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6.30 게임 속 스토리텔링

게임 속 스토리텔링 #4 울티마 4

게임 칼럼니스트 이경혁 작가가 들려주는 게임에 숨겨진 스토리텔링에 대한 이야기.

‘게임 속 스토리텔링’ 4편에서는 컴퓨터 역할수행 게임의 고전 <울티마> 시리즈 중 <울티마 4>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드립니다.


게임 속 스토리텔링 #4 울티마 4


롤플레잉 게임의 시조, 울티마 4

고전 롤플레잉 <울티마> 시리즈는 지금까지 이어지는 컴퓨터 롤플레잉 게임의 많은 부분들을 정립한 시초격의 게임입니다.

총 9편의 메인 넘버링 시리즈와 외전들로 오랜 세월 사랑 받은 <울티마> 시리즈 중, <울티마 4> 는 게임의 스토리텔링 면에서 그리고 시리즈의 정립이라는 측면에서 위대한 족적을 남긴 게임입니다.

약 20년 간 역사를 이어 온 <울티마> 시리즈의 위용 (」゜ロ゜)」

약 20년 간 역사를 이어 온 <울티마> 시리즈의 위용 (」゜ロ゜)」

<울티마> 시리즈의 1~3편은 ‘어둠의 시대’로 불리는데요. 소사리아라는 가상의 세계를 지배하는 악의 마법사 먼데인과 그 후예들을 처치하는 전형적인 선악 대결을 다룹니다.

소사리아라는 세계로 소환된 지구의 주인공이 악을 처치한다는 내용이 아주 신선한 것은 아니죠.

악의 마법사 먼데인 #But_3편에서_빠빠이

악의 마법사 먼데인 #But_3편에서_빠빠이

물론 그렇다고 <울티마> 시리즈의 초기작이 폄하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롤플레잉 게임의 형식이라는 측면에서 이룩한 성과는 쉽게 지나칠 수 없는 요소입니다.

평화의 시대가 찾아 온 <울티마 4>

평화의 시대가 찾아 온 <울티마 4>

<울티마> 시리즈는 4편에 이르러 세계관과 등장인물이 정립되고, 마침내 시리즈의 독특한 개성을 꽃피웁니다.

특히 <울티마 4>를 명작의 반열에 올린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스토리텔링의 변화였습니다.


전형적 선악 대결에서 벗어나다

<울티마 4>는 전작들이 넘지 못했던 선악 대결 구도라는 전형성을 넘어섭니다.

쪼렙 – 중간보스 – 대마왕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선악 대결의 이야기를 배제한 빈 자리에 들어온 것은 놀랍게도 미덕에 대한 성찰과 탐구였습니다.

8가지 미덕에 대한 형상화 #심오심오 #진지진지

8가지 미덕에 대한 형상화 #심오심오 #진지진지

<울티마 4>는 다른 RPG와 달리 플레이어가 위협받지 않습니다. 거대한 악의 처단이 전편에서 일단락되었고, 세계에는 새로운 번영이 피어납니다.

평화의 시대에 필요한 철학을 위해, 국왕 로드 브리티시는 플레이어를 소환하여 새로운 미덕을 탐구하고 전파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울티마 4>의 플레이는 바로 이 미덕의 발견을 향해 떠나는 여정입니다.


8가지 미덕에 대한 탐구

8가지 미덕에 대한 탐구는 사원에서 명상하고 미덕의 아이템인 룬스톤을 찾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남의 물건을 훔치지 않고, 질문에 겸손하게 답해야 하며, 악 앞에서 물러서지 않아야 합니다.

플레이어의 행동들은 각각의 미덕 수치에 영향을 주며, 모든 미덕에 대해 깨달음을 얻어야만 엔딩에 다가설 수 있습니다.

미덕을 하나씩 완수할 때마다 얻게 되는 앙크(Ankh)

미덕을 하나씩 완수할 때마다 얻게 되는 앙크(Ankh)

선악 대결의 단선적 흐름은 <울티마 4>에서 ‘자유도’라고 부르는 비선형 서사로 변형됩니다. 여기엔 순서대로 악을 처치하는 개념이 없습니다.

플레이어는 8개의 미덕 중, 최초 캐릭터 생성 시 설정했던 성격과 가까운 미덕의 마을부터 시작하게 되는데요. 어떤 모험의 순서를 택하든, 이야기는 플레이어 스스로 만드는 형태로 풀려 갑니다.

연민(Compassion)이냐, 정의(Justice)냐 #캐릭터_생성중 

연민(Compassion)이냐, 정의(Justice)냐 #캐릭터_생성중 

이처럼 고정되지 않은 서사로부터, 플레이어는 ‘자유로움’이라는 새로운 게임의 컨셉을 플레이하게 되는 것이죠.


80년대 뉴에이지의 영향

<울티마 4>를 논하며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는 80년대 붐을 일으켰던 ‘뉴에이지’라는 트렌드입니다.

68혁명과 히피 운동으로부터 시작된 정신과 영혼의 자유로움에 대한 추구는, 1980년대에 이르러 힌두교, 유대교 등의 신비주의와 결합하며 뉴에이지라는 이름으로 유행하게 됩니다.

★★★ 우주의 기운을 모아보자 (◎_◎) ★★★

★★★ 우주의 기운을 모아보자 (◎_◎) ★★★

<울티마 4> 속 개념들은 뉴에이지 트렌드의 영향권 안에 있습니다. 8개의 미덕 수행을 위한 사원에서의 명상, ‘만트라’의 암송 등은 뉴에이지적 관점에서의 영성에 대한 접근방식입니다.

게임하면서 명상 수행 중 #들숨날숨 #이너피스

게임하면서 명상 수행 중 #들숨날숨 #이너피스


미덕의 화신, 아바타의 등장

이제는 보편어가 된 ‘아바타’라는 단어도 <울티마 4>에서 등장한 뉴에이지적 요소입니다.

힌두교에서 신이 형상화한 모습을 가리키던 이 단어는 <울티마 4>에서 미덕의 화신으로 거듭나는 플레이어 자신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됩니다. 게임의 부제가 ‘아바타의 여정(Quest of the Avatar)’라는 점은 의미심장하지요.

소사리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모험을 떠나는 ‘아바타의 여정’

소사리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모험을 떠나는 ‘아바타의 여정’

힌두교로부터 비롯되어 히피와 뉴에이지의 열풍을 타고 성장한 아바타 개념은 <울티마 4>를 통해 게임 캐릭터의 의미를 갖게 되는데요. 이제는 가상세계에서 현실의 자신을 대변하는 사이버상의 화신(化身)으로 자리하게 됩니다.

이젠 게임의 필수 요소가 된 아바타(Avatar) 개념

이젠 게임의 필수 요소가 된 아바타(Avatar) 개념

롤플레잉 게임의 형식뿐 아니라 스토리텔링에 있어서도 단순 선악 대립의 구도를 넘어설 수 있음을 보여준 <울티마 4>. 그 자체가 새로운 게임 양식이었던 동시에, 양식의 한계를 뛰어넘는 게임이기도 했습니다.

<울티마 4>가 리메이크하고 싶은 게임으로 첫 손에 꼽히는 이유도 이처럼 시대를 앞서간 성취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이경혁

이경혁

게임 제작 관련업에 종사한 경험이 없는
순수 게이머 출신의 게임 칼럼니스트.
게임 비평을 통해 우리 사회 전반에
게임의 매체성을 환기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중이다.
저서로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이 있으며
성균관대에서 ‘게임과 인문학’ 교양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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