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회사 생활 적응기

엔씨소프트 사운드실에는 유독 개성 넘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술가적인 성향이 짙은 음악인들이 모인 집단이기 때문이죠~. 특히 사운드실의 작곡가들은 회사원이기 이전에 음악가 vs 음악가이기 이전에 회사원  사이에서 꽤나 지난한 줄다리기 과정을 겪었다고 합니다.

프리~한 생활을 하다가 직장인으로서의 제2의 삶을 시작했다는 그들. 자칭 베짱이에서 타칭 개미가 되기까지, 그 눈물겨운(?) 사연을 음악 2팀 임효범 팀장의 생생한 경험담을 통해 만나 보시죠~!  😉


# 프리랜서에서 회사원 되기

안녕? 난 임효범이라고 해. ( ͡° ͜ʖ ͡°) 난 원래 애니메이션, 광고, 홍보 영상 등의 배경 음악을 만들던 프리랜서였어. 프리랜서는 그야말로 ‘프리’하게 놀면서 일하는 생활이야. 정말 내 적성에 딱이었지. 그런데 왜 회사에 들어왔냐고?

프리랜서 생활이 좋았지만, 나날이 궁핍해지는 생활고도 무시할 순 없었어. 직장인처럼 정해진 날에 따박따박 월급들이 들어오는 게 아니니까. 한 번은 외주 계약으로 일을 했는데, 전체 음악 예산의 1/10도 안 되는 터무니 없는 금액을 페이랍시고 주는 거야. 나처럼 능력 있는(!) 작곡가에게 감히 이런 열정 페이를 주다니!!! (부르르르…) 내가 만든 음악을 헐값에 판 기분이었어.

20150615_110655열정 + 재능 + 재주 = ??? 

당시 내 나이가 서른이었는데, 부끄럽지만 부모님께 용돈을 받아 생활하고 있었어. 많이 받은 건 아니고, 한 달에 30만 원 정도? ;ㅁ; 친형과 함께 살고 있었는데, 그때 형도 프리랜서였어. 멀쩡한 아들 둘이 반백수처럼 지내는 걸 보며 우리 부모님의 심경은 아마도 이렇지 않았을까?

북두의권

2006년 4월, 프리랜서의 단꿈을 멀리하고 엔씨소프트에 입사했어. 당시 오케스트라 음악을 컴퓨터 미디 프로그램만으로 작곡할 수 있는 사람이 몇 없었는데, 내가 그 중 한 사람이었거든. 이전 작업들을 경력으로 인정받아서 꽤 수월하게 입사에 성공한 셈이었지.

그렇게 시작한 내 직장 생활. 리니지2 음악을 작곡하고, 이제 막 개발 단계에 접어든 블소 음악 작업에도 참여하기 시작했지. 엔씨라는 회사를 알고 서서히 적응해 가는 시간이었어. 그런데 입사 후 채 1년이 안 된 어느 날, 내가 속해 있던 팀이 해체되다시피 하는 일이 생겼어. 멘붕이었지만 다행히 리니지1에 속해 있던 사운드 팀에 합류하게 됐지. 초반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는 불안감 때문에 괴로웠어. 하지만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좋은 사람이라는 걸 깨닫기 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

 

# 두부 멘탈들이 모인 팀 

난 주변에서도 알아 주는 두부 멘탈이야. 일명 ‘부서지기 쉬운 남자’랄까? 그런데 음악팀 구성원들 대부분이 나와 비슷해. 자유로운 사고방식에, 감성적이고, 자기 중심적이며 통제가 잘 안 되지. 다들 약간의 조울증도 가지고 있어. 전 인류의 난제인 중2병, 그것도 말기라고 해야 하나? 직장인이 되기엔 다소 부적절해 보이는(?) 사람들로 구성돼 있지. (팀원들은 부정할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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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팀 멘탈은 두부두부해~조심히 다뤄 주세요  😳 

나 역시 직장인으로 거듭나는 게 쉽지 않았어. 특히 출근! 지각 에피소드가 좀 많은데, (실장님이 보시면 불호령 떨어질 게 뻔하니^^) 하나만 얘기해 볼게. 한번은 아침에 눈을 떴더니 오전 8시 40분인 거야. 집에서 회사까지 한 시간 걸리는데! 눈곱만 떼고 축지법 쓰다시피 하며 회사에 도착했는데 어라라? 사무실에 아무도 없는 거야. 뭐..뭐지? 몰래 카메라인가? 나 빼고 워크샵 갔나? 정신을 가다듬고 시계를 보니 그때 시각이 오전 8시 30분이었어. 내가 일어난 시각은 7시 40분이었던 거야. 지각 트라우마가 심할 때긴 했지만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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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장님 저 차단하셨냐며…

출근만큼 힘든 것 중 하나는 전화 통화였어. 난 수줍음 많은 남자거든. 친하지 않은 타 부서 사람에게 전화로 뭔가를 부탁하는 게 너무 어려운 거야! 수화기만 들면 등에 땀이 삐질삐질 났어. ‘저,저기요…저 음악 팀의 임효범이라고 하는데요…저기 그게…그게…’ 말 더듬으면 어쩌지? 버벅거리면 상대방이 나 무시하는 거 아니야? 근데 난 지금 왜 전화를 한 거지?  !@!#@#$%@% 이런 오만 가지 생각을 하며 머리를 쥐어 뜯었던 기억이 나.

처음엔 좀 힘들었지만, 회사 생활이 주는 재미도 컸어. 신기한 건 나를 비롯한 음악 팀 멤버들이 아주 질긴 생명력과 적응력을 지니고 있단 거야. 다들 까칠하고 예민하며 중2병이 심한데, 한편으론 엄청 착하고 성실해. 자의식이 강하지만 심성이 착한 사람들이 모이면 대략 이렇게 돼.

일을 시킨다,  그것도 많이 시킨다 →  난 작곡가야!! 이런 걸 왜 시켜!! 하며 반발한다 → 그래도 시키니까 해야지…하며 한다, 매우 열심히 한다,  심지어 잘한다… →  옛다 칭찬(ex_뭐 나쁘진 않네, 담번엔 더 잘해 봐)  →  앗;;칭찬 넘 좋아;;; 더 열심히 할게욧! +ㅁ+ 하며 더 열심히 한다

…이런 현상의 반복이야.

아니-뭐-칭찬할-정도는

실장님 칭찬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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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팀 멤버들 반응 

그래서 엔씨소프트를 떠나는 작곡가들은 많지 않아. 일단 회사의 든든한 지원을 통해 얻는 음악적 경험이란 게 작곡가로서 누릴 수 있는 상당히 큰 메리트거든. 회사에서 작곡가들의 특성을 이해해 주는 측면도 많고 말야. 천성이 베짱이인 내가 직장인이 되다니! 입사 후 몇 년 뒤 난 깨달았어. 난 베짱이가 아니라, 베짱이 스타일의 개미였던 거야… 처음엔 석 달도 못 버틸 것 같았는데, 어느덧 입사 10년차가 되었지 뭐야. (*내년엔 10년 장기 근속 휴가도 갈 것 같아..)

 

# 게임 엔진을 이해하라! 

회사 생활에 적응하는 1차 미션을 어느 정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나자, 또 다른 어려움이 나타났어. 작곡에만 몰두할 수 없는 환경, 다시 말해 익숙하지 않은 업무들도 해야만 하는 상황이 벌어진 거야. 이를 테면 음악의 연출을 위한 업무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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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기대했던 회사 생활…난 작곡가야 음악 만드는 사람이라고! 

게임 회사인 이상, 단순히 음악을 만드는 것에만 그칠 수 없었어. 음악을 게임 내에서 어떻게 연출할 것인가가 작곡만큼이나 중요한 업무였지. 게임 음악 연출이라는 건 게임 내에서 음악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상황에 맞게 음악을 재생시키는 과정이야. 그러다 보니 게임 엔진을 꽤 심도 있게 연구하고 또 직접 만져야 했어. 개발 팀 만큼은 아니지만, 음악 팀 역시 게임 엔진에 숙련돼 있어야 했지.

재미있는 건 아직까지 게임 음악 연출을 전문적으로 하는 인력이 우리나라에 전무하다는 거야. 결국 음악 팀 내부에서 게임 엔진을 만지고 음악 연출을 직접 해내야 했지. 책상에 앉아 악보를 그리던 작곡가들이 게임 엔진을 직접 만지고 음악 연출에 몰두하면서 상당한 진통이 발생했어. 연출 업무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었고, 누군가 한 명이 총대를 매고 연출 업무에 뛰어들었다가 개미지옥 같은 스트레스의 블랙홀에 빠지기도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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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의 주요 업무…차라리 악보 백 장 그릴게요 ㅠㅠ 

앞서 말했듯이 작곡가들은 어린아이 같아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려는 경향이 강해. 하지만 반대로 ‘우쭈쭈~’하면서 어르고 달래며 애정을 듬뿍 주면 간이고 쓸개고 다 내 주는 순수한 사람들이기도 하지. ( ͡° ͜ʖ ͡°)

결국 음악 연출 업무를 나눠서 해야 한다는 것에 모두가 수긍하는 시점이 있었어. 으쌰으쌰! 다같이 게임 엔진에 대한 이해와 숙련도를 쌓기 시작했지. 나눠서 하니 못할 일이 없더라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나니 작곡에도 집중하고 게임 엔진에도 집중하며 개개인의 역량이 발전하는 시기가 왔어. 더욱이 음악 연출이라는 것이 매우 중요한 작업이라는 것에 모두 공감하며 게임 음악에 대한 이해가 상당히 높아지는 계기가 되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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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지금도 음악 작업에만 몰두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어. 하지만 회사에 들어온 이상 내가 좋아하는 일만 하겠다고 고집 부리면 ‘민폐 캐릭터’가 되기 십상이잖아? 음악 팀이라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어떻게 생활하면 좋을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지난 10년 동안 참 많이 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아. <어벤져스>의 주인공들만큼이나 개성이 분명하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우리 음악 팀 사람들. 그 사람들이 어느새 완벽한 팀 플레이를 하고 있다니! 이 정도면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뺨치는 변화 아닐까?


임효범 팀장의 회사 생활 적응기, 재미있게 보셨나요?

개성 넘치는 사운드실 멤버들의 이야기는 <블소 음악 탄생기>에서 계속됩니다.

기대 많이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