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5.11 게임 속 스토리텔링

게임 속 스토리텔링 #3 원숭이섬의 비밀

게임 칼럼니스트 이경혁 작가가 스토리텔링이 뛰어난 게임을 엄선해 다루는 ‘게임 속 스토리텔링’

3편에서는 게임계의 희극지왕이라 불리는 게임,  ‘원숭이섬의 비밀’을 소개합니다. ( ͡° ͜ʖ ͡°)


게임 속 스토리텔링 #3 원숭이섬의 비밀

캐주얼한 분위기의 게임들은 종종 개그라는 희극적 요소를 게임 안에 차용하곤 합니다.

전투라는 파괴와 폭력의 요소를 부드럽게 만들어 주고, 즐거운 놀이로서 게임을 게임답게 만들어 주는 요소이기 때문이죠.

이런 개그는 아닙니다 #아재개그 

이런 개그는 아닙니다 #아재개그 

많은 게임들이 희극적 요소를 부차적으로 사용하는 반면, 어떤 게임들은 작정하고 ‘너희를 웃겨서 죽여버리겠다!’ 를 모토로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그 중에서도 가히 게임계의 희극지왕이라고 부를 만한 게임 시리즈가 있죠.

바로 루카스아츠의 어드벤처 게임 시리즈 ‘원숭이섬의 비밀’ 입니다.

작정하고 웃길 분위기와는 사뭇 거리가 있어 보이는 인트로 화면 

작정하고 웃길 분위기와는 사뭇 거리가 있어 보이는 인트로 화면 

1990년 처음 선보인 뒤 총 4편의 메인 시리즈와 1편의 스핀오프를 출시한 이 시리즈는 가상 공간인 멜리 섬(Melee Island. Melee는 ‘칼싸움’을 의미하는 단어)을 배경으로 합니다.

멜리섬에서  펼쳐지는 해적들의 좌충우돌 모험과 배꼽 빠지는 유머가 이 게임의 핵심이죠.

원숭이섬이니까 #원숭이_인증 

원숭이섬이니까 #원숭이_인증 

주인공인 가이브러시와 멜리 섬의 총독이자 주인공의 연인인 일레인 말리, 주인공과 숙명의 대결을 펼치는 유령 해적 르척의 갈등 관계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사실 매우 단순한 형태입니다.

왼쪽부터 가이브러시, 일레인 말리,  르척

왼쪽부터 가이브러시, 일레인 말리,  르척

척은 언제나 일레인을 유령으로 만들어 자신의 신부로 삼으려 하고, 이를 막아내기 위한 가이브러시의 모험이 게임의 무게중심을 이루고 있죠.


곁가지가 아닌 유머 코드 

뻔해 보이는 모험담과 연애담을 풍성한 이야기로 이끌어내는 힘은 게임을 지배하는  유머 코드입니다.

단지 중간중간에 웃기는 장면을 넣는 정도가 아니라, 원숭이섬의 비밀은 게임 내에 유머 코드가 깊숙히 박혀서 게임의 진행을 만들어내는 수준입니다.

장면장면마다 깨알 유머가 가득! 

장면장면마다 깨알 유머가 가득! 

하고 많은 유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장면은 해적들의 칼싸움 장면입니다.

피가 튀고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살벌한 1:1 검술 장면은 유창한 말빨을 지닌 해적들의 욕설 배틀로 새롭게 재구성됩니다.

검술 검투 장면 ?  현란한 세치 혀 말장난 배틀!  #찰진욕설 

게임 속에서의 유머는 단지 대사나 배경으로만 존재하지 않고, 게임 구조 안을 깊숙하게 파고듭니다.

수수께끼를 해결하고 스토리를 진행하려면, 이런 넌센스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하기 때문이죠.

때문에 유머 코드는 곁들여진 사이드 메뉴가 아니라 게임 이야기 진행의 필수 요소로 거듭납니다.

유머 없이 상상하기 힘든 넌센스 기반의 문제 해결 장면 

유머 코드가 펼치는 이야기 전개는 때로는 게임 안팎을 넘나들기도 합니다.

플레이어를 바라보고 독백을 하며 콘텐츠의 경계를 허물기도 하고, 제작사인 루카스아츠의 다른 게임을 홍보하는 해적이 나타나 말발을 세우기도 하죠.

일단 나가서 우리 회사 신작 게임부터 구매하시죠? #대놓고_광고 

일단 나가서 우리 회사 신작 게임부터 구매하시죠? #대놓고_광고 

바로 이런 상식의 범주를 넘어 날뛰는 개그 때문에 플레이어들의 정신을 쏙 빼놓는 게임이라 할 수 있죠. 


게임매체에서 풀어낸 새로운 스토리텔링

정신없이 날뛰는 넌센스 속에서도 게임의 이야기 진행은 전혀 흐트러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게임은 애초에 판타지 공간에서 펼쳐지는 웃기는 모험담이기 때문이죠. 이게 말이 되냐, 안 되냐는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진짜가 아닌데 뭘  ( ͡° ͜ʖ ͡°)

어차피 진짜가 아닌데 뭘  ( ͡° ͜ʖ ͡°)

가상의 배경에서 펼쳐지는 비디오게임이라는 것을, 이 게임은  ‘어차피 이건 다 가상이잖아?’ 라고 인정하면서 거침없는 유머를 펼쳐나갑니다.

제작자 론 길버트는 바로 이런 요소에 대해 “유머는 게임의 약점을 장점으로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 말하기도 했죠.

원숭이 섬 시리즈의 제작자 론 길버트 

원숭이 섬 시리즈의 제작자 론 길버트 

가상임을 인정한다는 것은 이야기 전개에 있어 이야기 내부와 외부를 구별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같은 장소에서 계속 만나는 해적에게  “어째 이 동네 길은 다 똑같이 생겼죠?”라고 묻는 주인공의 행동을 통해, 게임의 이야기는 진지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게임 안팎을 넘나드는 말도 안 되는 유머조차도 플레이어가 자연스레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한 것이죠.

말이 안 되지만...무슨 상관이죠? 

말이 안 되지만…무슨 상관이죠? 

처음부터 끝까지 진지함이라곤 없지만 나름의 모험과 대결을 풀어나갈 수 있는 비결은  바로 이처럼 스스로를 내려놓는 참신한 스토리텔링 방식을 택했기 때문입니다.

대사 하나, 퍼즐 하나마저도 개그 요소 없이 지나가는 법이 없는 <원숭이섬의 비밀>.

현재까지 등장한 모든 게임 중에서도 넌센스 유머의 코드를 게임의 양식으로 가장 잘 소화해 낸 게임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경혁

이경혁

게임 제작 관련업에 종사한 경험이 없는
순수 게이머 출신의 게임 칼럼니스트.
게임 비평을 통해 우리 사회 전반에
게임의 매체성을 환기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중이다.
저서로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이 있으며
성균관대에서 ‘게임과 인문학’ 교양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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