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3.10 칼럼

권오철의 도전 (2) 킬리만자로, 꿈을 넘어

우주를 찍기 위해 필요한 변곡점 – 권오철 작가 인터뷰 (1) / (2)

권오철의 도전 (1) 울릉도에서 독도를 품은 일출을 촬영 편에 이어…

천체사진가 권오철 작가의 ‘도전‘ 이야기 두 번째 편은, 회사를 그만두고 퇴직금을 털어 처음으로 간 촬영지, 킬리만자로 이야기입니다.


도전 2 – 킬리만자로, 꿈을 넘어

by 권오철

 권오철의 도전 (2) 킬리만자로, 꿈을 넘어킬리만자로산

필름 시절에는 별이 시간에 따라 움직인 궤적을 촬영하는데 미쳐 있었습니다. 필름은 요즘의 디지털 카메라에 비해 감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밤하늘의 별들을 짧은 노출로 점으로 나오게 하려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개 장시간 노출을 줘서 별들이 움직여간 궤적을 찍었지요. 북극성 근처에서는 동심원을, 그리고 천구 적도 근방에서는 직선의 궤적을 그리는데, 그 곡률의 변화와 선들의 밀도, 길이 등에 따라 밤하늘이 주는 느낌은 제각각이지요. 밤하늘에도 표정이 있습니다. 물론 아는 사람 눈에만 보이지요.

북쪽 하늘을 찍은 이 사진에서 짧고 빽빽한 궤적들이 동적인 느낌을 준다.  태안 천리포 해변에서 1994년 촬영.

북쪽 하늘을 찍은 이 사진에서 짧고 빽빽한 궤적들이 동적인 느낌을 준다.

태안 천리포 해변에서 1994년 촬영.

서쪽 하늘의 완만한 궤적은 정적인 느낌이다. 굵은 궤적은 ‘달의 몰락’이다. 소백산에서 2001년 촬영.

서쪽 하늘의 완만한 궤적은 정적인 느낌이다. 굵은 궤적은 ‘달의 몰락’이다. 소백산에서 2001년 촬영.

천구 적도상의 별들은 직선의 힘찬 궤적을 그린다.  거제도에서 본 밤바다에는 배들이 지나간 불빛이 보이고,  멀리 대마도가 보인다. 1997년 촬영.

천구 적도상의 별들은 직선의 힘찬 궤적을 그린다.

거제도에서 본 밤바다에는 배들이 지나간 불빛이 보이고,

멀리 대마도가 보인다. 1997년 촬영.

 

독도 프로젝트와 마찬가지로 킬리만자로 프로젝트도 별 궤적 사진에 몰두하다 보니 나온 아이디어입니다. 뭔가에 계속 매달리다 보면 한계에서 도약하는 순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점점 더 넓은 화각에 카메라를 들이대면서 북극성부터 적도, 천구 남극까지의 장대한 궤적의 변화를 한 장의 사진으로 담을 생각까지 이르게 된 거죠.

이 사진은 적도에 가서 찍어야 했습니다. 동쪽 방향을 보고 서면 별들이 지평선에서 수직의 직선으로 올라옵니다 여기에서 고개를 북쪽으로 돌리면 점점 궤적이 휘어지면서 지평선 바로 위의 북극성 근방에서는 반원을 만들게 됩니다. 남쪽도 마찬가지로 천구 남극을 중심으로 반원을 그리게 됩니다. 동쪽이나 서쪽을 중심으로 보면 분수 같은 모양의 궤적이 만들어 지겠지요.

킬리만자로 서쪽 하늘. 10시간 별들의 일주. 2010년 촬영.

킬리만자로 서쪽 하늘. 10시간 별들의 일주. 2010년 촬영.

 킬리만자로 남쪽 하늘. 10시간 별들의 일주. 2010년 촬영. 킬리만자로 남쪽 하늘. 10시간 별들의 일주. 2010년 촬영. 

이 생각이 들었을 때만 해도 해외여행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돈도 많이 드니 국내에서 어떻게 해볼까 생각도 해봅니다. 북반구니까 천구 적도를 기준으로 카메라를 옆으로 기울이고, 딱 그렇게 기울어 비탈진 배경을 찾으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지요. 북쪽은 되는데 남쪽이 잘려서, 아무래도 제대로 찍으려면 적도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갈라파고스, 빈탄, 그리고 킬리만자로갈라파고스, 빈탄, 그리고 킬리만자로

세계지도를 보니 적도가 만만한 곳은 아니었습니다. 치안이 좋지 않은 곳들을 제외하고 갈만한 곳들을 뽑아보니, 싱가폴의 빈탄, 탄자니아의 킬리만자로 산, 그리고 다윈의 진화론으로 유명한 갈라파고스 제도가 있었습니다. 갈라파고스 제도는 지구 반대편인 남미에 있어서 돈이 너무 많이 들더군요. (언젠가 가긴 갈 겁니다.) 빈탄이 비용은 가장 적게 드는데, 날씨가 문제였습니다. 여러 시간 궤적을 촬영해야 하니까 그 동안 구름이 지나가면 안 되는데, 그런 날씨 조건이 되지 않았어요. 킬리만자로 산은 날씨 조건은 좋은데 정확하게 적도에 위치하지 않습니다. 남위 3도 정도에요. 가운데의 직선 궤적이 지평선과 수직이 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왠지 킬리만자로가 계속 끌립니다.

아마도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 때문이 아니었을까 해요. 그 노래 가사를 다시 들어보면, 온 몸에 닭살이 돋다 못해 깃털이 생겨 날아갈 것 같습니다. 헤밍웨이의 ‘킬리만자로의 눈’은 좀 덜하긴 하네요. 킬리만자로 정상 부근에는 진짜로 얼어 죽은 표범의 시체가 있었다고 합니다. 초창기 원정대들이 기념으로 부분부분 뜯어가서 지금은 남아있지 않다고 합니다. 그 녀석이 왜 얼음 밖에 없는 그 곳까지 올라갔는지는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산이 거기 있어 오른다고 하지만, 목숨까지 걸어가며 오르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제가 어떻게 표범 속마음까지 알겠어요. 아무튼 저는 사진을 찍기 위해 오릅니다. 안전한 산에만요.

 킬리만자로산 정상 인근에서 발견된 얼어죽은 표범킬리만자로산 정상 인근에서 발견된 얼어죽은 표범

꿈이 정해졌으니 실현하려면 카메라, 여행 경비, 등산 장비, 거기까지 갔다 올 시간과 같은 것들을 준비해야 합니다. 첫 번째로 카메라. 동쪽을 기준으로 북쪽과 남쪽의 궤적을 한 장에 담으려면 엄청난 광각의 시야를 포괄하는 카메라가 있어야 합니다. 파노라마 카메라라고 하는 것인데, 가격이 천만 원이 훌쩍 넘어가는 가격입니다. 필름 카메라, 특히 대형 포맷 카메라들은 정말 단순합니다. 렌즈를 통해 맺은 상을 필름에 노광시켜줄 박스일 뿐입니다. 심지어 셔터도 렌즈에 달려 있으니 정말 박스일 뿐인데, 린호프 홀스만이니 하는 것들은 너무나 비쌉니다. 이리 저리 고민하다 만들기로 합니다. 똑같은 렌즈를 사고, 필름 홀더를 사면, 카메라는 정말 박스일 뿐이니까 쇠 깎는 데서 만들면 됩니다. 천체사진은 촬영 대상이 항상 무한대의 거리에 있으니 초점 맞출 필요도 없어서 단순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동일한 광학적 성능의 보다 가볍고 편리한 카메라를 시중 가격의 반의 반도 안 되는 가격으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한 대 뿐인 수제 카메라세상에서 한 대 뿐인 수제 카메라.

카메라도 준비되었고, 등산 장비는 하나씩 사 모으면 되는데, 정작 문제는 시간이었습니다. 월급장이 신세에 열흘 넘게 휴가 내는 것이 어려웠던 거죠. 결국 생각한지 10년 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사진가로 전업하고 나서야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유인이 되어 퇴직금을 털어 처음 간 곳이 킬리만자로입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참 많이 변했습니다. 누구나 집에서 인터넷을 쓰게 되었고, 촬영 다닐 때 지도 대신에 네비게이션으로 길을 찾게 됩니다. 그리고 별을 장노출로 연속해서 찍을 수 있는 디지털 카메라가 세상에 등장합니다. 그래서 처음 계획과는 촬영 계획이 조금 달라집니다. 원래 찍으려던 별 궤적 사진이 아니라 디지털 사진이 주 목적으로 바뀐 것입니다.

누군가 저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필름 사진에서 최고수로 인정받는 당신이 왜 굳이 디지털로 전환하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천체사진이나 산악사진에서는 디지털이 대세가 아니었기 때문이지요. 제 답은 더 나은 결과물을 얻기 위해서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산도 마찬가지지만 정상에 올라서면 다음 산을 찾아야 합니다. 정상이라고 안주하면 어느 순간 뒤처지게 되지요. 잘 나갈 때 다음을 대비해야 험한 세상에서 살아 남을 수 있습니다.

디지털 카메라를 도입한 덕분에 내가 느낀 밤하늘의 경이로움을 보다 생생하게 다른 이들에게 전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바로 영상이지요. 사진을 계속 찍으면 그것을 영상으로 만들 수 있게 되는데 그것을 타임랩스(time-lapse)라고 합니다.

 킬리만자로 정상 위로 떨어지는 별똥별킬리만자로 정상 위로 떨어지는 별똥별. 산 위로 올라가는 사람들의 헤드랜턴 행렬을 볼 수 있다. 낮에는 너무 뜨거워서 밤에 정상 등정을 시도하고 일출을 보고 내려온다. 

중간에 엄청나게 큰 별똥별이 떨어지는 것이 찍혔습니다. 평생 촬영한 별똥별 중에 가장 큰 것입니다. 언제 어디로 떨어질지 알 수 없는 그것이 하필이면(?) 킬리만자로에서 그것도 키보봉 정상 바로 위로 떨어져 줍니다. 역시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하나 봅니다.

킬리만자로산과 은하수킬리만자로산과 은하수

킬리만자로는 가장 높은 키보봉 좌우로 쉬라 고원과 마웬지봉이 있습니다. 위 영상은 동쪽의 마웬지봉에서, 위 사진은 서쪽의 쉬라 고원에서 촬영한 것입니다. 디지털 카메라는 충전과 백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산을 동쪽과 서쪽에서 두 번 올라 갔습니다. 현지 가이드들이 이런 사람 처음 본다고 합니다. 두 번을 연속으로 오르는 것도 처음인데, 두 번을 오르면서도 정상을 안 가니까요. 저는 촬영이 목적이니 정상을 찍을 수 있는 그 옆 봉우리를 오르는 거지요. 남들과 다른 목적이 있는 사람은 가는 길도 다르기 마련입니다.

ps. 킬리만자로도 여행 경비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사진가로 전업했기 때문에 그 결과물로 경비를 뽑을 수 있어야 먹고 살 수 있겠기에, 결과물로 어떻게 비용을 뽑아낼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떠났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캠프들을 일일이 다 찍는 이상한 코스로 올랐지요. 덕분에 사진과 영상 말고도 책도 썼습니다. 10곳 넘는 출판사에서 거절당했지만 드디어 올해 출판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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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체사진가 권오철

권오철

천체사진가.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과 벤처기업에서 잠수함설계, 소프트웨어 개발, 유무선 인터넷 관리 등 다양한 일을 했다. 일은 재미있으되 대한민국에서 회사원으로서의 삶은 행복하지 않아 사진가로 전업했다. 수입은 절반 이하로 줄었으나 백배 이상 행복을 느끼며 살고 있다.
다섯 번의 개인전을 가졌으며 다섯 권의 책을 출간했다. 미국 NASA의 Astronomy Picture of the Day에 한국인 최초로 선정되었고, 미국 National Geographic 사이트에 사진을 제공하고 있다. 세계 유명 천체사진가 33인으로 구성된 TWAN(The World At Night, www.twanight.org)의 일원으로 UNESCO 지정 ‘세계 천문의 해 2009’의 특별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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