. 어떤 계기가 있으면 반드시 살아나요. 그런데 학교 생활, 사회생활은 기본적으로 억눌려 있잖아요. 억눌려 있으면 결국 ‘시기’라는 감정이 살아나요. 자기는 못하고 있는데 누군가 예술적 재능을 발현하고 있으면 괜히 악플을 달고 싶어져요. TV속 많은 사람들이 예술을 하고 있는걸 보면 논평하고 싶고 비판하고 싶죠. 저도 그랬어요. 그런데 남을 시기하고 험담하고 미워하며 사는 건 좋지 않죠.

 

예술가의 악마, “그건 해서 뭐 하려고 그래(What For?)”

우리가 마음 속에서 죽지 않고 살아있는 예술을 하려고 하면, 우리 내면에 악마가 나타납니다. 네 글은 진부해, 표절이야, 넌 글재주가 너무 없어 등등…다양한 악마가 나타나죠.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글쓰기 수업을 할 때 저는 학생들에게 미친 듯이 글을 빨리 쓰라고 했습니다. 글을 쓸 때 우리에게 찾아오는 악마가 미처 따라올 수 없도록 아주 빨리 달리라는 겁니다. 하지만 맨날 그렇게 빨리 달리라는 것은 아니고,  처음에 단상이나 글의 초안을 잡거나 할 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럴 때는 빨리 쓸 필요가 있어요. 시간을 많이 준다고 좋은 글이 나오는게 아니에요. 돌이켜보면 시간을 많이 준 글보다 짧은 시간에 쓴 것이 더 감동적인 게 많았어요. 집에 가서 글 쓰라고 하면 계속해서 우리를 글이 아닌 다른 곳으로 데려가는 유혹이 많아요. 재능을 집중해서 뽑아내는 능력이 점점 떨어지고, 주위를 흐트러트리는 방해요소가 나타납니다. 우리 마음 속의 악마와 싸워야 합니다.

우리 내면에 있는 예술가의 악마를 잘 처리한 다음에 이제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면 이제 밖에서도 예술가의 악마가 나타납니다. 밖에서 나타나는 예술가의 악마는 부모, 약혼자, 직장동료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 악마는 여러분의 부모, 남편, 배우자가 아닙니다. 악마가 잠시 변신해서 여러분의 예술을 막기 위해서 나타난 겁니다. 이들이 하는 마법의 말이 있는데요. 이 말을 들으면 우린 모두 주저앉게 되요.

그건 바로 ”그건 해서 뭐 하려고 그래?” 라는 말입니다.

이것, 굉장히 무서운 말입니다. 나이 들어 예술 할까? 하면 주변에서 하는 말이란 죄다 ‘대체 그건 해서 뭐 하려고 그래?’ 같은 식이죠.  그 외 실용적인 여러 가능성을 들이대며 예술을 참으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떨쳐내기가 굉장히 어려운데요, 이 질문이 실용성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담대하게 말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이것은 뭘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즐겁자고 하는 것이라고. ‘미안해 나만 좀 재밌을게…’ 하면서 혼자 시작하는 겁니다. 왜냐하면 사실, 예술의 즐거움이 무용성에서 오기 때문입니다. 예술은 유용해지면 재미가 없어요. 예술의 즐거움이라는 것은 일이 아닌 라는 사실에서 오는 것이라, 아무 목적이 없거나 돈이 안되는 상태가 재미있어요. 돈이 되기 시작하는 순간 재미도 조금씩 사라지는 점이 있죠. 오로지 즐거움만을 위해 남겨둬야 하는 영역도 있어야 하는 거예요.

 

다중 정체성의 시대, 과연 우리에게 어떤 것이 필요할까?

제가 뉴욕에 있을 때 택시를 탔는데, 택시기사가 본인은 연극배우고 셰익스피어 전문배우래요. 반가운 마음에 당신이 셰익스피어 배우면 어느 배역을 하느냐 물으니 리어왕을 한다고 하더군요. 리어왕은 치매에 걸려 미쳐가는 왕이에요. 배우들이 표현하기 어렵고 힘든 역중 하나입니다. 리어왕의 유명한 대사가 있어요.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대사가 멋있죠? 이 대사가 왜 중요하냐면, 이 사람이 택시기사임과 동시에 연극배우라는 사실을 잘 설명해 주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은 자기를 연극배우라고 생각해요. 택시는 부업인 거죠. 이제는 우리가 어떤 하나의 정체성이 아니라 여러 가지 정체성을 갖게 되는 시대인데, 그 많은 정체성 중에 하나 정도는 예술가여도 좋지 않을까…그런 생각을 이 택시기사를 만나서 하게 되었죠.

예전에는 예술가적 자아가 있더라도 가끔 취미나 부업으로만 발현시키고 그것을 숨겼어요. 드러내는 것이 유리하지 않았으니까요. 혹시 예술적인 열망을 가지고 있어도 노래방에서나 가끔 발산하는 정도? 그게 우리가 살아온 과거의 시대였죠. 사회적 자아가 비대했고, 예술적 자아를 작게 숨기고 있었어요. 하지만 예술가적 자아가 억눌러져 있으면 사회적 자아도 불행합니다. 마음 속에 시기심이 생기고…굉장히 꼬인단 말이죠. 이상적인 것은 두 자아가 공존하는 것입니다. 사회적 자아가 감당해야 할 몫 또한 따로 있는 거죠. 예술가적 자아는 예측 불가능하고 충동적이고 이상하고 기괴한 이야기를 상상하는 자아에요. 어린아이를 생각하면 되요. 어린아이는 예술가고 어린 아이들은 통제하기 어렵잖아요. 그런 자아가 우리 내면에 아직 남아있죠. 뉴욕의 택시 기사도 택시를 모는 동안에는 사회적 자아를 가지고 운전을 해요. 그러나 연극 무대에 가면 미친 왕이 되는 거죠. 이 두 개가 공존함으로써 서로가 서로를 지켜주는 거죠. 사회적 자아도 평온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고, 예술적 자아도 거리낌없이 자기를 표현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이제는 예술을 하고 싶으면 쉽게 할 수 있는 때가 되었어요. 아이폰으로 영화를 찍고, 음악프로그램이나 음성파일을 쉽게 만들 수 있는 시대에요. 그리고 확고한 직업이 자기의 중심 정체성이 됐죠. 직업의 지속성이 짧아지고 예술가로써의 자아, 정체성이 더욱 길어지는 시대가 되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습니다.

 

마사 그레이엄 (Martha Graham) – <Just do it>

 

http://en.wikipedia.org/wiki/Martha_Graham#mediaviewer/File:Martha_Graham_1948.jpg

 

제가 1990년에 우연히 TV를 켰는데 이분이 딱 나왔어요. 현대무용의 대모인 마사 그레이엄 여사인데 당시 한국을 방문하셨던겁니다. 이 때 이 분은 95세였고 이듬해 돌아가셨어요. 정말 나이가 많을 때 오셨던거죠. 당시 기자들이 95세나 된 마사 그레이엄 여사에게 조금 바보 같은 질문을 했어요. “무용을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한국의 무용학도에게 한마디만 해주시죠?” 라는 질문이었습니다. 휠체어를 타고 들어온 마사 그레이엄 여사가 정말 딱 한마디 하고 입국장을 빠져나갔는데, 그 말이 아직까지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Just do it”.

이게 끝이었어요. 그냥 하라는 거에요. 우연히 이 장면을 보고 제가 큰 충격을 받았어요. 그 때 전 대학원생이었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를 구체적으로 고민하던 때였는데, 이 한마디가 저에게 벼락 같은 충격을 줬습니다. 생각 말고 그냥 하라는 거죠. 그래서 전 그냥 쓰기 시작했어요. 이상한 이야기였지만, 이상한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 있으면 이상한 이야기를 기다리는 사람도 있더군요. 그래서 소설을 쓰고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가끔 굉장히 힘들고 그럴 때 이 분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에게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은…혹시 마음속에 어린 예술가가 억눌려 있다면, 그래서 괜히 기타 파는 곳에서 종종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면 “그냥 한번 해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그런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Just do 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