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3.14 게임과 심리학

게임과 심리학 #8 게임과 연결된 신경망: 트라우마에서 공감까지

심리학의 관점에서 현 시대의 게임에 대한 가치와 의미를 되짚어 보는 ‘게임과 심리학’.

문화심리학자 이장주 박사가 들려주는 ‘게임과 심리학’ 8편에서는 ‘신체 이전’이라는 현상을 바탕으로 게임 플레이어들의 심리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게임과 심리학 #8 게임과 연결된 신경망: 트라우마에서 공감까지


고도의 주의집중이 일어날 때는 신체 활동이 매우 제한됩니다. 심지어 습관적인 행동인 껌 씹기까지 멈추게 됩니다. 껌을 씹는 사소한 에너지까지 주의집중에 쏟아붓기 때문이죠.

게임을 할 때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납니다. 게임에 몰두하는 게이머에게 관찰되는 두드러진 행동 변화 중 하나는 눈 깜빡임이 급격히 줄어드는 것입니다. 이 때문일까요? 2011년부터 껌 판매량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고 합니다. 모바일 게임의 확산이 껌 시장의 위축과 무관하지 않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게임을 플레이한다는 것은 겉으로 보기에만 잠잠할 뿐 신경의 입장에서 보면 다른 어떤 행위보다 더 바쁘고 능동적인 행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게임을 수동적 여가라고 분류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적어도 신경망(neural system)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렇습니다.


어느 손이 내 손일까, 고무손 실험

그렇다면 게임을 플레이하는 동안 신경망에서는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 것일까요? 이런 과정을 유추할 수 있는 실험연구 하나를 소개합니다.

1998년 네이처를 통해 알려진 고무손 실험(the rubber hand illusion)[1]의 절차는 비교적 간단합니다. 실험 참가자에게 자신의 한 손은 보이지 않게 가리고, 가짜 고무손을 그 사람의 손인 것처럼 탁자 위에 올려 놓습니다.

그 후 감춰진 손과 고무손을 동시에 부드러운 붓으로 쓰다듬기 시작합니다. 동기화가 진행되는 과정입니다.

어느 쪽이 내 손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_-;; (출처: PLOS)

어느 쪽이 내 손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_-;; (출처: PLOS)

그러자 자신의 손을 가리키라는 지시에 실험 참가자는 진짜 자기 손이 아니라 고무손을 가리켰습니다. 그리고 가짜 고무손을 바늘로 찌르려고 하면 화들짝 놀라게 되는데요.

fMRI를 통한 연구에서, 고무손에 대한 위협은 실제 신체를 담당하는 뇌 부위를 활성화시키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제 고무손이 자신의 신경망에 포함된 것입니다. 사람의 신경이 몸 안에서만 작동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린 기념비적인 연구로 평가됩니다.

고무손 실험 영상.


게임을 ‘내 몸’처럼 느끼는 사람들

고무손 실험은, 게임 캐릭터에 대한 애착이나 게임 내에서 느껴지는 타격감이 환상이 아니라 실제 감각과 동일한 현실 체험이라는 점을 시사합니다.

지난 20여 년간 많은 연구들을 통해 반복 확인된 이 현상을 신경과학자들은 ‘신체 이전(body transfer)’라고 부릅니다[2].

게임 내에서 느껴지는 타격감은 사운드, 이미지, 진동 효과를 통해 동기화된 결과물인 겁니다. 마치 고무손에 붓질을 하면 진짜 손으로 인식하는 효과와 마찬가지라고 할까요?

이런 신체 이전 현상은, 게임 플레이 경험이 있는 의사가 복강경 수술을 왜 실수 없이 능숙하게 할 수 있는지 설명해줄 수 있습니다. 게임기와 유사한 콘트롤러가 의사의 예민한 신경을 복강경 모니터 화면 속까지 연결시켜주었기 때문입니다.

수술실에서 게임 콘트롤러를 활용하는 것은 흔한 일이 됐습니다. (출처: Business Wire)

수술실에서 게임 콘트롤러를 활용하는 것은 흔한 일이 됐습니다. (출처: Business Wire)

아주 어렸을 적부터 스마트 디바이스를 통해 게임을 접한 세대들은 이전 세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높은 동기화 수준을 지니고 있음은 명확합니다. 또 앞으로 컴퓨터나 스마트폰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몰입감(sense of immersion)을 주는 가상현실(VR)이 일상 생활과 업무에서 핵심 영역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을 고려한다면 디바이스를 통한 신경의 예민함 정도를 파악하는 것은 IQ를 파악하는 것보다 앞으로 더 중요한 정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장인의 손길과 안목이 얼마나 예민한가가 솜씨의 수준을 보여주는 중요한 요소인 것처럼 말입니다.


게임기를 부수면 마음이 부서진다

신체 이전이 충분히 된 젊은 게이머들에게 강제로 게임을 차단하는 일은 손발을 묶었을 때 경험하는 것과 비슷한 충격일 수 있습니다.

이는 최근 게임 관련 규제나 게임 내 일부 비즈니스 모델에 젊은 게이머들이 격렬하게 저항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짐작하게 해줍니다. 이들에게 게임 규제나 접근 장벽은 취향과 기호 등의 사생활의 자유 수준을 넘어서, 더 본질적인 권리인 신체의 자유 수준으로 인식하고 있음이 시사되는 대목입니다.

게임기를 부수는 전 세계의 부모들.

게임이나 SNS 콘텐츠에 몰두하는 자녀를 둔 부모들이 분노하고 자녀들의 기기를 부수는 모습은 유튜브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전 지구적 현상인 듯합니다. 하지만 신체 이전이라는 렌즈로 해석할 때 부모들의 이러한 행동은 돌이킬 수 없는 심각한 부작용이 우려되는 행위입니다.

부모는 게임기를 손발톱 수준으로 인식하는 것에 비해 자녀들은 같은 기기를 자신의 손발처럼 인식합니다. 그리고 게임상에서 만나는 사람을 현실의 친구와 다르지 않게 여깁니다. 이런 상황에서 부모가 게임기를 부수는 방식으로 분노를 표현하는 것은 강력한 메시지 전달을 넘어서 자녀들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가 될 수 있습니다. 부모자녀 간의 감정적 유대에 회복 불가능할 정도의 손상이 발생하는 응급상황일 수 있다는 겁니다.


엄마아빠의 공감이 필요해요

다른 사람의 입장과 처지를 이해하는 것을 공감(empathy)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 공감은 부모자녀 관계를 포함한 모든 인간관계의 질을 결정하는 최고의 덕목이기도 합니다.

누군가에게 공감을 하려면 우선 그 사람을 존중(respect)하지 않고는 불가능합니다. 누군가를 바꾸려고 하는 것은 그 대상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증거입니다. 그 대상이 자녀이건, 가족이나 직장동료이건 누구건 말입니다.

엄마아빠, 우리도 이렇게 해보면 안될까요? ⊂(・ヮ・⊂)

엄마아빠, 우리도 이렇게 해보면 안될까요? ⊂(・ヮ・⊂)

그렇다고 오해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존중과 공감이 그 사람과 같은 가치와 입장을 공유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우리는 서로 다르지만, 그 사람의 생각과 결정을 존중하고, 그런 생각과 결정이 어디에서 왔는지 세심한 관심을 통해 이해하면 됩니다.

공감과 존중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지만 포기할 수 없는 과정입니다. 왜냐하면 그 반대는 폭력이기 때문이지요. 때리거나 욕을 하는 것만이 폭력이 아니라 상대를 존중하지 않고 내 뜻대로 굴복을 강요하는 것도 폭력입니다. 그때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저항을 합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스스로의 가치와 존엄을 지키기 위해서 말입니다.

사람은 사람과 연결될 때 가장 편안하고 즐겁습니다. 이건 갓난아기도 갖고 있는 기본적 본능입니다. 혹시 사람보다 게임이나 스마트 기기에 과도하게 탐닉하는 아이들이 있다면 주변에 공감을 주고받을 사람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게임을 탓하기에 앞서 사랑의 전달 방식을 먼저 점검해 볼 일입니다.


참고 문헌

[1] Botvinick, M., & Cohen, J. (1998). Rubber hands ‘feel’touch that eyes see. Nature, 391(6669), 756.

[2] Slater, M., Spanlang, B., Sanchez-Vives, M. V., &Blanke, O. (2010). First person experience of body transfer in virtual reality. PloS one, 5(5), e10564.


이장주

이장주

문화심리학자.
평범한 사람들이 더 활력 있고 즐겁게 살 수 있는 길을 찾다
게임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현재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재직 중이며
심리학의 관점에서 문화적 이슈를 다루는
글쓰기와 강연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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