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3.07 게임 속 스토리텔링

게임 속 스토리텔링 #1 빛과 어둠의 대결, 앨런 웨이크

게이머들을 게임 속 세상에 몰입하게 만들려면 실제로 있을 법한 생생한 이야기, 즉 ‘스토리텔링’이 매우 중요합니다.

때문에 스토리텔링은 게임 기획 단계부터 매우 중요하게 고려하는 지점인데요.

게임 칼럼니스트 이경혁 작가가 스토리텔링이 뛰어난 게임을 엄선해 다루는 ‘게임 속 스토리텔링’,  1편에서 소개할 게임은 스티븐 킹의 소설과 미드 <로스트>의 영향을 받아 제작한 심리 액션 스릴러  ‘앨런 웨이크’입니다.


게임 속 스토리텔링 #1 빛과 어둠의 대결, 앨런 웨이크

주의_ 본 기사는 앨런 웨이크에 대한 다수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미스터리 작가가 주인공인 미스터리 스릴러 

앨런 웨이크의 주인공은 베스트셀러 작가 앨런 웨이크입니다. 그는 갑작스런 슬럼프로 글을 쓰지 못하게 되고, 아내 앨리스와 함께 한적한 시골마을 호숫가에 위치한 별장으로 향하죠.

그러나 앨리스가 호수에 빠지는 사고를 당하고, 아내를 구하기 위해 호수에 뛰어든 앨런은 1주일간 혼수상태에 빠집니다.

정신이 든 앨런은 충격적인 사실을 접하는데요. 애초에 그 호수에 별장같은 건 없었다는 겁니다.

사라진 아내, 잃어버린 기억을 찾기 위한 주인공의 고군분투가 펼쳐지는데...

사라진 아내, 잃어버린 기억을 찾기 위한 주인공의 고군분투가 펼쳐지는데…

아내를 납치하고 기억을 앗아간 주범은 거대한 어둠이라 불리는 알 수 없는 힘.

앨런은 자신과 아내를 구하기 위해 펜 대신 총과 플래시를 들고 어둠으로 향합니다.


인과관계로 얽힌 빛과 어둠의 대결

게임에서 빛과 어둠은 매우 중요한 대결 구도를 형성합니다. 게임 속 적들은 어둠의 피조물로, 빛이 없는 곳에서 불쑥 튀어나와 플레이어를 공격합니다.

일반 무기로 공격해서는 소용이 없죠. 플래시로 빛을 쪼여서 어둠의 껍질을 제거한 후에야 공격할 수 있습니다.

게임 속 전투는 1) 플래시로 비추고 2) 총으로 사격하는 2중 구조인 셈이죠.

빛으로 어둠을 날린 후에 사격이 가능한 공격 시스템 

빛과 어둠의 대립은  원인과 결과로서 인과관계를 형성합니다. 빛이 없으면 어둠도 없듯이, 게임 속 어둠은 빛의 반대편에서 그림자로 이어져 있죠.

이 상호 인과의 관계는 게임의 서사와 긴밀하게 맞물리는 지점입니다.


신비한 호수의 힘, 그러나 대가를 치른다 

게임의 주요 배경인 호수는 예술가의 창작력을 높이고, 심지어 창작한 이야기를 현실로 만들어 주는 신비한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감을 얻기 위해 호수를 찾은 예술가들이 어둠의 힘에 갇히는 부작용 또한 존재했죠.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호숫가 별장, 하지만...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호숫가 별장, 하지만…

어둠에 잠식당한 예술가 1호는 게임 속에서 언급하는 1970년대의 시인, 토마스 제인입니다.

호수의 힘을 빌어 글을 쓰던 그는 연인 바바라가 호수에 빠져 죽자, 호수의 힘을 이용해 연인을 되살리겠다는 문학적(!) 발상을 하고 맙니다.

게임 속에서 잠수복을 입고 등장하는 토마스 제인

게임 속에서 잠수복을 입고 등장하는 토마스 제인

FPS게임 ‘바이오쇼크’의 빅 대디를 연상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토마스의 발상에 의해 되살아난 연인 바바라는 어둠에 힘에 의해 통제되는 피조물이 되고 맙니다.

의도와 달리 어둠의 힘을 불러온 토마스는 바바라를 끌어안고 호수 속으로 뛰어듭니다.

과거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어둠의 존재가 되어 나타난 바바라 

과거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어둠의 존재가 되어 나타난 바바라 

토마스의 실수는 어떤 상태(원인)에 따라 필연적인 결과가 일어나는 것, 즉  인과율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니까요.  어둠은 현실에서 불가능한 이야기의 구멍을 메워주면서, 동시에 현실 세계를 침입합니다.

실수를 깨달은 토마스는 호수에 뛰어들기 전, 이 문제를 해결할 인물 하나를  ‘창작’해 둡니다. 그가 바로 주인공 앨런 웨이크입니다.


창작이 현실이 되다

슬럼프에 빠진 소설가 앨런은 어디까지가 원래 모습이고, 어디서부터가 토마스의 창작에 의한 것인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다만 앨런은 토마스가 남긴 단서를 통해 호수의 힘이 창작을 현실로 만들며, 창작이 인과율을 위반할 때 어둠을 불러온다는 사실을 깨닫죠.

어둠에 맞서기 위해 소설로 현실을 바꾸는 것은 같지만, 앨런은 “그래서 어둠이 사라졌다.” 같은 현실성없는 이야기를 쓰지 않습니다. 비현실성이 어둠을 불러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원고를 쓴 사람은 나지만 내가 쓴 것은 아니다...? 

원고를 쓴 사람은 나지만 내가 쓴 것은 아니다…? 

플레이어들은 주인공이 쓴 원고를 주워 모으게 됩니다.  정작 주인공은 쓴 기억이 없는 원고지만, 호수의 힘을 통해 원고의 내용은 현실에 반영되죠.

게임 속 어둠의 적들도 모두 원고에 있는 내용입니다.  이처럼 창작물이 게임 속 세계의 영향을 주는 기묘한 순환 논리는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마치 플레이어가 직접 게임 안에 뛰어들어서 몬스터와 지형을 만들고, 이를 무찌르며 다음 레벨로 나아가는 격이죠.

창작물에 등장한 적들과 싸워야 하는 주인공의 운명 

창작물에 등장한 적들과 싸워야 하는 주인공의 운명 

작가에 의해 만들어진 세계가 곧 작가를 둘러싼 세계가 된다는 것은 일종의 자폐적인 현상이라 볼 수 있습니다.

게임 속 세계는 현실의 무엇이 아닌, 어둠의 힘에 맞서기 위해 작가가 자신만의 세계로 침잠시킨 결과물일 수도 있죠.


열린 결말, 플레이어의 해석이 정답

앨런 웨이크의 스토리텔링은 열린 결말에 이르러 정점을 찍습니다. 엔딩을 봐도 앨런과 아내가 어떻게 된 건지, 어둠이 세계를 집어삼킨 것인지 알 수 없죠.

애초 작가가 창작물 안에 들어가서 플레이하는 게임의 이야기 구조를 생각해 보면, 이러한 엔딩은 플레이어들이 스스로 모은 단서를 가지고 만들어낸 이야기의 결말입니다.

어떤 결말에 이를 것인지는 플레이어의 선택에 달렸습니다 

어떤 결말에 이를 것인지는 플레이어의 선택에 달렸습니다 

누군가는 게임 속 세계를 작가의 자폐증적 내면으로, 또 누군가는 마법이 살아 숨쉬는 현대 판타지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또 누군가는 “뭔소린지 모르겠네. 만들다 말았어!” 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엘런 웨이크의 스토리텔링이 보여주는 묘미입니다.

여러분의 해석은 어떠신가요?


이경혁

이경혁

게임 제작 관련업에 종사한 경험이 없는
순수 게이머 출신의 게임 칼럼니스트.
게임 비평을 통해 우리 사회 전반에
게임의 매체성을 환기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중이다.
저서로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이 있으며
성균관대에서 ‘게임과 인문학’ 교양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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