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2.15 게임과 심리학

게임과 심리학 #7 게임 플레이와 시간의 심리학

심리학의 관점에서 현 시대의 게임에 대한 가치와 의미를 되짚어 보는 ‘게임과 심리학’.

문화심리학자 이장주 박사가 들려주는 ‘게임과 심리학’ 7편에서는 게임 플레이를 둘러싼 다양한 시간의 심리학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게임과 심리학 #7 게임 플레이와 시간의 심리학


게임을 하면 시간이 잘 갑니다.

흔히 게임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면, 거기에는 시간이 꼭 개입됩니다. 시간을 너무 잡아먹는다거나, 시간을 낭비한다는 식의 표현이 대표적입니다.

게임 내에서도 시간은 흐릅니다. 주로 제한의 의미로 많이 사용되지요. APM, 쿨타임, 부활시간 등 어찌보면 게임을 구성하는 가장 깊은 구조에는 결국 시간이 존재한다고 봐도 과장이 아닙니다. 이번 이야기는 시간의 심리학으로 들여다 본 게임입니다.

시계는 잘도 도네 돌아가네~~~

시계는 잘도 도네 돌아가네~~~


시간을 지배하는 공간, 게임

‘시간은 돈’이란 표현처럼, 시간은 가치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돈은 벌기가 쉽지 않지만 노력이나 운에 따라 늘어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은 아무리 노력해도 1초도 더 늘리기 어렵다는 점에서 돈보다 희소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돈과 힘을 가진 권력자들은 유한한 시간을 사고자 무던히 노력했습니다. 불로초나 피라미드 속 미라에서부터 안티에이징 제품, 냉동인간까지 동서고금에서 발견되는 시간과 돈의 관계는 ‘시간=돈’이 아니라 ‘시간은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귀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시간을 지배하는 자가 진짜 부자입니다.

시간을 지배하는 자가 진짜 부자입니다.

게임 내에서 시간은 현실과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게임 속에서 시간은 대체로 유한하기는 하지만, 아이템이나 스킬을 활용해서 늘리거나 멈출 수도 있습니다. 저장도 가능하지요.

무엇보다 게임 속 시간은 언제든 처음으로 되돌릴 수 있지요. 수도 없이 전투가 펼쳐진 전장이 언제나 깨끗하게 보존되어 있고, 온갖 스킬과 마법을 뒤집어 쓴 백전노장의 영웅들이 늘 팔팔하게 등장하는 이유입니다. 적어도 게임을 하는 순간만큼은 불로장생의 불로초를 찾아 헤매던 진시황이 우습게 느껴집니다.


시간 부자가 마음도 착하다

시간이 많은 사람은 부족한 사람보다 다른 사람에 대해 관대하고 이타적인 행위를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착한 사마리아인 설교를 하러 가던 프린스턴대 신학과 학생들이 현실에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 즉 쓰러져 있는 사람을 만났을 때, 도움을 줄지 말지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시간이었습니다. 시간이 상대적으로 여유 있던 학생들은 도움을 주었던 반면 설교시간이 급한 학생들은 그냥 지나쳤습니다[1].

1997년 레빈(Levine)이라는 심리학자는 도시마다 다른 삶의 속도(pace of life)를 측정한 바 있습니다[2]. 사람들의 걷는 속도, 은행의 업무 처리 속도, 시계의 사용 빈도를 관찰한 결과 삶의 속도가 도시와 국가마다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삶의 속도가 빠른 도시에서 다른 사람을 돕는 일이 가장 적었다는 점입니다. 게임 속에서 일어나는 트롤이나 욕설 같은 불미스러운 일들이 단지 게이머의 인성 탓만이 아니라 시간적 압박이라는 상황적 요인 때문일 수도 있음을 시사합니다.

레빈이 조사한 도시별 삶의 속도. 우리나라도 있네요~!

레빈이 조사한 도시별 삶의 속도. 우리나라도 있네요~!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 해도 후회!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는 특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무언가를 선택하면 다른 기회를 포기한다고 하여 ‘기회 비용(opportunity cost)’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런 기회 비용은 심리학에서 선택을 어렵게 만드는 직접적인 요인이며, 어떤 선택이든 ‘후회(regret)’를 하게 만드는 메커니즘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해도 후회, 안해도 후회’라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이런 두 가지 후회 중 더 길고 오래가는 후회는 ‘하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라고 합니다.

어떤 행동을 했는데 잘못된 결과가 나와 후회하는 경우는 심리적 면역체계가 작동하여 별 일 아니라고 합리화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주의집중이 명확하게 되지 않아 아주 오랫동안 사람을 괴롭힙니다. 그래서 ‘하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가 정신건강에 더 해롭다고 코넬대의 길로비치(Gilovich)교수[3]는 주장합니다.

게임은 ‘하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를 최소화합니다. 조금 부지런하다면 주로 사용하는 주캐릭터에 부캐릭터까지 키우며 기회를 알뜰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또 전략이나 스킬을 잘못 선택했을 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다른 선택을 하는 것이 게임 속에서는 가능합니다. 마치 도르마무에게 무수히 거래를 시도하는 닥터 스트레인지처럼 말입니다.

도르마무, 거래를 하러 왔다.

도르마무, 거래를 하러 왔다.

그래서 충분히 게임을 즐겼다고 생각하는 게이머는 게임에 대한 미련 대신 아련한 그 시절의 추억을 간직합니다. 물론 게임을 하느라 다른 일을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생길 수는 있습니다만 이런 후회는 그때 못한 일이나 공부를 더 열심히 집중하게 만듭니다. 게임에서 엔딩을 수없이 본 사람들은 맡은 일에서도 후회 없는 결과를 보여주는 실력자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미래를 살지 말고 현재에 집중하기

사람의 성격이 제각각이듯 사람들이 시간을 대하는 태도 역시 다릅니다.

짐바르도(Zimbardo)라는 심리학자는 『타임 패러독스』라는 책[4]을 통해 사람마다 다른 ‘시간관(time perspective)’을 자세하게 분석하였습니다.

스탠퍼드대학 심리학과 교수 필립 짐바르도의 『타임 패러독스』.

스탠퍼드대학 심리학과 교수 필립 짐바르도의 『타임 패러독스』.

시간관이란 사람들이 과거, 현재 혹은 미래 중 어느 한 시간에 중점을 두는 경향을 의미합니다. 이런 경향은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며 삶의 방식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영향을 미칩니다.

미래지향적인 사람들은 일이나 학업 면에서 높은 성과를 올리지만, 가족이나 친구를 돌보는 일에 인색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현재지향적인 사람은 앞뒤 안 재고 눈 앞에 일어난 일에 몰두하는 사람들입니다. 다른 사람을 도와줄 가능성이 높기는 하지만 정작 자신을 돌보는 일에는 소홀한 편입니다.

마지막으로 과거지향적인 사람들은 긍정적인 과거를 지닌 사람들과 부정적인 과거를 지닌 사람들로 구분되는데요. 대체로 이들은 과거에 대한 경험을 기준으로 일상의 크고 작은 결정을 내립니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 말이야~’ 같은 말은 과거지향적 시간관의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혹시 여러분의 모습은 아닌가요? (T_T)

혹시 여러분의 모습은 아닌가요? (T_T)

시간관 연구에서 중요한 시사점은 시간관이 주관적인 인식이기에 우리의 자각과 노력 여부에 따라 바뀔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점입니다.

너무 미래에 치우쳐서 각박하게 살고 있다면 현재에 조금 더 집중하도록 조정이 필요하고, 너무 현재에만 매몰되어 살고 있다면 미래의 전망을 갖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지요.

균형 잡힌 식사가 건강을 만들어준다면, 균형 잡힌 시간관은 조화로운 삶으로 이끌어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조화로운 삶은 행복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게임 플레이로 여유 되찾기

우리나라는 ‘빨리빨리’를 추구하는 사회로, 삶의 속도가 굉장히 빠릅니다. 그리고 어린 나이부터 과도하게 경쟁적이고, 미래지향적이지요.

얼마 전 방영한 드라마 <SKY 캐슬>은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미래에 의사가 되기 위해 현재의 젊음과 욕구를 기꺼이 희생합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행복해하는지 느낄 틈도 없이 말입니다.

미래지향적인 시간관을 조금 늦추는데 게임만한 것을 찾기 어렵습니다. 게임은 현재에 집중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에 미래로만 치닫는 시간관에 심리적 여유를 줍니다.

게임 내의 시간이 과도하게 미래지향적인 측면이 있는 듯한 점은 참 아쉽기만 합니다. 레벨과 승패의 경쟁에 집중한 나머지 게임 핵이나 오토, 혹은 대리 게임 같은 불미스러운 일들이 일어나는 것은 현실의 시간관이 게임에도 유입된 탓이라고 보여집니다. 그리고 게임 내에서 자동 사냥 혹은 변신 뽑기 같은 것들에 과도하게 집중하는 것은 현실에 몰입하게 해주는 게임의 맛을 약화시키는 요소라고 생각됩니다.

삶이 바쁠수록 게임 한 판의 여유를!

삶이 바쁠수록 게임 한 판의 여유를!

시간은 행복을 느끼기 위해 반드시 필요합니다. 행복은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이라는 것은 많은 행복 연구들의 공통된 결론입니다. 그래서 행복에는 멈춤의 시간이 필수적입니다.

이번 주말 좀 더 여유를 가지고 느긋하게 게임에 집중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러는 동안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더 큰 행복이 슬며시 찾아들 것이라 확신합니다.


참고 문헌

[1] Darley, J. M., & Batson, C. D. (1973). “From Jerusalem to Jericho”: A study of situational and dispositional variables in helping behavior.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27(1), 100.

[2] Levine, R. (1997). A geography of time: The temporal misadventures of a social psychologist. A geography of time.

[3] Gilovich, T., & Medvec, V. H. (1995). The experience of regret: what, when, and why. Psychological review, 102(2), 379.

[4] Zimbardo, P., & Boyd, J. (2008). The time paradox: The new psychology of time that will change your life[타임 패러독스, 오정아 역, 미디어 윌].


이장주

이장주

문화심리학자.
평범한 사람들이 더 활력 있고 즐겁게 살 수 있는 길을 찾다
게임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현재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재직 중이며
심리학의 관점에서 문화적 이슈를 다루는
글쓰기와 강연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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