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7.05 게임과 심리학

게임과 심리학 #11 게임의 ‘재미’에 대한 고찰

심리학의 관점에서 현 시대의 게임에 대한 가치와 의미를 되짚어 보는 ‘게임과 심리학’.

문화심리학자 이장주 박사가 들려주는 ‘게임과 심리학’ 11편에서는 게이머들이 어떤 이유로 게임에 재미를 느끼고, 이들에게 왜 공감해야 하는지 정서심리학과 자기결정성이론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게임과 심리학 #11 게임의 ‘재미’에 대한 고찰

게임은 재미가 있어서 합니다. 그런데 재미는 참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재미는 논리로 구성되거나 말로 표현될 수 있는 성질이 아니어서 그렇습니다.

재미를 주로 담당하는 신체부위는 뇌의 변연계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곳은 감정을 담당하는 곳이며, 언어적 신경이 도달하기 어려운 곳입니다. 즉, 재미는 감정 그 자체로 느끼는 것이지요.

감정의 중요성

감정은 갓 태어난 아기뿐 아니라 동물들도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말을 못하는 아기나 반려동물과도 교감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기능을 담당합니다.

어른들에게도 감정은 중요합니다. 특별한 이유가 없는데도 왠지 꺼림칙하게 느껴지면 그 일을 주저하게 됩니다. 또 단점들이 즐비하지만 무언가 끌리는 느낌은 그 일을 선택하도록 해주기도 합니다.

이런 점에서 감정은 언어보다 먼저 발달했을 뿐 아니라 우리 생활을 유지하는데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게임을 왜 하는가에 대해서 딱히 마땅한 이유가 떠오르지는 않지만, 수 많은 사람이 지속적으로 즐기는 이유는 게임 속에 무언가 중요한 역할이 숨어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글의 주제는 바로 감정입니다.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다룬 영화 '인사이드 아웃'.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다룬 영화 ‘인사이드 아웃’.

감정은 일반적으로 정서심리학이라는 이름으로 다루어집니다. 정서심리학의 관점에서 재미를 보면 게임의 새로운 기능을 알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정서는 사람들을 움직이게 만드는 아주 근원적인 힘입니다. 정서(emotion)란 단어 속에도 움직임을 뜻하는 모션(motion)이 숨어있습니다. 좋으면 다가가고, 무서우면 피하게 만듭니다.

정서는 생존과 생활 모든 영역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담당합니다. 그린드(Grinde)라는 학자는 감정 중 쾌(快)와 불쾌(不快)와 같은 정서적 신호가 생존과 밀접한 결정들을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서 발달했다고 주장합니다[1].

성장과 함께 변화하는 정서

정서가 본질적인 기능이라고 해서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습니다. 영원하지 못하다는 겁니다.

연세대 서은국 교수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결과 새로운 이성친구, 대학원 입학과 같은 좋은 일들과 이성과의 이별, 아주 낮은 성적과 같은 나쁜 일들이 행복에 영향을 끼치는 기간이 약 3개월이었다고 합니다[2].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3개월이면 적응이 끝나서 이전과 같이 살 수 있다는 뜻입니다. 무뎌진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기에 한가지의 좋은 일만으로 평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미션에 가깝습니다.

같은 원리로 재미있는 것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3살짜리 아이들에게 뽀로로는 아주 재미있는 애니메이션이지만, 7살만 돼도 뽀로로는 시시해집니다. 더 강력한 로봇에 열광하게 됩니다. 그마저도 더 크면 재미를 또 다른 것에 넘겨주게 됩니다.

재미는 영원하지 않다! 인형에서 로봇, 로봇에서 게임으로 레벨 업!

재미는 영원하지 않다! 인형에서 로봇, 로봇에서 게임으로 레벨 업!

이렇게 재미를 쫓아서 살다 보면 어느새 어른이 되어버립니다. 즉 재미는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성장과 성숙을 이끄는 원초적인 본능인 것입니다.

게임을 한다는 것 = 자아를 실현하는 일

게임은 재미로 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게임이 재미있는 것이 아니라 게임이 우리의 마음 속에서 하는 기능이 무엇인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기능을 유추해 볼 수 있는 이론으로 자기결정성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이론에 의하면 우리가 재미를 느끼는 심리적 속성은 자기실현경향에서 나타납니다. 그리고 이런 경향성은 자율성, 유능성, 관계성 등 3가지 요소로 구성됩니다.

자율성은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가 선택하는 것들이 재밌다는 겁니다. 공부가 재미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유능성은 무언가 능숙해지고, 실력이 늘어가는 느낌을 받을 때 재미있다는 겁니다. 해도 늘지 않으면 짜증나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마지막으로 관계성입니다. 이런 재미는 혼자 있을 때보다 함께 할 때 더 강해집니다. 운동경기나 영화를 함께 즐기려는 이유와 같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요소들에 의해 우리는 게임이 재미있다고 느끼는데요. 그럼 이 세 가지 요소가 어떻게 작용하여 재미를 느끼는지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1. 자율성

청소년들에게 게임이 재미있는 이유는 생활에서 자율성을 편리하고 쉽게 누릴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율성을 누릴 때 활력과 자신감을 느끼게 됩니다. 내가 세상을 주도한다는 느낌을 잠시라도 갖게 되는 것이지요. 반대로 이런 자율성이 사라지면 우울해집니다. 내가 이 세상에 쓸모 없는 존재로 느껴지기 쉽습니다.

게임 속에서만큼은 내가 신이 된 기분!!!

게임 속에서만큼은 내가 신이 된 기분!!!

이런 재미는 불확실성이 유도하는 재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불안이 전혀 없는 것들은 강한 재미를 경험하기 어렵습니다. 배부른 사람이 음식 맛을 제대로 음미하기 어려운 이치입니다.

이런 재미를 윌슨(Wilson)이란 분은 ‘불확실성의 즐거움(pleasure of uncertainty)’이라고 불렀습니다[3].

참고로 불확실성의 즐거움을 주는 또 다른 것으로 스포츠가 있습니다. ‘각본 없는 드라마’란 표현은 불확실성이 주는 긴장감과 활력을 더 없이 잘 표현해 주는 말인 듯합니다. 그래서 그런가요? 게임을 즐기는 이들은 스포츠도 함께 즐기는 경향이 스트리밍 소비에서도 관찰된다고 합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 전설의 포수 요기 베라.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 전설의 포수 요기 베라.


2. 유능성

유능성은 내가 무언가에 능숙해진다는 느낌입니다.

흔히 게임에서 ‘장인’이라는 말은 유능성의 다른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로 하나의 챔피언을 고집스럽게 사용하여 극한의 실력을 보여주는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로 생각됩니다.

이 구역 ‘장인’ 은 바로 나야!!

이 구역 ‘장인’ 은 바로 나야!!

이런 재미는 어떤 불확실성 속에서도 이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을 보유하고 있을 때 경험됩니다. 대체로 힘이 고픈 사람은 지금 현재 힘을 충분히 보유하고 있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청소년들도 여기에 해당하지만, 인생의 정점을 찍고 내려오는 중고령자들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흔히 ‘싸라있네(살아있네)~’라는 경험을 찾고자 한다는 겁니다.

대체로 이런 유능감은 익숙함에서 오는 안정감과 더 긴밀한 관련이 있습니다. 예전 게임이 다시 리마스터로 나타나는 현상은 그 옛날의 유능감을 재현하고자 하는 이들이 많아졌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3. 관계성

마지막으로 관계성은 인간의 사회적 속성을 잘 보여줍니다. 심심하면 누군가를 찾게 됩니다. 또한 좋은 관계에 있던 사람을 만나는 일은 그 자체로 즐거울 뿐 아니라 놀라운 치유 효과도 있습니다.

연구 결과들에 의하면, 친구와 함께 오를 때 경사가 좀 더 완만하게 느껴지고[4], 친구가 손을 잡아주면 신체적 고통도 더 참을만해진다고 합니다[5].

PC방 게임순위를 보면 인기순위 상위 5개의 게임이 70%가 넘는 점유율을 차지합니다. 이런 결과는 재미있는 게임이어서 게이머들이 몰린다고 해석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인기가 많은 게임, 즉 사람이 많이 몰리는 게임을 우리나라 게이머들이 선호한다고 볼 수도 있는 대목입니다.

게임 내에서도 뉴비들을 아무런 댓가 없이 버스를 태워주시는 고수들은 관계성의 효과를 차비로 받는 셈입니다.

미숙아를 자주 안아주면 생존율이 높아지듯,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언제나 사람.

미숙아를 자주 안아주면 생존율이 높아지듯,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언제나 사람.


서로가 연결되는 통로, 공감

앞서도 밝혔지만, 재미는 그 대상이 정해진 것이 아닙니다. 삶의 과정과 환경에 따라 바뀝니다. 즉 재미의 기능을 충분히 수행하게 되면 그 재미는 다른 곳으로 가게 됩니다. 간혹 머물러 있더라도 이전과 다른 주제의 욕구를 채워주는 기능을 수행합니다.

그렇기에 재미를 따르는 것은 순리입니다. 순리는 절대로 수동적인 것이 아닙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 가장 효과적인 노력을 하는 것이 순리입니다. 어느 시절 게임을 하는 것도 순리이고, 어느 순간 재미가 줄어드는 것도 순리입니다. 순리는 사람을 한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게 합니다. 더 크고 성숙하게 인도합니다. 이런 순리가 막혔을 때 사람들은 어느 하나에 집착하게 됩니다.

무언가 문제가 있다면 막힌 곳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합니다. 만일 게임이 있다면 게임을 못하게 막을 것이 아니라 게임에서 해소하고자 하는 그 무엇을 찾아야 합니다. 재미가 도달하고 싶은 그 무엇 말입니다.

그러려면 그 게이머의 입장이 되어야 합니다. 심리학에서 이런 것을 공감이라고 합니다. 함께 느낀다는 것이죠. 정서를 말입니다. 그렇다고 공감이 같은 느낌을 갖는다고 해서 생각까지 똑같아야 한다고 오해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함께 느끼려는 노력 자체가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합니다. 존중받는다는 느낌이 들면서, 고마워지는 것이죠.

우리는 같지 않지만, 당신이 보는 것을 저도 함께 봅니다.

우리는 같지 않지만, 당신이 보는 것을 저도 함께 봅니다.

공감할 수 있는 인간관계는 친밀한 관계가 됩니다. 친한 사람의 말은 들어주어야 한다는 것이 정서의 문법입니다.

게임 질병 코드화에 대한 논란이 뜨겁습니다. 옳고 그름으로 이 문제를 접근하는 것은 순리에 맞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게임을 옳고 그름으로 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게임을 정서로 접근해야 합니다. 함께 공감하고 함께 느끼는 과정은 게이머를 이해하는 중요한 계기일 뿐 아니라 그 게이머를 걱정하는 사람의 진심을 전달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순리에 맞게 해결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참고 문헌

[1] Grinde, B. (2012). The biology of happiness. Springer.

[2] Suh, E., Diener, E., & Fujita, F. (1996). Events and subjective well-being: Only recent events matter.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70(5), 1091.

[3] Wilson, T. (2011). Redirect: The surprising new science of psychological change. 『스토리』 강유리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4] Schnall, S., Harber, K. D., Stefanucci, J. K., & Proffitt, D. R. (2008). Social support and the perception of geographical slant. Journal of experimental social psychology, 44(5), 1246-1255.

[5] Coan, J. A., Schaefer, H. S., & Davidson, R. J. (2006). Lending a hand: Social regulation of the neural response to threat. Psychological science, 17(12), 1032-1039.


이장주

이장주

문화심리학자.
평범한 사람들이 더 활력 있고 즐겁게 살 수 있는 길을 찾다
게임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현재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재직 중이며
심리학의 관점에서 문화적 이슈를 다루는
글쓰기와 강연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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