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7.12 게임과 뇌과학

하지현의 게임과 뇌과학 #5 게임이 인지 유연성을 키운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하지현 교수님과 함께 하는『게임과 뇌과학』!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변화와 미션에 직면하는데요, 이럴 때 게임을 능숙하게 하는 사람일수록 짐승같은 적응력(!)을 보인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합니다.

우리의 뇌를 바꾸는 신기방기한 게임 이야기, 함께 만나보시죠.  ( ͡° ͜ʖ ͡°)


하지현의 게임과 뇌과학 #5 게임이 인지 유연성을 키운다

난 어릴 때부터 몸이 뻣뻣한 편이었다.  사실 ‘편’이라고 쓰기 민망할 정도로, 그냥 뻣뻣하다.

체육시간에 허리를 굽히고 팔을 뻗어 발등에 닿게 하는 스트레칭을 할 때마다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느꼈다. 내 손 끝은 한 번도 발등 근처를 찍어본 적이 없다.

이렇게 유연하면 좋으련만...! _고양이

이렇게 유연하면 좋으련만…! 

폴더폰 접히듯 손끝이 발가락에 척척 닿는 친구들을 보면 식초를 얼마나 먹어야 저렇게 될까 하고 감탄했다. 몸이 유연한 사람들은 균형감각이 좋고, 넘어지거나 굴러도 크게 다치지 않는다.  그만큼 유연성은 신체 건강을 위해 중요하다.

여기에 더해 정신건강에서 마음의 유연성도 매우 중요하다. 마음의 유연성, 즉 ‘인지적 유연성(cognitive flexibility)’이란 이런 것이다.

A라는 상황에 A′로 반응하는 사람이 있다. 상황이 A에서 B로 변하면 B′로 대처 방식이 변해야 한다.  인지적 유연성이 좋은 사람은 손쉽게 대처 방식을 A′에서 B′로 바꾸고, 여기에 드는 피로도나 저항도 별로 없다.

화성에서도 놀라운 적응력을 보여주는 영화 <마션>의 주인공 

화성에서도 놀라운 적응력을 보여주는 영화 <마션>의 주인공 

그러나 인지 유연성이 떨어지면 B라는 상황에서도  A′라는 대처 방식을 고수하거나, 바꾸는 것을 힘들어 하며 짜증을 낸다.

오래 전 태국으로 단체여행을 갔는데, 현지식당에서 한 할아버지가 갑자기 화를 내며 가이드를 호출했다. 왜 젓가락이 없고, 소주가 나오지 않느냐는 이유에서였다.

외국이란 상황 변화가 있으면 거기에 맞춰서 기대치와 대응 방식이 달라져야 하는데, 노화로 인한 인지 유연성의 저하로 할아버지는 화를 내신 것이었다.

인지 유연성이 떨어져서 화가 난다 화가 나! _이순재 화가 난 짤

인지 유연성이 떨어져서 화가 난다 화가 나! 

기본적으로 타인에 비해 인지 유연성이 떨어지는 사람들도 있지만, 평소 보통 수준의 유연함을 가진 사람들도 나이가 들면 유연성이 떨어진다. 그래서 급격한 상황 변화를  싫어하고, 보수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다.

그렇다면 인지 유연성을 유지하거나 호전시킬 방법은 없을까? 게임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네덜란드 레이덴 대학 뇌와 인지 연구소의 로렌자 콜자토 (Lorenza Colzato) 박사 연구팀은 2010년, Frontiers in Psychology 학술지에 ‘일인칭 슈터 게이머의 우월한 인지 유연성(DOOM’d to switch: superior cognitive flexibility in players of first person shooter games)’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연구자들은 최근 6개월간 주 4회 이상 콜 오브 듀티, 언리얼 토너먼트, 배틀필드, GTA IV와 같이 3D 환경에서 다양한 미션이 주어지는 게임을 즐기는 게이머(VGP)와, 게임을 즐기지 않는 비게이머(NVGP)를 각각 17명씩 모집해 인지 유연성과 관련된 실험을 했다.

다양한 미션을 수행해야 하는 언리얼 토너먼트 

다양한 미션을 수행해야 하는 언리얼 토너먼트 

이들은 평균 23~24세였고, 간이 지능검사로 평가한 지능은 105 정도로 평범한 수준이었다. 연구팀은 이들에게 17인치 모니터와 키보드를 주고 ‘Z’와 ‘?’를 지시에 따라 정확하고 재빠르게 누르도록 했다.

주어진 과제는 이렇다. 모니터에 작은 목표물(local target)을 누르라는 지시가 나온 다음 작은 목표물이 나오면 ?을 누르고, 큰 목표물(global target)이 나오면 누르지 않는다. 그러다 큰 목표물로 지시가 바뀌면 큰 목표물이 나올 때 Z를 누르는 것이다.

각각 지시와 목표 사이에 400~500미리세컨드(ms)의 간격을 줬고, 타겟은 화면에 2,500ms 동안 비춰졌다.

모니터에 목표물이 나오는 방식 

모니터에 목표물이 나오는 방식 

세 번에 걸친 실험은 한 번은 작은 목표물 위주로, 다음 한 번은 큰 목표물 위주로, 마지막 세 번째는 다양한 지시와 목표가 랜덤으로 주어졌다. 여기서 반응시간, 정확도, 작은 목표와 큰 목표가 바뀌었을 때 대응해서 반응하는 속도와 정확도를 측정했다.

목표가 바뀌었을 때 일시적으로 대응하는 과정에서 속도가 늦어질 수 밖에 없는데, 그 반응속도의 차이를 측정해 이를 ‘변화비용(switch cost)’이라 했다. 두 집단 사이에 반응시간 자체의 뚜렷한 차이는 없었다.

그러나 타겟을 변화했을 때 드는 변화비용은 게이머(VGP)가 비게이머(NVGP)에 비해서 확연히 적었다. 게이머는 같은 걸 반복할 때 평균  415ms에 반응하다 변화를 주면 459ms으로 반응해서, 평균 변화비용의 차이는 44ms정도였다.

이에 반해 비게이머는 평균 439ms에서 535ms을 기록, 변화비용이 96ms으로 게이머 집단의 44ms에 비해 두 배 가량 컸다.

게이머(VGPs)와 비게이머(NVGPs)의 변화비용 차이 

게이머(VGPs)와 비게이머(NVGPs)의 변화비용 차이 

이 연구의 결과는 게이머들이 상황 변화에 따라 재빨리, 그리고 효율적으로 잘 대응하는 인지조절능력이 더 좋다는 것을 보여준다. 두 집단의 지적 능력과 연령은 차이가 없으므로, 노화로 인한 영향도 없다.

그러므로 이 결과는 게임을 즐기며 매번 새로운 과제에 대응하고 총을 쏘고 피하는 행동을 반복한 것이 시각변별력, 선택적 주의력을 좋아지게 한다는 이전 연구 결과에 더해 인지 유연성도 향상시킨다(!)고 볼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신나하는 미니언즈

시각변별력+선택적 주의력+인지 유연성 모두 UP!?  (*´ω`*)

변화비용은 결국 변화에 대한 저항으로부터 온다. 인지적 저항이 생기는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가설이 있다. 새로운 것을 시작할 때, 그 전에 했던 것들이 원하지 않아도 떠올라 방해를 한다는 설명이 설득력 있다.

새로운 과제가 완전히 새롭고 한 번도 안해본 것일 때, 과거의 과제와 비슷하지만 약간 다른 것을 할 때보다 변화비용이 적다.

과거의 것과 유제한 과제를 할 때, 이전 기억이 떠올라 관성에 의해 그것을 신경쓰며 새로운 과제에 온전히 집중하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아예 새로운 게, 어설프게 아는 것보다 낫죠

아예 새로운 게, 어설프게 아는 것보다 낫죠 

그런 면에서 게임을 하면서 과거에 지나간 맵을 툴툴 터는 연습을 한 사람은 전두엽의 ‘신경망일치율(neural synchronization)’이 향상되어 과거 기억의 흔적이 자동으로 회상되는 것을 억제할 수 있다.

비록 하나의 연구 결과이기는 하지만, 이 연구를 통해 생각해볼 거리는 꽤 많다. 먼저 이는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삶과 연관성이 있다.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젊고 자유로운 성향이 많다. 이런 성향은 게임 업계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대부분의 게임 회사들이 딱딱한 조직 문화보다는 자유로운 분위기를 추구한다.

흔한 개발자의 사무실.jpg 

흔한 개발자의 사무실.jpg 

둘째로, 게임이 노화 방지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상황 변화에 대한 적응이 더뎌진다. 먹던 것만 먹고, 가던 곳만 가고 싶어진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매우 빨리 변화하고 있으며, 이에 적응을 잘하느냐 못하느냐가 생존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나이가 들었으니 이제 게임은 그만해야겠다라고 하기보다,  평소 즐기던 게임이라면 더욱 손을 놓지 말고 약 먹듯이(!) 꾸준히 해야 인지적 유연성을 유지해서  ‘개저씨’나  ‘꼰대’라는 말 듣는 걸 피할 수 있지 않을까?

명심하거라, 게임은 약 먹듯이 꾸준히 해야 한다

명심하거라, 게임은 약 먹듯이 꾸준히 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게임은 중년 이후에도 필요한 즐거움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 비록 내가 몸은 뻣뻣해도, 인생은 유연하게 대처하며 살아갈 수 있는 비결은 게임 덕분이 아닌가 한다.

참고 문헌

Lorenza S. Colzato, Pieter J.A. van Leeuwen, Wery P.M. van den Wildenberg, , Bernhard Hommel DOOM’d to switch: superior cognitive flexibility in players of first person shooter games Front Psychol. 2010; 1: 8. Published online 2010 Apr 21.


하지현

하지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울대 의과대학 졸업 후 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건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일하고 있다.
전문지식을 쉽게 풀어주는 글솜씨로 칼럼을 연재 중이며
『정신의학의 탄생』 등 10여 권의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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