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과 심리학 #9 게임으로 제약을 극복하는 힘

심리학의 관점에서 현 시대의 게임에 대한 가치와 의미를 되짚어 보는 ‘게임과 심리학’.

문화심리학자 이장주 박사가 들려주는 ‘게임과 심리학’ 9편에서는 우리가 살면서 겪는 사회적, 문화적 제약이 지니는 의미를 게임 플레이 및 게이머의 특성과 관련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인류는 왜 첨단기술을 개발해서 우주로 나가려 애를 쓰는 것일까요?

달에 간다고 해서 살기가 좋은 것도, 얻을 것이 많은 것도 아닙니다. 태양계 밖으로 나간다고 획기적인 것을 얻는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엄청난 돈과 인력 그리고 위험을 감수해가면서까지 가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지구라는 공간의 한계와 중력이라는 물리적 제약을 극복하고자 하는 열망, 더 크고 자유로운 존재가 되고자 하는 동기가 그 근원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우주에 대한 인류의 도전은 게이머가 게임을 하는 이유와 그 맥을 같이 합니다.

 

# 제약의 숨은 효과

제약(constraint)은 불완전한 존재인 인간이 늘 감수해야 하는 조건 중 하나입니다.

사람은 공기가 없으면 3분을, 추운 곳에 노출되면 3시간을, 물이 없으면 3일을, 식량이 없으면 3주를 넘기기 어렵다고 합니다. 이를 생존의 333 법칙이라고도 부릅니다. 이중 하나라도 한계를 벗어나면 사람은 죽게 됩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사람은 잠을 자지 않고는 살 수 없습니다. 그리고 잠을 자지 않는다 해도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의 제약으로 며칠도 못 버티고 지칩니다.

설령 버틴다고 하더라도 다른 동물처럼 힘이 센 것도, 빠른 발이나 날개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활동 반경의 제약이 매우 큽니다. 거기에 사람들끼리 만들어 놓은 문화적 제약들(학벌, 종교, 경제력, 자격증 등)까지 고려하면 정말 세상은 제약 덩어리들입니다.

수많은 제약들 속에서 이렇게 살아 남았다는 것 자체가 기적!

사람이란 존재가 제약에 둘러싸여 있다고는 합니다만, 청소년들은 그런 제약들에 더해 또 다른 제약을 받습니다. 미성년의 상태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지만 나이라는 제약을 극복하는 것은 시간을 기다리는 방법 외에는 달리 도리가 없기 때문이죠.

이때 이런 제약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존재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바로 게임입니다. 게임은 제약 덩어리 그 자체입니다. 그리고 이런 제약을 헤쳐나갈 때 게이머들은 재미를 느끼게 되지요.

다소 어려운 제약인 미션을 성공하면, 더 큰 제약이 기다립니다. 더 강한 몬스터들이나 빗발치는 총탄과 엄청난 속도로 다가오는 장애물과 같은 극강의 난이도 미션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클리어한 후 나중에 만나는 것은 최강의 플레이어들입니다. 최강의 플레이어들은 대결을 통해 친구가 되고, 이들은 힘을 합쳐 절대 쓰러지지 않을 것 같은 최종 보스를 물리칩니다.

게이머의 겜생은 산 넘어 산이로구나~

제약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 거쳐가야 할 경로라는 의미도 됩니다. 일상적인 용어로 바꾸자면 ‘문제’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동일한 문제에 대해서 사람들은 다룰 수 있는 정도, 즉 숙달의 정도가 서로 다르죠. 하수와 고수로 나뉘는 것은 제약을 어떻게 다룰 수 있는가에 대한 능력으로 구분됩니다. 이는 전략의 다양성과 숙달의 측면에서 구분됩니다.

사람들이 숙달의 과정, 즉 세상을 조금 더 능숙하게 살 수 있는 능력을 키워갈 때 느끼는 현상이 재미, 성취감, 보람 같은 긍정적인 감정들입니다.

높이 올라갈수록 그 기쁨은 더 커집니다.

어려운 난관에서도 성취를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을 심리학에서는 자신감(confidence)이라고 부릅니다. 자신감은 수많은 제약들이 만들어낸 보석 같은 존재입니다.

애써서 보석을 얻었을 때 사람들은 기쁨을 느낍니다. 마찬가지로 난관을 뚫고 성취를 얻었을 때 형언할 수 없는 다양한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이런 점에서 사람들은 제약을 피하거나 싫어하기보다는 좋아하고 즐긴다고 보는 편이 더 적절합니다.

아~ 그래서 제약 덩어리들이 몰려 있는 게임의 인기가 좋은 까닭이 여기 숨어 있었군요.

 

# 제약을 인식하는 세 가지 수준

우리와 늘 함께 지내야 하는 제약과 어떤 관계를 맺는가에 따라 피해자, 적응자, 혁신자 등 3가지 유형의 집단[1]으로 구분이 됩니다.

그 첫째는 피해자입니다. 제약에 어쩔 수 없이 휘둘리는 사람들입니다.

제약에 직면하면 심한 피해의식을 느끼고, 자신의 생각을 제약에 맞추어 축소시킵니다. ‘이런 미션은 사람에게 가능한 수준이 아니야!’라고 생각하는 초심자 게이머가 있다고 한다면, 초심자들이 대략 여기에 해당한다고 할 것입니다.

둘째는 적응자입니다. 조금 더 실력이 늘어서 제약을 다루는 일에 익숙해지면 적응자로 바뀝니다.

자신의 생각을 축소하기보다는 어떻게든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아냅니다. ‘가만히 있어보자. 이걸 이런 식으로 해보면 어떨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단계입니다. 이들은 제약을 다룰 수 있는 자기만의 방법을 찾아 반복적으로 사용합니다. 적절하게 재미를 느끼며 즐기는 중고수들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피해자와 적응자의 온도차.

마지막으로 개혁자 그룹이 있습니다.

제약을 오히려 기회로 삼을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제까지와 다른 조건과 기준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대체로 게이머들 중에 새로운 메타를 만들어내는 초고수들이나 세상을 바꾸어 놓는 혁신자들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중고수들과 초고수들을 가르는 가장 큰 차이는 동기에 있다고 합니다. 제약을 해결하려는 간절함의 정도 차이가 수준의 차이를 만든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강한 믿음과 끝없는 노력으로 초고수의 자리에 올라선 페이커.

제약이 강하면 강할수록 이들의 간절함도 함께 강해집니다. 강한 제약을 만났을 때 할 수 있다는 믿음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 그리고 그것을 꼭 해결하고야 말겠다는 강한 야망(동기)이라는 3박자가 갖추어져야 비로소 초고수가 탄생되는 것입니다.

이때 사람들은 내가 최고라는 느낌과 세상은 나를 위해 존재하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영웅이 탄생하는 순간입니다. 이런 점에서 영웅은 큰 제약 속에서 큰 야망을 갖고 나아가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게임 속 제약, 게임 밖 제약

영원한 것은 절대로 없지요. 영웅도 늙어갑니다. 한때 혁신이라고 불리는 것들도 시간이 흐르면서 평범한 것으로 변하게 됩니다. 얼마 전까지 놀라움을 일으킨 혁신도 시간이 지나면서 안봐도 뻔한 수법으로 느껴집니다.

이런 현상을 노선의존(path dependence)라고 부릅니다. 늘 다니던 길로만 다닌다는 의미입니다. 고인물이 탄생하는 겁니다. 지겹고 갑갑해도 할 수 없습니다. 다른 길을 찾지 못하는 한 그냥 다녀야 하지요. 혁신이 새로운 제약으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남들이 가지 않은 낙엽 쌓인 길을 선택한다는 것!

세상이 발전할수록 혁신은 더딜 수밖에 없습니다. 혁신의 기대치와 범위가 높고 커졌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시행착오를 통해 현실에서 연습이 가능했다면, 지금은 현실에서 이런 시행착오를 수용하기 힘듭니다.

이런 상황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혁신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은 게임이 중요한 훈련소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이번 블랙홀 사진을 찍는데 결정적 기여를 한 20대 대학원생 케이티 보우만(Katie Bouman)은 틀림없이 게이머였을 겁니다. 블랙혹을 찍기 위해서는 지구만큼 큰 망원경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이런 제약을 뚫고 보우만은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전파망원경을 연결해 가상의 지구만큼 큰 초대형 망원경을 만들었고, 수집된 데이터를 모아 이미지를 완성하였다고 합니다. 이런 전지구적 사고의 스케일과 협력 네트워크는 게임 속에서 아주 흔한 모습입니다.

게이머의 사고로 제약을 극복하고 성취하기! feat. 케이티 보우만.

다음 달 5월에는 게임을 공식질병으로 결정하는 WHO 세계보건총회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게임에 대한 엄청난 사회적 제약입니다. 우리 사회가 게임의 피해자라는 것을 공식화하는 결정입니다.

강한 장애물을 해결하는 데 익숙한 게이머와 게임업계는 이번 일을 어떻게 헤쳐나갈 수 있을까요? 쉽지는 않겠지만 결국 방법을 찾아내리라고 저는 굳게 믿습니다. 제약에 굴하지 않았던 인류의 전통이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테니 말입니다.

참고 문헌

[1] Morgan, A., & Barden, M. (2015). A beautiful constraint: how to transform your limitations into advantages, and why it’s everyone’s business. John Wiley & Sons.


이장주 문화심리학자. 평범한 사람들이 더 활력 있고, 즐겁게 살 수 있는 길을 찾다가 게임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현재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재직 중이며, 심리학의 관점에서 문화적 이슈를 다루는 글쓰기와 강연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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