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3.08 게임과 뇌과학

하지현의 게임과 뇌과학 #1 몰입, 어디까지 해봤니?

게임은 우리 삶에 활력소가 되어줍니다. 어려운 미션을 해결했을 땐 통쾌함과 성취감을 느끼게 해주고, 고민거리로 복잡한 마음을 시원하게 뻥 뚫어주기도 하죠. (o´∀`o)ノ

그런데 이런 게임이 우리의 두뇌와 심리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궁금해하실 여러분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하지현 교수님이 들려주는 『게임과 뇌과학』! 게임이 우리의 뇌와 정신 발달에 어떻게 연결되는지 친절하고 상세하게 설명해주신다고 합니다.

첫 회는 몰입과 게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몰입을 경험해본 사람은 인생을 대하는 자세와 자신감, 역경을 맞이했을 때의 행동까지 모든 점에서 달라진다고 하는데요. 어떤 이야기일지 함께 들어보시죠. (*’∀’ )


하지현 교수의 게임과 뇌과학

난 잠이 많은 편이라 아무리 중요한 시험이 다음날에 있다고 해도 몇 시간은 자야만 했다.  어떤 작가는 밤이 되어야 비로소 창작의욕이 샘솟는다고 하지만 나는 정반대다. 밤이 되면 불안해지고, 혹시 잠을 못잘까 겁이 난다. 이른 아침부터 시작하는 의과대학과 병원의 스케줄에 맞춰 살아오다보니 더욱 그렇게 되었다.

이런 내가 딱 한 번 밤을 새운 적 있다. 그것도 밤을 새웠다는 것을 의식하지도 못하다 동이 튼 다음에야 알아차린 일이 있었다. 공부를 하거나 책을 쓰다가 그런 게 아니라, 게임을 하다가 그랬던 것이니, 그것은 코에이 사의 명작 ‘삼국지’였다.

초기 설정 화면만 봐도 두근거리는 삼국지

초기 설정 화면만 봐도 두근두근 

처음 친구에게 몇 장의 디스켓을 받은 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인스톨을 하고, 집에 있는 AT컴퓨터와 흑백모니터에서 따다닥 소리를 내면서 장수와 병사들이 움직이고 턴이 바뀌고, 전략을 짤 때마다 나라가 흥하고 망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에 빠지기 시작했다. 어느덧 불타올라 결국 천하를 통일하는데 성공했고, 그날 밤 나는 시간의 흐름이 멈춰버린 것을 처음 느꼈다.

뭔가 홀렸다가 깨어난 기분이었다. 후회스럽다기보다 통쾌했고 짜릿한 느낌을 경험했다. 한참이 지나 정신과 의사가 된 다음에 그게 멋진말로 바로 ‘몰입(flow)’이라 부르는 경험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놀라 선글라스를 벗는 남자_인터넷 짤

그게 바로..몰입이었군아…?!

알고 난 다음에는 그 정도 몰입을 몇 번 경험해 보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 느낌이 뭔지는 알 수 있었기에 자주 바랐다. 원고가 벽에 막혀 막막해지거나 마감에 몰려 있을 때에 ‘그분이 오시기’를 바랄 때가 있다. 아주 가끔 그분이 오면 손가락이 머리가 돌아가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게 몰입을 하고 손이 너무 아파서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덧 몇 페이지를 후루룩 써놓은 모니터를 발견한다. 하지만 나의 바람과 달리, 그 분은 정말 잘 오지 않으신다.

나름의 징크스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책이 잘써지는 장소, 시간, 의식이 생기는 것이다. 나도 나름 집중을 잘하는 편이라 자부하지만, 밤새 게임을 할 때 만큼 몰입을 오랫동안 해보지는 못한 것 같다. 이렇게 흔치 않은 경험이지만, 학자들은 몰입이란 것을 잘 할수 있고, 해본 사람이어야 어느 이상의 성취를 한다고 주장한다.

뭐든 자주 하면 늘듯, 몰입도 많이 해 볼 수록 잘 할 수 있게 된다는 사실!

뭐든 자주 하면 늘듯, 몰입도 많이 해 볼 수록 잘 할 수 있게 된다는 사실!

몰입(flow)은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가 1975년 처음 소개한 개념으로 ‘창조적인 성취감과 고조된 기능에서 오는 만족스럽고 기운찬 느낌’, ‘낙관적인 자세로 주변 세계에 깊이 열중하는 것’, ‘삶이 고조되는 순간에 물 흐르듯 행동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느낌’이라 설명한다. 이 느낌은 긍정적이고 창의적인 경험이다. 이 몰입의 경험을 해본 사람은 변화에 대한 추동력을 가질 수 있고,  자신의 능력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다.

몰입의 경험동안에는 주관적으로는 시간이 흘러가지 않는 것 같이 느끼지만 실제로는 많은 시간이 흘러가고 있는 상대적인 경험을 한다. 반대로 절정경험(peak experience)을 경험하는 운동선수와 같이 1초의 시간이 정지화면과 같이 긴 시간으로 쪼개져서 느껴지기도 한다. 마치 쏟아지는 돌더미가 슬로우모션으로 보이면서 하나하나 피해나가는 수퍼히어로가 된 것과 같다.

네오도 사실은 몰입상태였을지도 모른다_메트릭스

네오도 사실은 몰입상태였을지도 모른다

이와 반대로 몰입을 경험해보지 못한 이의 삶은 공허하고 권태롭다. 시간은 너무나 천천히 흐르는 것 같고 무엇하나 새롭지 않다고 여기기 쉽다.

그렇지만 이 몰입의 경험을 공부를 하면서 느껴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마도 빅뱅이론의 주인공 쉘든 쿠퍼 정도는 돼야 화이트보드에 끈이론의 복잡한 공식을 풀면서 시간가는 줄 모를 것이다. 그걸 기대하는 것은 솔직히 비현실적인 것이라 생각한다.

빅뱅이론의 주인공 쉘든 쿠퍼 정도는 돼야 화이트보드에 끈이론의 복잡한 공식을 풀면서 시간가는 줄 모를 것이다.

일반인은 공식 푸는 데 시간을 할애하진 않겠죠 어차피 못 푸니까…

우리에게는 의도적으로 몰입의 경험을 해볼 필요가 있다. 그걸 경험해본 사람과 아닌 사람의 삶에 대한 자세, 자기확신감, 역경을 대하는 자세, 주어진 일을 해내려는 주도적 태도는 많이 다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 몰입의 경험은 쉽게 오지 않는다는게 문제다. 그렇다면 우리의 일상적 삶에서 가장 쉽게 몰입을 경험해볼 수 있는 건 언제일까? 바로 게임이다. 내가 그 경험을 일찍이 해봤듯이 게임은 몰입경험을 해볼 수 있는 최적의 상황이다.

일부에서는 물론 “중독성 있는 게임을 하니까 거기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을 이 신성한 몰입으로 말하면 안된다”고 반대의견을 낼 수 있다. 그 의견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모든 건 객관적 데이터와 연구결과로 말하자는 것이 앞으로 연재할 내 글의 핵심요지이기에 게임과 몰입경험을 잘 검증한 논문을 한 편 소개하려고 한다.

게임에서 몰입을 경험할 수 있다구!

게임에서 몰입을 경험할 수 있다구!

일본 홋카이도 대학의 신야 사카이 등이 ‘Neuroscience Letter’ 2014년도에 ‘Brain activity during the flow experience: A functional near-infrared spectroscopy study’란 논문을 발표했다. 연구자들은 대학생을 대상으로 테트리스 게임을 하게 했다. 첫 번째 집단은 블록이 12초에 한 개씩 떨어지도록 해서 아주아주 지겹게 만들었고 두 번째 집단은 처음에는 8초에 한 개씩 떨어지다가 20초마다 점점 빨라지게 세팅을 했고, 느리면 빨리 떨어지게 하는 것도 허용하여 자기 수준에 맞게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연구자들은 이 두 집단에게 게임 후에 몰입을 경험했는지를 조사하면서 fNRS를 측정했다. fNRS는 근적외선을 이용하여 두뇌의 혈류의 활동도로 특정한 뇌의 활성화를 측정할 수 있는 기구로 어떤 활동을 했을 때 뇌의 어느 부위가 활성화가 되는지를 비교적 안전하고 쉽게 알아낼 수 있다. 실험을 해보니 몰입을 경험한 사람들의 뇌의 배외측 전전두엽(dorsolateral prefrontal cortex), 복외측 전전두엽(ventrolateral prefrontal cortex), 전두엽극점부위(frontal pole area)의 뇌 활동도가 증가한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실험에 활용된 테트리스 게임실험에 활용된 테트리스 게임

이와 같이 몰입경험은 그냥 심리적으로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뇌의 가장 복잡하고 고차원적인 기능을 하는 부위인 전전두엽의 활동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었다. 활성화된 각각의 부위의 기능을 통합해서 볼 때 몰입이란 내부적으로 세운 목표를 유지하는 것, 인지와 정서의 상호작용, 결과에 대한 보상과정과 연관되어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몰입은 뇌의 상위기능을 활용하는 것이고 이를 자주 경험하는 것은 이 부분의 발달과 기능향상을 가져올 것을 예상할 수 있었다.

몰입을 경험할 때 전전두엽(prefrontal area)이 활성화된다

몰입을 경험할 때 전전두엽(prefrontal area)이 활성화된다

이제 게임을 하는 것에 대한 태도의 전환이 필요하지 않을까? 특별히 교육을 위해 만들어진 기능성 게임이 필요한 게 아니다. 그보다 좋아하고 즐기는 게임을 하되 스스로 목표를 정하고, 수준에 맞는 장애를 맞이해 적절한 수준의 노력을 통해 클리어해내고, 이에 대한 적당한 보상을 받는 것으로 충분하다. 바로 이것이 칙센트미하이가 제시한 ‘몰입(flow)’상태로 들어갈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심리학과 최신 뇌과학이 만나는 접점에 게임이 있다는 것, 신나고 재미있는 일 아닌가.


하지현

하지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울대 의과대학 졸업 후 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건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일하고 있다.
전문지식을 쉽게 풀어주는 글솜씨로 칼럼을 연재 중이며
『정신의학의 탄생』 등 10여 권의 책을 펴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