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9.17 게임과 밀리터리

게임과 밀리터리 #3 ‘진짜 사나이’를 위한 군용 게임 열전

군용, 회한 가득한 이름이여! 보통 ‘군용 같다.’는 말은 저퀄(…)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서구에서는 ‘군용 수준(military grade)’이란 말이 ‘매우 정밀하다.’는 뜻으로 통할 만큼 군용은 고퀄의 대명사입죠!

<게임과 밀리터리> 그 세 번째 시간에는 진짜 사나이들을 위한 군용 게임에 대해 알아볼까 합니다.  게임이라고 해서 놀려고 만든 거라 생각하면 경기도 오산! 실제 훈련보다 안전하고, 돈도 적게 들고(!) 훈련 효과도 뛰어난 군용 게임.  그 매력 속으로 한번 빠져 보실까요~?  ( ͡° ͜ʖ ͡°)



전쟁은 모다? 최첨단 기술의 원천이다!

전쟁은 군용 기술을 발전시켰고, 군용 기술은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최첨단 기술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가장 널리 알려진 건? 역시 인터넷이죠! 미국의 고등연구계획국 (*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의 초기 연구가 없었더라면, 지금과 같은 초고속 인터넷 환경은 SF 영화에서나 접했을지도 모릅니다.

어느새 저퀄의 아이콘이 된 슬픈 그 이름...군용마크

어느새 저퀄의 아이콘이 된 슬픈 그 이름…

참 아이러니하죠? 인류 역사의 큰 비극인 전쟁이, 우리가 누리는 편의를 제공해 준 기술의 원천이라니요…지난 달, 평양에서 공연을 해 화제가 된 슬로베니아 록밴드 라이바흐(Laibach)는 ‘전쟁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아.’ 라는 내용의 70년대 팝 히트곡을 패러디해서 ‘전쟁은 통신, 수송, 과학, 산업, 종교를 발전시켰다.’는 내용의 노래를 만들기도 했죠.

라이바흐의 노래가 놓친 게 한 가지 있다면 바로 게임입니다! 게임은 태생부터 밀리터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이죠. 역사상 최초의 비디오 게임으로 평가되는 <스페이스 워!>는 1962년, 미국 국방부의 펀딩을 받은 MIT 대학원생들이 개발한 것입니다.

초기 마이크로 컴퓨터인 PDP-1에서 구동 중인  <스페이스워!>초기 마이크로 컴퓨터인 PDP-1에서 구동 중인  <스페이스워!>

물론 연배가 연배이니만큼(^^;) 요즘 게임같은 정밀함과 화려함은 없지만 <스페이스워!>는 모니터를 통해 상황을 확인하고 컨트롤러를 사용해서 조작을 하는, 비디오 게임의 기본적인 구도를 정립했습니다.

오큘러스 리프트가 일반 모니터보다 먼저 나왔다면 너도나도 미연시에 빠졌을듯

오큘러스 리프트가 일반 모니터보다 먼저 나왔다면 너도나도 미연시에 빠졌을듯


싸고 안전한 군용 게임

리얼리티와 액션 사이: 걸작 FPS 게임 열전에서 다룬 바와 같이, 3D 그래픽의 발달로 보다 현실적인 1인칭 시점의 시물레이션이 가능해졌습니다. 그리고 군대에서도 이런 기술을 도입한 훈련용 게임을 활용하게 되었죠!

군대에서 훈련용 게임을 활용하게 된 까닭은? 간단합니다. 실제 훈련 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으로부터 자유로우면서, 비용도 싸게 먹히기 때문이죠. 게다가 FPS 게임이 워낙 빠르게 발전하고 있어서, 시중에 나와 있는 비디오 게임을 용도에 맞게 개조해서 쓰는 게 별도의 시물레이션을 개발하는 것보다 훨씬 이득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해서 개발된 대표적인 밀리터리 시뮬레이션 게임으로는 <버추얼 배틀스페이스(이하 ‘VBS’)> 시리즈를 꼽을 수 있습니다.  FPS 게임 열전에서 소개했던 <아르마3>를 만든 보헤미아 인터랙티브가 개발한 게임인데요, <오퍼레이션 플래쉬포인트>라는 게임을 2001년에 군용 시물레이션으로 만든 게 그 첫 번째 버전입니다.

<오퍼레이션 플래쉬포인트>라는 게임을 2001년에 군용 시물레이션으로 만든 게 그 첫 번째 버전입니다.

 “야, 저기 8시 방향 멀티에서 질롯 나온다!”

미 해병대와 호주군은 <VBS1>에 많은 관심을 갖고 훈련에 활용했습니다. 그들의 보내 온 피드백을 바탕으로, 보헤미아 인터랙티브는 기능을 개선해서 2007년에 한층 버전업된 <VBS2>를 발표했죠. 미 육군은 2009년부터 게임을 이용한 훈련 프로그램에 <VBS2>를 도입해 실제 훈련에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해 업그레이드된 <VBS2> 신기능 소개 영상

흥미로운 사실은 근래 전쟁의 성격이 변하면서, 게임에도 이러한 추세가 반영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대반란전과 테러 공격이 두드러지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을 반영하듯, <VBS2>에는 IED(*급조 폭발물)나 부상자 이송 상황 등이 추가됐습니다.

미 고등연구계획국의 지원으로 개발된 또 다른 훈련용 시물레이션 <DARWARS>도 <VBS>의 전신인 <오퍼레이션 플래쉬포인트>의 엔진을 기반으로 한 게임입니다. <DARWARS>는 아프간/이라크 전쟁 관련 영화에서 종종 등장하는 차량 호송 미션 수행과, 해당 나라에서 사용하는 언어 학습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VBS2> 같이 성공적인 시뮬레이션은 많은 나라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영어도 이렇게 배우면 왠지 더 잘할 것 같지 않습니까!? 

훈련 시뮬레이션 게임은 단지 미군에서만 쓰는 게 아닙니다. <VBS2> 같이 성공적인 시뮬레이션은 호주, 캐나다, 핀란드, 프랑스, 뉴질랜드, 네덜란드, 싱가포르, 영국, 그리고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 등 많은 나라에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이색 ‘모병 홍보용’ 게임

전세계적으로 돈을 가장 펑펑 쓰는 군대인 미군은 싱크빅 돋는 독특한 게임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모병용’ 게임 <아메리카 아미(America’s Army)>입니다. 2002년, 언리얼 엔진을 사용해 만든 이 게임은 훈련과 교육의 목적도 있지만 무엇보다 FPS유저들을 미군으로 유입시키려는 목적이 가장 큽니다.  ( ͡° ͜ʖ ͡°)

 ‘모병용’ 게임 <아메리카 아미(America's Army)>는 FPS유저들을 미군으로 유입시키려는 목적이 가장 큽니다.

그래 임마, 미군이 널 원한다고! 

<아메리카 아미>의 가장 큰 특징(이자 매력)은 무료라는 데 있습니다. 무료,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만큼 설레는 단어 아닙니까? 게다가 게임 등급도 ‘청소년 이용가’입니다. 만약 훈련이 주목적이었다면 일반에는 공개하지 않았을 거고, 등급도 청소년 이용가로 매기지 않았겠죠.

1999년, 미 육군사관학교의 교수이자 경제학자였던 케이시 워딘스키 대령이 ‘컴퓨터 게임 기술을 이용해 대중에게 매력적이고 정보성이 있으면서도 재미있는 가상의 군인으로서의 경험을 제공한다.’는 개념을 제시하면서 <아메리카 아미>의 개발이 시작됐습니다.

어느 나라에서는 게임을 규제하고 있을 때, 어느 나라에서는 군인을 모집하는 게임을 만들었습니다.

어느 나라에서는 게임을 규제하고 있을 때, 어느 나라에서는 군인을 모집하는 게임을 만들었습니다…

미군의 기초 군사 훈련 기간은 9주인데, 중간에 탈락하는 훈련병들의 수가 상당합니다.  훈련을 통과하는 게 어떤 것인지를 미리 보여줄 수 있다면 모병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발상에서 <아메리카 아미>가 개발된 것이죠.

2002년에 발표한 첫 번째 버전은 상당히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게임 중간에 응급처치법을 배워야 하는데, 이 게임을 통해 응급처치를 배운 사람이 실제로 사람을 구한 사례가 있어서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죠. 1,300만 명 이상의 플레이어들이 게임에 등록했다고 하니, 이만하면 큰 성공이라 할 수 있겠죠?

물론 게임만 믿고 군대 갔다간 땅을 치고 후회합니다물론 게임만 믿고 군대 갔다간 땅을 치고 후회합니다 ^_ㅜ

이후 꾸준한 업데이트를 거쳐 2013년에는 최근작인 <아메리카 아미: 프로빙 그라운드(Proving Grounds)>를 발표했습니다. 훌륭한 그래픽과 빠른 속도로 이루어지는 소규모 멀티플레이를 보여주지만, 1편을 뛰어넘는다는 평을 듣지는 못했습니다.


사람을 잡는 것도 게임, 살리는 것도 게임

고막을 찢는 굉음과 살점이 튀기는 전장의 충격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참전용사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PTSD)에 대해 이제는 군대에서도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죠. 하지만 여전히  ‘정신과 상담은 나약한 놈들이나 받는 것.’이라는 인식이 남아 있어 치료에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고 합니다.

근래에는 게임을 활용한 PTSD 치료가 많은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개발 중인 ‘가상현실 노출치료(Virtual Reality Exposure Therapy)’는 이라크와 아프간에서의 경험으로 인해 PTSD에 시달리는 참전용사들의 치료가 주목적이죠.

자, 이제 모두 잊으세요 레드썬! 

자, 이제 모두 잊으세요 레드썬! 

의사의 통제 하에 가상머신(VR) 기기를 사용해서 당시의 경험을 다시 떠올리도록 하고, 그때의 경험으로부터 마음을 추스릴 수 있도록 돕는 게임이라고 합니다. 또한 군인의 배우자, 치료사 등 다양한 캐릭터의 롤플레잉도 가능해서 스스로를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고 하네요. 임상 치료에서도 꽤 좋은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고 합니다.

전쟁 시뮬레이션으로서의 게임은 ‘어떻게 하면 효율적인 살상을 가능하게 할 수 있을까.’라는, 어찌보면 섬뜩한 목적을 띠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전쟁으로 인한 상처를 회복시키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것도 게임이지요.

우리나라에서도 이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다양한 도움을  줄 수 있는 게임이 선보일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김수빈

김수빈

게임을 만들고 싶었다.
GW 베이직으로는 안되길래 C를 배워야 한대서
엄마한테 학원 보내달랬더니 공부나 하라고 해서 포기.
게임 잡지 기자가 되고 싶었으나 하나씩 망하는 것을 목격.
매일 수련을 거듭하고 있으나 나라를 위해 싸우지는 않으며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목숨을 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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