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3.17 칼럼

권오철의 도전 (3) 사진가로 살아남기

우주를 찍기 위해 필요한 변곡점 – 권오철 작가 인터뷰 (1) / (2)

권오철의 도전 (1) 울릉도에서 독도를 품은 일출을 촬영

권오철의 도전 (2) 킬리만자로, 꿈을 넘어 편에 이어, 권오철 작가의 도전 이야기, 세 번째 편입니다. 연재는 아쉽게도 이번 편으로 막을 내립니다만, 작가님의 계속되는 도전 이야기를 언젠가 우주정복 블로그에서 다시 만나기를 기대해 봅니다.


도전 3 – 사진가로 살아남기

벌써 세 번째 글입니다. 이번이 마지막 연재입니다. 시원섭섭합니다. 글을 더 쓰지 않아도 되는 건 좋은데, 원고료가 이것으로 끝이니 말입니다. 회사원을 그만두고 사진가로 전업하니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사소한 것에서도 행복을 느끼게 되었어요. 그전에는 급여 통장을 집사람이 관리했으니까 월급이 들어오던 상여가 들어오던 별로 신경을 안 썼는데, 그때보다 수입도 줄고 간간히 들어오게 되니 돈 버는 게 즐겁습니다. 제가 돈으로 할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보람되고 행복한 일은 그 전에는 별로 생각도 안했던 주제인데, 아프리카 어린이들 돕고 뭐 그런 게 아니라 집사람에게 송금하는 것입니다. 그 동안 그런 행복을 선사해준 엔씨소프트, 고맙습니다.

이번 연재의 주제가 ‘도전’이어서 독도와 킬리만자로 도전 이야기를 썼는데, 사실 산다는 거 자체가 가장 큰 도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생명이 탄생할 때부터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나옵니다. 그 존재 자체도 참으로 귀하지요. 같은 부모 아래에서도 유전자 염색체 조합의 개수는 무려 70조개가 넘습니다. 수학 좋아하시는 분들 계산해 볼까요? 인간 염색체는 23쌍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부모에게서 각각 무작위로 받게 되니 2²³ × 2²³ 이나 되는 경우의 수가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아마 일란성 쌍둥이가 아니라면 호모 사피엔스 출현 이후로 동일한 조합은 단 한 번도 더 나오지 않았을 겁니다.

이렇게 힘들게 태어났어도 죽을 때까지 또다시 도전의 연속입니다. 의식주도 해결해야 하고 번식도 해야 하고… 영장류의 삶이란 돌도끼 대신 핸드폰을 들고 다니게 되었어도 마찬가지로 쉽지 않습니다.

제 블로그(http://blog.kwonochul.com/)의 제목은 ‘사진가로 살아남기’입니다. 사진 뿐만 아니라 음악이나 글 쓰는 일과 같이 콘텐츠를 생산하는 사람들은, 특히나 대한민국과 같이 한글을 쓰는 인구가 제한된, 그러니까 시장 규모가 작은 곳에서는 먹고 사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그나마 사진은 언어의 장벽을 넘어설 수 있지만, 특정 지역색이 드러나는 사진들은 관련 지역 범위를 넘어서 소비되는 일이 많지 않지요. 독도 사진도 대한민국 외에서 팔리는 일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블로그 사진가로 살아남기 첫 화면블로그 첫화면

아무튼 포기하지 않고 죽을 때까지 사진가로 살아 남아야, 기존에 제 사진을 구입한 사람들에게 약속을 지키는 것입니다. 제가 사진을 포기하고 다른 것을 한다면, 제 사진의 가치는 ‘정크 본드’ 수준이 되겠지요. 죽을 때까지 살아남아 혹시라도 ‘대가’로 기억되게 된다면 제 고객들은 ‘로또’에 당첨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꼭 대가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제 이름으로 기억될 한 장의 사진을 찍을 수 있다면 됩니다. 번식에 성공해서 생물학적으로 존재의 의미는 남겼으니 또 다른 욕심도 갖게 되는군요.

사진가로 전업하기 전에는 회사원 생활을 10여 년을 했습니다. 일은 재미있었는데 행복하지는 않았어요.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 수 없을까를 항상 고민했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사진을 하고 싶었지만, 통계청에서 나온 자료로도 업종별 종사자수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줄어든 분야가 사진관이었거든요. 대기업에서 차장까지 가서, 부장 직함을 앞두게 될 때까지도 고민은 계속 됩니다.

아무리 잘나도 회사를 평생 다닐 수는 없습니다. 재벌가 오너가 아니라면 말이죠. 언젠가는 제 2의 인생을 살아야 하는데, 한시라도 빨리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굶지 않는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사진 시장은 답이 없는 상황이었지만, 영상 쪽은 가능성이 있어 보였습니다.

디지털 카메라 초창기에 생각했지요. 당시만 해도 해상도도 떨어지고 고감도 성능이 형편없어서 천체사진은 아직도 필름을 쓰던 시절이었습니다. 디지털 카메라가 앞으로 점점 더 발전해서, 별을 장노출로 연속으로 찍을 수 있을 정도가 되면 사진으로 영상을 만들 수 있겠구나. 그걸로 영상 시장에서는 먹고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카메라가 대체 언제쯤 나올까. 20년은 걸리지 않을까? 죽기 전엔 나오겠지…

의외로 10년이 채 안되어 원하는 카메라가 세상에 등장합니다. 가장 마지막까지 기술적으로 해결되지 못하던 문제가 열화노이즈라는 것입니다. 밤하늘처럼 어두운 대상을 촬영하기 위해 장시간 노출을 주면 이미지 센서의 발열로 인해서 가장자리 쪽에 희뿌연 노이즈가 올라오던 현상이었지요.

열화노이즈열화노이즈

그런데 엉뚱한 곳에서 변화가 시작됩니다. DSLR 카메라에서 동영상을 지원하기 시작했던 거죠. 동영상을 촬영하려면 이미지 센서에 계속 빛을 받아야 하기에 이 문제를 해결해야 했던 겁니다. 그래서 동영상을 촬영할 수 있는 DSLR 카메라는 천체 타임랩스를 촬영할 수 있게 됩니다. 엉뚱한 곳에서 문제가 해결되었지만 계속 지켜보고 있었기에 바로 수용할 수 있었습니다.

캐논 5D mark II 디지털 카메라캐논 5D mark II 디지털 카메라

 

이 카메라가 발표된 것은 2008년 말입니다. 나오자마자 렌탈해서 사용해보고 잘 된다는 것을 확인하고, 바로 구입합니다. 처음부터 그냥 사진이 아니라 타임랩스 촬영을 합니다. 오래전부터 준비해 왔기에 타임랩스 초기에 바로 세계적인 전문가가 될 수 있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타임랩스 초창기에 전 세계에서 기술적으로 가장 앞서가던 세 사람이 모두 천체사진 찍던 사람입니다.

타임랩스 연관검색어

초기에는 타임랩스를 검색하면 제 이름이 연관검색어로 같이 나왔습니다. 그러다 다른 연관검색어도 많아지고, 이제는 제 이름이 보이다 말다 하다가 대개는 안 보입니다.

이 카메라를 구입했던 2009년은 참 많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기회는 누구에게나 오지만 준비된 사람만이 잡을 수 있다고 하지요. 유네스코에서 2009년을 세계 천문의 해로 지정합니다. 전세계적으로 별과 관련된 많은 행사가 있었는데, 회사를 다니면서도 천체사진을 꾸준히 해왔기에 참 많은 일을 하게 됩니다. 27개국에서 제 사진을 전시하고, 우리나라에서도 5개 도시에서 전시를 합니다. 액자를 미리 용달로 보내놓고, 금요일에 밤차타고 내려가서 새벽에 전시장 설치하고… 그때 단련되어서 요즘도 어지간한 전시 설치는 혼자서도 뚝딱 해냅니다.

2009 세계 천문의 해 로고2009 세계 천문의 해 로고

2009 세계 천문의 해 서울 전시 모습2009 세계 천문의 해 서울 전시 모습

이렇게 많은 행사를 하다 보니 시장이 눈에 들어옵니다. 천체사진으로 잘하면 한 사람 정도는 먹고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카메라도 사진과 영상을 찍게 되어 기기 면에서도 사진시장과 영상시장이 융합되는 시기였지요. 모든 것이 맞아 떨어지는 때였습니다. 하지만 회사를 그만두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월급장이 생활 밖에 해보지 않아서, 다른 세상이 너무나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천시, 지리가 맞아도 인화가 안 되면 소용이 없는 거죠. 이렇게 2009년이 저물어 가던 12월, 인생을 바꾼 계기가 되는 오로라 여행을 가게 됩니다. 캐논과 캐나다 관광청에서 오로라 원정대 행사를 하는데, 천체사진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해서, 돈을 받고 따라가게 됩니다. 사실 회사원이 12월에 일주일씩 휴가를 내는 것은 인사고과나 성과급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심지어 책상이 없어질 것을 각오해야 하지요. 하지만 공짜면 양잿물도 먹는다는데, 돈까지 받는 그런 좋은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던 거죠.

천체사진을 오래 해 왔기 때문에, 오로라를 처음 봤을 때, 생각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같이 갔던 사람들은 충격이었지요. 나름 범생으로 살다보니 다른 부류의 사람들과 별로 접촉할 일이 없었습니다. 거기에선 월급 받는 생활을 하는 사람은 저 혼자였습니다. 사진을 찍던, 만화를 그리던, 글을 쓰던, 자기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사는데도 굶어죽지 않고 살아 있는 사람들을 처음 만난거죠. 저는 이때 자유로운 영혼의 세례를 받았다고 이야기합니다.

 2009 캐나다 옐로나이프 오로라 원정대2009 캐나다 옐로나이프 오로라 원정대

시시각각 변해가는 오로라. 위 세 장은 1분 정도 만에 변해가는 모습이다.  캐나다 옐로나이프에서 2009년 촬영.시시각각 변해가는 오로라. 위 세 장은 1분 정도 만에 변해가는 모습이다.

캐나다 옐로나이프에서 2009년 촬영.

미국 National Geographic 홈페이지 대문을 장식한 필자의 사진. 2011년.미국 National Geographic 홈페이지 대문을 장식한 필자의 사진. 2011년.

마지막에 가장 중요한 것은 용기였습니다. 12월 초에 오로라를 보고 와서 12월 중순에 사직서를 내고, 12월 말일자로 자유인이 됩니다. 그 뒤로 그냥 시키는 대로 살던 회사원의 틀에서 벗어나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아 나서게 되면서 겪는 일은 새장을 탈출한 새가 야생에서 겪는 일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준비해 왔기에 처음부터 타임랩스 전문가로 성공적으로 영상시장에 진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진가로 전업한 첫 해부터 방송국에서 촬영 감독들 불러다 촬영 기법에 대한 강의까지 하고 다니게 되었으니까요.

이건 10년 전쯤 생각했던 SWOT 분석의 예측이 딱 맞아 떨어졌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배워두면 다 피가 되고 살이 됩니다. 대기업에서 직원 교육으로 받았던 마케팅 수업 내용에 SWOT, 즉 Strength(강점), Weakness(약점), Opportunity(기회), Threat(위기)에 대해 예측해보고 대응 방안을 마련해보는 것이 있었지요. 타임랩스를 생각하면서 이것을 그려서 생각했던 것이 신기하게도 10년 뒤에 정확하게 맞아 떨어진 것입니다.

SWOT 분석

작년부터는 그 예측에서 Threat(위기) 시나리오에 따라 준비한 것으로 위기를 헤쳐가고 있습니다. 어떤 기술이 시장에 나와서 성숙해지면, 누구나 할 수 있게 되고 너도 나도 뛰어들어 저가의 레드오션 시장이 됩니다. 타임랩스도 이제는 온갖 자동화 프로그램들이 나와서 예전에는 전문가들만 할 수 있던 것들을 자동으로 처리해줍니다. 기술로는 차별화가 어렵게 된 것이지요.

시장을 선점하고,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서 이제는 기획이 중요해진 거지요. 기술 뿐만 아니라 아이디어도 결합한 컨텐츠, 거기에 시장을 선점한 네임 밸류까지도 활용해야 합니다. 요즘 전쟁은 전선에서만 하는 게 아니라 총력전이라고 하는데, 먹고 사는 것도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울릉도에서 본 독도 일출도 그런 계획의 일부분이고, 올해는 뭔가 새로운 것들을 내어놓는 시기가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역시 오래가지 않을 것을 압니다.

정상에서는 다음 산을 바라보아야 하지요. 박수칠 때 떠나야, 새로운 도전을 시작해야,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ps. 요즘 저처럼 회사를 그만두고 천체사진 하겠다고 연락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 분야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최고가 된다 하더라도 비즈니스석을 타고 촬영 다니는 일은 없을 거라고 말해줍니다. 평생 이코노미석에 쭈그리고 다녀야 합니다. 그래도 굶지만 않는다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는 것이 행복할 것입니다.


권오철
천체사진가.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과 벤처기업에서 잠수함설계, 소프트웨어 개발, 유무선 인터넷 관리 등 다양한 일을 했다. 일은 재미있으되 대한민국에서 회사원으로서의 삶은 행복하지 않아 사진가로 전업했다. 수입은 절반 이하로 줄었으나 백배 이상 행복을 느끼며 살고 있다.
다섯 번의 개인전을 가졌으며 다섯 권의 책을 출간했다. 미국 NASA의 Astronomy Picture of the Day에 한국인 최초로 선정되었고, 미국 National Geographic 사이트에 사진을 제공하고 있다. 세계 유명 천체사진가 33인으로 구성된 TWAN(The World At Night, www.twanight.org)의 일원으로 UNESCO 지정 ‘세계 천문의 해 2009’의 특별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COSMOS ODYSSEY – The Journeys of An AstroPhotographer from kwon, o chul on Vimeo.

필자는 스스로의 직업을 ‘밤하늘의 경이로움을 사진으로 다른 이들에 전달하는 행복한 직업’으로 정의했습니다. 그 소개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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