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5.17 게임과 심리학

게임과 심리학 #10 게임 이용의 질병화, 무엇이 문제인가

심리학의 관점에서 현 시대의 게임에 대한 가치와 의미를 되짚어 보는 ‘게임과 심리학’.

문화심리학자 이장주 박사가 들려주는 ‘게임과 심리학’ 10편에서는 ‘게임이용장애(Gaming disorder)’의 질병 등재 여부에 대한 세계보건기구(WHO)의 결정을 앞두고, 진단 기준의 타당성을 살피고 향후 예상되는 문제점을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게임과 심리학 #10 게임 이용의 질병화, 무엇이 문제인가


지난 2018년 공개된 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안(ICD-11) 초안에는 ‘게임이용장애(gaming disorder)’가 포함된 채 발표된 바 있습니다.

이 초안이 이달 20~28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세계보건총회에서 통과되면 2022년 1월 1일부로 효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그리고 질병코드를 공식적으로 부여 받게 됩니다.

이제 게임을 하는 것이 정신장애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게임이용장애란?

세계보건기구에서 밝힌 초안에 의하면 게임이용장애는 ‘중독적 행동으로 인한 장애’의 범주에 포함되며 진단 기준과 유의 사항은 아래와 같습니다.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게임(온라인/오프라인 게임 모두 포함) 이용에 다음의 3가지 특성을 동반할 때 게임장애로 진단됩니다.

1) 게임에 대한 조절력(control) 상실, 2) 게임이 다른 일상생활에 비해 현저하게 우선적 활동이 됨, 3) 부정적 문제가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게임의 과도한 사용하여 개인, 가족, 사회, 교육, 직업 또는 다른 주요한 일상 기능에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위와 같은 패턴이 12개월간 지속되거나 반복되어야 게임이용장애로 진단될 수 있습니다.

WHO가 정의한 게임이용장애의 개념.

WHO가 정의한 게임이용장애의 개념.


게임이용장애 공식 질병화의 문제점

언뜻 보면 과도하게 게임을 이용하여 문제를 겪는 게이머를 진단하고 도와주겠다는 내용에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자세히 분석하면 많은 논리적 의문점이 드러나는데요. 그럼 무엇이 문제인지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1. 도덕적 공황

우선 ‘게임 플레이’ 대신 어떤 행위를 대입하더라도 장애로 판단된다는 점입니다. 게임 대신 종교, 일, 쇼핑, 사교육, 등산, 낚시 등 취미나 기호와 관련된 것은 다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게임은 얼마나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일까요? 가끔 신문에 게임 때문에 벌어진 심각한 뉴스가 실리곤 합니다만, 그것이 정말 게임 때문인지는 아직 불분명합니다.

우리나라보다 훨씬 게임 문화가 발달한 미국의 경우, 수많은 총기사고의 원인으로 게임이 지목된 적 있습니다. 그러나 심층 조사를 통해 게임을 총기사고의 원인으로 볼 수 없다는 결과가 반복적으로 나온 바 있습니다.

실제로 원인이 아니지만 어떤 사회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하여 비난하는 현상을 도덕적 공황(moral panic)이라고 부릅니다.

지난 30년간 많은 전문가들이 게임중독 연구를 해왔지만 게임과 사회적 문제간의 결정적 관계를 찾아내지 못했다는 점은, 게임이 문제라기보다는 도덕적 공황의 희생자일 가능성을 시사해줍니다.

왜 저만 갖고 그러시나요. ㅠㅠ

왜 저만 갖고 그러시나요. ㅠㅠ

게임과 폭력성 간에는 관계가 없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게 제기되고 있습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퍼거슨(Ferguson)은 2007년 게임관련 연구의 메타분석을 통해 ‘출판 편향(publication bias)’의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학술지에는 효과가 ‘있다’는 결론의 논문이 주로 실리는 반면, 효과가 ‘없다’는 결론의 논문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비판입니다.

또한 2014년 퍼거슨은 <GTA>와 같은 폭력적 게임이 유행한 시기에 오히려 폭력 범죄가 감소했다는 등의 자료를 들어 게임과 폭력성 간의 상관관계를 주장하는 논문들을 반박하였습니다.

게임 관련 출판 편향성을 지적한 심리학자 퍼거슨의 논문.

게임 관련 출판 편향성을 지적한 심리학자 퍼거슨의 논문.

이밖에 프로이트 이론에 근거한 카타르시스(catharsis)를 통해 설명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그러나 조금 더 구체적인 인과관계를 뒷받침하는 논리로는 커닝햄(Cunningham)의 시간사용효과(time use effect)에 대한 주장이 설득력 있습니다.

시간사용효과란 게임을 하는 시간이 과거 약물이나 폭력과 같은 위험 행동을 하는 시간을 대체했다는 설명입니다.

우리나라 교육부와 보건복지부가 2018년 발표한 ‘청소년건강행태온라인조사’에 따르면 학생들에게 게임이 확산된 최근 10년 동안 청소년의 음주와 흡연율은 감소하고 우울증은 개선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따라서 게임이 문제라기보다는, 오히려 문제를 약화시키는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는 해석이 더 설득력 있습니다.

그림 12. 우울감 경험률 추이
그림3. 현재 흡연율 추이
그림5. 현재 음주율 추이

청소년 우울감과 흡연 및 음주 행태가 줄고 있음을 보여주는
2018 청소년건강행태조사 데이터.


2. 진단 기준의 문제

이번 게임이용장애 진단 기준의 상위 범주는 ‘중독적 행위로 인한 장애’입니다.

중독을 진단하는 핵심 특성으로 금단현상, 내성, 갈망 등의 요소가 있습니다. 많은 연구들에서 게임에서는 이러한 요소가 확인되고 있지 않음이 반복적으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또한 이번 진단 기준에서도 이 세 가지 항목이 빠져 있습니다. 중독행위라고 하는데 중독의 특성으로 측정되지 않는 이상한 기준입니다.

만일 게임 플레이에 금단현상, 내성, 갈망이 존재한다면, 서비스를 중단하는 게임이란 나타날 수 없으며, 한때 성공했던 게임사가 왜 경영난에 빠지는지를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 기준이 ‘도박장애(Gambling disorder)’와 동일하다는 점입니다. 즉 도박중독의 기준으로 게임이용장애를 함께 측정하겠다는 겁니다.

이는 수많은 연구들을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게임장애를 과학적으로 입증하는데 문제가 없다던 WHO의 설명을 무색하게 합니다. 일부 게임에 사행적인 요소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사행적인 요소가 없거나 오히려 교육적인 게임까지 도박중독의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과학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못한 조치라고 생각됩니다.

ICD의 게임이용장애에 대한 설명.

ICD의 게임이용장애에 대한 설명.

ICD의 도박장애에 대한 설명.

ICD의 도박장애에 대한 설명.

위의 두 진단 내용을 보면 거의 내용이 비슷한데요. 참고로 WHO 진단 기준은 형태가 유사한 측면이 있기는 합니다만 완전히 똑같지는 않습니다. 물질중독 장애에 포함된 코카인과 카페인에 대한 진단 기준은 서로 다릅니다.


3. 과잉 의료화의 문제

과잉 의료화(overmedicalization)란 ‘인간의 문제들을 질병으로 파악하고, 병인론과 치료법의 관점에서 대응하는 경향’이라고 정의됩니다. 모든 문제를 병원에서 다루려고 하는 경향 정도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살다보면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는데 이런 문제들이 나타날 때마다 병원을 찾아가는 경향은 과잉의료화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하겠습니다.

서울대 이경민 교수는 과잉 의료화의 한계와 위험을 개인화, 병리화, 수동화 등 세 가지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개인화는 사회적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환원시켜, 원인에 대한 합리적 인식과 효과적인 해결을 방해합니다. 병리화는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변이들을 비정상적으로 간주하여 다양성을 억압하는 사회적 통제장치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수동화는 문제 해결을 전문가의 지식이나 기술에 의존하여 스스로의 해결 능력을 경시하고 수동적이며 수용적 태도를 조장합니다. 범죄나 사회적 문제를 일으켰을 때 그 책임을 게임으로 손쉽게 돌릴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 역시도 수동화의 중요한 부작용이기도 합니다.

의사는 신이 아닙니다.

의사는 신이 아닙니다.

과잉의료화의 문제를 게임이용장애에 대입하면 이해가 빠릅니다. 게임을 많이 하는 현상을 ‘중독’이라는 병리적 현상으로 인식합니다. 그 다음 문제의 원인을 개인의 생물학적 위험 요인(뇌 변화, 신경화학물질 등)에서 찾고자 합니다.

인생을 살면서 겪게 되는 수많은 사회문화적 요인들(또래 경쟁, 발달 과업 등)은 무시됩니다. 그리고 치료 역시 게이머가 게임을 하는 의도나 목적보다는 게임을 하는 시간이나 행동 자체에 집중됩니다.

이렇듯 게임과 관련된 문제의 직접 원인을 찾기 보다는 게임 행동을 제거하여 해결하려는 의료적 접근은 단기 효과는 있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아프지 않아요!

우리는 아프지 않아요!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다른 곳에서 발견됩니다. 진단과 치료 이후 예방으로 넘어가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게이머의 97%는 잠재적인 환자로 여겨지므로, 실제 게임 이용 문제를 겪는 3%의 사람들을 진단하는 기준으로 대다수의 게이머들의 상태를 모니터링하게 됩니다.

즉 문제가 있는 사람을 도와준다는 취지의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화는, 게이머라면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새로운 통제장치가 되는 겁니다.

그렇기에 게임이용장애를 공식 질병화하려면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엄밀한 객관성과 합리성이 필수적입니다. 아쉽게도 게임이용장애 연구들의 대부분은 광범위한 게임의 장르와 플랫폼 및 특성을 구분하지 않고 그냥 게임이라고 지칭하고 있습니다.

설령 세부적인 게임을 지칭하는 연구들도 게임명이 다르거나 현재 서비스하지 않는 게임을 대상으로 하는 등의 수많은 문제가 목격됩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해, 어떤 이유로 급하게 추진되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입니다.


4. 게임과 다른 콘텐츠 융합의 문제

WHO가 진단과 치료의 대상으로 삼은 게임과 현재의 게임산업은 차이가 있습니다. 최근 5G 기술을 비롯하여 진보된 정보통신환경은 거의 모든 콘텐츠의 게임화로 수렴되고 있습니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좋은 반응을 얻은 ‘블랙 미러: 밴더스내치’와 같은 인터랙티브 영화/드라마는 RPG와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또 곧 출시될 <BTS월드>는 게임과 아이돌 팬클럽 활동의 경계를 허물었습니다. 그리고 닌자(NINJA)라는 프로게이머이자 스트리머는 타임지가 선정한 2019년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으로 선정되기도 하였습니다. 즉 스트리밍 콘텐츠 제작과 게임 플레이가 구분되기 어렵다는 의미입니다.

이렇듯 게임과 융합된 콘텐츠들이 나타나고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현실에서 1년 이상 게임에 열중한다는 진단기준은 너무 현실과 멀어보일 뿐 아니라 오히려 미래를 제약하는 퇴행적 요소로까지 보입니다. 제2의 닌자를 꿈꾸며 밤낮으로 콘텐츠를 만드는 크리에이터는 용기를 복돋아 주어야 할 대상일까요, 아니면 치료의 대상일까요?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기술과 콘텐츠 환경을 고려할 때, 3년 후 적용될 게임이용장애 진단기준은 거의 모든 콘텐츠 관련 문제를 게임이용장애로 진단하거나 반대로 영화/드라마 장애(혹은 넷플릭스 장애), 음악 장애, 웹툰 장애 등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이 드라마 많이 보는 게 장애는 아니잖아요.

이 드라마 많이 보는 게 장애는 아니잖아요.


게임이용장애 질병화의 미래

최근 보도내용을 보면 게임이용장애의 질병화에 대해 전세계 국가들이 모두 찬성하지는 않는 듯합니다. 대표적으로 미국과 유럽 일부 국가들은 게임이용장애 공식 질병화에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반면 찬성하는 국가들은 한국과 중국 등 아시아권 나라 중심이라고 합니다.

게임 서비스는 전세계적으로 동일하게 적용되는 글로벌 원빌드가 표준이 되고 있습니다. 게임이용의 문제가 글로벌 차원의 문제라기보다는 일부 지역에서 유독 심각하게 보고되는 현상은 게임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게임을 바라보는 시각의 문제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WHO에서 게임이용장애를 공식 질병화한다고 하여 모든 나라에서 그것을 받아들일 의무는 없습니다. 우리나라도 통계청에서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에 적용하는 절차를 거칩니다. 5년마다 개정되는 KCD는 현재 ICD-10을 반영하여 작성되었는데 2025년까지 유효합니다. 물론 그 전에 바뀔 가능성도 없지는 않지만 금방 우리나라에 적용되지는 않는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때문에 그 시간 동안 청소년을 비롯한 게이머들을 둘러싼 환경 문제가 게임 플레이로 연결되는 것은 아닌지 충분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게임을 바라보는 시각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도 충분히 검토해야 합니다.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이런 과정에서 합리적인 해결책이 나올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이장주

이장주

문화심리학자.
평범한 사람들이 더 활력 있고 즐겁게 살 수 있는 길을 찾다
게임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현재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재직 중이며
심리학의 관점에서 문화적 이슈를 다루는
글쓰기와 강연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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