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1.11 게임 에세이

게임 에세이 #2 이다_그럴 시간이 있어 정말 다행이었지

그럴 시간이 있어 정말 다행이었지

2da (일러스트레이터)

2000년, 고3이었다. 잡지를 보다가 우연히 어떤 게임이 한국에 출시된다는 광고를 보게 되었다. 인간을 키우는 게임이라고 했다. 집을 짓고, 직장에 가서 돈을 벌고, 결혼을 하고, 병에 걸려 죽기도 하는 게임이란다. 참 이상하다 생각하면서도 슬그머니 이 게임에 매료되었다. 그러나 고3 수험생이라는 신분의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잡지에서 게임 광고를 오려 후일을 약속하며 지갑에 넣는 것이 고작이었다. 게임 광고는 그 뒤 1년 동안이나 지갑 안에 고이 모셔져 있었다.

대학생이 되어 게임을 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었지만, 컴맹에 가까웠던 나는 어떻게 게임을 컴퓨터에 넣는(!) 것인지 방법을 몰랐다. 게임이라는 것을 도통 ‘각 잡고’ 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드디어 그 게임을 깔아주었다. <The SIMS>,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영혼을 바친 게임이다.

심즈는 엄청난 충격 이었다. 게임이란 싸우거나, 쳐부수는 게 전부인 줄 알았다. 내가 무식했다는 뜻이다. 심즈는 내 편견을 확실히 깨주었다. 일단 ‘심(Sim)’이라고 불리는 게임 속의 사람을 하나 만든다. 머리도 얼굴도 옷도 내 마음대로 고를 수 있다. 그런 다음 살 집을 짓고 가구를 놓은 뒤 심을 이사시킨다. 심에게 직장을 잡아주고 출근시킨다. 심은 사람과 똑같이 허기와 수면, 배변, 재미, 청결 등의 욕구를 가지고 있다. 기술을 익히고 취미를 즐기고 논리를 쌓으면서 심은 성장해 간다. 직장에서 승진도 하고, 해고를 당해 백수 신세가 되기도 하며, 다른 심과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등, 우리 인생을 그대로 축소해 놓은 게임이었다. 인간을 만든 신의 입장이 되어 심의 인생을 들여다보았다. 신이 나를 이런 식으로 키우고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수시로 들었다. 나는 심즈에 몰두했다!

어떤 쪽이냐고 했을 때 나는 항상 게임을 좋아하지 않는 쪽인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세계를 구축하고 발전시켜나가는 시뮬레이션 게임은 완벽한 나의 취향이었다. 내친 김에 PS2를 구입했다. <이코>, <메탈기어 솔리드 2>, <진여신전쟁 3>, <페르소나 4>, <마계전기 디스가이아1> 등을 렙업하듯 섭렵해나갔다. <진여신전쟁 3>는 플레이타임 1000시간을 넘겼고, <마계전기 디스가이아> 역시 800시간 넘게 플레이하며 결국 40번 넘게 엔딩을 보고서야 직성이 풀렸다.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않고 게임을 하다가 쓰러져 잠든 적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심즈 2>가 출시되고 나서는 거의 2주일은 학교에도 안간 것 같다. 눈뜨고 있는 모든 시간은 게임만 했다. 그러다 죽을 수도 있었던 것 아닐까 싶기도 하다.

스물한 살. 게임을 시작하지 않았으면 내 인생이 조금 더 달라졌을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아까운 20대 초중반의 시간을 방 밖으로 나가지도 않고 게임에 쏟아버린 것이 아쉽고 안타까운 적도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미친 듯이 빠졌기 때문에, 시간이 소중하다는 것을 아는 것이 아닐까? 20대 초반의 나는 방황기였다. 우울하고 폐쇄적인 성격에, 물론 친구도 없었다. 집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았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피했다. 세상이, 사람들이 정말로 두려웠었다. 집안에 있던 나에게 게임은 꿈같은 세상이었다. 게임 속에는 모험이 있었고, 엔딩이 있었고, 리셋 버튼이 있었다. 두려움 때문에 포기해야하는 많은 선택을 게임 속에서는 자신 있게 도전했다. 실패해도 다시 기회가 주어지고, 경험치가 쌓이면 같은 퀘스트를 해도 성과가 달랐다. 한 단계씩 나아가고 성장하는 게임 캐릭터가 주는 희열은 어느 샌가 현실의 나에게 커다란 위로가 되었다. 어쩌면 게임 속에서 과감한 도전과 그로 인한 발전을 거듭하며 실제 세상에서의 내 모습을 준비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게임을 하면서 평생 남을 좋은 친구들도 만났다. 좋아하는 지점이 비슷했던 그들과 더 빨리 친해졌고 더 깊이 알게 되었다. 지금도 가장 친한 친구들이다. 그들 덕에 나는 집 밖으로 스스로 걸어 나오게 되었고, 폐쇄적이고 우울했던 성격도 밝아졌다. 게임을 하며 ‘흘려보냈다고 생각한’ 시간들은 실은 인생에 아주 중요한 이벤트를 치렀던 기간들이었던 것이다.

시간이 가고 일러스트레이터 일이 궤도에 오르면서는 게임할 시간이 정말 부족해졌다. 지금 돌이켜보니, 27세 이후로 한 번도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을 하지 않았다. 온라인 게임도 몇 년 전 <아이온>에 빠졌던 것이 전부다. 요즘은 게임이라고 해봤자 짬이 날 때마다 스마트폰으로 미니게임을 즐기는 정도다. 예전처럼 미칠 순 없지만 게임을 완전히 손에서 놓을 순 없나보다. 서른 셋 먹은 지금도 그 때 했던 것 같이 게임이 너무 하고 싶을 때가 많지만 이젠 그럴 시간이 잘 생기질 않는다. 아. 정말 그때라도 실컷 게임 해둬서 다행이야.


2da (일러스트레이터)

스물한 살부터 그림을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이다의 허접질』, 『무삭제판 이다플레이』의 저자이며 『리얼토킹시리즈』, 『피아니시모 피아니시모』, 『반가워, DSLR』등 단행본 일러스트를 작업했다. ‘이다이다 전’, ‘나와 이다 전’, ‘소소한 마음 전’ 등 5번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지금은 국내여행 에세이와 어른을 위한 동화를 준비 중이다. http://2daplay.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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